미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하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거행하는 주님 사랑과 희생의 기념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찬 전례 안에서 바치는 감사 기도를 통해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 주시며 하신 말씀을 반복하면서 그분의 사랑과 희생, 죽음과 부활을 다시 기념하게 됩니다. 이렇게 감사 기도문 안에서 주님의 사랑과 희생을 ‘기념’(Anamnesis)하는 부분은 ‘성령을 청원하는 부분’(Epiclesis)과 더불어 성찬 전례 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특별히 이 ‘기념’ 부분에서 교회는 우리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의 파스카 신비를 기억하면서, 그 신비를 통해 우리를 성부와 화해시키신 그리스도를 성찬의 희생 제사 안에서 성부께 봉헌하게 됩니다.
이러한 전례적 ‘기념’과 관련하여 특별히 우리가 기억하고 되새겨야 할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이 내용에 대해 전례 사전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만약 전례적 기념이 우리의 인간적 기억에만 관련된다면 그것은 단순히 축제적 기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례적 기념에는 하느님의 실제 ‘기억’이 포함되며 어린 양의 희생 제사는 세상 창조 때부터 효과를 낸다(묵시 13,8). 그러므로 전례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범주를 포괄하고 넘어가는 신비를 현존케 한다. 우리 기억을 하느님의 기억에 합치시키는 모든 전례적 행위는 우리로 하여금 확실히 하느님의 영원성에 참여하게 한다”(주비안 피터 랑, 전례 사전, 가톨릭출판사 2005, 68 참조).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은 첫째, 전례적 ‘기념’이 인간적 ‘기억’을 초월하여 하느님의 구원 역사와 연결된 개념이라는 것. 둘째, 전례는 시간의 범주(과거, 현재, 미래)를 포괄하는 것이기에 전례적 행위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영원성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미사 때의 ‘기념’은 이천 년 전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단지 인간적으로 ‘기억’함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념’을 통해 우리의 유한성이 하느님의 영원성에 참여하는 순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미사 안에서 행하는 기념은 단순히 과거의 구원 사건을 회상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베푸신 위대한 구원을 선포하며 ‘지금 여기서’ 그 구원 사건이 재현되고 현재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례적 ‘기념’을 통해 이천 년 전의 구원 사건에 우리가 참여할 수 있고, ‘나’의 구원이, 아니 ‘우리’의 구원이 ‘지금 여기서’ 이뤄짐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오직 감사드리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감사로 가득 차 기쁨 가득한 찬미를 드립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김혜종 요한 세례자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