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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에덴은 한국에 있다15 - 중앙아시아영웅 게세르는 고려황제
http://blog.daum.net/mujinbon/818
소연방이 해체되면서 중앙아시아 제국가들의 독립하면서 국가정체성 구축라는 과제에 직면하여 역사와 민족에 대한 관심이 급폭증하게 되었다.
또한 중국이 자본주의세계에 편입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몽골 카자흐 우즈벡등으로 한국과 중앙아시아의 관련성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된다.
이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는 하나의 큰 물줄기를 형성햇는데...역으로 중국을 동아시아역사의 큰 틀에서 이해함으로서 중국동북공정을 창조적으로 극복할수 잇는 길이기도 하다.
최근 많은 재야나 정통사학자들이 중앙아사이아와 한국관련하여 심도깊은 연구결과들을 계속 내놓음으로서 역사에 관심가진 한국인들에게 큰 충격과 감동과 귀중한 정보를 주고있다.
이 중에 중앙아시아 게세르신화에 대한 내용이 국내에 많이 확산되고 있다.
『마나스』, 『장가르』와 함께 중앙아시아 3대 서사시로 꼽히는 『게세르』는 몽골, 티베트 지역에서 널리 전승되어온 영웅서사시로 혼란한 인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하늘에서 현신한 게세르 칸의 이야기다. 게세르의 신화적인 출생부터 초인적인 능력으로 시련을 이겨내고 시방 세계를 평정하기까지, 용맹무쌍하고 기지 넘치는 무용담의 세계가 펼쳐진다. 여타 영웅서사시가 비장하고 숭고한 분위기로 도덕에 대한 교훈을 설파하는 반면, 게세르는 강력한 힘을 과시하는 지배자이자 심술궂고 적을 조롱하는 악동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몽골 유목민족의 독특한 관념세계를 보여준다.
국내 최초로 번역된 게세르(Geser) 서사시
게세르의 여러 판본들, 번역본들 가운데 처음으로 우리말로 읽을 『게세르』는 티베트계 사람들의 『게사르』, 몽골계 사람들의 『게세르』를 통틀어 가장 먼저 출판된 1716년 북경판 목판본이다. 이 텍스트는 최초로 인쇄된 게세르 이야기라는 점에서 높은 문헌학적 가치를 가질 뿐 아니라, 18세기 몽골 유목민들이 즐겨 부르고 읽던 게세르 이야기라는 점, 티베트어 『게사르』보다 100년 이상 먼저 외부세계에 소개되었다는 점 등에서 다른 어떤 판본도 따라올 수 없는 문학적, 문화적 가치가 있다.
게세르는 서사시에서 조로라고 불리는데...꺼사르 줴루라고 번역하신 분도 잇다.
여기서는 책내용보다는 게세르라는 명칭이 무얼 의미하느냐에 집중해서 볼것인데...결론부터 말하자면...
게세르는 사실 조선(朝鮮),고려(高麗)를 말하는 것이고...조로는 한자 조로(朝魯)를 말함이다.
현대한자발음으로 자오루다.
조선(朝鮮)의 선(鮮)에서 양(羊)을 뺀 그냥 태양물고기로 로(魯)로 한것이다.
로(魯)는 어김없이 생명물고기 가라 가르 카라 카르를 말함이다.
왜냐면 고대한자발음으로 조(朝)는 카사이고 로(魯)를 붙이면 카사로가 된다.
선(鮮)은 고대발음으로 사르(타르)가 되어 조선(朝鮮)은 카사사르가 되는데...
카사를 카로 축약하여...카사르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게세르는 그냥 카사르이며 바로 조선이다.
그리고 고려(高麗)도 고대음이 카사르다.
한국에 한(韓)의 일본 훈독이 가라인데 카사를 카로 단축시키면 카르 즉 가르 가라 카라가 되는 것이다.
즉 게세르는 조선이고 고려고 한국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므로 중앙아시아 영웅 게세르는 결국 조선과 고구려 한국에 대한 것이다.
이건 한자고대음에 대한 음운연구에 정통한 분의 저서로부터 추출한 내용이다.
게세르는 꺼사르 카사르 카자르 카자흐 카이사르 등으로 있는데...
로마황제가문도 카이사르 가문으로...게세르라는 황금혈통을 흉내냇다고 보면 된다.
영어단어 시저(Caesar)는 독일에서는 카이저(kaiser), 러시아에서는 차르(czar) 라고 하지만 모두 황제를 뜻하는 말이다. 황제 중에서도 실권을 장악하고 마음껏 휘두르는 전제군주나 독재자에게 이러한 호칭을 붙인다. 이 절대적인 힘을 가진 황제를 뜻하는 시저라는 단어는 실은 로마의 정치가였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로부터 비롯되었다. 카이사르라는 이름이 각국에서 다르게 발음되며 모두 황제를 가리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황제가 아니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지금 이스라엘땅에도 게제르(Gezer)라는 도시가 존재하는데...지금의 Tel Gezer.
오늘날 이스라엘의 람라 가까운 곳에 있다. 게제르(게셀)는 구약성서와, 투트모세 3세(BC 1479~26)에서 메르넵타(BC 1213~04)까지 이르는 이집트 신왕조의 기록에 자주 등장한다. BC 900년경에 폐허가 되었고 그후로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이스라엘인들은 앗시리아 침공부터 디아스포라 상태로 점차 돌입하는데...이들 상당수가 중앙아시아로 이동하여 AD10세기에 중앙아시아에 카자르왕국을 세우고 그들의 유대인정체성을 다시 확립하려 했다.
고구려가 카사르라는 내용의 발췌글...
"처음에는 高句麗라 하지 않고 高麗라 했고, 高麗가 최초의 공식 국명이었습니다. 당시 음은 初音과 훈독, 두 가지로 읽혔습니다. 高의 상고음은 [kaw]이고 初音은 [ka]입니다. AD.121년에 완성한 <설문해자>에 麗(려)와 籭(사)는 音이 같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麗는 [려]로 읽고 있고 籭는 [사]로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籭의 상고음은 사전에서 [srar]로 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麗, 籭는 당시 [srar]로 읽혔고 이보다 앞선 음은 [sara(r)]였습니다. 또, 麗는 상고음이 [crejs]이며 이보다 앞선 음은 [kərə(ᄀᆞᄅᆞ)]로 읽히기도 했습니다. 즉, 麗의 상고음 이전 音은 [sara(r)], [kərə(ᄀᆞᄅᆞ)] 두 음으로 읽혔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麗가 두 음으로 읽히기 전에는 [kasara]였다는 얘깁니다. 이것은 濊의 초음[kasar(a)]과 일치합니다. 따라서 麗가 후에 [sara(r)]로 읽혔을 때에는 高麗는 [kasara]로 읽혀 濊가 되고, 麗가 [kərə(ᄀᆞᄅᆞ)]로 읽혔을 때는 高가 훈독으로 높다는 뜻의 [ᄃᆞᆯ]이 되어 [ᄃᆞᆯ ᄀᆞᄅᆞ]로 읽혔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시기는 한자 음독과 훈독이 함께 쓰이던 때라서 高麗를 한자음으로 [kasara]로 읽기도 하고 또 훈독으로 [ᄃᆞᆯᄀᆞᄅᆞ]로 읽기도 한 것 같습니다. 후에 麗가 [ra] 음으로 변하자 [ka] 음을 보충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句입니다. 이때, 高句麗는 [ᄃᆞᆯᄀᆞᄅᆞ]로 읽혔던 것입니다"
조선이 카사르라는 내용의 발췌글...
朝(조) : tieog (한자고금음휘) / tiog (칼그렌) / tiaw(중국상고음)
그런데 鮮(선)에대한 자료는 없어서 다른 자료를 참조합니다. (스타로스틴)
선(鮮)
Modern (Beijing) reading: xian 1
Middle Chinese reading: sjen
Old Chinese reading: shar ==> 고대 상고음은 '샤르'
다시말해 조선의 옛 음가는 '티억샤르' / '티옥샤르' / '티아샤르'로 볼 수 있다는 거죠.
티억,티옥의 'ㄱ'음이 흔히 탈락하는 경향을 고려한다면 조선의 평균적인 재구음은 "테샤르"
/ '타샤르'였다고 볼 수 있겟습니다. ==> 스타로스틴에 의하면 (朝의 상고음은 'thewer')
타사르가 카사르로 들릴수 잇다고 본다.
아사달이 카사르라는 내용의 발췌글...
아사달(阿斯達)도 고대음으로 카사라였다.
단군왕검이 도읍을 정한 阿斯達에 대한 이설이 분분하나 諸家들의 說들은 阿가 당시 음으로 [가]였다는 사실을 배제한 것이다. <說文解字>에 阿는 可聲이라 했다. [ka(가)]로 읽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說文解字>는 AD.121년에 완성되었다. 그렇다면 단군왕검의 도읍은 <說文解字>보다 훨신 앞선 시기이므로 [아]로 읽어서는 안 된다. [아]는 수‧당 시대의 음, 즉 중고음인 것이다. 達은 山, 高를 뜻하는 우리말이다. 알타이어는 ㅏ/ㅓ, ㅗ/ㅜ의 통교를 허용하는 언어이므로 阿斯는 [가사/거서]로 읽었으며 阿斯達의 뜻은 濊山, 혹은 濊地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고대한자음에 대한 발음을 추적해보면...조선 고려 아사달이 다 카사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사르는 사라로 신라를 의미
신라를 ‘신라’나 ‘시라’로 읽지 말고 羅를 보고 新을 훈 ‘사라’로 읽어 달라는 뜻이다. 新, 東은 훈이 ‘사라’로
羅가 이를 받쳐주고 있는 것이다. [新羅]를 [사라]로 읽어야 하는 결정적 단서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新의 훈이 [사라]임을 밝히면 국호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다.
이상 내용들은 주로 최춘태 계명대학교 언어연구박사님의 내용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현대의 도시명 카스가르와 같다. 가르가 물고기이고 사르가 염소물고기(鮮)이다.
원래 가르는 기르에서 유래하는 땅이라는 의미나 생명물고기가 잇는 땅으로 가르로 된것으로 본다.
사라는 타라로도 되서 땅이라는 뜻이되서 카자흐공화국수도가 아스타나다.
사라(타라)는 바다염소의 땅이라는 의미겟다.
카스에서 카스는 카로 축약하고 가르를 사르로 바꾸면 카사르가 된다.
가르는 물고기(魚)이고 사르는 염소물고기(鮮)인데... 그럼 카스(喀什:Kashi)는 무엇일까?
카스(喀什:Kashi)의 의미
그럼 카스(喀什:Kashi)란 무엇인가...카라카스를 쳐보니...베네수엘라 수도이름이 뜬다...세계지도를 펴고 보면 이 카라나 카스가 붙은 지명이 엄청 많다...카라는 북극성의 곰으로 되는 검다는 의미로 물고기시대의 생명물고기를 상징함은 알겟고...
카스는 그냥 카라고도 하고...키쉬 쿠쉬 쿠시 키시 쿠처 고차 킵착 기자 구스 등으로 변형되 부른다...
퉁구스의 구스도 동쪽의 구스가 아니냐 이런 생각도 드는데...퉁구스는 동쪽초원의 선비 고구려 말갈 거란 초원부족을 통칭하는 말이다. 또한 고대이집트를 구스의 땅이라고 불렀다.
카스는 창세기구약에 노아의 아들 함의 아들 이름으로 나온다. 함의 자식들은 구스 미스라임 붓과 가나안이다. 이들은 인도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이디오피아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스페인 남부까지 확장하면서 세력을 넓혔다. 이집트는 구스, 이디오피아는 미스라임 이런 식이다.
그런데 구스의 아들 중에 니므롯이 잇다. 강력한 제국을 만들고 바벨탑을 세워 언어분기를 촉발한 매우 뛰어난 도시건설자이며 사냥꾼이며 정복군주였다.
니므롯이 세운 왕조가 쿠쉬왕조엿을까? 인도의 라마의 쿠샨왕조도 쿠쉬가이다.
카스라는 이름을 흑소씨 게열의 함가문이 독점햇던 것인가?
자료를 찾아보니 카프카스가 나온다.
캅카스(러시아어: Кавка́з, 문화어: 깝까즈) 또는 카프카스 또는 코카서스(영어: Caucasus) 또는 카우카스 또는 코카시아(아디게어: Къэфкъас, 아르메니아어: Կովկաս, 아제르바이잔어: Qafqaz, 조지아어: კავკასია , 오세트어: Кавказ, 체첸어: Кавказ, 터키어: Kafkasya)는 유럽의 동쪽, 아시아의 서쪽의 지리학적 지역이다. 유럽의 가장 높은 산(엘브루스 산)을 포함하는 캅카스 산맥의 발상지이다.
독일 철학자 Christoph Meiners가 The Outline of History of Mankind (1785)란 책에서 처음으로 언급하였고, 인종학의 토대를 구축한 독일 의학자이자 영국 왕립학회 회원이던 Johann Friedrich Blumenbach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일부 미신을 믿는 이들에 의하면, 단어 캅카스는 북부 캅카스인들의 조상이라고 알려진, 카우카스로부터 유래했다. 그는 토가마흐의 아들로, 성경에 있는 노아의 셋째 아들 야벳의 손자이다. 레온티 므로벨리에 따르면 바벨탑이 무너지고 인류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도록 분할 되었는데, 토가마흐는 그의 아들 카르틀로스와 하이크 (조지아어: "ჰაოს", 하오스), 모바코스, 레코스(라크인), 헤로스(헤레티 왕국), 카브카스, 그리고 에그로스(에그리시 왕국)과, 아라라트 산과 엘브루스 산으로 추정되는, 접근하기 어려운 두 산 사이에 정착했다.
캅카스는 지구에서 가장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있는 지역이다. 오늘날 캅카스는 소비에트 연방이었던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의 단일민족국가로 구성된다. 러시아의 분할은 크라스노다르 지방, 스타브로폴 지방, 그리고 아디게야, 카라차이체케스시아, 남오세티야, 인구시 공화국, 체첸의 자치 공화국, 그리고 다게스탄을 포함한다. 그 지역의 세 영토들인, 압하스, 나고르노카라바흐 그리고 남오세티야는 독립을 주장하지만 국제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단일민족국가로 정평이 나있지 않다.
카프카스가 노아의 아들 야벳 즉 백소씨계열의 손자였다고 나온다. 그러니 카스라는 말이 흑소씨가 독점한 것은 아니다.
이미 아르카스로 아르는 황궁씨족인 셈의 아들 아르파사를 말한다고 햇고 이 사람이 단군이라고 주장햇다. 여기에도 아르카스로 카스가 나온다.
그러므로 카스라는 말은 노아일족에 이름가운데 많이 사용하던 명칭임을 알수 잇다.
그럼 왜 카스라는 말이 수많은 도시와 사람이름에 이렇게 보편적으로 사용된 것일까?
사실 기자조선의 기자도 카스의 변형이다...기즈로 기자피라미드도 카스라는 말과 관련잇어 보인다.
의미추적에 한자가 도움이 된다. 카스는 한자로 객십(喀什)으로 객은 객담 즉 정액을 말한다.
정액은 정액인데 십(十人)이 되는 정액이다.
십은 10으로 알파와 오메가의 존재 시작과 끝의 무극 종교적으로 말하면 하늘님이다.
그러므로 카스라는 말은 천손혈통이라는 말이다.
천손혈통이 생명나무다. 가르 즉 두마리 물고기가 수호한다.
결국은 십 什의 본래의미는 가라족이라는 말로 가르 가라 쿠르 카라 카이 가야 케레 코레 구리 구이 코리의 의미라는 말이다. 더해서 10이 어떤의미 인지도 알 수 있는데 카슈카르는 원래 소륙국 疏勒국 수러국이라 하는데, 이는 수르국으로 수르는 수메르어로 소를 의미한다. 수메르라고도 할수 있고 우르라고도 할수 있다.
소는 염제신농을 뜻하니 카슈가르는 염제신농의 나라라고 할수 있다.
태백산아래로 내려왓다 함은...어떤 특정지형을 뜻하는 게 아니다...
본래 숫자로 태는 10이고 소는 5다. 10이 음이므로 음10이 되는데 흑점이된다.
이 10개의 흑점을 백색으로 변하게 하는 게 샤먼의 역할이다.
흑10이 백10으로 되면 태백이 되는 것이고 이게 한국고래의 사상속에 흐르는 십승의 의미이다.
흑10은 (흑땅5+흑인5)로 백10이 되고 원래 백5와 합해 천지인 삼위일체가 모두 백으로 완성되는 의미다.
백5는 소백이고 백10은 태백으로 이게 바로 양백이다.
문명이 한바퀴 돌아 본자리로 돌아와 재생한다는 것이다.
삼위로 둘러싸였다는 건 삼신을 말하는 것이다.
삼위로 둘러싸인 태백이라함은...삼신이 거주하는 중앙 십승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삼위태백을 특정 땅에서 찾으면 안된다.
신목은 알다시피 우주목이다.
결론적으로 태백산은 바로 삼신산이다.
바로 사람의 심성령心性靈자리를 가르키는 것이다.
"천해 동쪽 파나루산 아래에 환인씨의 나라인 파나루국이 존재한다"
파나루는 파미르(용산)이고 천해는 카스피해다. 파나루국은 파미르고원 아래 카스가르가 도읍이 되는 것이다.
조선은 한반도 혹은 만주에서 시작한게 아니고 중앙아시아 파미르로부터 시작햇다고 봐야 한다.
사실 한국은 숫자10, 십(十)과 직결된 나라다. 주역이나 천부경 카발라이론 등과
민간도참사상을 동원돼야 하는...
상당히 심원한 내용이므로 이에 대해 따로 별도로 분석해보겟다.
가라와 사라에 대한 음운 분석발췌
동이족에서 동은 East가 아니라 맏이나 우두머리의 뜻으로 쓰인 겁니다. 이/리의 발음은 가라로 왜와 예등과 같답니다. 그러니까 동이는 맏가라로 고구려, 고려, 마한과 말갈과 같이 맏가라란 의미로 가라족(부여족/예)이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한 또한 가라로 발음이 된다고 하니 대한민국에서 대한은 맏가라의 의미가 되고 대화족에서 대화역시 같은 의미가 된다고 합니다. 화의 발음이 카라/가라 입니다. 금金의 발음역시 가라로 여기서 금은 Gold나 Iron이 아닌 Ore(금속광석)인데 초기에는 구리가 모든 금속이고 구리를 가라족이 만들었다고 해서 가라가 구리로 쓰인 것이라 합니다.
구리를 쓰는 구리족이 아니고 구리(청동)을 만든 민족이란 뜻으로 철도 역시 가라라 원음이고 원 철자에는 夷가 들어가 있습니다. 철도 역시 가라족이 만들었다는 반증으로 봅니다.
참고로 청靑도 역시 가라로 발음 되었다고 합니다.
ㄱ. 濊의 初音 과 그 변천
濊의 상고음은 [kiwad], [siwad] 둘로 재구된다. 하나의 字가 두 음을 지닌 것인데, 어두음이 [k], [s] 두 음으로 읽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음은 어두가 복성모 [ks-]로서 [ksiwad]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ksiwad]가 어두음 성모 [ks-]를 하나씩 나누어 가지면서 하나는 [kiwad], 다른 하나는 [siwad]로 변천한 것이다. 그래서 濊는 오늘날 어두 k 음의 [활(<괄)], s 음의 [세] 두 가지로 음독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복성모인 濊의 상고음이 [ksiwad]일 때, 그 이전의 初音, 즉 殷 시대 이전의 음을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핵모 [w]는 남북조 이후에 발생했으므로 그 이전에는 없었고, 개모 [i]도 殷 시대에는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ksiwad]의 앞선 시기의 음은 [ksad](<[ksəd])가 된다. 이 음이 華語로 들어가 [ksiwad]로 변천했고 복성모를 하나씩 나누면서 한쪽은 [kiwad], 다른 하나는 [siwad]로 변천한 것이다. 殷이 멸망하자 周代부터 개음 i가 생겨난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殷의 언어와 周의 언어가 서로 달랐다는 것을 암시한다. 종족으로 볼 때, 周도 濊족의 일파인데, 무슨 이유가 있었던지 周가 華語를 채택했던 것이다. 그러나 韓語쪽으로는 개음의 개입 없이 最古형태는 [ksəd]가 되고, 운미 [d]에 앞선 [r]가 있었던 것이다. 즉 [ksər]이었던 것이다. 여기에다 탈락된 모음을 복원하면 濊의 初音은 [kəsər]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둘로 나뉘어 한쪽은 [kər], 다른 한쪽은 [sər]로 변천하여 [kərə], [sərə]가 된 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kərə], [sərə]의 축약형이 [kəsər]이고, 이보다 더 축약된 형은 [ksər]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濊는 가라族과 사라族의 뿌리였으며 濊의 初音은 우리말이었던 것이다.
濊의 初音 [kəsər]은 여러 음으로 변천하였는데 현재 중국의 지도에 이 변천한 음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그중 몇 字를 보면 澮, 淮, 倭, 渙, 和, 蝸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濊의 初音 [kəsər]이 변천한 음들이다. 동부여왕 金蝸는 [가라예]를 말한 것이며, 금와신화에서 黑蝸와 赤蝸가 싸운 것은 [예]와 [부루예]의 다툼이었던 것이다. 黑은 우리말에서 []이고 赤은 [부루]이기 때문이다. 특히 倭는 일본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濊에서 변천한 음인 것이다. 이로 인해 사학자들은 우리민족을 지칭하는 倭가 등장하는 데서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일본이 倭를 쓰고 연호로 和를 쓰는 이유도 일 왕족이 우리 濊族인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字 音들의 시기를 추적하는 일은 우리 민족의 시기별 근거지와 이동 상황을 밝히는 중요한 연구라 할 것이다.
濊는 중국 운서와 사서, 우리 사서에서 종종 등장한다.
(2) ㄱ. <廣韻> 濊, 부여라는 나라 이름. 濊貊으로도 쓴다.
ㄴ. <集韻> 汪濊, 깊고 넓다는 뜻으로 澮로도 쓴다. 呼外反, 獩는 濊, 穢, 薉로 도 쓴다. 濊는 呼外反으로 渙으로도 쓴다. 濊水, 澮水, 渙水는 동일 하다.
ㄷ. <逸周書> 穢는 韓濊로 東夷의 별종이다.
ㄹ. <晋書> 國中에 옛 濊城이 있는데 본래 濊貊의 城이었다.
ㅁ. <삼국사기35> 溟洲는 무릇 濊의 옛 나라였다. 본래 濊貊의 땅. 고려 성종 14년 和州, 溟洲, 東州道라 하고 원종4년에 東州道, 交州道라 하고 충숙왕 원년에 淮陽이라 했다.
ㅂ. <승람44> 강릉대도호부는 본래는 濊國으로 달리 鐵國, 蘂國이라고도 한다. 한무제 원봉2년 장수를 파견하여 우거를 치고 4군을 정할 때, 臨屯이라 했 는데 고구려에 들어와 河西良, 何瑟羅州라 했다. 고려 태조19년에 東原京 이라 했다.
(2.ㄱ)을 통해 濊貊은 夫餘族임을 알 수 있고, (2.ㄴ)의 獩, 濊, 薉, 穢는 시기별로 변천한 字이다. 獩는 犭으로 보아 수렵 단계이며, 濊는氵로 보아 어로 단계이며 , 薉는 艹로 보아 경작 단계이며, 穢는 禾로 보아 벼농사를 짓기 시작한 단계임을 추측할 수 있다.
朴赫居世는 이두로 표기되었기 때문에 이두 표기법으로 읽어야 한다. 朴은 '둥글(圓)'과 '밝(明)'이 있는데 赫은 朴을 ' ㅂ.ㄺ'으로 읽어달라는 요청이다. 車衣에 衣를 붙인 것은 [차의]로 읽지 말고 [수릐(>수레)]로 읽어달라는 것이다. ~ 생략 ~ 居의 상고음은 [kjə], 世의 상고음은 [ɕi ̯ad]이다. 居世의 初音은 [kəsər]로 복원된다. 결국, 박혁거세는 ㅂ.ㄺ濊'라는 뜻이다.
北狄은 처음에는 北翟(북적)으로 적었다. 翟에서 깃털(羽)과 새(隹)가 있는 것으로 보아 종족의 특성은 새와 관련된 종족임이 틀림없다. 여기서 말하는 ‘새’는 신화 속에 등장하는 태양새, 불새, 즉 삼족오를 지칭한다. 이 종족은 태양 속에 산다는 삼족오로부터 불(火)을 받았다는 것인데, 그래서 이 종족에는 태양의 밝음(火), 불의 전달자인 새(鳥), 방위신의 令을 받은 風神과 뱀(虫)이 늘 따라붙는다. 바람(風)은 이 불새의 이동을 돕는 風神이었던 것이다. 부여를 삼족오의 <바람의 나라>라고 하는 데도 이런 이유이고, 삼부인 가운데 풍백(風伯)은 바람의 신이었다. ~ 생략~ 부여족의 선조는 ‘태양에서 불을 가져온 민족’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논의한 濊의 ‘밝음’, 태양의 ‘밝음’과 일치하는 것이다.
能의 뜻은 ‘능하다’, ‘재능이 있다’는 뜻이지만 후대에 생겨난 뜻이고, 이 글자가 처음 생길 때는 ‘곰(熊)’을 뜻했고 지금도 자전에는 ‘곰’의 뜻이 있다. 곰이 재주가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재능’ 쪽으로 많은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 能만으로도 충분히 ‘곰’인데 熊을 따로 만들면서 불(灬)을 넣었던 것은 필시 연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곰족(熊族)의 특징, 즉 불(火)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즉 일반 명사로서의 곰은 能이지만 종족명은 熊인 것이다. 자기 종족의 특징은 火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불(灬)을 지닌 熊족은 北狄의 한 종족이었음을 추단할 수 있다. <설문해자>에 能은 呂聲으로 되어 있다. 呂로 읽어 달라는 것이다. 呂의 상고음은 [graʔ(k)]이고 初音은 [가라(gara)]이다. 能의 음이 [가라]였고 熊은 가라族이었음음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北狄에서 熊족을 찾을 수 있었고 桓雄(곰)이 결혼한 여인은 熊족이었음에 틀림없다. 여기서 잠시 단군신화를 보자.
아는 바와 같이 신화에는 쑥(莪)과 마늘(蒜)이 나타나는데, 공교롭게도 莪(쑥)의 初音은 [gar]이고 蒜(마늘)의 初音은 [sar]이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나 여기서 [가라]와 [사라]가 나타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桓雄의 雄도 예사롭지 않다. 雄은 厷(활)과 隹(새)의 합성이다. 문자로 본다면 雄의 厷(활)은 東夷族이며, 새(隹)를 숭상하는 北狄의 熊族과 혼인관계를 맺은 것으로 볼 것이다. 弓의 상고음이 [ki ̯uŋ]이나 일본 한자음은 k가 탈락한 [jumi](ゆみ,弓)에서 어말음 [m]이 나타난다. [u]에 연쇄되는 [m]이 [ŋ]으로 변천한 것이다. 이로 보아 일본 한자음은 한국 한자음보다 더 古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弓의 初音은 굼, 곰[gum/gom]이었음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大弓을 특징으로 하는 東夷族도 곰족인 北狄에서 분파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朴赫居世는 이두로 표기되었기 때문에 이두 표기법으로 읽어야 한다. 어느 시대나 당대의 표기법으로 적기 때문이다. 朴은 '둥글(圓)'과 '밝(明)'이 있는데 赫은 朴을 '明'으로 읽어달라는 요청이다. ‘수리티재' 車衣峴은 車衣를 [차의]로 읽지 말고 [수릐(>수레)]로 읽어달라는 것이다. <삼국사기 34>에서 경북 칠곡의 옛 지명 北耻張里를 八居里라 기록했는데, 왜 그랬을까? 北이 [배]로도 읽힌 것은 앞선 음 [발(bar)]의 어말 r이 반모음 ‘ㅣ’가 되었기 때문이다. '모로 > 몰 > 모ㅣ > 뫼(山), 나리 > 날 > 나ㅣ > 내(川)이 그러하다. 이것을 언어학에서는 i-breaking 현상이라 한다. 여기서의 耻는 北을 [북(buk)]으로 읽지 말고 [발(<ᄇᆞᆯ)]로 읽어달라는 안내 字인 것이다. 長里는 [기리/거리]로 읽혔다. 당시는 [ㅍ(pʰ)] 발음이 없었으므로 [ㅂ(p)]로 읽어 [발거리]가 되는 것이다. 현재 경상방언에 ‘발거리’는 방언으로 남아 耻의 뜻이고, 仁里라고도 하여 仁은 ‘밝다’는 뜻으로 쓰였다. 결국, 耻는 赫처름 앞 字를 안내한 것이다. 경덕왕 때 漆谷으로 개명했는데, 이 지역은 지금도 옻(漆)나무가 지역 전체를 덮고 있다. 모든 식물 가운데 가장 붉게 물드는 것이 바로 옻(漆)이며 漆谷은 옻의 군락이 있는 마을이다. 그 물든 모습이 [八居里(발거리)]함을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부끄러워할 耻’를 썼던 것이다. [불그리]의 ‘불’은 ㄹ, ㅅ 교체에 의해 [붓그리]로 변천하여 [부ᄭᅳ리 > 부끄리]의 과정을 겪은 것이다. 居의 상고음은 [kjə], 世의 상고음은 [ɕi ̯ad]이다. 居世의 初音은 [kəsər]로 濊의 초음과 일치한다. 결국, 朴赫居世는 박(ᄇᆞᆰ)+赫(朴을 明의 뜻으로 읽어달라는 안내字) + 居世(濊)이므로 '밝濊'라는 뜻이다.
단군왕검이 도읍을 정한 阿斯達에 대한 이설이 분분하나 諸家들의 說들은 阿가 당시 음으로 [가]였다는 사실을 배제한 것이다. <說文解字>에 阿는 可聲이라 했다. [ka(가)]로 읽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說文解字>는 AD.121년에 완성되었다. 그렇다면 단군왕검의 도읍은 <說文解字>보다 훨신 앞선 시기이므로 [아]로 읽어서는 안 된다. [아]는 수‧당 시대의 음, 즉 중고음인 것이다. 達은 山, 高를 뜻하는 우리말이다. 알타이어는 ㅏ/ㅓ, ㅗ/ㅜ의 통교를 허용하는 언어이므로 阿斯는 [가사/거서]로 읽었으며 阿斯達의 뜻은 濊山, 혹은 濊地가 되는 것이다.
서울의 지명 유래
서울 지명 유래에 대해서 서울시는 이렇다 할 설명이 없다. <삼국사기>24, 37에서 백제는 漢山, 平壤이라 했고 <증보문헌비고>16에서 백제는 北漢城, 고구려는 南平壤城, 신라는 漢陽, 고려는 楊州라 했다. 北漢城이라 한 것은 광주의 南漢城에 상대한 명칭이고, 南平壤城은 북한의 平壤에 상대한 것이다. 그래서 南과 北은 방위를 나타내어 명칭을 구분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南北을 해명할 필요는 없다고 사료된다.
漢의 상고음으로 칼그렌, 주법고는 [xɑn], 백일평은 [xɑns], 이방계는 [hanh]로 각각 재구하고 있다. 어두가 x, h인 것으로 보아 앞선 음은 k였음을 알 수 있다. 어미는 이들 각각이 모두 다른데, 여기에 대해서는 아득히 앞선 음으로 올라가는 복잡한 과정이어서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우리의 목적은 서울의 지명유래를 밝히는 데 한정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漢은 [kan]으로 읽혔으며 이보다 앞선 음은 [kǝn(ᄀᆞᆫ)]이다. 이 [ᄀᆞᆫ]은 ‘크다’, ‘높다’, ‘넓다’는 우리말이다. 그래서 漢州를 廣(넓을 광)州라 하는 것이다. 이 廣도 처음에는 漢과 음이 같았다. 또, [ᄀᆞᆫ]의 [ㆍ]는 [ㅏ, ㅓ, ㅗ, ㅜ, ㅡ]로 변천하므로 [간, 건, 군, 곤, 근]으로 변천한다. 이 모두가 높다, 넓다는 의미가 있어야 검증이 되는데 干, 君은 왕의 호칭에서 볼 수 있고, 袞(곤)도 왕의 뜻으로 ‘왕이 입는 옷’을 곤룡포(衮龍袍)라 한다. 乾(건) 역시 하늘, 임금의 뜻이다. ‘근’은 근초고왕, 근구수왕에서 ‘크다’는 의미로 쓰였다. 모두 우리말이다.
平의 초음은 [버러]로 재구되어 넓은 ‘벌판’, ‘땅’을 의미한다. 陽과 州의 음은 [다라]로 동일한 시기가 있었으며 ‘나라’ 혹은 ‘땅’, ‘도읍지’를 말한다. 결국 壤, 陽, 州는 음이 같고 의미도 같은 시기가 있었다. 따라서 漢陽과 平壤은 음이 다를 뿐, 모두 ‘넓은 땅’을 뜻하여 京의 기본 요건을 갖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음과 의미가 왜 [서울]에 까지 이르렀을까? 이것은 京의 의미 때문이다. 京城府를 [서울]로 고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서울]이 京이 된 적은 조선 왕조 때의 일이며 京의 본 개념은 신라의 ‘서라벌’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徐羅伐은 徐伐로 줄여 썼다. 羅는 받쳐적기일 뿐, 徐의 앞선 음은 [ᄉᆞᄅᆞ]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줄여 쓰자 大邱의 達句火(달구불)도 達弗로 줄여 쓰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徐伐이 京이라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徐伐의 음이 관건이 된다.
徐의 상고음은 이방계는 [sdjag], 백일평은 [zlja], 칼그렌은 [dzi ̯o]로 재구하고 있다. 이 모두가 시기별로 다를 뿐이지 모두 옳은 재구이다. [ᄉᆞᄅᆞ]와 가장 가까운 시기의 재구음은 백일평의 [zlja]이다. [ᄉᆞᄅᆞ]의 의미는 ‘빛의 눈부심, 빛살의 길고 예리함’을 뜻한다.
伐의 상고음은 칼그렌이 [b'i ̯wat], 반오운이 [bad]로 재구하고 있다. [bad]가 더 앞선 음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앞선 음은 [bǝrǝ(ᄇᆞᄅᆞ)] 이것이 [바라], [버러], [부리], [불], [벌]로 변천한 것이다. <삼국사기>37에 高木根을 達乙斬이라 했다. 高는 達乙에 대응되어 [다라~달]로 읽혔고 根는 ‘뿌리’로 당시 [ㅃ]이 없었으므로 [부리~버리]로 읽혀 斬의 훈과 대응되고 있다. 斬의 훈은 칼로 [베다]는 뜻인데 이 ‘베-’의 앞선 말은 [벌]이다. 음절말 ㄹ은 I-breaking 현상으로 반모음 [i]가 된다. [모로 > 몰 > 모ㅣ > 뫼(山)]가 되고 [나리 > 날 > 나ㅣ > 내(川)이 된 것과 같이 [버리(斬) > 벌 > 버ㅣ > 베-]가 된 것이다. ‘베다’의 어원은 伐에서 온 것이다. 나무를 ‘베’는 것을 伐木이라 하여 伐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베는 것은 적을 치고 베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칠 벌(伐)이 된 것이다.
따라서 徐伐만으로 [ᄉᆞᄅᆞ버러/사라버러/서라버러]로 읽혔다. 그러나 京은 ‘徐伐’이었지만 신라가 처음부터 京으로 썼기 때문에, 단지 넓은 지역이란 의미로 漢城, 陽州, 漢陽, 平壤으로 표기할 수밖에 없었다.
徐伐의 상고음과 그 앞선 시기의 음은 [ᄉᆞᄅᆞ버러>.. >서라벌]을 표기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중국의 남북조부터 중고음이 유입되었다. 그 이후 徐伐은 중고음으로 읽히게 된다. 주법고는 徐/伐을 [zio/biuAt]로 재구하고 있는데, 徐[zio]의 z는 무성음화하여 s로 변천하였고 모음 io는 [je(여)]로 반사되어 [셔]가 된 것이다. 伐[biuAt]의 어두 b는 마찰음화하여 ㅸ이 되고 모음 iuA는 우리말 [ㅡ]에 반사되었다. 모든 한자의 어말음 t는 예외 없이 [ㄹ]로 변천한다. 결론적으로 徐伐은 중고음으로 읽었을 때, 우리말에 반사된 음은 [셔ᄫᅳᆯ]이었던 것이다.
ㅸ은 음성 모음과 결합하면 [우], 양성모음과 결합하면 [오], ㅣ 모음과 결합하면 탈락된다. 여기서는 [셔]의 [ㅕ]가 음성모음이므로 ㅸ은 [우]로 변천했고 어말 t가 [ㄹ]로 변천했으므로 [셔울]로 변하였다. 후에 단모음화가 진행되어 [셔>서]가 되어 오늘의 [서울]이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중앙아시아신화에 등장하는 케세르는 카사르이고 카사르는 조선황제 고려황제를 의미함이다.
첫댓글 "출처 : 비공개 입니다"ㅋㅋㅋㅋㅋㅋ 출처 밝히는게 여기 카페의 핵심이라고 알고 있는데, 아주 공개적으로 비공개를 공식화하시네 ㅋㅋㅋㅋㅋㅋ 자주 들리지는 못하지만 저는 여전히 정론직필 카페를 응원합니다. 헛소리들이 좀 많아졌지만 골라서 읽는 일은 회원님들 각자의 몫이죠^^
최초에 출처는 어디서 생길까
경우에 따라서 (글에 내용)
말에 논리만 따져야 하는것도 있지 않을까 하는데ㅡ
출처는 써 놨는디라!
성질이 좀 급하 시구마.
ㅋㅋ
"게세르는 사실 조선(朝鮮),
고려(高麗)를 말하는 것이고...
조로는 한자 조로(朝魯)를 말함이다.
현대 한자발음으로 자오루다.
조선(朝鮮)의 선(鮮)에서 양(羊)을 뺀
그냥 태양물고기로 로(魯)로 한것이다.
로(魯)는 생명물고기 가라 가르
카라 카르를 말함이다."
왜냐면 고대한자발음으로 조(朝)는 카사이고
선(鮮)은 고대발음으로 사르(타르)가 되어
조선(朝鮮)은 카사사르가 되는데...
축약하여...카사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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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朝) = 태평양. 대서양. 남.북극해= 오대양..
어(魚) = 임금님 배..
양(羊) = 3단 돛대.
선(鮮) = 왕이 타는 대양항해용 3단 돛단배..
게세르. 카사르. 카타르. 타타르..
카타르시스 = 정화(淨化)..^^.
외국에는 우리말 어원이 그대로 남았는데 ..
정작 우리말은 바뀌어서 전혀 다르게 불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