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는 내가 늘 가는 카페가 있다. 평일 저녁이면 늘 아주머니들과 아저씨들, 그리고 나와 비슷한 동년배들로 북적거리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동네 카페가 있다.
두달 쯤 전일까. 훤칠하고 핸섬한 남학생이 서 있던 자리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 나는 그 때만 해도 '알바생이 또 바뀌었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하반기 공채 시즌에 뛰어든 취준생이다. 거의 매일 그 카페 2층에 살다시피 앉아서 마감을 알리는 노래가 나올 때까지 자소서를 썼다.
하나, 둘 내가 지원했던 기업에서 불합격을 알리는 메일이 도착했다. 나에게 겉잡을 수 없는 무력감과 외로움이 찾아왔다.
카페에 앉아 하염없이 노트북만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느껴지는 움직임에 고개를 들었다. 새로 바뀐 아르바이트생이 멀리서 쓰레기봉투를 비우고 있다. 재미있는 일도 아닌데 그저 멍청하게 보고 있었다.
한쪽 발을 까치발을 세운 채로 쓰레기봉투를 바꾸는 것이 조금은 귀여웠다. 하지만 이내 속으로 '저게 뭐라고 멍청히 보고 있던 거지'하며 나를 꾸짖고는 담배를 피우러 테라스로 나갔다.
담배가 몽당연필보다 짧아졌고, 가벼운 이뇨감이 들어 화장실로 향했다.
아차, 화장실 쓰레기통을 치우러 온 그녀와 남자화장실 안에서 마주쳤다. 나는 "아, 괜찮아요 먼저 일 끝내세요"
"괜찮아요, 진짜 괜찮아요."
그녀와 나눈 첫 대화였다.
누군가 내 용변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단 생각에 적잖이 민망했다. 문을 열고 나가니 그녀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민망한 표정으로 가볍게 목례를 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자리로 돌아오고 나서 그녀의 당황스러운 표정이 자꾸만 떠올랐다. 분명히 내 이상형과는 거리가 있는 얼굴인데...
아, 알았다. 내가 그녀의 얼굴을 뇌에 각인시킬 수 있던 건 그녀의 눈 때문이었다. 그녀의 눈이 웃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의무적으로 카페에 갔다. 딱히 할 일이 없어도, 그 곳에 갔다.
또 언젠가부터 그저 멍청하게 시간을 보내며 그녀가 쓰레기를 치우러 오길 기다렸다.
오늘은 흰 빛의 운동화를 신어서 그런지 까치발을 한 그녀의 발이 더 잘 보인다.
그 와중에 행여나 눈이 마주치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까 연신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게 더 이상한 것 같았지만 괜히 눈을 마주치기가 꺼려졌다.
어김없이 11시에 마감을 알리는 노래가 나온다. 11시 반에 마감이면서 너무한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천천히 짐을 챙겨 1층으로 향한다. 그녀가 나에게 인사를 해준다. 목소리가 깃털로 날 간지르는 것 같다.
다음날부터 마감시간에 사람들이 모두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녀가 해주는 작별 인사를 다른 사람들과 얽힌 채로 함께 듣고 싶지 않았다.
카페에 들어설 때마다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이제 나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을까? 괜히 기대한다. 그러나 동시에 기대하지 않는다. 다른 손님에게도 똑같은 인사를 건네주는 그녀이니까.
그렇게 몇 주가 지났다. 항상 카페에 들어서서 인사를 했고, 항상 멍청하게 시간을 보냈고, 또 항상 그녀가 2층으로 올라오길 기다렸고, 그녀의 모습을 몰래 지켜봤고, 마지막 손님으로 남아 인사를 했다. 글로 쓰려니까 되게 이상한 사람처럼 행동했구나.
어느날 2층에 올라온 그녀에게 용기를 내어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살짝 놀란듯 하다가, 이내 웃으면서 받아주었다.
문득 고마웠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진 않는구나.
주말에 그녀가 없는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허전함이 진하게 느껴졌다. 뭐가 뭔지 모르던 내 맘속에서도 무언가 확신이 서고 있었다. 내가 그녀를 그리워 하는구나.
오늘은 비가 쏟아졌다. 무슨 생각에선지 오늘은 1층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를 더 오래 보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1층에서는 그녀와 반대방향을 바라보고 앉아야 한다. 이 멍청한놈아!
뒤돌아서 그녀를 조금이라도 자주 보고 싶어서 안그래도 불면증에 시달리는 주제에 커피를 리필했다.
"네 바로 준비해드릴게요~"
그녀의 목소리가 간지르르하다.
또 뒤돌아서 그녀를 보고 싶어서 2층으로 담배를 피우러 갔다. 올라가면서 힐끗힐끗 그녀를 바라보면 그녀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마어마한 골초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과도한 흡연 때문일까, 머리가 조금 아팠다. 이 정도 두통은 그녀를 보는것과 충분히 바꿀 수 있다.
"오늘은 왜 1층에 앉으셨어요?"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내 가슴을 움켜쥐었다. 나에게 말을 건 것일까? 빠르게 1층에 누가 있는지 곁눈질로 살폈다. 나뿐이다.
"네...네..?!"
세상에 이렇게 멍청해 보이는 반응이 또 있었을까...
뒤를 돌아보니 그녀가 팔을 카운터에 기댄 채로 웃고 있었다.
"오늘은 왜 1층에 앉으셨냐구요~"
마음이 녹아내린다. 너무나 귀여운 표정을 지은 채로 나에게 물어왔다.
나는 이렇게 빠를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머리를 굴렸다. 함부로 말을 내뱉었다간 누가봐도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믿어지지 않는 속도로 굴린 머리에서 쥐어짜낸 내 대답은 이랬다.
"비가 와서 비내리는 거 보려구요.."
....
망했다.
누가봐도 이상한 변명이었다.
황당하다는 표정이 그녀의 얼굴에 잠시 스쳤다. 나는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돌아 앉았다. 뒤에서 무슨 말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내 귀에 이어폰이 들어온 뒤의 일이었다. 다시 뒤돌아서서 "네?"하고 마음속으로 백번도 물어봤다. 하지만 몸은 그대로 앉아있었다.
'하...멍청한놈아...' 속으로 생각했다.
마감 한 시간 전에 그녀는 자기 몸만한 쓰레기봉투를 밖에 내놓으러 간다. 낑낑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 일하는 매니저 분께 내 맘을 들킬까 그러지 못한다.
1층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본다. 유리창에 비친 그녀의 모습이 보이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나 기뻤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유리창을 통해 그녀를 바라볼 수 있다.
유리창 속의 그녀와 눈이 마주친 느낌이 든다. 기분탓인가?
기분탓이 아니길 내심 바란다.
날이 갈수록 그녀를 더욱 알고 싶어졌다. 우리 동네 카페 브랜드에 관련된 거의 모든 사람들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밤새 검색했다. 하지만 그녀의 계정은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SNS를 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아르바이트에 대한 내용을 기재하지 않은 것일까? 못내 아쉽다.
또다시 주말이 찾아왔다. 그녀는 오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혹시나 손님으로 오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카페에 앉는다. 그녀는 오지 않았다.
아, 깜빡하고 쓰지 않았는데, 나는 월요일에 수업이 밤 10시까지 있다. 하지만 그녀를 볼 시간이 너무나 아까워서 매주 출석만 체크하고 도망나왔다. 이러면 안되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주말 동안 그녀가 너무나 그리웠으니까.
오늘도 출석을 하고 나오려고 강의실에서 수업을 기다렸다. 아뿔사, 오늘은 수업이 끝나고 나서 출석을 부르겠다고 하신다.
...
나는 오늘 결석을 했다.
카페에 도착하니 8시다. 어차피 결석할 거 수업시간을 기다린게 너무나 분하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니 다시 마음이 폭신폭신해진다.
오늘은 어쩐일인지 카운터에 그녀 혼자다. 나에게 말을 건넨다.
"지금은 매니저님 안계시니까 아무음료나 드셔도 제가 사이즈업 해드릴께요!"
...너무나 행복한 말이었다.
그녀가 나를 알고 있고,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는 것을 체감했다.
하지만, 그녀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오늘도 그녀가 만들기 쉬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오늘도 1층에 앉았다. 어떻게 그녀에 대해 알 수 있을까? 요즘 나의 최고의 고민거리였다.
나는 나름 한 개의 방법을 생각했다.
나는 핫스팟을 켜고 그 이름을
"이름이 뭐에요? ☞☜"라고 지었다.
비밀번호도 풀고 마감시간까지 그녀의 휴대폰이 연결되길 기다렸다.
내가 켜둔 핫스팟에는 아무 휴대폰도 연결되지 않았다.
이 카페 와이파이는 왜 이렇게 좋은거야...
마감을 알리는 음악이 오늘도 흘러나온다.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인사를 건네고 나와서 일부러 집과 반대방향으로 걸었다. 편의점에 들러 허니버터칩을 하나 사서 에코백에 넣고, 그 앞에서 담배를 뻐끔뻐끔 피워댔다.
마감을 마친 그녀가 카페에서 나온다. 나는 편의점에서 나온 척 집쪽을 향해 걸었다. 길을 걷다 우리는 마주쳤고, 다시 인사했다. 사복을 입은 그녀는 아까보다 더 예뻐진 것 같다.
귀에 전화기를 대고 있다. 누구와 통화하려는 것일까? 조금은 우울해진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그녀를 더 본 것에 만족하며 집으로 향한다.
언젠가는 그녀가 내가 켜둔 핫스팟에 연결하지 않을까 기대하며 오늘도 카페에 들어선다.
"어서오세요, 할리스입니다~"
'보고싶었어요, 오늘 하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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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실화랍니당... 손님에게 반한 알바생 글 보고 그냥 손가는대로 끄적끄적 적었네용...
힘두네요! 힘내요 모두들!
네 응원 감사드려요 오늘도 빛나는 하루가 되시길..
ㅠㅠ
er
ㅋㅋ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