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게맹갱외에밋들'. '징게'는 김제, '맹갱'은 만경, '외에밋들'은 너른 들을 뜻한다. 우리나라 대표 곡창지대인 김제 만경평야의 옛말이다. 일제의 사악한 무리는 1900년대 초부터 이 땅에 마수를 뻗었다. 그들의 야욕을 채울 전쟁터에 군량미를 보내기 위해서다. 소설가 조정래는 이 과정에서 민초들이 겪어야 했던 수난과 저항의 역사를 《아리랑》에 송두리째 담았다.
아리랑 문학마을 홍보관의 전경
소설 《아리랑》 속 격랑의 세월을 만나다
소설의 제목이 왜 아리랑일까? 아리랑은 우리 민족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감정을 공유하며 함께 부르던 노래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한일병합 이전부터 해방까지로, 아리랑의 울림이 가장 클 때다. 《아리랑》에서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을 보는 관객들의 모습을 통해 확인해보자. "김영진이 일본 경찰에게 끌려가면서 악대가 연주하는 <아리랑>의 선율이 흐르기 시작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요오…. 그 연주에 맞추어 앞쪽에서 합창이 시작되었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아…. (중략) 합창이 막 끝났을 때였다. "대한독립 만세에!" 어느 남자의 부르짖음이었다. "대한독립 만세에!" 화답하듯 여기저기서 터진 외침이었다." 소설가 조정래는 아리랑이라는 제목을 쉽게 지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아리랑만큼 적절한 제목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 《아리랑》
아리랑 문학마을은 소설 《아리랑》의 무대를 현실에 재현하여 아픈 시절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아리랑》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김제시 죽산면 옛 내촌·외리 마을 일대에 터를 잡았기에 여행객은 살아있는 문학을 체험할 수 있다.
아리랑 문학마을은 크게 홍보관, 하얼빈역, 내촌·외리 마을, 근대 수탈 기관으로 구성된다. 홍보관은 그 자체로 《아리랑》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다. 《아리랑》이 베스트셀러이긴 하나 12권짜리 대하소설이기에 탐독에 부담을 느낀 이들이 상당수일 터. 홍보관 1층은 벽면을 아예 《아리랑》에 대한 텍스트로 꽉 채웠다. 소설의 대략적인 흐름을 정리한 줄거리, 인물 묘사와 주요 인물 관계도, 소설 속 핵심 일화 발췌문까지 짜임새 있게 구성되었다. 천천히 둘러보며 읽기만 해도 《아리랑》이 어떤 소설인지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
홍보관 2층에는 김제 출신의 독립투사들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낯선 영웅들은 대의를 위해 죽음의 공포를 무릅쓰고 일제에 항거했다. 부당한 시대의 참상이 그들의 결기를 이끌어냈을 것이다. 총을 들고 맹렬히 돌진하는 독립군 동상이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홍보관 1층 모습
[왼쪽/오른쪽]홍보관 2층 글자 조형물. 아리랑 가사를 표현했다. / 홍보관 2층 독립군 동상
근대사 최고의 장면을 재현한 하얼빈역과 설움이 깃든 내촌·외리 마을
아리랑 문학마을의 하얼빈역은 1910년대 중국 하얼빈역을 60% 정도로 축소 재현한 것이다. 하얼빈역과 《아리랑》의 시대적 배경을 조합하면 금세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1909)다. 역내 대합실을 통과해 밖으로 나가면 근대사 최고의 장면이 동상으로 실감나게 표현돼 있다. 안중근 의사가 방아쇠를 당기자 민족의 응어리를 실은 총알 한 발이 제국의 심장을 관통한 장면이다. 당시 이토 히로부미는 열차에서 내린 직후였기에, 그 시절 증기기관차도 함께 출연하여 생생함을 더한다. 하얼빈역 자체는 홍보관처럼 《아리랑》 관련 2층짜리 전시관이다.
하얼빈역 광장 앞에 이민자 가옥이 있다. 일제의 수탈에 못 이겨 타향으로 떠나간 사람들이 지은 너와집과 갈대집을 재현했다. 너와집은 아쉬운 대로 최소한 집의 구실은 할 것 같으나, 갈대집은 너무나 열악하다. 《아리랑》에서는 '갈대움막'이 등장한다. "갈대를 무더기무더기 베어 모은 사람들은 움막을 짓기 시작했다. 움막은 땅을 사람 키 깊이로 파내고 그 위에 갈대로 지붕을 해덮는 것이었다."
[왼쪽/오른쪽]하얼빈역의 모습 /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장면을 동상으로 표현했다.
[왼쪽/오른쪽]하얼빈역 2층 위안부 동상 / 이민자 가옥
내촌·외리 마을은 소설 속 주요 인물인 손판석, 지삼출, 감골댁, 송수익 등의 가옥을 재현해 만들었다. 조그만 야산을 등지고 단출한 초가집들이 사이좋게 이웃해 목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촌락이다. 하지만 소설에 묘사된 집주인들의 삶은 마을의 외관처럼 평화롭지 않다.
손판석은 의병과 독립군 연락책으로 활약하며 갖은 고생을 한다. 지삼출은 친일파 장칠문의 악행에 보복을 하다 주재소에 끌려가 채찍질을 당하고 후에 의병으로 활동한다. 감골댁은 빚 때문에 맏아들이 하와이로 팔려가고, 두 딸이 일본 앞잡이에 수모를 당하는 등 수난을 겪는다. 가난 때문에 큰딸이 부잣집에 첩으로 가겠다고 하자 "우리는 굶어도 함께 굶고 죽어도 함께 죽어야 한다"며 눈물을 쏟아낸다. 평화로운 풍경의 마을에 깃든 서러운 사연을 알게 되면 누구든 애잔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
손판석 가옥
[왼쪽/오른쪽]내촌마을 전경 / 마을 인근의 예술 작품
일제의 악랄함으로 지은 근대 수탈 기관
근대 수탈 기관은 《아리랑》의 아픔이 가장 잘 전해지는 곳이다. 면사무소, 주재소(일제강점기 순사가 근무하던 기관), 우체국, 정미소로 구성된다.
면사무소는 토지 수탈의 만행에 앞장선 기관이다. 《아리랑》에서 죽산면 면장으로 임명된 친일파 백종두는 지주총대(총독부의 토지조사사업을 추진하는 선봉대)를 구성해 농민을 압박한다. 말이 토지조사사업이지 실은 비밀스런 악조항을 달아 조선의 땅을 빼앗겠다는 계략이다. 죽산면사무소 내에는 망원경, 나침반, 카메라, 주판, 등사기 등을 전시해 놓았다. 하나같이 악행의 도구로 쓰였음은 자명하다.
일제강점기 주재소만큼 무서운 곳이 또 있을까. 주재소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취조당하는 소리가 흘러나와 섬뜩함을 자아낸다. "헌병은 싸리회초리를 휘두를 때마다 똑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그건 어떤 대답을 원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매질에 제 신명을 살리기 위한 장단 맞추기였고, 제 기운을 돋우기 위한 기합 넣기였다" 유치장으로 들어서면 한쪽 벽면에 채찍 등 온갖 고문 도구가 걸려 있다. 철창 안으로는 피폐한 수감자의 애처로운 눈빛이 벽화로 표현돼 일제의 잔학무도함을 고발한다.
근대 수탈 기관 거리
[왼쪽/오른쪽]면사무소 내부 전시물 / 주재소 유치장의 철창 안 벽면 그림
우체국은 일제의 정보수집기관에 지나지 않았고, 정미소는 오로지 일본인을 위한 쌀을 도정한 곳이었다. 정미소 안에서 여자의 절규가 들린다. 여직원이 너무 배가 고파서 쌀을 조금 훔쳐 먹다가 걸리는 바람에 터져나오는 소리다. 우리가 우리 땅에서 나는 쌀을 훔쳐 먹어야 하다니… 나라 잃은 민초들의 삶은 이렇게 잔혹한 것이다.
[왼쪽/오른쪽]우체국 전면 모습 / 정미소 내부 모습
여행정보
아리랑 문학마을
- 주소 : 전북 김제시 죽산면 화초로 180
- 문의 : 063-540-2927, 2929
주변 음식점
- 고각 : 전복홍합짬뽕 / 부량면 부량1길 31 / 063-546-6577
- 삶의향기 : 한정식 / 금산면 원평1길 190-14 / 063-543-2325
- 운암매운탕 : 매운탕 / 김제시 동서로 220 / 063-542-0431
숙소
- 모악산유스호스텔 : 금산면 모악로 460-20 / 063-548-4401
- 스타팰리스 모텔 : 하정1길 9 / 063-547-1005
- 레드스카이 모텔 : 하정1길 48 / 063-546-25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