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먹는샘물 4
심영섭 전 환경부 차관도 퇴직 후 샘물사업을..
수맥탐지, 풍수지리로 전국에 지하수 물색 열풍
샘물사업 주먹계, 공직자, 학원강사, 섬유업등 다양
먹는샘물은 우리나라 모든 산업분야에서 시대적으로 미운털이 박혀 온갖 시련을 견뎌온 사업이다. 각종 제약속에서도 샘물사업은 민간영역에서 꾸준히 성장을 지속해 왔다. 하지만 그 속에 엮어진 숨겨진 시련들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정부는 샘물사업을 서자 취급했고 학계에서도 샘물 사업에 대해서는 논문 한편 나오지 않았다. 보사부와 환경부를 넘나들면서 허가와 무허가라는 두터운 장막과 정부의 시판금지, 국민의 행복추구권과의 대립속에 무수한 갈등을 겪어 온 샘물사업의 뒷이야기에는 우리나라 대통령의 쓰린 산업현장도 역사속에 스며있다.
고인이 된 심영섭 전 환경부차관(1999-2000년/사진)이 국립환경과학원장(제 7대, 96-97년)을 역임하던 시절이다. 과학원과 환경부를 출입하던 김동환 국장(환경경영신문 발행인)에게 생수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동향과 전망을 물었다. 퇴임 후 자연속에서 생수사업을 하려는데 시장 전망과 대체적인 예산에 대한 궁금증이다. 은행지점장으로 퇴임한 친구와 고향에 수 만평 땅을 소유하고 있는 대학교수 출신등 몇몇 친구들과 자연속에서 막걸리나 마시면서 지내는 것이 좋을 듯 하다는 퇴직후의 그럴듯한 밑그림이다. 참으로 자연주의적인 유유한 제 2의 인생 설계이다.
“생수공장부지는 있다고 해도 그곳이 양질의 지하수가 많이 나오냐는 것을 우선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지질탐사도 해야하고 수맥전문가들에게 의뢰하여 적정 수량이 있냐는 점을 먼저 탐색해야한다. 지하수원을 발견해도 주변에 생수공장으로서 합당한 지역인가를 탐색해야 한다. 풍부한 수량이면 수질검사도 해야한다”는 조언을 해 주었다.
국내 수맥 전문가로는 괴짜 신부로 알려진 임응승 신부가 당시에는 많은 샘물사업가들로부터 수맥탐사를 해주기도 했다.(스님들도 수맥탐지봉으로 수맥을 찾기도 하지만 재례식 수맥탐사는 임신부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임응승 신부는 사업측면의 수맥탐사보다는 생명과 연계된 수맥을 탐지하는 신부였다. 카톨릭에서는 생명을 지키는 식수 탐사와 건강을 예방하는 수맥 탐지를 위해 수맥탐사기법을 수련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풍수와 연계된 묘자리와 주택에서의 물이 지나는 길을 탐지하여 병을 사전에 예방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는 <민간신앙 조선의 풍수>를 조사하여 발행했다. 이 책에서는 가야,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시대의 고분과 왕능을 조명했다. 역사적 도읍지인 조선시대의 경성, 고려의 남경의 풍수와 주택의 풍수도 담았다.
샘물사업의 절대적인 기본소재이며 자원인 지하수의 수량과 위치를 탐지하는 수맥 전문가로 무역업을 하는 박혁기 사장도 유명한 수맥탐지가다.
박 사장은 <인류는 물과 더불어 멸망한다> 라는 일본인이 쓴 책을 번역하여 환경경영신문의 전신인 한국수도신문에서 출간했다. 박사장은 5천분의 1 지도를 가지고 사전 탐지를 하여 수맥이 지나는 큰 줄기를 찾기 시작한다, 점차 세부적으로 적합한 위치를 찾아 수맥을 탐지하고 최종적으로 현장에서 탐지를 하였다. 박 사장은 금도음료를 비롯하여 전라도 장흥의 화니음료, 경북 가야음료, 제주도, 충청도, 강원도에서 수맥을 탐지하였다. 주로 샘물업체가 요구하는 다량의 지하수가 있는 곳을 탐지하였다. 물론 과학적 수질측면보다는 수량위주로 탐지했으나 극단적인 좋은 물과 아주 나쁜 물정도는 예측이 가능했다. 그러나 반신반의하는 샘물업체나 사업주들은 선뜻 시추 경비(평균 1개 시추에 1억원 내외, 1천만원 내외의 시추는 보통 30-50미터 이내의 소규모 지하수개발) 투자에는 적극적이지 못했다. 또 한 지역환경의 대립과 제도적 문제에서도 걸림돌이 되어 시추하지 못했다. 그나마 2곳에서는 시추한 결과 500톤 이상의 수량(150미터- 200미터)을 발견했지만 두곳 모두 샘물공장이 진입하지 못했다. 2004년 현재 1일 취수량 500톤 이상을 확보한(대부분 시추공 2-3개 합산) 샘물회사로는 한국청정음료(경기 포천, 500톤), 산수음료(경기 남양주, 677톤), 동원F&B(북청음료, 경기 연천, 580톤), 이동음료(경기포천, 590톤), 백룡음료(경기 양주군, 700톤), 해태음료(강원도 평창, 510톤), 풀무원샘물(충북 괴산, 500톤), 길훈식품(전북 순창, 560톤), 무학산청샘물(경남 산청, 500톤), 제주도지방개발공사(삼다수, 북제주 조천읍, 868톤)등 10개 정도이다.
문제는 취수량이 확보되어도 제조설비에 30억원(1995년 기준) 정도 소요되고 대리점 영업과 홍보비등 보이지 않는 자금이 지출되어야 한다.(2000년 현재 타사의 기존 대리점 1개를 영입하는데 1억원 정도의 프리미엄을 줘야 했다.)
이후 심영섭 전 차관은 생수사업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마도 임야가 있다 해도 운영경비에서 현금 여력이 없고 전국의 샘물 대리점들을 인수하거나 확보하는 치열한 시장 쟁탈전에서 자신감이 없다고 추정하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심영섭원장(1937년-2022년)은 청송심씨 서울태생으로 한양대 화학공학과 서울대 보건대학원 석사로 1967년 보사부에서 9급 특채로 강원도 마약감시원으로 공직을 시작했다. 한강유역환경청장을 지내다 과학원장을 끝으로 공직을 마감한다.(1997년) 국민의 정부에서 4대 환경부차관을 지냈다. 환경부에서 존경받는 인품으로 박명환 국회의원과는 처남지간으로 퇴임후 박의원과 마포 주변 보신탕집에서 자주 대포잔을 나누기도 했다. 차관시절 비서를 지낸 정병철(바이오테크서비스부회장)씨는 회고에서 차관님은 내·외부적으로 바쁜 일정 속에서도 찾아오는 손님을 일일이 차관실 밖까지 배웅을 한다. 1분1초가 빠듯한 일정에 손님은 정중히 배웅해드릴 테니 그 시간을 아껴 결제업무를 처리하시자는 건의에 대해 심 차관은 “이 사람아 내가 배웅하는 인사들은 대부분 청탁을 하러 왔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는 손님들이야. 그 분들의 섭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주기 위해 문밖까지 나가는 걸세”라고 말한 것이 인생에 커다란 지침이 되었다고 한다, 심차관은 후배 공직자들에게 반드시 이르는 말로 <누구에게나 친절하라>였다.
샘물사업 레미콘, 섬유, 과일 총판, 주먹계등 다양
매출액에 20%라는 과도한 수질개선부담금을 부담하면서도 생수회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80여개 업체까지 늘었다가 지금은 70여개가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도 대기업과 유통기업에 납품하는 정도이고 초창기 설립한 기업들은 자생력을 지니지 못하는것이 대부분이다.
제2의 창업으로 생수사업에 뛰어든 인물들은 매우 다양하다. 사양길에 접어든 섬유산업 기업인, 페인트 총판업에서부터 과일 총판과 레미콘운영, 한샘학원 유명 강사출신, 퇴직을 앞둔 고위공무원(금융권과 경찰출신)들이 주축이 되어 주식회사를 설립하는등 다양했다.
용산을 거점으로 한 주먹계의 보수는 용산역 광장(당시는 지금처럼 조경시설이 없고 아스팔트로 광장이었다)에 3-4개의 샘물제품을 판매하다가 생수공장 운영까지 하였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수도권에서 주먹계의 보수였던 박항모사장은 영업력이 부실한 건국재단과 ROTC동기(대표 황재춘)들이 설립한 건국수맥(홍천군 내면)을 인수하여 먹는샘물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10여년간 운영하다 수질문제등으로 자진 폐업하였다.)
강화 석모도의 보문사 앞 해변에는 강화 출신이면서 부인이 한복집을 운영하던 토착민이 바다에서 용출되는 지하수로 강화 해암약수라는 생수사업을 했다.(사진)침술과 안마로 재산을 모은 맹인이 전북 완주에 생수공장을 설립하여 석정수라는 상표로 생수를 제조판매했다.
전남지역에서는 건설업과 레미콘사업으로 자본력이 풍부한 국세근(국창근 국회의원의 동생)대표가 담양군 용면 월계리에 1998년 미소음료를 설립하여 생수사업에 뛰어 들었다. 정치인으로는 김용신씨가 순천 월등면에 리더음료를 설립하는등 샘물사업은 전국적으로 블루오션이란 열기로 과열 현상을 보였다.(산업문야중 샘물사업은 정부정책에 따른 시장형성의 기복이 뚜렷하다.)
직, 간접적으로 정치권에서 샘물산업을 하는 기업을 열거하면 백룡음료(설악음료)의 김노식대표(1945년생, 경북 안동산, 경기대 경영학,11대(민주한국당),18대(친박연대), 2023년 별세), 리더음료(대표 김용신 민주당 정책자문위원), 수산음료(대표 김남경, 한나라당으로 상주에서 국회 출마 낙선) 돌샘물(국세근, 형 국창근 담양에서 출마 민주당 국회의원), 거평샘물(거평그룹 사주와 보성 고향의 박주선 국회의원), 산수음료(창립사주 김효선대표 서울시의회 시의원)등이다.
그러나 이들 정치권에서 투자하거나 운영하는 샘물사업은 대부분 단명했다.
리더음료는 기지개도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휴업을 반복하다가 화니샘물로 넘어갔다. 돌샘물은 부도가 났으며, 수산음료도 120억원이란 거금을 날렸다. 설악산수는 초창기 설악산수에서 백룡음료로 공장을 2번이나 이전하고 회사명도 개명 했지만 결국 폐업했다. 비교적 짧은 연륜으로 세간에 조명을 받았지만 3번의 경매로 주인이 교체된 장수천(자연음료)과 산수음료는 초기 터만 닦았다가 중소 식품회사를 운영하던 김태룡사장이 인수했다.
기존 14개 허가업체와 별도로 무허가업체(후발업체)들은 1997년까지 한국광천수협의회(회장 건국수맥 황재춘대표(ROTC 2기)를 구성하여 정부와 날선 대응을 하였다.
보건복지부에서 환경부로 이관되어온 수도관리과(음용수관리과)는 샘물사업을 허가해주는 대신에 일년간의 정리기간을 두고 95년 일제 단속을 펼치게 된다. 무허가 인생들이 95년에 환경영향평가등을 받아 새롭게 탄생한 기업들은 강화 해암(신스트레이딩), 북청음료(동원에프엔비), 산정오리엔탈, 이동음료(제비울), 동산산업(한국샘물), 작은예수회(기쁜우리샘물), 가평청정, 태백산수(약산샘물), 라이프음료(생그린), 건국샘물, 내설악음료, 오대산샘물(거평식품), 해태음료, 강원샘물, 산들샘, 수산, 선우, 할티, 창대, 주원, 청수, 흑성산(하이트맥주), 오아시스, 대정, 금산, 청수, 명수참물, 시원, 신원, 석정수, 동방, 미륵산샘물, 무학산청(화이트), 신어산, 지리산, 지리산보천, 화니음료등 38개 업체가 무더기 허가를 받아 샘물 춘추전국시대를 열었다.
(환경경영신문 https://ionestop.kr// 김동환 환경경영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