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87.3.1-93.2.28 김천중앙중학교
ㅇ 이곳은 학교가 가장 밀집 된 곳이다(김천농공교,한일여중고,예술교,김천대학,김천과학대학,직업 훈련원)
ㅇ 등교시에는 학생들이 같은 시간에 몰리기 때문에 승용차로 태워 준다.차가 어마어마 하게 밀린다.거기다가 고속도로 진입로
까지 겹처 전쟁이다.하교시에는 조금 덜하다.야간교실 ,등,마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
ㅇ 중앙중에 뱌정 되면 학생,학부형이 울었다.등하교 어렵지,차가 많아 자전거 통학 불편,공랍아라 5년 지나면 전출,열의도 부족
하나 같이 나뿐 것들이다.김천중은 교통,학력 등 모든 것이 학부형 선호도 1위.문성중은 거리는 멀지만 학력은 우수한 편.석천중
은 시내에 소재 자전거,도보,학력도 어느 정도.성의중 재호 혼자 발부등을 쳐도 역부족.
ㅇ 최선생이 온다는 소식이 금밯 퍼지고 입학식 날 3학년 학부형이 더 많이 왔음.김천여중 (8학급) 있었기에 자매도 상당히 많음
ㅇ 담임 발표,3-1 최석구 선생 학생들은 아~학부형은 박수 치고.학부형 회의 모의고사,야간교실 수당 등 2만원을 학부형이 거두고
관리 하도록 함.모의고사는 모두 같은 것을 치기 때문에 학교간 비교가 원활 .평가 결과는 컴퓨터로 처리 경북 전체를 파악 할 수
있음.분석표 작성 전년도,학급,학교간을 작성하여 교사들에게 자극을 줌.어느 과목은 어느 학교가 우수한지 파악 가능.학교명은
나타나지 않지만 교육청에 연락 학교별 학생수를 파악 .5개교를 찾을 수 있음.내가 수학경시대회,인사,학교 배정 등 일을 많이
해 주기 때문에 편리하게 찾을 수 있음.
ㅇ 야간교실은 바로 시작.내 혼자 담당 함.수당은 거절.돈이 남아 보충수업 1시간 더 함.정규 보충수업은 시간당 5000원 이 보충수업
은 2500원 밖에 줄 수가 없음.정규는 국,영,수,과,사 하고 다른 과목은 비정규 시간에 배정 불만이 많음.증산중 도독놈이라 했는
이유를 알겠지.
ㅇ 학교가 180도 확 바뀌었다.중앙중은 멀리 있어 배달이 안됨.햑생들과 같이 컵 라면을 먹어니 어떤 학부형은 밥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ㅇ 모의고사 결과가 나오는 날은 어머니회와 만나는 날이다 .3학년 담임 만 남아서 상담.초등학교4년 부터 중3 까지 성적이 계속 올라
학교에 가보고 싶다고 했고,어머니회장을 하면 누가 책임 지고 김고에 합격 시켜 준다는 소문도 나 돌았다.
ㅇ 수당을 안받으니 그냥 교무실에 앉아 있는 줄 아는데 계속 순회 하고 화단 족으로도 감시 하였다.김고는 자기 스스로 자율학습을
하도 록 나 두니 송정에서 놀다가 집에 오는 학생이 많았다고 한다.
ㅇ 나도 당햇다 공부 잘하는 학생은 집이 훨신 좋다.그래서 잘하는 학생은 집,학교를 선택 하도록 했는데 창호가 속였다.오락 게임을
하는데 100원 만 있으면 하루 종일 놀 수가 있단다.어느날 그놈이 시간이 마쳐 가는데 학교로 들어 오는 것을 목격 다그치니 집에
서는 학교, 학교에서는 집에서 공부 한다고 속여 게임 만 열심히 했다.
ㅇ 여지 없이 떨어지고 성의고 입학.열심히 하여 응급 치료 담당 의사가 되어 몇년 전에 찾아 왔음.
ㅇ 여름에 50명 교실에 있으니 짐통,어머니회장 천정에서 돌아 가는 선풍기 요청.시내 다 돌아 봐도 없어서 세운 상가 꺄지 가 봄.
벽걸이 선풍기 4개 달고 방충망도 설치 .겨울에는 기름 난로 설치(나무,석탄 난로는 재를 치워야 귀가 함)
ㅇ 무엇이던 투자를 해야 이길 수 있다. 난로 만 420,000 원*5개=2백십만원,하기 휴가시 보충수업을 하는데 못하겠다고 아우성.할 수
없어 보신탕울 먹었는데 나는 그것이 처음 임.그런데 1주일 후에 그것이 생각 나서 토 하고 아단법석
ㅇ 하는 만큼 성과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제11회 송설 기별 축구시합 주최 할 때 야간교실 다하고 계획,준비 함
친구들 에게 미안 했다.
ㅇ 무더위가 물러 가고 건의에 의해 10시 30분 까지 연장.카트라인에 걸리는 학생은 야간 보충수업을 함 그 애들은 12시 자기 전에 우
리 집에 전화토록 하고 명단을 옆에 두고 체크 함.
ㅇ 귀가시 스쿨버스가 지나 가고 행단 보드를 건너야 하는데 미리 건너 감 버스가 가르져 있으니 달려오는 차가 갑짜기 튀어 나오니
애가 넘어 지고 차는 그냥 도망을 감.어떤 분이 자기 차를 타고 따라 가자고 함 .버스 기사에게 병원으로 빨리 후송 하라고 부탁
하고 뒤 따라 감 김천은 10시경 문 닫고 철시 .인적이 없어나 달아나기 쉬움 .중앙초등 앞에 오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안았음.
할 수 없어 경찰서에 들어가 신고 함 프라이드 승용차인데 밤이라 색을 구분 할 수 없어 은빛 처럼 보였다.김천의료원에 가니 다친
곳은 엾었다. 집에 돌아 오니 2시가 넘엇다.그런데 다행이 오트바이가 목격하고 따라 가 번호를 확인 부곡 파출소에 신고.무면허,
행다보드,뱅소니,음주운전 ,그 다음날 차량 번호 보고 집에 찾아가니 키를 옆집에 던저 버리고 차를 안타고 다닌다고 거짓 진술 업
무 방해 죄 까지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는 합의를 보자고 한다.달아나 안 잡히면 그만이고 잡히면 합의 보자. 나는 절대 안된다.
학부형이 합의해 주었며 고기를 두근 가지고 왔다 만약 안잡히고 다쳤다면 아무리 무상으로 봉사 했더라도 책임이 돌아 올 것이다
ㅇ 5개반의 실장들이 너무 좋았다.내일 금오산으로 소풍 가니 차비 500원 거두워라 하면 어머니에게 돈 좀 준비해 주세요.그 다음 날
차비를 주면 받고 안주면 그냥 넘어 감.의사2명, 약사,변호사,공인회게사 됨.
ㅇ 그 다음 내반 실장 박일행은 서울대를 2변 합격.(첫해는 국어국문과,그 다음 해는 법대 )
ㅇ 3년을 하면서 최선을 다 했고,학부형으로 부터 신임도 얻어 어머니회가 졸업 후에는 친목회를 결성 나도 특별 회원으로 됨.
ㅇ 반별 축구 시합 할 때 콜라 1박스 상품도 걸고 담임도 꼭 참석 하기로 했지만 나만 했다
ㅇ 배정 받으면 울던 학교가 가고 싶은 학교로 변했다.
ㅇ 방학 때 교육청에서 전화로 시범학교 할 의사를 묻기에 승낙 했다.수학 교과서를 단계적으로 바꾸고 있었는데 네년에 3학년 수학
교과서로 하면 그 다음 해는 수학책이 바뀌도록 되어 있었다(1년차에는 구 교과서 2년차에는 신 교과서로 발표 하게 됨)
학교에서는 그것을 몰랐다.그래서 2학년을 해야 한다 .2년차가 끝나면 2학년 교과서도 바뀌게 되므로 일선 학교에서는 무용지물이
된다.주제가 능력별 분단학습이다.나는 그 이후 타교에 가서도 계속해서 시행 했다.김복술 교장은 1주일에 두서너번 참관 하셨다.
ㅇ 발표일은 10월인데 한국교원대학교에서 4개월 연수하는데 내가 뽑혔다. 할 수 없어 7월말에 발표를 하게 됨.
수학교사가3명 있었지만 거의 나 혼자 했기에 다른 교사에게 맡길 수가 없었음.
ㅇ 이 연수는 각 실 마다 방3칸 각 방에 2명 거실은 탁자,소파.샤워가 있는 화장실이 이 실 내는 우리가 청소.화장실은 실외 것 사용.
금요알 12시 되면 끝 집 도착13시.월요일 13시 부터 시작 .4일은 집에 4일은 연수원에 있음.각 시,도에서 모였기 때문에 귀가 시간
은 다름.연수 중에 중국 세미나에 참석하고 각지를 관람.중국과 수교가 안되였기에 정보부 요원도 같이 감.
대만-홍콩-베이징 으로 감 10.10일 쌍십절이라 모든 건물에 전기불 밝혀 구정 까지 행사를 함.다른나라는 중국과 수교를 했기 때문 에 대만에 유일하게 우리의 대사관만 있음.10박11일간 이고 호텔은 최고급,닉션과 등샤오핑이 부라보 한 국빈관에도 숙박 함.
한국이 이렇게 잘 사니 수교를 하자는 민간 외교 사절단 임.태극 마크를 달고 밑에 대한민국 교원 연수단과 성명을 달고 가니
저절로 행동을 조심하게 되고 선물도 가져 감.청바지2벌 샤프팬10개,88담배(우리나라가 88년도 올림픽을 했음을 알리기 위함)
상하이에서 아침 7시에 콜 집에 도착하니 저녁9시 세상 좋아졌다.
ㅇ 김천여중에서는 행정과 학력을 증진 시키고 중앙중에서는 환경과 실력을 증진 시켜 그 이후 교사로서는 안되는 일을 하게 됨
협회장이 고민을 하는데 친구분이 협회에 최선생이 있는데 고민을 왜하나.아- 그래 내가 말 한마듸 만 하면 다 하는 사람이다
협회장이 온다 하면 전부 나가서 인사를 한다.보스 기질이 많은 사람. 서울대 다닐 때도 전부 데리고 다니면서 밥,술 사주었고.
미죽에서도 현금을 많이 가지고 다녀 불편했는데 마침 배 고픈 사람들이 찾아와서 항상 10여명 정도는 데리고 다녀 신변은 안전 했
다고 하더군 .그런데 최선생에게 이야기를 하니 NO.이때것 자기가 시켜서 거절 당하기는 처음이다.사모님이 오셔도 나중에는 두
분이 같이 오심에 허락을 함.가정 형편이 확 달라졌다.말 안든는 교사를 이끌고 가는 것이 정말 힘 들었고 학생들에게는 보람 찬
3년 이었다.그 다음 학부형들은 기대를 많이 했다.
ㅇ 그런데 시범학교 운영함에 2학년 담임을한다고 하니 실망이 컸다.
첫댓글 시골 소도시에서 약6년간 교통지옥을 경험 하였군요,
김천시 교통행정은 다른 중소 도시에 비하면 정말 짜증납니다,제몸 사리는것인지,? 머리가 나쁜지,? 철길 주변은 아직도 왜놈들의 고향냄새가,,,,,
친구야,! 20일 저녁 부곡동 막걸리집에서 박 효룡씨를 만났다오 두루 안부를 묻드군,,,정말 미안하오 가내 행복하시고 6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