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3:10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개역개정판)
이사야 13:2 너희는 민둥산 위에 기치를 세우고 소리를 높여 그들을 부르며 손을 흔들어 그들을 존귀한 자의 문에 들어가게 하라 (개역개정판)
바벨론이라니? 시대가 안 맞는데?
이사야 선지자의 활동 시기는 주전 740년에서 주전 680년경이고
바벨론은 그 느부갓네살이 주전 605년에서 주전 562년까지 재위했으니까
뭐가 좀 안 맞는데?
심판 받는 나라들 가운데 1번 타자 바벨론 이후로
앗수르
블레셋
모압
다메섹(아람) + 북이스라엘
구스
애굽
바벨론(21장에 또 언급되고...)
두마(에돔)
아라비아
남유다
두로와 시돈까지
지금까지 주로 북이스라엘-아람 연합군의 위협 앞에서,
앗수르를 의지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메시아를 통한 구원의 약속 이야기가 나왔는데,
갑자기 먼 훗날 다가올 바벨론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하긴 그 바벨론의 느부갓네살도
꿈해몽을 못하는 술객과 박수들(또는 박사들...)을
꿈도 알려주지 않고 말해보라고 했던 그 때(단 2:1)
사실은 꿈의 내용을 몰랐던 다니엘이
이후에 꿈의 내용을 해몽까지 했던 그때
꿈 해몽을 다들었던 느부갓네살...
많이 놀랐겠지?
그래도...
어차피 자기 사후의 먼 훗날 이야기이니
마음이 좀 안도가 되었던 모양인가
그래서 다니엘한테 절까지 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단 2:46)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왕성하기도 전에
그 나라가 나중에 강해져서 (유다를 멸할 것이고)
결국 자기도 심판받는다는
철저한 훗날의 이야기가
당장을 살아가느라 고달팠을 유다 백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래서 저 자유주의 진영 신학자들도
나중에 씌여진 것이네 어쩌네 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고,
상식적으로 맞는 이야기만 믿게 만들겠다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거 가지고 연구하고, 발표하고 뭐 그러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도 지혜를 얻어야 한다.
하나님은 미래를 예언하는 자들을 통해
미리 미래의 일들을 알리신다.
그리고 심판을 위해
민둥산 위에 기치를 세우시고 용사와 군대도 모으신다 (사 13:2-3)
미래를 미리 알려주시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이 그럴 능력이 없다고 보거나
하나님이 그럴 의지가 없는 분으로 보거나 그러는지 모르지만
그 하나님은
최소한 나에게는
현재의 삶을 사느라
궁극적 미래에 대한 것을 놓치고 살아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고
지금도 이야기해주시고 계시다.
어머니께서 살아계시던 시절
젊음의 시절이 영원할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하루하루의 삶이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언제나 마음이 급해서
그저 바로 앞의 것들만 해결하는 어리석음
미래의 일에 대해서 지나치게 계획을 세우고 대비하는 것도 비성경적이지만
반드시 다가올 미래 심판이 말씀이 주어졌을 때는
반드시 앞날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최근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병에 걸리는 것을 보았다.
주로 40대, 50대...
불과 1,20년전만 하더라도
젊은이 축에 속했던 사람들인데
야속하고 무정한 세월은
당시 지나가던 세월의 날씨도 가혹했던 주제에
그 속도도 빠르게 만든다.
이제 겨우 40대 주제에 할 소리냐고 말한다면
그 권면은 반드시 귀를 기울여야겠지만 (잠 13:10)
미래를 바라보고 대비해야 한다는 점 하나는 분명하다.
그것은
무슨 재정이나 노력을 투자해서
대비하는 것도 포함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눈을 떠서
반드시 임할 심판과
반드시 다가올 최후의 날을
기도로 준비하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이다.
오늘의 삶을 위해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내 모든 건강을 쏟아낸다면
내일의 삶이 영향을 받게 된다.
그걸 어머니께서 몸소 보여주셨다.
아프지 말아야 한다.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되
건강 지키는 생활 습관만으로는 안된다.
매일 기도해야 한다.
오늘 아침 눈을 뜬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 기적이다.
그 기적을 감사함으로 받고
내일도 눈을 뜨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영적인 눈도 떠져야 한다.
지혜로운 자는
여기에서도 권면을 받는다. (잠 13:10)
여호와의 날은 반드시 온다.(이사야 13:6,9~10)
사람들은
지구 종말의 날에는 관심이 많아도
개인 종말의 날은 안올 것처럼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렇다.
그렇지만 그날은 심판의 날이고 정산의 날이다.
먼 훗날의 나라일 것 같은 바벨론이 심판을 당하는 날이고,
궁극적으로는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이는 날이며,
가장 중요하게는 이땅에서의 내 마지막 날이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게 된다.
유다 백성들에게는 이 심판의 메시지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항상 들려졌듯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거듭, 반복적으로 이 말씀이 들려온다.
백성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은 이 메시지에 근거하여 심판하실 것이다.
미래를 대비하라는 말은
금융기관에서 (상품 판매를 위해) 많이 쓰는 말이긴 한데,
가장 현명한 대비책은
역시 기도다.
미래를 두고 기도하는 것이다.
2030년, 2040년, 2050년
나의 모습은, 나의 상황은 어떻게 변화되어 있을 것인가?
젊어질 가능성은 0이고
나아질 가능성도 높지 않다.
거울만 봐도 한숨이 나오는 시간이 올 것이다.
그렇다면
기도해야 한다.
불쌍히 여겨달라고
다가올 심판을 앞두고
임박한 진노를 얄팍한 수로 피하려고 하는 것(마 3:7)이 아니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훗날이 되도록
지금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
건강하게
무사하게
살아있도록
내 시선을 오늘에서 약간 돌이켜
오늘과 함께 내일도
그리고 가끔은
어제도
그러니까 그 힘들었던 시절( = 최선을 다해서 극복하려했고, 극복하게 하셨던 그 시절)도
다소 여유로운 마음으로 돌아보는 것이
지혜로울 듯 하다.
그리운 어머니
그리운 사람들...
그 그리움에 함몰되지 말고
나에게도 마지막 날이 올 것임을
누구에게도 그럴 것임을
믿음으로
담대하게
담담하게
담백하게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지혜롭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