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참고*
역대 월드컵에서 독일의 우승 전적은?
- 월드컵 17회출전 *세계대전으로 아쉽게 딱 한번 불참.
- 월드컵개최: 1974 / 2006 총 2회.
- 결승 7회 / 우승 3회 / 준우승 4회 / 평균기록 4강.
*월드컵에서 단 한번도 8강아래로 탈락된 적이 없는 경이로운 기록.
*월드컵에서 단 한번도 승부차기에서 패한적이 없는 냉철한 무패기록.
- 1954 스위스 월드컵 - 독일V헝가리 (구 서독) 첫 우승.
- 1974 서독 월드컵 - 개최국 독일V네덜란드 (구 서독) 2번째 우승.
- 1990 이탈리아 월드컵 - 독일V아르헨티나 3번째 우승.
*감독:베켄바우어 / 현재 바이에른 뮌헨 회장이자 FIFA위원장 겸임.
이와 같이 독일축구의 지난 경력은 실로 화려한 업적으로
단연 유럽최강[얼마 전 베켄바우어 회장이 독일이 유럽최강 이라고 주장함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이라 불릴만큼 무장되어 왔습니다.
그와 더불어 베켄바우어를 포함해 에우제비오,루메니게,에펜베르크,루메니게,마테우스,우리의 차붐,마테우스,클린스만 등 해서 가장 많은 레전드를 배출한 나라 역시 오늘의 독일이라 자부합니다.
그럼 잠시 한국인으로서 최고의 독일레전드로 꼽히는
차붐의 대해서 잠시 설명해봅니다.
[레버쿠젠 시절 훈련도중 머리카락이 불끈 솟아오르며
초샤이언으로 변신하는 카카롯트 차붐..이 때 천투력수치 1천만추측]
본인은 사실 차붐의 경기를 자세히 못 보고 자란 세대라
[본인이 축구를 막 알던 시기엔 최순호.허정무.김주성 선수가
자리매김 하고 있었음]
그의 출중한 재능과 경기력은 깊숙하게 알지는 못 합니다.
물론 베켄바우어나 에우제비오 같은 선수들의 활약도
본인 시대엔 이미 막을 내렸을 때라는...
적어도 이들이 펠레나 지코와 더불어 축구역사에 커다란 핵을 그었고
수많은 팬 들의 기억속에 영원히 자리매김 될 만큼
그 위상이 엄청 대단했다는 점은 여러 자료들만을 통해서도
충분히 검증에 또 검증을 거쳤고 그 현란함이나 인지도 등이
명실상부 입증되므로 세삼 이들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도
어찌보면 진부한 것 일지도요!
그래도 기왕 말이 나온 김에
그의 화려한 기록을 일부분만 살펴보겠습니다.
79년 당시 세계최고 리그로 꼽히던 프랑크푸르트 입단.
데뷔전 상대는 도르트문트.
스타팅으로 75분까지 뜀.
어시스트 기록.
최고권위 축구전문지 KICKER 선정..주간 베스트11.
- 세번째 경기 슈투트가르트 전. 헤딩으로 승리결정 골.
KICKER 선정 이주일의 골.
- 네번째 경기 바이에른 뮌헨 전. 그라보스키 어시스트로 선취골.
- 다섯번째 경기 최강호 보루시아MG 전. 한가운데 돌파에 이어 찬 공,
왼쪽 포스트 맞고 골. 선취골. 세경기 연속 골.
이날 KICKER, 처음으로 차붐이라는 단어 씀.
= 9월 강호 함부르크 전. 페차이의 어시스트를 받아 강슛.
그라보스키 센터링, 헤딩 슛. 30M 중거리 슛. 첫 해트트릭 기록.
11월 일본의 오데쿠라가 소속된 쾰른 전. 두 동양인의 대결로
관심 집중.
차범근 선취골, 결승골로 두골 기록. 오쿠데라 헛발질 7번.
차붐 대승. 프랑크 푸르트 3:1로 승리.
= 일간스포츠 톱기사 이때 부터 MBC 차범근 경기 녹화방송 시작.
매주 월요일 밤. 최고 시청률.
= 12월 UEFA 컵 출전. 첫번째 경기 레알 마드리드를 맞아 차,
선취골을 넣었으나 1:1 무승부..
두번째 경기 AC밀란 전.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강슛.
포스트 맞고 튀어나왔으나,골대 5초이상 흔들림. 특종 기사실림.
3:2로 프랑크 푸르트 승리.
= 80년 3월 UEFA 컵 결승전. 보루시아 MG와 1차전.
당시 20세의 나이로 '게르만의 혼'이라 불리던 마테우스
(90년 월드컵 MVP), 갈색 폭격기 '차붐' 전담마크 특명.
신문 톱기사.
= UEFA 컵 결승전. 보루시아 MG와 2차전.
역시 마테우스 차붐 전담 마크.
마테우스 속수 무책. 차붐 대활약.
우측사이드 마테우스 여유롭게 제치고 어시스트.
1:0 프랑크푸르트 승리. 차붐, 이날의 선수.
원정팀 득점 우선권으로 프랑크푸르트 창단이후 첫 UEFA컵 우승.
- 경기 후 마테우스 인터뷰
"나는 아직 어리다. 하지만 차범근은 현재 세계 최고 공격수다"
- 79~80 시즌 득점 랭킹 7위 랭크. 세계 상승세 베스트 4 선정됨.
세계축구 베스트 11 선정됨. 연봉 독일에서 세번째 액수. 협상 타결.
독일 대표팀 감독 차붐 귀화 추진. 실패(차범근 거절).
81시즌 레버쿠젠과의 경기에서 겔스도프에게 육탄공격 받아
심한 부상...
프랑크푸르트 팬들 레버쿠젠까지 가서 겔스도프 살해 위협 소동.
경찰 출동.
- 83년 레버쿠젠으로 트레이드.프랑크푸르트 팬들 울음바다.
몇몇 팬들은 극심한 우을증 증세에 시달리기도..
85~86시즌 분데스리가 MVP 및 득점 4위.86년 한국대표팀 선수로
멕시코 월드컵 출전.
- 88년 다시 UEFA컵 출동. 차붐 스페인 에스파뇰을 맞아
극적인 3:3 동점골 터뜨림.5만 관중 기립, 차붐! 환호.
승부차기로 레버쿠젠 역시 팀 창단 이래 처음으로 UEFA컵 우승.
-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출장 최다골 기록 분데스리가
308경기 98골.
차범근 선수가 세운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골 기록은
스위스 출신 사퓌자 선수에 의해 지난 99년에 경신(106골/218경기...
<축구협회 홈페이지에서 발췌>
이렇듯 분데스리가 역사에 7~80년대에는
당시 갈색폭격기라 불리었던 우리의 호프
차붐이란 선수가 이억만리 독일이란 축구대륙에 존재하고 있었음에
한국축구에 더욱 긍지를 갖는 원동력이 제공됩니다.
현재 차후 레전드후보로 꼽힐 지단,피구,발락, 등도
과거 유년시절 차붐의 화려한 축구를 보고
공터에서 공차기 연습을 하였다고 고백 할 정도이니
그 주인공이 다름아닌 우리조국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뿌듯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느낍니다.
독일 최고의 미드필더(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 ^;)인
미하엘 발락이 지난 한국v독일과의 친선경기차 방문하였을 때
그를 만나면서 건넨 한마디가 아직도 인상적으로 남습니다.
여기가 정말 차붐의 나라입니까?
(한.일 월드컵에서도 와놓구선 세삼스레 뭘..)
믿어지지가 않아요. 꿈 만 같습니다..
당신을 오래전부터 동경하며 축구의 꿈을 키워왔습니다.
오늘은 정말 최고의 날입니다. 헉 헉;;)
지극히 개인적인 심상이지만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발락이
차붐에 대해 이정도로 경애심을 표하니 자연 차붐이란 단어가
더욱 더 크게만 다가오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동경하는 분데스리가란 대륙에 그 바턴을 꽉 움켜쥐고
몰고 갈 차후에 한국인 유망주
제2의 차붐을 기대하고 있는 건 적어도 독일축구를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비단 본인 혼자만의 갈망은 아니라고 짐작합니다.
과연 지금에 아님 이후에 아무런 예고없이
혜성처럼 등장 할 그 누가 될런지는 모르지만...
잠시 그를 짚고 넘어 간다는게 본의 아니게 길어졌네요.
독일축구에 있어 일단 우리의 차붐을 빼놓구선
분명 누군가 아쉬워 하거나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본래의 요지에서 길게 벗어 났음을 양해드립니다!^ ^
그 밖에 다른 레전드들은 하나 하나 언급하기엔
우선 며칠 날 밤을 세어도 모자름과 동시에
혹시라도 본인의 글을 봐주시는 분들의 지루함과
짜증스러움의 최대감소와 결정적으론 주어진 지면의 한계점을
직시하고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단.. 본인이 중학시절 TV생중계를 통해 그나마 가장 생생하게
바라보았던 클린스만 선수만 열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인이 막 독일축구에 관심이 오려는 시기엔
당시 한참 잘 나가던 선수 중 남미엔 마라도나
유럽엔 클린스만 선수가 있었습니다.
90년 이전엔 월드컵이 언제 열리는지 조차 모를정도로
(본인 세대에 제 또래 주변엔 거의 90년이전에
오히려 이충희,허재,한기범,김유택이 등장하는 농구열풍이 강했음)문맹이 아닌 축맹(?)이었고 한참 황선홍
(국내에서 가장 좋아했던 선수)서정원,변병주,홍명보 선수가
맹활약을 선 보일때 즈음이 바로 90년에 들어설때고
이 시기부터 축구에 점차 개인적으로
관심을 쏱아붙기 시작하였다고 기억 됩니다.
90년 개최국인 이탈리아에서 제법 공 참 잘 때린다고
단순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느꼈던 선수가 당시 최고 인기도를
달리던 마테우스와 금발의 제니,금발의 마릴린 먼로도 아닌
지금의 클린스만 감독이었죠!
베켄바우어가 이끌던 독일팀과 당대 최고의 황제로
굴림하고 있던 마라도나가 씩씩거리며 발을 갈고 있는
아르헨티나와의 대결은 아무리 축구에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절대 채널을 돌리거나 외면하기 힘든 경기였습니다.
솔직히 그 당시 중학생이었던 본인은 이 두 사람의 이름조차도
몰랐고 더욱이 악명높은 나치스들의 후예들이 전쟁통에
언제 저렇게도 축구연습을 했는지 신기하다는 생각만이
가득했을 때 입니다.
더욱이 90년만 해도 독일은 동.서 통일
자유경제시장 침체가 어쩌니 해서 여러가지로 국가정서가
혼란했고 학교에서도 그러한 소식을 얼추 접하고 있을 때 였죠.
클린스만 이라는 이름을 비로서 알았을 때는 몇년 시간이 흘러
그의 은퇴기사가 어느 스포츠잡지에 실린것을 보고서야 뒤 늦게
알았고 그렇게 또 몇년이 지나면서 그 이름은 조금씩 잊혀져 갔습니다.
세계를 들 끓었던 2002한.일 월드컵은 히딩크라는 명장이 이끄는
4강이라는 신화를 일구며 세계를 달구었고
그 안에 대한민국은 뜨거운 열기속에 광복이후
처음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으며
물론 그 넘치는 환희속엔 본인도 힘찬 박수와 함께 서 있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축구의 오랜 염원이자
최초의 아시아 월드컵우승이란 대업을 갈망했던 꿈을
역시 꿈으로 매듭 짖게 해준 나라가 다름아닌 독일로서
이건 무언가 오랫동안 친숙했던 사람에게
뒷통수를 힘 껏 얻어 맞은 기분이었죠~!
당시 본인은 독일과의 경기가 결정된 걸 보고
내심 움찔함을 감추지 못한게 사실입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게 특히 강한 기량을 보여왔던 독일인지라..
더욱이 국제경기서 한번도 한국에게 패한적이 없던
독일이었으므로 그 압박감에 눌린자는
분명 저 뿐만이 아니었을거란 짐작입니다.
그러하면서도 4강의 기백을 살려 어떡하든 이번만큼은
독일을 밞고 가리라 믿었던 것도 저 뿐만이 아니었겠죠!
결국 4천만의 기대와 달리
대한민국은 아깝게도 1:0승부로
쫑이 났고 한국의 결승행은 좌절되었으며
요코하마행 티켓도
발신지가 코리아가 아닌 제르마니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한마디로 운명의 신이란 양반은 서양식 체질이었는지
김치 대신에 쏘시지를 택한거였죠!
더 기가막힌건 그토록 좋아 하는
(당시 본인은 발락 이외엔 다른선수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음)
발락이 이운재의 거미손을 뚫었고 이거야말로 작은 제 가슴에
비수를 꽃다 못해 콘크리트 대못을 박는 상황을
어이없는 모습으로 멍하니 바라 볼 수 밖에 없었죠.
그동안에 열광했던 동경심과 증오심이 쉴 새 없이 교차되는
혼잡한 상황이었다 할까요! 큭~
그러한 슬픔을 애써 잊으려 몸부림을 않고 있는 와중에
기왕 이렇게 된거 반드시 브라질을 전차군단이
밞고 영광의 우승을 차지하라 응원했습니다.
이 역시 결과는 익다 만 쓰디 쓴 오가리가 되버렸죠.
음..역시 삼바의 유연함은 전차의 웅장함으로도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체념들이
본인을 더욱 괴롭게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묻든 그렇게 4년이 다시 흘렀고 비교적 조용하게
월드컵 개막식이 진행되고 비로서 4년만에
첫 경기를 관람하게 되었는데...
어디선가 눈에 익은 모습이 TV화면 중간 중간 비치는 겁니다.
헤어스타일은 짧아졌고 감독이라고 하기엔 매우 젊은
신예 영계로 보이는 중후한 남성이 오래 전 처음으로
독일선수의 경기를 유심히 바라 보았던 과거 클린스만 선수이자
지금에 클린스만 감독이었던 겁니다.
이 양반이 언제 지도자가 되었는지 의아스럽기만 했고
그전엔 감독을 맏기 전 어떠한 루트를 거쳤는지 조차도
까마득히 몰랐으니까요.
작금에 놓여진 독일축구에 심각한 과제 중 하나로서
일단 본인의 짧은 시각과 견해로 보았을 때...
지난 10여년간 독일축구의 주춤거림은 무엇보다
조직력의 와해로서 판단 하고 있습니다.
지난 날 독일 축구는 브라질의 호나우딩요 같은 선수가 있어
어느 한명이 경기를 진행하는 스타일과는 분명 거리가 있었습니다. 80년대 독일 축구의 황금시기에도 그랬듯이 미드필더와 수비들의
완벽한 조직력. 개인의 기술과 태크닉과 팀 전체의 팀워크가
완벽하게 들어맞았고 거기에 칼 하인츠 루메니게, 루디 푈러,
위르겐 클리스만,올리버 비어호프 같은 결정력이 뛰어난
스트라이커가 있기에 더욱더 독일은 강했음은
저 뿐만이 아니라 축구전문가들의 통상적인 분석이기도 합니다.
독일이 주춤거리기 시작한 건 90년대 후반부터로 보고
98월드컵 당시만 하더라도 유로96의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기대치와 당시 최고의 전성기였던 비어호프. 하인리히.
하만 헤슬러. 에펜베르크. 지게. 바벨. 클리스만등의 선수까지
굉장한 자원을 보유하였고 당연히 우승후보 1순위로
지목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고
토너먼트의 귀재라는 독일팀답지 않게 92년 독립한 신생국인
크로아티아에게 3대 0이라는 수모를 당한채
4강진출을 뒤로하고 보따리를 싸야만 했습니다.
2002년 월드컵부터는 클로제,발락,거미손 칸 등의
놀라운 활약으로 여론의 예상을 보란듯이 뒤집고
녹슨전차에 윤활유를 투여하였습니다.
물론 98월드컵때와는 많은 변화를 시도하였습니다.
주전의 노쇠화가 이전엔 큰 문제로 남았고 지금은 평균연령이
20대 중반으로 연령 층 세대교체를 추진하였지만
이후 2006년 유로개최에서는 2002월드컵 부활이라는
애초 목표와 달리 최악의 성적으로 곤두박질했고
이건 결국 세대교체로서의 플랜도 실패했음을 반영하는 부분입니다.
무엇보다 과정보다 결과를 절대적으로 중요시 하는 독일축구의
장점인 빠른템포와 탄탄한 조직력 노련한 고공패스 등
독일의 가장 큰 무기인 조직력을 분실했고
급기야 공격수의 부재로까지 번졌습니다.
그나마 21세기에 들어 필립 람이나 클로제,발락,프링스,펠러,
슈나이더,포돌스키,슈바인 슈타이거 라는
스타들이 등장했음에 이는 곧 독일축구를 절벽에 벼랑 끝에서
끄집어내고 낙관적으로 독일축구의 부활에 희망을 주는
부분이라 사려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갈증을 해소해주리라 기대가 되었고
급 관심으로 치닿고 쏠리던 이가 바로 지금 말하고자 하는
클린스만 감독이었습니다.
지난 시즌 이끌었던 클린스만 기갑대의 움직임은
분명 여느 때와 다른 전술이었습니다.
사실 새롭다기 보단 과거 독일축구의 특유성을 재 보정해
한 단계 업그레이 하여 끌어올렸고 무엇보다
관중들과 시청자들에게 있어서
지금에 열광하는 프리미어그 이상으로 보다 선이 굻고
리얼리티한 그야말로 재밌는 축구를 구사했다는점입니다.
선수들의 스타성을 경계하고 선수들의 자유분방한
발언권을 행사하게끔 허용한점은 그만큼 선수와 감독이란
철벽을 허물고 하나로서 퓨전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2006월드컵의 클린스만이 감독으로서의 활약은
그동안 다소 보수체제와 고립된 틀에 별다른 개선점을
뚜렷히 찾아 볼 수 없었던 독일축구에 있어
분명 새로운 모델이 될 전망이 크다고 본인은 믿고 있습니다.
독일축구는 한마디로 예전보다 질이 떨어졌다기 보단
많이 변형되어 가고 있고 또 그 과도기에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여.. 다음 시즌 아님 그가 감독직을 은퇴하기 전
다시 한번 독일의 사령탑을 맏아주길 본인은 희망하고 있습니다.
사실 월드컵종료 직 후 당분간 독일에는 머물지 않겠다는 인터뷰와
근래들어선 프리미어 진출이니 해서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거의 독일사령탑에 확률은 그다지 높지가 않음이 아쉬운 현실이고
차라리 우리나라로 오는건 어떨런지?(이게 뭔 뚱딴지 같은 소리..)
어쨌든 분병한건 독일은 아직 건재하다는 현실입니다.
부자가 망해먹어도 3년은 끄떡 없다는 설이 있다만..
적어도 독일축구는 망하지 않았고
그냥 소액의 어음부도를 맞았다고나 할까요!!
분명한건 독일은 축구를 알로만 지켜 보았던 여느 X순이 내지 X돌이 인식하는 것 처럼 절대 몰락한 축구도 아니요, 또 그들이 뻑하면 내 뱋는 스타급선수들이 부족하다는 의견과 달리 지금도 예전과 다름없이 유럽 정상의 스타와 젊은 피들을 쉬지 않고 양성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론 항상 준우승에 머물려 우승과는 사실 인연이 없었던(2002월드컵을 우승으로 끌어올리고 경고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했던 애석함+첼시 FA컵 결승도 끝내는 부상으로 출전 못하는 애통함)이제 적지 않은 나이에 들어선 발락이 마지막으로 짐작 될 다음 2010년 월드컵의 영광을 만끽하며 하려한 은퇴를 장식하기를 바랄 뿐이며
그전에 첼시선수로서 발락의 성공을 기원해야겠지요*^ ^*
(시간 상 발락의 관한 고찰은 다음 기회에 자세히 개제해보겠습니다)
여기까지 실질 전력적인 기록과
현 구조에 가능성의 여부에 바탕을 두고 설명을 남겨 보았다면
마지막으로 다소 역술적인 기대를 두고 짤막하게
몇 자 적어 보겠습니다.
(그냥 현실적인 차원과는 동 떨어지니 단순히 눈풀이로 봐주시길^ ^;)
본 글 첫 머리에 남겨 놓았듯이 월드컵 70여년 역사 상
독일은 3회 우승컵을 거머쥐었는데..
첫 우승이 54년 스위스 월드컵
두 번째 우승이 그로부터 20년 후 본국인 74년 서독 월드컵
마지막 세 번째 우승이 그 후 16년이 흐른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그냥 독일축구를 지향하는 입장에서 막연히 합리성을 부여한다면
개최년도에 숫자가 갖고 있는 명제비슷한 부분이 깔려있습니다.
첫 우승인 54년을 시점으로 보고
그 후 20년이 흘러 두 번째 우승
또 다시 16년이 흐른 90년 세 번째 우승
이런 공식이 또 한번 재현된다면 최종 우승 90년도에서
또 다시 20년이 흐른 2010년에 맞아 떨어져야 하겠죠!^ ^
마찬가지로 2010년 이후엔 순차적원리로 16년이 흐른
2026년(헐.. 그 때 내 나이가 몇살이야 대체...)에
또 한번 우승컵을 거머줘야 맞는걸테구요^ ^*
일례로 지난 06년 이탈리아도 역대 우승 기록년도가
1934,1938,1982,2006년까지 총 4회 우승으로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결승 진출 이후
12년마다 결승에 오른다는 12년 주기설에 이어
24년마다 우승한다는 24년 우승 주기설 까지 적중시켰음을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님 사기(?)인지 좌우지간 비슷한 맥락으로
기대치를 가져보는 것도 독일축구 팬으로서는
설레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
물론 그 영광의 주인공이 당연 우리 대한민국이기를
모두가 바라지만 솔직히 냉정한 시점으로선
이제 3년밖에 안남은 짧은 시간에 크게 기대하기는 사실 상 힘들고 우승까지는 아니더라도 4강도 밞아 보았으니
3위정도는 욕심을 내어봐도 손색이 없지 않을까 싶군요!!~
2000년에 들어서 상업적축구를 구사하는 프리미어가 대폭적인 인기도를 달리고 있으며
그전에 우리 선수들 대부분이 프리미어로 진출한 영향도 무시 못하겠죠!
하지만 아직까진 잉글랜드는 독일보다 한 수 아래라는 확신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UEFA챔스부터 각종 챔피언리그도 유럽에선 막강한 영예와 권위를 달리고 있지만
어차피 축구의 모든 것은 유럽,아시아,아프리카,남미
전 세계 각국이 모이는 월드컵만이 해석을 해준다고 보며
단연 리그우승이 월드컵보다 높은 우위에 있을 수도 없다고 봅니다.
그런 차원에서도 본인은 독일이야말로 유럽최강임에 손색이 없다 보며
잉글랜드 축구지존 게리 리네커 인터뷰 내용 중 유명한 하나가...
기자가 묻기를 축구에 관해 짤막하게 정의를 내리자면? 이라는 질문에~
축구란 양 팀 22명이 진행해 마지막엔 독일이 우승을 거두는 거라고 말한적이 있습니다.
얼핏 듣고 생각하기엔 비아냥 섞인 어조로 이해할 수 있으나
긍정적 측면으론 그만큼 독일축구가 유럽 어디에서든
강국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로 남지요!
업무 중에 촘촘히 시간내어 글을 적느라 많이 정리가 안되 있고
일단 지루한 글을 잃어 주신 회원님들께
송구함과 감사의 말씀을 전해드리구요!
독일 전차군단의 승리를 기원하며
다음에 또 들려 부족한 글을 남겨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건강하시고 건승하시기를((^ . ^))
*사진출처: 월드컵 다음미디어 , 발락사랑 팬 카페*
첫댓글 클린스만 저때 유니폼 멋지네용^^
96유로컵에서 우승했을때 모습이 떠오르네요
에우제비오는 포루투칼인데....ㅋㅋ 암튼 좋은 글이네요.
아..죄송요. 에우제비오를 원채 좋아해서 습관적으로 이름을 적었네요.
유로96때 독일대표팀 옷은 90년 이탈리아월드컵때 독일대표팀유니폼 다음으로 멋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전 유로00때와 04때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