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쯤 했네요.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레이커 팬 여러분의 향수도 자극할 겸 한번 손을 대봤는데 여러분들께서 잘 읽어주셔서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19화까지만 번역을 하려 합니다. 진짜 이 책의 재미는 이렇게 서툰 번역문을 읽으시는 것 보다, 필옹이 맛깔나게 쓴 원문에서 느낄 수 있으시리라 생각하거든요. :) 일단 시간이 반 정도 번역을 해봤어요. 언제나처럼 또 호응이 이상하거나 문장이 조잡한 것은 여러 레이커팬 분들께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 나머지 부분은 또 시간 날때 올려보겠습니다.
19화 운명의 아이들.
유대감이야 말로 우리가 여기에 있는 이유다. 유대감이 목적을 주고 우리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 Brene Brown.
우리가 이렇게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동안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새롭고 더 다이나믹한 팀으로 변모한 것.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렸던 개막전은 상당히 위태로웠다. 로케츠와의 경기에서는 95-93으로 패배했고 관중들은 코비가 소개될 때 야유를 퍼부었다. 하지만 3일 후 우리는 명백한 숙적 선즈와의 원정경기를 가졌고 119-98로 승리했다. 그 날 최고득점자는 새로이 합류한 블라디미르 라드마노비치. 19점을 득점한 그와 더불어 4명의 선수가 두 자리 득점을 기록했다. 레이커스에 재합류한 피셔는 이를 무언가 오고 있다는 신호라고 보고는 후일 이렇게 말했다.
“우리 마음에 작은 씨앗을 심었어요. ‘우리가 제대로 플레이하면, 엄청난 강팀이 된다.’는 것이었죠.”
1월 중순, 우리는 24승 11패를 기록하며 리그의 많은 강호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초반 우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하나의 이유는 앤드류 바이넘 시대의 도래였다. 카림 압둘 자바와 커트 램비스와 함께 풋워크를 연마하고 패싱 스킬을 연습한 바이넘은 어느덧 위협적인 득점원이 되어있었다. 이를 지빨리 알아챈 코비가 픽앤롤 상황에서 바이넘을 활용하기 시작했고 바이넘은 쉬운 슛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처음 3달동안 바이넘은 커리어 하이 13.1 평균 득점과 10.2 평균 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또 다른 성공 요인은 라드마노비치, 파마, 월튼, 부야치치 등을 비롯한 젊은 백업 선수들이 가진 에너지의 유입이었다. 아직 배울 점이 많았지만, 그간 배워온 점도 많았다. 무엇보다도 생동감 있고 열정적이었으며 팀 케미스트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들의 좋은 리듬을 보이면 막기 힘들었다. 새롭고 빠른 차원의 공격을 선보인 것이다. 11월 하순에는 올랜도로부터 또 다른 젊은 선수, 트레버 아리자를 영입했다. 림으로 돌진하고 외곽에서도 슛을 성공시킬 수 있는, 빠르고 다재다능한 스몰포워드였다.
세 번째 (아마 가장 중요하기도 한) 이유는 데릭 피셔의 귀환이었다. 피쉬(역자 주: 애칭의 느낌을 살려주고 싶어서 이렇게 표시합니다)는 레이커스의 최초 3연패를 겪은 베테랑이었고 워리어스와 재즈를 거쳐서 돌아온 피셔는 팀의 성숙하고 경험 많은 리더가 되어 공격을 지휘하고 팀에 절실히 필요했던 “지휘”라는 것을 더해주었다.
이미 이야기했듯, 이번 우리 팀의 핵심은 선수들에게 자유를 주어 팀 구조 안에서 스스로의 운명을 찾게 하는 것이었다. 피쉬는 스티브 내쉬나 크리스 폴처럼 창조적인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하지만 피쉬는 정신력, 클러치 슈팅, 냉정함 등 그의 장점을 십분 활용, 자신만의 역할을 찾아내어 본인에게 뿐만 아니라 팀에 아주 좋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면에 대해 피쉬는 이렇게 같이 말했다.
“조금 신비스러워 보이는 건 있죠. 감독님의 목표는 팀으로서 농구를 하는 가이드라인을 저희에게 가르쳐주는 거예요. 그리고는 다른 자세한 사항은 모두 선수들에게 맡기죠. 과하지 않게 단체를 조직하는 방법이에요. 물론 흔치 않은 방법이지만요. 다른 감독들이 하는 것처럼 ‘해야 하는 것‘을 기대하는 게 아니에요. 스스로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물러나 계시는 거죠.”
최초 레이커스에 합류했을 당시 피쉬는 백업 가드로서 출전했다. 하지만 피쉬는 아주 부지런한 학생이었고, 2001년 론 하퍼가 나간 이후 스타팅 멤버가 될 때 까지 계속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계속해서 넓혀 나갔다. 그리고 처음에는 스크린을 빠져나오는 것에서 힘들어했지만 스스로의 가공할 힘을 이용해 뚫고 나오는 방법을 배웠다. 또한 상대 수비수가 코비를 에워싸 본인에게 오픈 찬스가 날 것을 대비해 클러치 상황에서 외곽슛을 연마했다. 3연패를 달성하던 시기에 피쉬는 샤크와 코비에 이어 팀내 득점 3위였다.
피쉬는 또한 내가 지도해본 선수 중 가장 이타적이며, 다른 선수들의 롤모델로 삼고 싶은 선수였다. 03-04시즌이 시작할 때 게리 페이튼을 위해 스타팅 자리를 양보할 수 있냐고 물었을 때, 피쉬는 군소리 없이 따라주었다. 하지만 시즌이 진행됨에 따라 (특히 클러치 타임에) 피쉬의 출장시간을 늘렸다. 피쉬가 뛰고 있을 때 오펜스가 더 잘 흘러갔기 때문이다.
그 시즌 이후 FA자격을 얻은 피쉬는 제법 규모 있는 계약을 따내 워리어스로 향했으나, 본인에 맞는 역할을 찾아내지 못했다. 2년 후 워리어스는 피쉬를 유타로 보냈고 피쉬는 백업 가드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재즈의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에 일조했다. 하지만 그해 딸이 안암 진단을 받았던 피쉬는 나에게 연락해 LA로 돌아오고 싶다고 했다. 딸이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미치 컵첵과 협상한 끝에 유타와의 나머지 계약을 포기하고 레이커스와 더 저렴한 가격에 계약했다.
피쉬가 돌아왔을 때, 나는 피쉬를 공동 주장으로 임명했다. 또한 피쉬에게 백업 포인트가드 조던 파마에게 20분 이상의 출장시간을 주리라 이야기했다. 파마는 벤치에서 나와 스스로의 스피드를 잘 활용하여 공격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잘 해주었기 때문이다. 피쉬도 이에 동의했고 둘은 평균 20.8점을 합작했다. 한번은 더 발전하기 위해 뭘 해야겠냐고 피쉬에게 물은 적이 있다. 피쉬는 슛을 더 던지고 싶지만 팀으로서 플레이하기 위해 온 기회만 잘 살려야 함을 안다고 했다. 코비나 라마가 이에 능하지 못함을 알기 때문이었다.
피쉬는 코비에게 있어 최고의 리더십 파트너였다. 루키 때부터 함께 해온 그들은 어느 덧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믿고 있었다. 피쉬는 코비보다 더 참을성 있는 성격이었고 문제 해결에 있어 더 균형적인 모습을 보였다. 코비가 팀을 승리에 목마르게 만드는 반면 피쉬는 말로써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냉정을 되찾게 하는 데 재능이 있었다. 루크 월튼은 이렇게 말했다.
“피쉬가 말을 할 때면요, 배경음악 같은 게 들리는 거 같아요. 무슨 스포츠 영화 같은 그런 거 있잖아요. 피쉬가 말을 하면 다 받아 적고 싶었어요. 정말 말을 잘했거든요.”
피쉬는 가끔 나와 코비의 중재자가 되기도 했다. 내가 팀 미팅에서 코비에게 슛을 너무 많이 쏴서 공격 흐름을 해치고 있다고 이야기 하자 코비는 그날 슈팅 연습에 참가하지 않겠다며 화냈다. 하지만 피쉬가 능숙하게 끼어들어 코비와 둘이 이야기 하더니 결국 코비를 진정시켰다.
레이커스에 돌아온 피쉬는, 이전 3연패 때처럼 서로 다른 스타일의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론 하퍼, 존 셀리스도 호레이스 그랜트도 없던 그때, 피쉬는 유일한 챔피언십 경험자였다. 이 상황에서 경험 없는 어린 선수들을 이끌기 위해서는 코비와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이에 대해서 피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만 10,000피트 상공에서 이끌 수는 없죠. 다시 평지로 돌아가 팀원들과 같이 올라와야 해요. 그런 과정이 지속되며 우리는 유대감과 형제애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팀의 전환점이 됐던 때는 1월이었다. 1월 중순 경, 멤피스와의 경기에서 바이넘이 왼쪽 무릎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던 것이다. 바이넘이 나머지 시즌동안 함께 뛸 수 없다는 것은 팀에게 있어 심각한 손실이었다. 다음날, 코비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바이넘에게 칭찬과 감사를 표했다. 본인의 트레이드 위기에 종지부를 찍어줬다는 것이다. 오프시즌동안 바이넘의 미숙함을 비웃던 코비였지만 바이넘이 있어 레이커스가 챔피언십에 어울리는 팀이라고 주장하던 그의 모습은 마치 바이넘의 열렬한 팬 같았다.
2주 후 나는 컵첵으로부터 그리즐리스와의 딜을 통해 콰미와 맥기, 자바리스 크리튼턴, 마크 가솔을 보내고 파우 가솔을 영입했음을 들었다. 파우 트레이드를 본 나는 1968년 닉스가 데이브 드부쉬어를 얻는 과정을 떠올렸다. 한 기자로부터 "루이지애나 구입(Louisiana Purchase)같은 딜"이라 일컬어진 딜이었다. 또 드부쉬어와 마찬가지로, 파우는 게임을 이해하고 팀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축소된 롤도 감내할 수 있는, 지적이고 성숙한 선수였다. 파우는 팀에 이러한 성격은 꼭 필요했는데 정확히 적시에 나타나 타 선수들의 모범이 되었다. 또한 파우가 돌아오자마자, 100점대의 득점을 하던 우리는 농구를 맘껏 즐기며 평균 110득점 이상의 득점을 선보였다.
스페인 국가대표 스타인 파우는 더 유로피언 스타일의 협동적인 농구를 겪으며 성장했고, 덕택에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파우의 플레이 스타일은 트라이앵글에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슛 범위가 넓고 훅 샷과 듬직한 업 앤 언더 무브를 가짐은 물론, 빼어난 패싱 스킬과 리바운드 능력을 겸비했으며 속공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빨랐던 것이다. 파우 최고의 약점은 하체 힘이었다. 더 강하고 활동적인 빅맨에게는 막히는 모습을 보여줬다.
파우가 오기 전, 우리는 작은 연패를 기록하고 잇었고 이에 젊은 선수들이 팀 사기에 악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파우가 나타나자 모두 사라졌다. 가장 말을 안 듣던 콰미와 자바리스를 보내버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파우의 착한 성품이 팀 전체의 분위기를 바꾼 것이다. 승리를 위해서 뭐든 해줄 수 있는 리그 최고의 재능을 지닌 선수,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파우의 합류는 의도치 않게 다른 선수들의 게임에 변화를 가져왔다.. 라마 오돔을 예로 들자면, 수년간 2옵션으로서 정착하는 데 힘든 시간을 보내던 라마였다. 하지만 파우의 등장은 압박감에서 라마를 해방시켜주었고 이는 라마가 더 잘 할 수 있는 스타일의 농구, 즉 자유 분방한 농구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코비의 게임 또한 변했다. 양손을 모두 쓸 수 있는 빅맨이 합류했음에 신난 코비는 이내 파우와 리그 최고의 원투 펀치를 구축했다. 파우의 존재는 코비가 게임 조립에 더 신경을 써 다른 선수들이 슛을 더 던질 수 있게 하기도 했다. 이 덕분에 코비는 더 좋은 팀플레이어, 나아가 더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었다. 코비는 피쉬, 아리자, 파우 등의 멋진 동료들의 합류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포인트가드, 윙, 스페인 선수(Spaniard) 모두 얻었는데, 걔네 다 좋아요. 엄청 많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앞당겨서 받은 거 같아요.”
프리시즌동안 코비가 팀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이미 고대의 일에 불과했다. 챔피언십을 향한 형제애를 만드기 위한 성격과 심장이 모두 회복되었다는 것이 가장 고무적인 일이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잘 풀리기 싲가했다. 파우의 합류로 우리는 26승 8패로 시즌을 마무리, 57승 25패로 서부 컨퍼런스를 제패했다. 코비는 더 올-어라운드한 선수로서의 재능을 꽃피웠음에 MVP로 선정되었다. 우리보다 기록이 좋은 유일한 팀은 셀틱스였다. 가넷과 레이 앨런이 합류한 셀틱스는 프렌차이즈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인 66승 16패로써 시즌을 마쳤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재능이 승리하지만 운이 작용하기도 한다. 우리의 경우 둘 다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몇 년간 내가 본 게임 중 최고로 하나된 영혼의 게임을 선보이며 너게츠와 재즈를 가볍게 무찔렀다. 먼저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이 진출했던 우리는 상대를 기다리고 있었고, 디펜딩 챔피언인 스퍼스가 7차전 혈투 끝에 호넷츠를 누르고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다. 하지만 스퍼스 선수들은 일정상 7차전 게임이 끝나자마자 비행기에 올라 그 안에서 잠을 자야 했다. 태평양 표준시로 오전 6:30분이 될 때까지 도착하지 못했다.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1,2차전에서의 부진을 악몽 같은 일정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영향이 있었으리라. 1차전, 3쿼터까지 20점차로 뒤졌지만 스퍼스의 4쿼터에 무기력한 모습에 힘입어 우리는 89-85로 승리할 수 있었다. 3일 후 우리가 30점차로 앞서나가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어진 샌안토니오에서의 경기, 스퍼스는 다시 우리를 꺾어 반등하려 했지만 코비가 다음 2게임을 내리 접수, 5경기만에 시리즈를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토록 염원하던 보스턴과의 쇼다운을 겪게 되었다. 스포츠 사상 가장 유서 깊은 두 팀의 라이벌리이다. 제리 버스는 셀틱스가 우승경험이 2번 더 많다는 것을 아니꼬워하며 우승을 추가하길 원했다. 당시 셀틱스는 16번의 우승 역사를 가지고 있었고 (레이커스 14회) 파이널 시리즈의 기록은 2승 8패였을 정도로 끔찍했다. 이번 만남은 레이커스가 4승 2패로 승리했던 1987년 이후, 양 팀간 파이널에서 최초로 격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셀틱스를 우리가 또 누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는 확답을 내릴 수 없었다. 특히나 바이넘이 없는 그때, 가넷-피어스-퍼킨스로 이어지는 강한 프론트 라인이 우리 팀의 인사이드에 우위를 보일 것 같았다. 또한 팀이 너무 처음부터 성공적이었음을 걱정했다. 보스턴처럼 터프하고 피지컬한 팀을 상대하는 법을 제대로 테스트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무릎 부상의 위기에서 돌아온 폴 피어스의 4쿼터 활약에 힘입은 셀틱스는 1차전에서 98대 88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는 3일 후 열린 게임에서도 우리를 강하게 밀어붙여 2-0으로 앞서나갔다. 나는 셀틱스가 코비를 상대하는 걸 보고 감탄해 마지 않았다. 더블 팀 하지 않고 끊임없이 스위치하며 계속해서 도움 수비를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인사이드로 파고 들어가는 것을 원천봉쇄했다. ‘올해의 수비수’ 출신인 가넷은 라마를 틀어막아 점프슛을 던지도록 유도해 라마의 리듬을 빼앗았다. 이렇게 자신감을 찾은 가넷은 라마를 열어두고 퍼킨스를 도와파우에게 압박을 가하는 모습도 보였다.
홈에서 열린 3차전에서는 승리했지만 4차전에서 24점차를 날려먹고 패배했다. 이후 보스턴으로 돌아간 우리는, 우리를 여름 내내 따라다니던 그 패배를, 131대 92 대 참패를 당했다.
게임이 끝나고 코비와 나는 NHL의 팀, 보스턴 부르인스의 라커룸(보스턴과 홈 구장이 같다)에 팀원을 따로 모았다. 코비는 샤워하러 가기 전에 아주 절망한 모습을 보였다. 우리가 그 곳에 있는 동안 세크라멘토 킹스에서 플레이하던 론 아테스트가 들러서는 언젠가 레이커스와 함께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2년 후 셀틱스와의 파이널에서 론이 그렇게 결정적인 역할을 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경기장을 떠나도 악몽은 계속되었다. 거리는 셀틱스 팬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들은 레이커스를 저주하며 교통 혼잡 때문에 나아가지 못하고 있던 우리의 버스를 뒤집으려했다. 한 팬은 범퍼 위에 올라가 나를 쳐다봤고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나는 보스턴 경찰이 이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음에 화가 났지만 이내 감사를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이 버스에 있던 모든 선수에게 보스턴에 돌아와 반드시 복수하리라는 마인드를 심어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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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다행입니다. 읽어볼수록 창피한 번역이네요. 공부를 더 해야겠음을 절감합니다. 필 잭슨옹, 소위 글발이 대단하더군요. 그 느낌을 더 살려야 더 재미있었을텐데요 ㅠㅠ
우와... 마지막 부분은 정말 인상적이네요. 마지막 보스턴 팬들의 행동이 2년 후 설욕의 기반이 되었다는 사실이요.
저도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었습니다. 필잭슨을 바라보며 "gave the finger"한 사람을 상상해보니 너무 웃기더라구요
정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까지만 해 주신다니 아쉽네요. 정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즐겨 읽어주셨다면 너무 다행이네요.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파이날 악몽만 뺀다면 정말 드라마틱한 시즌이었던것 같습니다. 글을 읽으니 당시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이렇게 장문 번역이 절대 쉬울일이 아닐텐데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으로 바이넘의 포텐이 터질 무렵 NBA를 보기 시작했는데 파우의 합류 이후 너무 잘해서 아, 우승 아무것도 아니구나 라고 생각하던 게 기억이 납니다 :) 장문이엇지만 그런 기억이 나서 즐기면서 할 수 있었어요. 퀄리티는...... :D
정말 잘읽었습니다. 저 시즌에 그토록 원하던 스테플센터에 갔던 기억도 떠오르고, 보스턴에 져 좌절하던 코비모습도 떠오르고,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번역본이 있다면 읽어보고 싶군요 ㅋ
그러니까요ㅜㅠ 전문 번역가가 해야 참맛을 느낄 책입니다!!
재밌게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
역시 샤워장 아테스트 난입.. ㅋㅋㅋㅋ
저는 이 얘기 어디서 주워들어 아테스트와 샤워장이 왜 연관됐었는지 몰랐는데 다행히 기억이 났어요 :D
와~~~너무너무 잘봤습니다~^^ 이때의 악몽은 다신격고싶진 않네요~;;
파이널에서 너무 무력했죠. 절망적이었습니다. 보스턴에게 패하면 학교 안가던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