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와 송도삼절
황진이는 조선 중종 때 개성에서 태어났다(출생 사망 미상).
어려서부터 용모가 곱고 자태가 아름다웠는데,
어느 해 황진이를 짝사랑하던 이웃 청년이 마침내 병들어 죽고 말았다.
청년의 장례일이 되어 널이 황진이의 집 앞을 지나는데 갑자기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힘을 써도 움직이지 않더니 황진이의 저고리를 얹자 비로소 움직였다.
이 일이 있은 후 황진이는,
“내 미모로 말미암아 남자를 죽게 하였으니 앞으로도 이런 일 이 일어날지 모른다.
차라리 기생이 되는 것이 낫겠다.” 라고 생각하였다.
그가 기생이 된 후 시가와 풍류일생을 보낼 때 많은 선비와 유학자들을 사로잡았는데,
지족 선사라는 유명한 승려까지도 파계시킨 일이 있었다.
오직 서경덕만은 움직이게 할 수 없어 높이 우러르며 존경하였다.
황진이는 성악·한시·시조 등에 뛰어났으며 서경덕·박연폭포와 더불어 송도삼절로 일컬어진다.
황진이는 조선시대
기녀시조시인(妓女時調詩人)의 한명이다.
기녀를 둔 목적이 경기(京妓)나 지방기(地方妓)를 막론하고 공사의 연향(宴享)에 동원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이들은 춤·노래·악기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어야 했고, 장악원(掌樂院)에서 일정한 교육과정을 두어 이들을 가르쳤다.
기녀의 활동형태는 대개 3가지로 나뉜다.
첫째, 궁중이나 관청의 연향에 동원되는 경우,
둘째, 민간의 연회에 초청되어 가무를 제공하는 경우,
셋째, 기방(妓房)을 차리고 찾아오는 고객을 상대로 술과 가무를 파는 경우이다.
조선 후기로 올수록 2번째와 3번째의 활동형태가 주목된다.
영조 때의 가객(歌客)으로 유명했던 이세춘(李世春)의 집단이
기무에 능한 기녀와 함께 민간의 초청에 의해 영업을 했던 것이 그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조선시대의 시조는 주로 연회에서 불렸던 성악(聲樂)의 가사로 창작되었던 것이었으므로,
그 연희의 주역이었던 기녀가 시조의 창작에 깊이 개입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기녀작가의 이름이 전하는 경우는 황진이(黃眞伊)뿐이며, 나머지는 모두 기명(妓名)을 쓰고 있다.
이들 모두를 통틀어
〈역대시조전서 歷代時調全書〉에 실린 기녀작가의 수는 28명,
작품의 수는 56수인데, 신빙성이 희박한 것을 제외하면 25명에 44수가 된다.
기녀의 작품은 일반작가들에 비해 전승이 불완전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로
첫째, 이들의 작품이 연회석상에서 불려 작품의 내용보다는 음악의 창사(唱詞)로서의 구실이 더 중요했고
유흥이 끝나면 부른 사람의 이름을 굳이 기억하지 않고 잊어버리는 경향이 짙었다는 점,
둘째, 출신이 천한 이들이었으므로 당시의 시조집 편찬자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라는 점,
셋째, 기녀 자신들 역시 자기 작품에 대한 전승의식이 희박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실제 고시조 중에서 성(性)을 주제로 한 작품이나
여성화자(女性話者)의 작품은 상당수가 기녀에 의해 창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기녀시조로서 가장 오래된 작품은 성종(成宗) 때의 소춘풍(笑春風)이 지은
"당우를 어제 본 듯 한당송(漢唐宋) 오늘 본 듯"으로 시작되는 작품이나,
이 작품은 상투적 문구를 늘어놓았을 뿐 형식도 안정되어 있지 않는다.
기녀시조로 가장 우수한 작품은 조선 중기에 와서 황진이·매창·홍랑(紅娘) 등에 의해 창작되었다.
황진이의 작품으로 확실한 것은 6수인데,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어"로 시작되는 작품이 절창으로 손꼽힌다.
이들의 작품은 주로 애정과 이별을 주제로 하되 참신한 시상(詩想)과 표현으로 당시 매너리즘에 빠진 사대부시조를 자극했다
첫댓글 황진이는 나의 외모 때문에 한 남정네가 죽었다. 라고
생각해 기녀가 되었다고 합니다.
한 남성만을 그리는 절세의 미인의 고충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 날 입니다.
축복 받는 날 되세요.
샛별사랑님~
고맙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아름답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역시 국문학을 정통으로 하시고 시인이시라 기녀들의 문학에 대하여
황진이를 중심으로 좋은 문학작품을 쓰셨군요
당시 사대부들의 노리개였지만 그녀들의 시조문학은 우리나라의 시조문학을 더 풍성하게
할수있수 있는 계기가 되지않았나 생각합니다 안방에 갖혀있는 규방의 사대부들의 부녀자들의 작품을
찾아보기가 힘들군요 고운글 감사합니다
동구리님~
잘 주무시고 일어나셨는지요
황진이의 삶은 슬픈 삶이었지만
그가 남긴 문학 작품은 정말 대단하다고 봅니다
고맙습니다
오늘도 건강 조심하시고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 시대에 황진이 가
태어났다면
세계를 아우르는 엔터테이너 로 명성을 날리지 않을까 하는 ~~
남존여비 시대 를 살다간 여류들의 삶이 애잔 합니다
복매님~
그렇겠지요
황진이 같은 시인이 있었다면
아마 우리나라 문학사의 큰 획을 그었을 겁니다
오늘 성탄 이브니 하루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재미있는 황진이의 내력 잘 공부했습니다.고맙습니다
양철북님~
흔적 고맙습니다
추운 오늘도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송도삼절의 유명한 황진이
지금 시대라면 뛰어난 문장력 미모 곧은 성품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 이겠지요
안단테님~
고운 흔적 고맙습니다
추운 오늘도 따뜻하게 하루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큰 축복 받으시고.....
언제나 행복하시길........
장안님~
장안님도
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잘읽었습니다.
황진이는 죽어서도 흠모의 대상이 되었다니 긴 글 잘읽고 갑니다.
난석님~
정말 지금도 존경 하고 싶은 시인이지요
고맙습니다
오늘도 따스한 하루 되세요
황진이의 한글 시조잘봤습니다. 오늘날 같으면 슈퍼스타이고 최고인기 여배우였을겁니다^^
기정수님~
당연하겠지요
암튼 대단한 황진이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고맙습니다
시대를 잘 못태어난 아쉬움이 크지요
많은 여성들이 꿈조차 못꾸고 살던 시대 였으니까요
함빡미소님
그렇지요
정말 황진이가 요즘 태어 났더라면
문학계를 흔들어 놓았을 겁니다
오늘도 많이 춥네요
맛점 하시고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황진이의 살뜰한 정
동짓달 기나긴 밤을
천으로 여기고 쓱싹 베어내서 고운 님 오시면 길게 이어 붙이겠다는 표현은
아무나 못하겠지요.
길이길이 후세에 그 이름을 떨치네요.
오늘은 하얀 파도부서지는 바다를 보았고 내일은 부산 해운대 해파랑길을 걷습니다.
눈이 없어서 걷기에
참 좋다면
이해가 될까요.
아이고 ~~~~
별꽃님 언제 오시나
눈 빠지게 기다렸는데 아제여 오셨군요 ㅎ
지금 여행중이신갑네요
겨울 바다 참 좋지요
저도 겨울바다 참 좋아 한답니다
바다를 좋아해서 해군에 갔었구요
내일 부산에서 멋진 바다 구경 하시고
추억 많이 남기시길 바랍니다
잊지않고 흔적 남기셔서 고맙습니다
고운 밤 되시고 잘 주무세요
저도 역사를 통틀어 황진이를
최고로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울 민정님은
제가 잠들어 있을때
살포시 다녀 가셨네요
메리 크리스마스 입니다
오늘도 사랑 가득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