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시 여행] 제주의 명물 바다가 보이는 약천사 ...........113
.
.
[제주시 여행] 제주의 명물 바다보이는 약천사 ...........113
.
제주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관광명소 ‘西歸浦(서귀포)’는 대한민국 최남단에 있는 都市(도시)라고 할 수 있겠다.
동쪽과 서쪽 및 남쪽은 동중국해에 면하고, 북쪽은 유네스코 자연유산인 한라산 정상을 사이에 두고 제주시와 접
하고 있다. 물론 아름다운 천혜의 해안관광지로도 유명하다,
.
그런데 그 서귀포란 지명은 해석에 따라 불교와 아주 밀접하다. 오늘 유랑자의 포스팅은 제주의 명물로 자리 잡은
‘약천사‘다. 그렇다면 서귀포란 지명은 왜 생겼을까. 아미타부처님께서 주관하고 계시는 극락세계를 西方淨土(서
방정토)라고 한다. 西歸(서귀)란 바로 그 서방정토 極樂世界(극락세계)로 돌아가는 곳("西方淨土(서방정토) 阿彌
陀佛(아미타불)께 歸依(귀의)한다")이다.
.
*제8코스 시작점인 달을 품은 월평마을의 아왜낭목에서 30분 정도 걸으면 82년에 창건된 약천사를 통과한다. 경
내에 들어서면 '으리으리한' 규모에 먼저 압도당한다. ‘
.
*약수가 흐르는 샘이 있다는데서 이름이 유래된 제주 약천사는 1988년 대적광전 불사를 시작으로 삼성각과 굴법
당, 나한전 등 다양한 향토유형유산이 사찰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자유롭게 개방되고 있다.
.
.
서방정토로 가는 반야(지혜)의 용선(배)이 출발하는 포구로도 해석되니 불자들의 염원이 담겨진 지명이라 해도
될 듯싶다. 또 하나 일설에 의하면 ‘서귀’라는 지명은 원나라로 가는 조공선박이 바람을 피하여 홍로천 깊숙이 정
박했다가 서쪽으로 갔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또 하나는 서복이 서쪽으로 돌아간 자리라
는 뜻에서 서귀포라는 지명이 유래 되었다는 설도 있다.
.
암튼 제주 올레길 8코스 시작점인 달을 품은 월평마을의 아왜낭목에서 중문 관광단지를 보고 약 30분 정도 걸으
면 82년에 창건된 웅장하고도 으리으리한 규모의 약천사를 만나게 된다. 본시 ‘약천사’라는 절 이름은 사철 마르
지 않은 약수가 솟는 곳이어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
*대적광전 :이런 외관은 화엄사 각황전과 김제 금산사 미륵전의 3층 기와지붕이 바탕이다.
.
*약천사는 사철 마르지 않은 약수가 솟는 곳이어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
.
.
아주 오래 전부터 제주 현지 사람들은 약천사 자리를 돽새미라고 불러왔다. 돽새미는 제주도 말로 道藥泉(도약
샘)을 뜻하는 말로 좋은 수질의 약수가 흐르는 약수터를 이르는 말이다. 참고로 약천사라는 이름에 앞서 이 절터
에는 약수암 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
그런데 1918년 10월 7일 불교계 승려들이 중심이 되어 신도와 선도교도, 민간인 등 700여명이 집단으로 무장한
가운데 제주 최초로 이틀간 대한민국 주권 회복을 위해 일제에 항거했던 항일운동 발상지였던 그 장소다.
우리는 이를 ‘무오법정사항일운동’으로 일컫는다.
.
.
*대적광전(대웅전)'이 동양에서 가장 큰 규모(25m, 3층)이다.
.
.
당시 일제에 끌려갔다가 옥고를 치르고 나온 스님이 출소 후 몸조리를 위해 한 동안 머문 곳이며 1960년대 유학
자 김형곤 선생이 신병 치료차 굴속에서 100일 기도를 올리던 중 꿈에 약수를 받아 마신 후 건강을 회복 하였다,
이후 학자 김 선생은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코자 약수 암을 짓고 수행정진하다 그곳에서 입적했다는 이야기도 전
해오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이는 약천사 기록에도 나와 있다. 약천사 창건주인 혜인스님이 약천사를 짓기 전 이곳에는 450평 남짓한 절터에
약수 암이라 불리는 18평짜리 제주 전통양식의 초가삼간이 전부였다고 한다. 1982년부터 본격적인 불사가 시작
되었으며 현재는 지하 1층 지상 30미터의 대적광전이 지어졌다.
.
*무계가 무려 18톤에 달하는 범종
..
*북소리를 듣기는 참 쉽지는 않다. 깊은 산중에서는 가능한일인데, 제주도 약천사에 오시면 북각에서 울려 퍼지
는 북소리와 또 종각에서 울려 퍼지는 범종소리, 이런 것들을 소리와 눈으로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이 또 약천사의
매력이다.
.
*약천사는 동양 최대 크기의 법당을 자랑하는 절로 마당에 올라 제주 해안을 내려다보는 전망이 멋진 곳이다,
.
.
이어서 대웅전과 지하로 연결된 숙소, 식당, 매점 등이 갖추어진 3층 크기의 요사채 와 굴법당, 삼성각, 사리탑, 대
형분수대, 연못이 들어선 지금 약천사는 명실 공히 제주도를 상징하는 사찰이 되었다. 아무튼 제주 올레길 가운
데 풍경이 가장 뛰어나다는 8코스의 출발점 제주의 특색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서귀포 약천사는 천천히 뜯어보
면 볼수록 아름답기 그지없는 절집임엔 틀림이 없다.
.
먼저 일반건물 10층 정도의 높이인 30m쯤 되는 藥天寺(약천사)는 그 규모가 단일 전각으로는 동양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약천사에선 조금 파격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우선 그 규모가 파격적이고, 주변의 이국
적 수목들과 어우러진 가람의 조화 또한 파격적이다.
.
.
*4.5m나 되는 비로자나불이 좌대위에 웅장함을 자랑하며 안치되어 있고 좌우 양쪽 벽에는 거대한 후불탱화가 양
각으로 조각되어 있다.
.
*법당에 모셔진 국내 최대의 비로자나불상과 1만8천기의 원불,
.
어떤 이들은 조선초기의 건축방식이라고 하지만 층층이 올라간 대규모임에도 날렵한 곡선미와 균형감에서 분명
지금껏 보았던 여느 절들과는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먼저 약천사 법당 앞에 서면 제주 앞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
고, 조용하면서도 듣기 싫지 않은 깨우침의 목탁소리까지…….왼지 모르게 목탁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평화로워
지면서도 마음이 경건해진다.
.
널리 알려진 대로 목탁은 물고기와 연관 되어진 성물이다. 밖에 걸어 놓고 치는 목어가 변해 목탁이 됐다고 전해
진다. ‘백장청규’에 따르면 물고기가 항상 눈을 뜨고 있듯 수행자는 늘 깨어 있는 마음으로 정진하라는 뜻에서 만
들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세상을 깨우쳐주는 역할을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
*법당의 웅장함 고개를 들고 천장을 올려다보면 내부가 높이 25m에 3층으로 이루어진 구조이다.
.
.
.
.
사실 유랑자는 2번째의 방문인지라 익히 알고 있는 약천사의 내부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내부의
화려하고도 웅장한 모습을 보기의해 법당 쪽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 본다. 역시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절집
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답고도 훌륭한 傑作品(걸작품)임에 틀림없다.
.
유랑자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감탄사를 연발한다. “우와~~…….” 사실 처음 본 사람들은 압도적
인 부처님의 크기에 살짝 겁이 나기도 한다, 유랑자는 서둘러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 부처님에게 인사를 올렸다.
본시 인도에서 유래한 합장은 불자라면 낯설지 않은 예법인 인사법이다.
.
*문화재 :동양최대의 건축, 국내 최대의 목조불상
.
.
.
기도를 모실 때나 사찰을 드나들 때 무수히 했을 합장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이상 세계인 '유토피아'를 지금 이
땅의 '불국정토'로 현실화 할 수 있을 만큼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다시 해석하면 ‘일심으로 귀의와 공경 뜻이 담
겨져 있다’ 즉 불교에서 합장은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는 뜻과 부처님께 귀의하는 마음을 나타냄과 더불어 흐트러
진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곳으로 모아 정성을 다한다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
유랑자가 감탄사를 내 뱉는 동안에도 경내에서는 여전히 목탁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유랑자는 이 절집을 구
경하러 온 관광객들 틈에 끼어 대적광전 경내를 둘러보기 위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
.
.
.
.
대웅전격인 대적광전은 대지 1043평에 지붕까지의 높이가 아파트 10층에 해당하는 29.5m에 이른다. 이 건물은
팔작의 기와지붕이나 다포식 공포, 추녀의 날렵한 굴절각, 등 전통 건축양식대로 지어졌다. 이런 외관은 유랑자
가 보았었던 화엄사 각황전과 김제 금산사 미륵전의 3층 기와지붕이 바탕이다.
.
이렇게 웅장한 법당의 내부는 화려함을 더했다. 천장까지 터져 있는 통층구조인 법당 안에는 목조 비로자나불이
주불로 모셔졌다. 약천사 비로자나불은 높이가 4.8m 좌대까지 합하면 6.8m에 이르는 대형 불상이다. 참고로 비
로자나불은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을 이
르는 말이다” 아무튼 이곳에 서면 사람이 까마득히 작은 존재임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
.
.
.
비로자나불 좌우에는 청동으로 제작한 보처불이 있으며 왼편에 약사여래(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에서 구원
해 준다는 부처), 오른편에 아미타불상(서방 극락정토에 살면서 불법을 설하는 부처를 형상화한 불상)을 안치했
다. 또 하나 불상 뒤에 설치하는 불화인 후불탱이 천이이나 종이로 된 것이 아니라 목각으로 된 점도 특이하다.
.
대적광전은 법당 내부의 모든 탱화를 목각으로 일괄 제작해 그 정성과 불심이 대단했음을 드러냈다. 이 모두는
창건주 혜인 큰스님의 원력에서 출발했다, 또 약천사 대적광전의 단청은 아름다움의 백미에 해당한다. 법당 안
팎, 위와 아래를 둘러싸고 빽빽하게 단청을 입혀 놓았는데 색감이나 모양도 섬세할뿐더러 전통적인 품격을 그대
로 유지했다.
.
.
*29m 높이의 대적광전은 조선 초기 불교건축 양식을 띤 콘크리트 건물로 일반 건축물 기준으로 8층 높이지만 지
하 1층, 지상 5층이 통층으로 되어 있고 법당에는 1만 8000불이 모셔져 있다.
.
*제주 약천사에서 바라본 서귀포앞바다
.
.
이는 단청장 고 전창우 선생께서 "신명을 바치겠다"며 1992년에 시작해 2년 만에 작업을 마친 유작이라고 한다.
전 선생은 지나치게 혹사한 나머지 단청 완성 후 1년여 뒤에 고인이 되었다는 안타까움도 전한다, 암튼 혜인 큰스
님이 전국 제방에서 수행하다 고향 제주로 내려온 때는 1981년이었다.
.
주지로 부임한 혜인 큰스님은 1943년 제주 남제주군 안덕면 화순리에서 태어나 2016년 세수 75세 법랍 62세 나
이로 圓寂(원적)에 들었다. 스님은 1971년 해인사 장경각에서 매일 5000배 수행을 시작해 약 200일 만에 108만
배를 성취했다. 이후 1981년 약천사 대작불사의 願力(원력)을 세워 1988년 착공에 들어가 8년만인 1996년 9월
낙성식을 가졌다.
.
.
.
.
처음 혜인 큰스님이 대가람을 지겠다고 願(원)을 세우자 스승 일타 스님이 불사를 잘 도모해 중생을 제도하라는
'圓滿佛事渡衆生(원만불사도중생)'라는 글귀를 내렸다. 그가 건축업자들에게 약천사를 짓겠다고 조감도를 가져
가자 다들 고개를 내저었다고한다. 일부 업자들은 건축의 '건'자도 모르는 종교인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
화려한 절을 짓는다고 마뜩찮은 눈길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혜인 큰스님은 제주의 특성을 잘 알았기
때문에 큰 법당이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제자와 후배들의 증언에 따르면 "바람이 심하고 비도 수시로 내려 야외
에서 법회를 치르기 어렵기 때문에 대중을 수용하는 큰 법당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셨다"며 "한라산 정상이 보이고
한없이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는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고 했다.
.
.
.
.
.
혜인 큰스님이 불사를 위한 돈 외에는 모든 것을 아꼈던 것도 유명한 일화다. 그는 "입으로 들어가면 다 똥 될 것
인데 먹는 것에 집착하지 말라"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이에 혜인과 제자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인근 두부공장에
서 콩비지를 얻어다 먹었을 정도였다.
.
약천사는 큰스님과 스님들의 이런 노력으로 오늘날 제주를 대표하는 사찰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대적광전
의 아름다움과 수준 높은 전통 단청의 莊嚴美(장엄미)에 압도당한 여행객들은 하귤나무가 줄지어선 정원과 넓은
마당 너머로 보이는 서귀포 바다를 음미하는 행복감에 취할 수도 있다.
.
.
.
.
참고로 약천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은해사의 말사다. 승려 개인의 사찰이 아니라 종단 소속의 공찰이라
는 뜻이다. 혜인 큰스님은 대적광전이 완공된 2년 후 약천사 토지와 건축물을 종단에 이전·등록했으며 2015년에
는 창건주 권한마저도 덕조스님에게 승계했다.
사찰 창건주가 사부대중 앞에서 권한 승계식을 가진 것은 종단에서 흔하지 않은 일이다.
.
.
.
*약천사에는 세종의 아들이었던 문종 임금과 현덕왕후, 그리고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위패도 모셔져 있다.
.
.
끝으로 평온한 자연과 역사적인 분위기가 어우러진 이곳은 삶에 있어서 귀중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지친 일상
에서 벗어나 약천사 방문으로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힐링도 하고 靈感(영감)을 찾는 것은 어떨까?
탁하고 악한 마음을 떨치고 싶다면. 사찰로 떠나보자.
.
“때로는 깊은 산사에서 아니면 바닷가 사찰에서, 어쩌면 낯선 길 위에서 인생의 해답을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유랑자는 경이로운 사찰의 모습과 그곳에서 느낀 평화와 고요함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어 이 글을 올려본다.
.
*으름:~ 우리나라 산지에 자생하며, 나무를 타고 잘 올라간다. 열매는 맛이 달고 식용이지만 씨가 많이 들어 있다.
생김새나 맛이 바나나와 비슷하여 ‘코리언 바나나’로 부르기도 한다. 어린 순은 나물로 이용하고 줄기는 바구니
제조 원료로, 줄기와 뿌리는 약으로 쓰이는데, 특히 이뇨·진통의 효능이 있어 소변불리·수종·관절염·신경통에 치
료제로 사용한다.
.
.
.
.
https://cafe.daum.net/b2345/9toB/2174
.
◆제주여행
▶제주관광은 홈페이지: https://www.visitjeju.net/kr
..
▶ 약천사 찾아 가는길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이어도로 293-28
-구(지번) 주소 :대포동 1165 (지번)
*전화 :064-738-5000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