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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먹는샘물 5
노무현대통령도 실패한 장수천 먹는샘물 사업
IMF로 외환위기, 홍수로 공장 침수등 난관 봉착
노무현 대통령 낙선 후 장수천샘물 사업에 도전
먹는샘물 시판허용 2년이 지난 1996년이다.
1996년 4월에 치러진 15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종로구에서 출마했으나 신한국당의 이명박, 새정치국민회의의 이종찬 후보에게 밀려 3위로 낙선한 노무현 대통령(당시는 변호사 시절이지만 대통령으로 호칭)이 종로에서 머물던시절이다. 92년 14대 부산동구에서 출마하여 낙선하고 6년간을 보내던 중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샘물협회 회장이면서 정치적 동지인 안동출신의 김노식회장(1945년-2023년)을 찾았다. 김동환 박사도 배석한 자리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수사업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물었다. 결론적으로 김노식회장(설악음료 대표, 샘물협회장, 전 국회의원)과 김동환박사는 샘물사업은 하지 말라는 일치된 의견을 단호하게 전했다.
진중하게 경청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제조설비는 외환리스를 통해 설비를 갖추면 되고 영업은 풀무원과 협약을 맺으면 된다. 운영자금은 부산상고 출신들과 박연차(태광실업회장)씨가 투자하기로 했다”며 핵심적인 사업계획을 밝혔다.
뒤 이어서 노무현대통령은 생수 폐트용기를 조달하기 위해 한국플라스틱공업협동조합(현 연합회 전신) 이국노 이사장을 찾았다. 18.9리터 용기와 2리터 페트병을 외상으로 조달해 달라는 어려운 부탁이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두 사람은 1946년생 동갑내기 인연이어서인지 이국노 이사장은 노대통령의 부탁을 들어 주었다.
용기를 외상으로 공급하되 생산 기업들에게는 조합이 보증을 하는 방식이었다. 조합의 감사이면서 샘물용기를 제조하는 크로바 강선중 사장이 18.9리터, 2리터 페트병은 한규범사장이 공급해 줬다. 당시 조합에서는 조합 수익사업으로 국내에서 최초로 북한의 신덕산 샘물을 수입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합 자체사업인 북한 샘물 사업도 북한에 보낸 용기에 샘물을 담아 와야 하는데 언제나 20% 정도의 용기가 사라졌다. 18.9리터 용기는 10회 이상 회전해야 타산이 맞는데 재이용율이 2회를 넘기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결국 샘물 수입사업을 포기해야 했다.(18.9리터 샘수병은 가벼우면서 물통등 다양한 용도로 긴요하게 이용할 수 있어 북한의 고위직과 생수공장 주변 마을주민들에게는 최고의 인기 생활용품이 되었다. 더구나 현금대신에 북한지역에서 생산되는 고사리, 송이버섯과 같은 작물을 받는 현물거래를 하였지만 송이버섯은 크기도 작고 병든 버섯을 보내와 상품성이 없어 적자만 발생했다.
북한산 샘물 사업은 적자를 보는 상태에서도 조합은 장수천샘물에게는 계속 용기를 공급해 주었다. 노무현대통령과 이국노이사장(현 서대문구사회복지협의회 회장)과의 관계도 친밀도가 높아갔다. 노무현대통령은 성북동 아리랑고개 근처에서 살고 있었다. 골프는 북악골프연습장으로 사우나는 올림피아 사우나를 다니면서 이국노회장등 주변인사들과 친밀도를 높였다.(올림피아 사우나에는 대통령선거 전날 단일화하였던 정몽준국회의원도 출입하던 곳이다.)이국노 이사장이 전하는 말로는 권양숙 여사(80타후반)가 노무현대통령(90타 후반 )보다 골프실력이 월등했다고 말한다, 당시의 이국노사장의 골프 실력은 한양CC 평생 회원으로 폼은 엉성하지만 싱글수준이다.
대통령의 꿈을 일군 첫 걸음도 생수사업에서
노대통령이 기업경영의 전문가를 추천해 달라는 부탁에 이국노 회장은 한국경제신문에서 퇴임한 강직한 성품의 대구출신의 이치구씨를 소개한다.
이국노회장(사진)과 노대통령의 관계가 형성되면서 이회장은 조합사중 주요 회원사 30여명을 결집시켜 그 자리에 노무현변호사를 초청했다. 엠버서더호텔 2층에서 오찬겸 강의를 듣는 시간을 갖기로 했지만 약속한 12시를 넘기고 1시가 되도록 주인공은 오지 않았다. 행사장 입구에서는 초조하게 이광재(1965년생,원주고, 연세대, 17,18,21대 국회의원, 26년 하남 갑 국회의원 후보, 강원도지사, 국회사무총장)씨가 대기하고 있었다.
결국 1시 30분에서야 흥분된 모습으로 노무현 대통령이(당시는 변호사) 행사장에 들어왔다. 악수를 하는 손이 심하게 떨렸다. 노무현식의 열띤 강의를 마치고 질문시간이 돌아왔다. PE파이프 제조회사인 KUPP 최정사장(1935년생-2023년 별세)이 질문을 했다. “근본적으로 민주당을 싫어한다. 하지만 오늘 강의는 너무 좋았지만 그렇다고 당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다.”라며 평소의 최정사장의 스타일로 소감과 인사를 하였다.
초청강의가 끝나고 이국노회장과의 담소에서 1시간 30분이나 지각한 진실이 밝혀졌다. “DJ로부터 승인을 받고 오는 길이다. DJ가 험지인 부산에 출마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당시 부산의 국회의원으로는 정의호, 홍인길, 김정수, 김형오, 김무성, 김운환, 권철현, 정형근, 신상우, 서석재등 100% 신한국당의 텃밭이었다.) 부산출마를 승낙하고 대신에 소청을 드렸다, DJ가 대통령 재선을 하지 않는한 차기 대통령 후보에 저 노무현이 출마해도 반대만 하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이다. DJ는 심사숙고 끝에 허락해 주었다. 큰 인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허겁지겁 이리로 달려왔다.”라고 고해성서와 같은 말을 했다.
대통령 선거를 위한 첫 발자국은 바로 이렇게 시작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이국노이사장이 조합회장을 끝내고 석유화학협회에서 100억원의 지원금을 받아 창립한 한국자원순환조합(현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초대 이사장을 지내던 시기이다,(초대 전문이사에는 김종석 전 국립환경과학원장 역임)
플라스틱 업계의 건달로 소문난 홍아무개사장의 부탁으로 산업진흥공단 이사장을 소개해 주었다. 고마움의 표시로 석유통에 담겨진 석청꿀을 선물 받았다. 진흥공단 이사장에게는 산삼을 선물했는데 받을 수 없다고 하여 이국노이사장에게 되돌려 주었다. 홍사장에게 진흥공단이사장이 받지 않겠다며 돌려 받았다고 전화로 통지한 후 비서(곽결호장관 누님의 딸) 에게 씻어오라고 하고 그 자리에서 임직원들과 시식을 한 며칠 후이다. 경찰에서 영장을 제시하며 수갑을 채우고 이국노이사장을 채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원인도 모르는 상태에서 지금의 마약수사대가 위치한 마포 광역수사대의 철장 신세를 져야 했다. 청와대 비서진에 연락하여 하룻밤을 세우고 풀려난 이후에야 수사관들에게 사건의 전말을 들었다. 홍아무개 사장이 네팔인들을 불법 체류시켰고 이를 봐준 혐의라고 했다. 그러나 뇌물이라고 받은 석청도 짝퉁이며 산삼은 2만원짜리 장대삼이라는 사실을 수사관이 말해주었고 혐의 없슴으로 풀려 나왔다. 그렇게 대통령시절부터 타계하기까지 노무현과 이국노이사장의 만남은 더 이상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청와대 군 경호 책임 중대장으로 근무하던 이국노회장의 아들 이영필대위에게 노대통령이 ‘아버지는 잘 계시냐’는 안부만 전해 들은 것이 마지막이다.
장수천 16번이나 시추한 끝에 1개공에서 지하수 나와
생수사업의 열망을 버리지 않은 노무현대통령은 강남 교보문고 근처에 사무실을 두고 관리담당에 안희정, 사업담당에 이광재 두 축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시작했다. 충북 옥천군 청성면 강변 지역에 장수천이란 상표로 생수사업을 본격 가동했다. 외환리스로 제조 설비를 갖추고 제품생산을 본격 가동했다. 환경영향평가를 받아 샘물제조 허가만 나오면 풀무원에게 납품할 수 있어 사업초기부터 순조롭게 샘물사업에 안착할 수 있다는 전략이다.(생산량의 70%는 풀무원 납품, 30%는 자체 영업)
옥천군 청성면에 위치한 장수천 샘물은 김각노씨가 고향 마을에 지하수를 16개공이나 시추하였으나 단 1개공에서만 322톤의 물을 취수할 정도로 지하수가 그리 풍부하지 않은 곳이다, 93년에서야 지하수개발에 성공한 김각노사장은 '약물탕'이라 구전되어 내려오는 지역 특성을 살려 수동식의 열악한 시설을 갖추고 물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웃 주민들에게는 무료로 주었지만 외부인들에게는 20리터 생수통이나 샘물용기 18,9리터 한통당 1000원의 물값을 받았다.
일일수입 60여만원, 월 1천200만원 정도의 매출이었으니 당시로선 '짭짤한' 사업이었다. 물론 수시로 단속에 걸려 벌금을 내면서도 당장에 시설비를 마련하지 못하는 악조건 속에 불법판매는 계속했다. 불법 판매는 전국에 3-40군데에서 자행되었고 특히 충북 미원면 지역이 성행했다.(사진 환경경영신문 26년 4월26일자)
장수천샘물과 노무현대통령과 인연의 고리
김각노사장은 옥천군 청성사람으로 고향에 돌아와 16번이나 시추를 한 끝에 결국 1개공에서 300톤 이상의 물이 나오자 공장 설립을 서둘렀다. 하지만 자본이 빈약하여 무허가로 판매하면서 물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1995년 이후 샘물허가를 허가해주면서 ‘먹는물관리법’에 준하지 못한 무허가 영세기업은 일제 단속을 피할 수 없었고 이들 회사들은 문을 닫아야 했다. (사진 옥천 우산리)
공장시설을 갖추려면 최소한 20억원 정도가 소요됐다. 리스자금을 받는다 해도 5-7억원 정도의 현금 동원력이 필요했다. 김각노 사장은 포기할 수 없었고, 리스자금을 얻기 위해 보증인으로 지역의 사회인사층인 이성면(김사장과 매제관계) 꼬마민주당 구미지구당위원장을 보증인으로 세웠다.
당시는 샘물회사들의 증축이나 개보수 및 시설 확충사업에 외환리스가 유행이었다. 금융권에서도 샘물사업은 유망업종으로 분류되어 쉽게 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자금을 지원받기 위해 보증인으로 이성면씨를 세웠고, 연대보증인으로 같은 당원활동을 하는 노무현 대통령(당시 변호사활동)이 보증을 서게 된다. 88년대 청문회스타로 주목받아 인기가 급부상했지만 결국 총선에서 낙마한 후, 변호활동과 함께 민주당원들과 우의를 지니며 생활하던 시기이다. 정치적으로 쓴 고배를 마셨지만 차기를 위한 기반조성도 필요했다. 국내에서 샘물사업은 미래의 유망사업이라는 사회적 열풍이 불었고 노무현대통령도 자연스럽게 샘물사업에 뛰어들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부산등 경남권에서도 산청군에 지리산, 지리산보천 두 회사가 무허가에서 허가를 받아 사업을 하고 있었고 김해의 신어산 샘물, 기존 허가업체인 고려마운틴 샘물도 연 15%이상의 신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부산지역의 국회의원인 보사위원장인 신상우의원등 많은 정치인들이 샘물사업에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사업 전략의 경제전문가도 예측 못한 불운 겹쳐
외환위기, 공장은 홍수, 환경영향평가는 늦어지고
하지만 사업은 설계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1997년 IMF가 발생되고 외환리스를 통해 옥천군 청성면에 시설을 완비한 장수천으로서는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환율과 이자를 감당하기에는 영업이익이 없는 초창기 사업가로서는 경제적 부담이 가중됐다. 자금난도 문제지만 생산시설을 갖추고 시험생산을 하던 중 9월 가을장마로 공장시설이 침수되는 최악의 어려움에 봉착했다.
8월이면 허가가 나온다던 환경영향평가도 시일이 늦어지면서 풀무원과 협약한 9월 납품도 하지 못했다. 결국 장수천은 풀무원과는 상생적 협력을 하지 못하고 독자의 길을 걸어야 했다.
꼬마민주당 동지에 대한 의리로 연대보증을 섰고 연대보증이란 인연의 고리가 세상 물정 모르는 풋내기 사업가로 변신하기에는 너무 부담이 컸던 변호사며 정치인. 장수천은 그야말로 혹처럼 그의 마음을 착잡하게 누를 수밖에 없었다.
내부적으로는 김각노 장수천 샘물개발업자와 연계되어 친형제처럼 붙어다니던 홍경태, 언론에 집중조명을 받은 이광재, 서갑원, 문병욱, 안희정등과 사업 방향을 모색하고 탐구하고 설계했지만 정치와 사업은 확연히 달랐다. 외부적으로는 한국샘물협회장이며 설악음료와 백룡음료를 운영한 김노식 국회의원(꼬마민주당 동지)과 샘물용기 구매를 위한 플라스틱조합 이사장이며 지주 사장인 이국노사장의 자문과 협력, 정치 동지 원혜영 국회의원과 풀무원 남승우사장, 그리고 전문 언론인 김동환박사등 인연의 고리는 꼬리를 물었다. 도마뱀처럼 꼬리를 자르고 홀로 설수도 없는 일이다.
장수천 지하수를 개발한 김각노사장은 노무현과 그 사단이 이끌던 장수천에 대해 "노대통령 측의 사람들은 열심히 일했지만 경험이 없었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작은 중소기업에 뛰어들어 체계화되지 못한 경영으로 악순환을 거듭했다.샘물사업에서는 제조도 제조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판매망이다."라고 말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풀무원 샘물 (사진 풀무원샘물 공장 과의 협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풀무원의 창립자며 유기농의 개척자인 원경선씨의 아들인 원혜영의원과의 친분이다. 원헤영의원과 풀무원 남승우 대표는 서울대 동창이면서 풀무원 경영에 초창기 함께 참여했다.(풀무원은 설립자인 원경선씨가 아들 원혜영의원과 동창인 남승우 대표에게 계승했으나 결국 원혜영씨는 정치계로 진출하고 풀무원은 남승우 대표가 인수하였다.)
장수천이 샘물허가를 받은 날은 예정보다 2개월이나 늦은 97년 11월1일이다. 99년 생산량과 매출액은 5,236톤, 2억2천7백만원이었다. 또 하나 결정적으로 장수천을 포기해야 했던 것은 양심과 거짓을 용서하지 못하는 노무현대통령의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며 진실이 숨겨져 있다.
장수천의 수질이다. 장수천이 위치한 곳은 옥천 누층군으로 고생대의 변성퇴적암 지층이다, 옥천 누층군 점판암에는 우라늄이 함유되어 방사능 수치가 대전지역을 포함하여 높게 나타나고 있다. 점판암을 외형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과거 생활환경에서 점판암을 가공해 가옥의 지붕이나 담장, 축대, 구들장에 많이 사용하여 산골에는 돌너와집, 돌기와집, 청석집등이 많았다.
흑색 점판암에 우라늄이 함유된 사실은 최초로 중앙지질광물연구소가 조사하여 알려졌다. 물속의 방사성물질 함유량은 기초과학지원센터의 협조를 얻어 본지가 발표하면서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환경경영신문 https://ionestop.kr// 김동환 환경경영학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