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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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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노무현 수사한 前 대검중수부장,
14년 만에 밝히는 진실
14년간 침묵했던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책임자 이인규(李仁圭) 前 대검중수부장이 회고록을 통해 정면승부에 나섰다.
“피의사실은 인정되나 피의자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 수사 기록 영구보존.”
2009년 6월12일, 세칭 ‘박연차 게이트’로 더 잘 알려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작고)의 정·관계 불법 로비사건 수사 결과 발표 중 노무현 전 대통령 대목이다. 당시 수사를 총지휘했던 저자는 24년 6개월 동안의 대한민국 검사 생활을 끝내고 퇴임했다. 퇴임사에서 “부정부패 척결은 당위의 문제일 뿐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부정부패에 관대한 사회는 문명사회라고 볼 수 없다”고 했던 그가 14년 만에 532페이지의 회고록으로 입을 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온 국민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2023년 2월21일로 노 전 대통령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公訴時效)도 모두 완성되었다. 이제는 국민에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의 진실을 알려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책머리에, 7쪽)
이인규의 이 책은 역사의 진실을 위한 정면승부다. 그 결과로 노무현의 신화가 무너지고 문재인의 위선이 벗겨져도 그는 상관하지 않는다. 지금은 진실과 마주할 시간이고, 사실보다 위대한 진실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진실과 마주할 때
노 전 대통령을 가혹하게 비난, 아니 저주했던 좌파 언론인들과 자신에게 수사의 불똥이 튈까 봐 그를 멀리했던 민주당 정치인들은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자 돌변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검찰에 모든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그들 자신이 의미를 상실했다며 손가락질했던 ‘노무현 정신’을 입에 올리며 앞다투어 ‘상주(喪主) 코스프레’ 대열에 합류했다.
당시 변호인이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수사의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회고록 『운명』에서 과거에 한 말을 뒤집고, 사실을 왜곡해 검찰 수사를 폄훼했다. 그들은 지금도 ‘논두렁 시계’ ‘망신주기’라는 말로 검찰이 허위사실로 모욕을 주어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견강부회(牽强附會)하고 있다. 대통령이 저지른 비리의 실체는 은폐하고 검찰을 악마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인터넷 공간에는 노 전 대통령 관련 검찰 수사에 대한 수많은 억측과 허위사실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떠돌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 올바른 역사의 기록을 위해서도 거짓을 바로잡고 진실을 알려야 한다. 이제 진실을 마주해야 할 시간이다.
피아제 시계와 640만 달러
노무현 뇌물 혐의 등 사건은 본인, 부인 권양숙, 아들 노건호, 딸 노정연, 조카사위 연철호, 총무비서관 등이 관련된 가족비리의 양상을 보여준다. 그것도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2억이 넘는 명품 시계를 받고, 아들 등의 사업자금 명목으로 뇌물 500만 달러, 미국 주택구입자금으로 140만 달러를 받는 등 개인비리 혐의가 主이다. 박연차 회장의 진술은 사실이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반박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문재인은 노무현의 주검 위에 거짓의 제단을 쌓아 대통령이 되었다”
이인규 검사는 변호인으로서 무능했던 문재인이 노무현 자살 직후에는 검찰 수사에 대해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다가 정치를 결심하면서 돌변, 검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면서 "노무현의 주검 위에 거짓의 제단을 만들어 대통령이 되었다"고 했다. 저자는, 문재인 변호사는 무능하고 무책임했으며 이것이 그의 죽음을 막지 못한 한 원인이라고 했다. 문 변호사가, 수사 책임자인 이 검사는 물론 수사팀 누구에게도 연락하거나 찾아온 적이 없었고, 수사내용을 파악하여 수사방향을 조율한 적도 없으며. 노 전 대통령에게 유리한 사실을 주장하고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견서 한 장 제출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극단적 선택 직전 1주일 동안 문재인 변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찾지 않았다.
극단적 선택을 할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미국 주택 구입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자신의 거짓말이 드러나는 등 스스로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졌다’고 하소연할 만큼 궁지에 몰리고 있었다. 책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고,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었다. 한겨레·경향신문 등 진보 언론은 그를 가혹하게 비판, 아니 저주했다. 주위를 둘러봐도 가까운 사람들 모두 등을 돌리고, 믿었던 친구이자 동지인 문재인 변호사마저 곁에 없었다. 이것이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라고 생각한다.(5장, 453쪽)
그는 책을 쓰면서 실명(實名)을 원칙으로 했다. 동료, 선배를 가리지 않고, 호불호(好不好)를 따지지 않고 사실에 충실했다. 자신의 검사생활을 수필류가 아닌 본격적인 기록물로 정리한 이는 이인규 검사가 처음일 것이다. 한국 부패 구조의 저수지 역할을 해온 재벌과 권력의 결탁을 정조준한 수사로 역사적 결과를 만들어낸 이야기들은 긴장감이 넘친다. 단편적 언론보도로는 드러나지 않는 검찰 내부의 수사 비화(秘話)는 드라마적 요소가 있다.
| 책리뷰 |
엘리트 검사의 회고록
사법시험 14회, 사법연수원 24기인 저자는 1985년 서울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24년여 동안 검찰에 몸담으며 국제업무, 법무·검찰행정, 특별수사 경력을 두루 쌓은 강골 검사 출신이다. 2003년 ‘재계의 저승사자’로 불리며 서울지검 형사9부장으로서 SK그룹의 부당 내부거래 사건을 수사했고,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재벌그룹들의 제16대 대선 불법 자금 제공으로 수사가 확대되면서 노무현 대통령과 얄궂은 인연을 맺었다.
노 대통령 재임 때 검사장으로 승진했고, 다음 이명박 정권 때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으로 임명되면서 세칭 ‘박연차 게이트’로 알려진, 노 전 대통령이 포함된 정·관계 로비와 금품 수수사건 수사를 지휘하게 된다. 2009년 4월30일 노 전 대통령을 중수부에 출석시켜 수사한 후, 5월23일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사저 뒤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해 세상을 등지자 노무현 부분을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하고 7월14일 검찰을 떠났다.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는 검사를 꿈꾼 유년과 학창시절부터 초임 검사 이래 수사한 굵직한 사건들, 해외 근무와 유학 경험 등을 먼저 짤막하게 소개하는 미니 자서전처럼 시작한다. 세칭 ‘잘나가는’ 검사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 가는 과정에서 모셨거나 함께했던 정홍원(후에 국무총리), 박영수(최순실 사건 특별검사), 안대희·김선수(대법관), 김각영·송광수·정상명·임채진(검찰총장), 박정규·정동기·우병우(청와대 민정수석), 송정호·김정길·강금실·한동훈(법무부장관) 등 법조계 선후배들과의 애증 담긴 일화들, 이명박·조순형·박상천·서청원·신경식·이재정 등 정치인들과 김승연·최태원·김준기·조양호 등 재벌 총수들 및 그들의 ‘마름’들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무협지처럼 흥미진진하다. 황우석 가짜줄기세포사건을 직접 수사한 이야기도 눈길을 머물게 한다.
그러나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라는 부제에 이끌린 독자의 관심에 걸맞게 책의 많은 부분은 노무현 전 대통령 뇌물수수사건 수사 내막에 할애했다.
노무현 수사로 정리된 최종 범죄혐의는...
검찰이 사실을 감추는 노무현을 상대로 숨바꼭질 같은 수사를 하면서 복잡하게 되었지만 그의 죽음 때는 사실관계가 거의 정리되었다. 이인규 검사는 최종상황을 아래와 같이 요약했다.
1.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피아제 남녀 시계 세트 2개(시가 2억550만 원)를 받은 사실은 다툼이 없고, 이 시계는 재임중(2006년 9월경)의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게 뇌물로 전달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2. 권양숙 여사가 2007년 6월29일 청와대에서 정상문 총무비서관을 통하여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100만 달러, 그해 9월22일 추가로 홍콩에 있는 임윙 계좌로 40만 달러를 받은 사실은 인정된다. 박 회장의 진술 등 증거를 종합하면 노 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와 공모, 아들 노건호의 미국 주택 구입 자금 명목으로 140만 달러를 수수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3. 2008년 2월22일 노무현 대통령 재임 때 아들 노건호, 조카사위 연철호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500만 달러를 받았고, 노건호 등이 이를 사용한 것은 다툼이 없다. 이 돈은 박연차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주기로 약속한 환경재단 출연금 50억 원을 500만 달러로 쳐서 노건호 등의 사업자금 명목으로 준 뇌물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4. 2006년 8월경 정상문 총무비서관이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현금 3억 원을 받은 사실은 다툼이 없고, 정 비서관은 기소되어 유죄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관여하였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
5. 정상문은 2004년 11월경부터 2007년 7월경까지 사이에 자신이 관리하던 대통령의 특수활동비 12억5000만원을 횡령하고 국고를 손실한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단독 범행 주장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과 정 비서관이 공모한 범죄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6.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직후인 2008년 3월 20일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이자 연 7%, 변제기한 2009년 3월 19일로 하여 15억 원을 빌린 후 이를 변제하지 못한 사실은 다툼이 없다. 차용증 작성 사실에 비추어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7.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소, 유죄를 받아낼 수 있는 충분한 물적 증거를 확보했다. 수사기록을 읽어본 적도 없는 문재인 변호사가 무슨 근거로 "수사기록이 부실하다"고 단정하는지 어이가 없다.
노무현, 인연과 악연
저자와 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악연까지는 아니더라도 짧지만 짓궂은 인연의 시작은 저자가 SK그룹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부당 내부거래 사건을 포착하고 최태원 회장을 구속하는 초강경 수사에 나선 2003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마침 김대중~노무현 정권인수기였고, SK 수사 과정에서 “대선 때 정치자금으로 137억 냈다”는 진술을 확보하자, 검찰은 저자를 ‘불법 대선자금 수사’ 기업수사팀장으로 하여 SK 외에 삼성·LG·현대차·롯데·한화·대한항공그룹 등 재벌들을 상대로 전방위로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확대한다. 책은 당시 수사가 “대한민국 고질병인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계기를 마련했다. 재계(財界)는 더 이상 정치자금을 달라는 요구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다”(242쪽)며, 우리나라 정치자금 투명성 제고에 마중물이 되었다고 자평한다.
그러나 대선자금 수사는 막 출범한 노무현 정권에는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문고리’ 최도술·여택수·안희정의 비리까지 터지자 노 대통령은 “우리가 불법 자금을 한나라당의 10퍼센트 넘게 받았으면 물러나겠다”는 폭탄 선언으로 강성 지지 세력을 결집시켰다(물론 “계산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당시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 청와대가 개입하지 않은 것을 저자는 “내(노무현) 생살을 도려내고 적(敵)의 목을 치는” 고도의 정치적 술수로 평가한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는 노무현 대통령보다는 야당인 한나라당에 더 큰 타격을 주었다.
돼지저금통 등 깨끗한 정치를 표방한 노 대통령도 구시대 정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대통령비서관 최도술·여택수 등이 검은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는 등 대통령으로서 권위에 상처를 입었다. 노 대통령 자신도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검찰에 약점을 잡힌 셈이 되었다. 자신의 비리로 인해 검찰에 이래라저래라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영(令)이 안 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정적을 죽이기 위해 나의 팔다리를 하나쯤 내어준 것에 불과했다. 바둑으로 치면 「위기십결(圍棋十訣)」 중 ‘사소취대(捨小取大)’에 해당한다.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라는 전장(戰場)에서 살아남은 최후의 승자는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제2장_16대 대선 불법 자금 수사, 243~244쪽)
그럼에도 저자는 노무현 대통령 임기 후반기에 홍조근정훈장을 받고, 검사장으로 승진하며 이례적으로 임지(任地)까지 직접 고르라는 배려를 받는다. 법무부 검찰1과장 경험에 비추어 “노무현 대통령이 나의 검사장 승진에 관심을 갖고 배려한 것”이라 직감하면서, “불법 대선자금 수사 등으로 정권을 힘들게 했음에도 나를 검사로서 객관적으로 평가한 것 아닌가 한다. 노 대통령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했다”(293쪽)고 술회한다.
인연의 끝은 다 아는 대로 악연이었다. 노 대통령은 퇴임 후 뇌물사건 피의자가 되어 저자가 부장으로 있는 대검 중수부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고, 20여 일 후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검사로서 승승장구하던 저자의 인생에도 검은 그림자를 드리웠다(482쪽).
호랑이 등에 올라타다
‘인연의 끝’의 전말은 이렇다.
저자는 대전고검 차장검사와 대검 기획조정부장을 거쳐 2009년 1월13일 ‘검찰총장의 칼’이라는 대검 중수부장에 임명되면서, ‘박연차 게이트’수사를 인계받는다. 인계받은 내용에는 퇴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금품 수수 혐의도 들어 있었다(수사가 본격화되며 수수 액수는 더 늘어난다). 처음 보고받은 혐의사실만도 재임 중 500만 달러와 명품 남녀 손목시계 2억 원 상당, 퇴임 후 차용 명목으로 15억 원 등이었다.
박연차 회장의 불법 로비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연루되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은 나를 검사장으로 승진시켜 준 사람이고 퇴임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다. 전임 대통령을 수사해야 한다니 마음이 답답해졌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이다. (제3장_권력자의 눈엣가시, 306~307쪽)
그럼에도 노 전 대통령을 수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 하나, 제목처럼 저자가 대한민국 검사였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의 재임 중 금품 수수 비리를 발견하고서도 이를 수사하지 않는다면 검사로서 직무유기다. (제3장_권력자의 눈엣가시, 309쪽)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없었다면 노 전 대통령이 자살하는 일은 없었을 테지만 검찰 수사가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검사는 범죄 혐의가 있으면 그 사람이 누구든 수사해야 한다. 그것이 검사의 소명이다. (제5장_묻혀 버린 진실, 463쪽)
피의사실 셀프 공표, 논두렁 시계, 우병우…
저자가 “검찰이 무리한 수사로 압박해 노무현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비판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은 당시 수사에 관여한 사람들만이 말할 수 있는 주요 사실들을 처음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 피의사실을 공개했다” — 노 전 대통령은 수시로 자신의 ‘사람세상’ 홈페이지를 통해 피의사실 중요 내용을, 허위 사실을 포함해 공개하며 여론몰이에 나섰다. 피의사실을 노 전 대통령이 ‘셀프 공표’했고, 이에 따라 언론이 뒤따라 취재와 보도에 나선 것이다. 심지어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회장 변호인을 통해 검찰 수사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다고 한다.
“검찰의 정치적 수사였다” — 검찰이 인지(認知)한 수사가 아니고 국세청이 박연차의 탈세혐의를 고발하고 조사중 발견한 증거들을 검찰에 넘김으로써 수사에 착수할 수 밖에 없었다.
“망신 주려고 ‘논두렁 시계’ 지어냈다” — 박연차가 노 전 대통령에게 2억원이 넘는 고급 시계 2개를 선물한 것은 사실이다. 노무현이 그 시계를 밖에 버렸다고 한 것도 사실이다. 검찰 수사 기록 어디에도 ‘논두렁 시계’라는 표현은 없다. 이것은 최초 보도한 SBS가 처음 쓴 말로, 그 배후에 국정원과 이명박 청와대가 있을 개연성이 매우 크나, 당사자인 SBS는 취재 경위를 밝히지 않고 있다.
“신문(訊問)을 직접 담당한 우병우 중수1과장이 ‘노무현 당신은 대통령도 아니고…’ 운운하며 모욕했다“ — 신문에 함께한 문재인 당시 변호인이 노 전 대통령 타계 직후 인터뷰에서 “조사하는 검사들도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충분히 했다”고 인정했고, 2017년의 기자간담회에서도 “그런 발언 없었다”고 재확인했다.
2009년 4월 30일의 피의자 신문 과정은 고스란히 CCTV로 녹화되어 영구보존 중인 수사 기록에 첨부됐다. 처음으로 공개되는, 그날 함께했던 검찰과 노 전 대통령 수행 인사들(문재인, 전해철, 김경수)만이 기억하고 있을 조사실 안팎 대화 몇몇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노무현, 중수부장실에서 저자의 영접을 받던 중) “이(인규) 부장! 시계는 뺍시다. 쪽팔리잖아.” (제5장_묻혀 버린 진실, 383쪽)
(노무현, 우병우 과장에게) “검사님! 저나 저의 가족이 미국에 집을 사면 조중동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말도 되지 않는 소리입니다.” (389쪽)
(박연차와 노무현 대화) “대통령님! 우짤라고 이러십니까!”
“저도 감옥 가게 생겼어요. 감옥 가면 통방(通房)합시다.” (395쪽)
노무현을 저주한 진보 언론, 지키지 못한 문재인
노 전 대통령 수사 개시 이후로 적어도 네 번의, 드라마보다 더한 급반전이 있었다고 책은 회고한다.
첫째, 이른바 진보 언론들의 ‘노무현 죽이기’에 가까운 비판과 저주다. 노 전 대통령이 개인 홈페이지 ‘사람세상’에서 수사 내용을 셀프 중계한 후부터 검찰에 출석해 수사를 받고 돌아간 직후까지 계속해서 그에 대한 언론의 비판이 쏟아진 가운데, <미디어오늘>·<한겨레>·<경향> 등 이른바 진보 언론의 비판 강도가 훨씬 더 셌다는 데 주목한다.
(미디어오늘) “지도자답게 산화하라”, “당신이 죽어야 이 땅에 민주주의와 사회정의가 부활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노 전 대통령의 자진(自盡)을 강요하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 한때 자신들이 지지했던 사람에 대해 어쩌면 이렇게 잔혹할 수 있는지, 인간에 대한 회의마저 들었다. (…)
(경향) 이는 “노무현 당신 패밀리가 한 일로 민주화 세력이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상처를 받았으니, ‘알았느니 몰랐느니’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사라지라”는 저주였다. 마지막 문장 “자신이 뿌린 환멸의 씨앗을 모두 거두어 장엄한 낙조 속으로 사라지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제4장_박연차 리스트, 356~358쪽)
둘째,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변호인으로서 조사에까지 입회한 문재인 변호사(전 비서실장)는 형사사건 변호인으로서 무능했을 뿐더러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일주일’을 지키지 못했다. 변호인으로서 의견서 한 장 내지 않았고, 수사 내용을 파악하여 수사 담당자들과 의견 조율 한번 없었다고 책은 폭로한다. ‘마지막 일주일’과 관련, “노 전 대통령은 문재인 변호사에게도 미국 주택 구입 사실을 숨긴 것으로 보인다”고 조심스럽게 추정하면서, “그래도 변호인은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고 수사가 끝날 때까지 변호에 충실했어야 한다. 그런데도 문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한 5월23일까지 일주일 동안 아무런 변호 활동을 하지 않았고, 그의 곁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한 5월 23일은 부인 권양숙 여사의 부산지검 출석 조사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문재인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일주일 동안 노 전 대통령의 곁을 지키지 않았다. 그가 노 전 대통령의 곁에서 “다 지나간다. 옛이야기하며 살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라며 고통의 시간을 함께했다면? (…)
노 대통령이 검찰에 출석해 조사받은 그날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미국에 주택을 구입한 사실을 확인하고, 이후 법정에서 노 전 대통령을 제압할 증거들을 찾기 위해 수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딸) 노정연을 여러 차례 소환해 앞뒤가 맞지 않는 주택 구입 경위와 구입 자금의 출처를 밝히기 위한 수사를 계속하는 중이었다. 미국 주택 구입 사실, 40만 달러 추가 송금 경위 등을 밝히기 위해 5월24일 부산지검으로 권양숙 여사를 다시 불러 조사할 예정이었다. 이렇게 검찰 수사가 계속되고 있는데 문 변호사는 (『운명』에서) “현안이 없어서” 봉하마을에 가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450~451쪽)
세 번째, 가장 극적인 반전은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일이다.
그리고 네 번째 반전, 이제까지 저주나 다름없는 언사로 노 전 대통령을 맹비난하던 진보 언론과 정치인들이 갑자기 ‘지못미(지켜 주지 못해 미안해)’와 ‘상주(喪主) 코스프레’로 돌변하며 모든 책임을 검찰에 돌린 일이다.
노 전 대통령을 가혹하게 비난, 아니 저주했던 좌파 언론인들과 자신에게 수사의 불똥이 튈까 봐 그를 멀리했던 민주당 정치인들은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자 돌변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검찰에 모든 비난의 화살을 돌렸고, 그들이 의미를 상실했다고 손가락질했던 ‘노무현 정신’을 입에 올리며 앞다투어 상주(喪主) 코스프레 대열에 합류했다. (책머리에, 8쪽)
문재인의 말바꾸기
‘지못미’와‘상주 코스프레’의 연장선상에,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 수사의 진실을 왜곡해 유포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꾀하는 세력이 있다고 책은 꼬집는다. 그 정점에, 노 전 대통령 2주기(週忌)에 출판된 문재인(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운명』(2011)의 말바꾸기가 있다.
2009년 5월23일 노 전 대통령 사망 직후인 당일 이른 아침 문재인 변호사의 첫 반응은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였고, 그로부터 불과 한 시간여 만에 “아침 6시40분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했으며, 발견 즉시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9시30분에 사망”이라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했다(17~18쪽). 9일 뒤인 6월1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문 변호사는 미국 주택 구입과 관련,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회장이 제공한 돈이) 미국에 집 사는 데 쓰인 것을 알고 충격이 굉장히 크셨다”고 전했다(339쪽). 검찰 수사와 관련해서는 “검찰을 원망하거나 비난하고 싶지 않다. 조사 과정에서는 대통령이 성의 있게 임하셨고, 예의도 다 차리셨다. 조사하는 검사들도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충분히 했다. 노 대통령의 죽음은 정치적 타살이라고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다”고 증언했다(445쪽).
그랬던 문 변호사가 2년 뒤 『운명』에서는 “(중수부장은) 대단히 건방졌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수사기록은 부실했으며, 공소유지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아무 처리도 못하고 질질 끌기만 했다.”,“(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정치적 타살이나 진배없었다”고 말바꾸기를 하고 있다. 『운명』의 마무리,“당신(노무현)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문재인)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는 말에서 저자는 ‘앞으로의 행적’에 대한 강한 복선(伏線)을 읽어 낸다.
수사 기록은 영구보존 중
본문에서 대체로 시간 순서로 기술한 노무현 전 대통령 뇌물수수·횡령 관련 수사 개요를 책 맨 뒤에 약 40쪽 분량의 부록으로 간추렸다. 피의사실행위 중 △퇴임 직후 차용금 형식으로 받은 15억 원을 제외하고 △회갑 선물로 2억여 원 상당 남녀 명품 시계, △아들의 미국 주택 구입 자금으로 140만 달러, △아들과 조카사위의 사업 자금 명목으로 500만 달러, △생활비 명목 3억 원 수수와 △특수활동비 12억 5000만 원 횡령은 모두 대통령 재임 중 이루어진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사안별로‘다툼 없는 사실’,‘박연차의 진술’,‘노 전 대통령의 주장’을 먼저 정리하고 검찰 수사 결과와 판단을 덧붙였다. 박연차 회장으로부터의 금품 수수가 뇌물죄에 해당하는가와 관련해서는 대통령이 국정과 각종 정책 집행에서 포괄적인 권한과 영향력을 행사한다는‘포괄적 직무 관련성’의 법리와 “뇌물은 대통령의 직무에 관하여 공여되거나 수수(收受)된 것으로 족하고 개개의 직무행위와 대가적 관계에 있을 필요가 없으며, 그 직무행위가 특정된 것일 필요도 없다”는 대법원 판례에 의거,“포괄적 및 일부 구체적 직무 관련성이 인정되므로 뇌물죄가 성립한다”고 못박는다(492쪽). 이상의 수사 기록은 출석 조사 장면을 녹화한 CD와 함께 영구보존 중이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부제(副題)와 달리 책은 딱 부러지게 말하고 있지 않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독자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첫째, 노 전 대통령 스스로 선택했다.
둘째, 이른바 진보 언론들이 저주나 다름없는 언어폭력으로 그를 몰아세웠다.
셋째, 변호인인 문재인의 무능이 비극을 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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