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은 엔진이다. 혈액에 산소·영양분을 담아 우리 몸 구석구석으로 뿜어내는 역할을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이 심장 리듬이다. 박자에 맞춰 규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만일 심장 리듬이 흐트러지면 심장이 갑자기 활동하지 않거나 뇌졸중·심근경색 같은 치명적인 심·뇌혈관 질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심장리듬에 문제가 있어 심장마비를 경험한 경우가 미국보다 7배 높다는 연구결과도 최근 나왔다. 심장 부정맥의 위험성과 응급상황시 대처법에 대해 알아봤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심장리듬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심장은 1분에 60~100회 정도 뛴다. 하루에 10만 번 뛰는 것이 정상이다. 나이가 들면 심장의 리듬이 조금씩 어긋난다. 요즘처럼 일교차가 클 때도 마찬가지다. 격렬하게 운동을 하거나 술·커피 등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심장 박동의 간격이 일정하지 않거나 심장이 빠르게 혹은 느리게 뛴다. 바로 심장 부정맥이다. 심장에 부담을 줘 응급실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 심장 펌프 기능 약해지면서 혈전 만들어내
심장 부정맥은 심장이 보내는 일종의 경고다. 아주대병원 순환기내과 황교승(대한부정맥학회 홍보이사) 교수는 “심장리듬이 불규칙해지면 심장 내 혈류나 압력에 변화가 생긴다”고 말했다. 심장은 인체 혈액순환의 시작점이다. 그런데 심장 부정맥으로 심장 본연의 펌프 기능이 약해지면 혈액을 심장 밖으로 힘차게 밀어내지 못한다. 덩달아 뇌·간·위 등 주요 기관으로 공급하는 혈액량이 줄어든다. 한 곳에 오랫동안 고인 물은 썩듯이 심장에 남아있는 혈액이 끈적끈적하게 뭉쳐 덩어리를 이루기 쉽다. 이는 뇌와 심장으로 이어진 크고 작은 혈관을 막아 뇌졸중·심근경색·심장마비 같은 심·뇌혈관 질환을 유발한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순환기내과 최종일 교수는 “뇌졸중 환자의 20%는 심장리듬 문제로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심장 부정맥의 예측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언제 어떻게 증상이 나타날지 알기 어렵다. 대부분은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어지럼증, 답답·불안함 등을 호소하는 정도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해 가볍게 넘기기 쉽다. 하지만 심장 부정맥으로 심장이 멈추는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땐 다르다. 일부 차이는 있지만 국내 심장정지 생존율은 3%에 불과하다. 돌연사의 90%는 심장 부정맥이 원인이라는 연구도 있다.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심장리듬이 불규칙해 심장마비를 경험한 비율이 14.7%로 미국(2%)보다 무려 7배나 높다.
심장은 불과 1분만 움직이지 않아도 온 몸의 신체 기능이 급속도로 나빠진다. 몸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4분 남짓이다. 그 이후부터는 뇌 손상이 시작된다. 같은 뇌졸중이라도 심장 리듬이 불규칙해 생긴 뇌졸중은 심장 혈관이 좁아져 나타나는 뇌졸중보다 위험하다. 심장이 멈춘 후 10분이 지나면 심각한 뇌 손상으로 진행하고 의식불명 상태로 빠질 수 있다. 스스로 심각하다고 인지하는 심장 부정맥의 첫 증상이 마지막 증상이 될 수 있는 의미다. 간신히 생명을 구하더라도 회복하기 어려운 후유증이 남는다. 평생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 생활해야 할 수 있다. 심장 혈관의 건강 상태만큼 심장리듬도 정기적으로 살펴야 하는 이유다.
━ 심전도로 심장박동 속도·간격 점검해야
심장은 인체의 전기적 신호를 받아 박동한다. 심장의 오른쪽 윗부분에 위치한 동방결절에서 규칙적으로 만들어지는 전기 자극에 따라 심장이 수축·이완을 반복한다. 이때 중요한 것이 심장박동의 속도다. 심장리듬이 병적으로 느리면 뇌로 공급되는 혈액량이 줄면서 어지럼증을 느낀다. 심장이 움직이지 않는 짧은 순간에 의식을 잃고 실신하기도 한다. 반대로 심장이 빠르게 움직이면 가만히 있어도 100m 달리기를 한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을 몰아쉰다. 심장 박동의 간격도 중요하다. 심장은 오른쪽 심방→오른쪽 심실→왼쪽 심방→왼쪽 심실 순서로 움직인다. 그런데 이 주기가 끝나기 전에 또 전기적 신호가 만들어지면 어떻게 될까.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남기병 교수는 “심장리듬이 흐트러지면 심장이 펌프질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파르르 떤다”고 말했다.
만일 ▶난생 처음 느낄 정도의 강도로 가슴이 쥐어짜듯 심하게 아프다
▶가슴부터 어깨·목·등으로 통증이 퍼지듯 전파된다
▶심장이 매우 빠르게 혹은 느리게 뛴다
▶숨을 쉬기 어렵고 가슴이 심하게 답답하다 같은 증상이 나타나면 심장에 이상이 생겼다는 신호다. 심장 부정맥 전문의를 찾아 심전도·24시간 홀터 심전도·심장초음파 검사 등을 받는 것이 좋다.
심장 부정맥은 증상에 따라 치료법이 다르다. 특히 증상이 저절로 사라졌다고 방심하면 치료시기를 놓칠 수 있어 주의한다. 심장이 빠르게 뛰면 약물로 심장리듬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치료를 받는다. 부정맥을 유발하는 부위를 고주파로 절제하는 방법도 있다.
선제적으로 응급상황에 대비하는 치료도 있다. 심장 부정맥이 있으면 뇌·심장 혈관이 막히거나 심장이 멈출 수 있다. 각각의 위험도에 따라 상황에 맞춰 치료한다. 예컨대 뇌졸중 고위험군은 혈액을 묽게 하는 약을 복용하고, 심장마비 고위험군은 몸속에 심장리듬을 감시하다가 심장이 멈추면 즉시 전기 에너지를 방출해 심장에 충격을 가해 다시 움직이도록 유도하는 삽입형 제세동기(ICD)를 넣는 것을 고려한다. 일종의 예방적 치료다.
뇌졸중을 한 번 겪었던 사람이나 심장 기능이 떨어진 사람은 집에 자동 자세동기(AED)를 비치하는 것이 좋다. 운 좋게 심장 정지로 쓰러진 장소가 병원이라면 곧바로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급성 심장마비가 발생한 장소의 78.3%는 집이다. 가족·지인에게 자동 제세동기 사용법을 알려주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최종일 교수는 “심장이 멈춰 쓰러지면 상황은 긴박하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주변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심장 제세동·흉부압박 등 빠른 응급처치는 뇌·심장 기능 손상을 줄여준다. 큰 후유증 없이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다. 한국심폐소생술 지침에 따르면, 심장정지 후 1분 이내 심장 제세동이 이뤄졌을 때 생존율은 80%이상이다. 하지만 10분을 넘기면 그 비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