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불교 수행법에 대하여
내가 오늘 이 선(禪)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지금 내가 할려고 했던 것은 순 선(禪)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한테 많이 하고 싶었는데,
이것을 하게 되면 남의 종단의 교학과 수행법을 흉보는 것 같이 보여집니다.
나는 그것이 아닙니다.
내 진심은요.
부처님의 정법으로 들어왔으면 하는 노파심과 진심에서 말씀하는 거예요.
선불교(禪佛敎)를 따르고 그 수행법을 한다는 것, 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
내가 쓴《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에서는
그래도 좋은 수행법이라고 해놨지만,
진실을 말 할 때에는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아.
진실을 말한다면 나는 그 수행법을 하지 말라고 그래.
왜? 견성, 전생에 상당한 선근이 있어야 되지요. 선근이 없으면 안 됩니다.
화두타파 못합니다. 화두일념이 안 됩니다. 의단이 생길 수가 없어.
확실히 인간의 본성자리는 드러나. 그건 맞아. 드러나.
화두타파 할 때에는 특성이 모든 경계가 뒤집혀져버려. 뒤집혀져.
그래가지고 공(空), 나와 더불어 모든 경계가 없어져 버려. 투~욱 터져버려.
이것이 특성이어. 그러면서 오직 빛만이 쏟아져. 이것입니다.
그러면서 대단한 평화와 안온과 행복감을 느껴.
정말로 희유하고 바람직한 일이어.
그러니까 일어나서 궁둥이 춤을 추는 거예요.
누구나 그래. 그건 사실이어.
그러나 그 경계가 한식경을 지나가지 않는다.
내가《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에 써놨어.
그렇지만 한두 달 그 감이, 영상이 남아있지요. 남아있지.
다시 그 경계를 보려면 또 해야 돼. 죽으라고 해야 돼.
그런데 화두타파가 능사가 아니어.
화두타파 한 사람들은 자기가 조사어록을 봐도 전부 다 이해가 되고,
‘내가 뚫은 데가 진짜구나. 아! 그 큰스님도 여기까지 왔구나. 아! 내가 붓다구나 붓다.’
자기가 붓다인체 하거든. 그래서 사부대중이 여불(如佛) 대접을 해주거든.
법상에 올라가서 그 지존인 우리 부처님을 갖다가 예의에 맞지 않는 말을 하거든.
‘석가가~’라는 말을 서슴지 않습니다.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그 사람들은 그 선의 본성, 그 자리를 역설하려고 한 것이지만,
부처님을 갖다가 말을, 입에 담을 수 없는 독설을 합니다. 그러기도 합니다.
대적정삼매에 들어가서, 우주의 끝까지 들어가서 최정상까지 뚫어가지고,
그런 불의 경지에 가가지고 법을 설해야 되는 거예요. 법을 설해야 돼.
그렇지 않고는 큰 죄를 지을 수가 있어.
출처:2011년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