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보다 더 가치있는 대상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 그는 이미 완전한 자 되는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오 복음 19장 21절)
위의 예수님 말씀을 들으시고, 나름 지닌 재산으로 인해, 복음서에 등장하는 젊은이처럼 슬퍼하거나 실망하고 계시는 분들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말씀 전후 맥락을 살펴볼 때, 너무 슬퍼하거나 실망하지 않으셔도 될 듯 싶습니다. 울며 가슴치면서 예수님이나 교회 공동체를 떠나가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만일 배우자와 여러 명의 성장기 자녀들, 연로하신 부모님의 생계까지 책임지고 계신 가장께서, 예수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셔서 즉각적 행동으로 옮긴다면 큰 일 날 일입니다.
본인이야 가장으로서의 힘겨운 십자가나 속세의 질긴 인연들 훌훌 털어버리고, 한 마리 어여쁜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버리면 마음이 홀가분해질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남게 될 가족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겠습니다.
가장으로서 그보다 더 무책임한 모습은 다시 또 없을 것입니다. 그런 모습은 오히려 복음에 정면으로 반하는 일이며, 한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예의나 품위를 저버리는 악덕이 될 것입니다.
오히려 한 가정의 가장은 정직하고 양심적인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서 재물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불투명한 시대 앞에서, 돌발 상황에 대비해서 안정적 재정 확보를 위해 뛰고 또 뛰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한 그리스도인 가장으로서 취해야 할 바람직한 삶의 태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과도함’ ‘지나침’에 있습니다. 뭐든 적당해야 합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진리를 늘 염두에 두고 살아야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재물에 목숨을 걸며, 재물을 하느님 위치로 격상시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자신이 그토록 애써 쌓아올린 재물이라는 탑에 깔려 제 명도 못챙기는 사람 참 많습니다.
평생 한눈 한번 안 팔고 기를 쓰고 쌓아올린 천문학적 액수의 재물을 제대로 한번 써보지도 못한채, 억울해서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는 사람들, 한 마디로 열심히 죽쒀서 개주는 사람들 참 많이 봤습니다.
넉넉해졌다면 주변도 한번씩 돌아보면 좋겠습니까? 재물의 결핍으로 인해 하루 하루, 아슬아슬, 삶과 죽음의 기로를 넘나드는 이웃들을 위해 관대히 나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자세야말로 제자됨의 모습이고, 완전한 자 되는 지름길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라고 외치며, 돈을 자신의 인생 여정 안에서 최고로 높은 위치에 올려놓았던 지닌 삶을 가슴치며, 늦었지만 돈보다 더 가치있는 대상들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 다른 무엇에 앞서 좋으신 주님과 신앙을 자신의 인생에 있어 최우선권을 부여하는 사람은 이미 완전한 자 되는 길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인생사와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주변 환경을 찬찬히 한번 살펴볼 일입니다. 과연 돈보다 더 우위에 있는 대상, 돈과는 비교가 안되는 특별한 것이 무엇인지 유심히 한번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없을 것 같지만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 대상들을 찾아내고, 그 대상들에 더 큰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더 깊이 사랑하는 노력, 그것이 배금주의와 황금만능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황금만능주의에 흠뻑 젖어 살아가는 한 유다 청년과,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해서, 참으로 듣기 거북한 쓴소리를 건네십니다. 그러나 외면하지 말고 귀담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내 자리에서 주님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가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오 복음 19장 21절)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