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 닫고 새 건물로 이사… 막걸리잔·벽 가득한 낙서 등 서울역사박물관에 영구보존
"거기 정말 없어지나요? 토요일쯤 오랜만에 한번 가보려고 했는데…."
4일 오후 울산에서 서울 종로구 피맛골 '청일집'에 전화를 건 김영훈(66)씨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는 "서울에서 대학 다닐 때 자주 갔던 곳"이라며 "인근 건물로 자리를 옮긴다고 하지만 옛 기억 일부가 사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창 재개발이 진행 중인 피맛골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 빈대떡 막걸릿집인 '청일집'이 5일 문을 닫고 인근 종로 르메이에르 건물로 이사한다. 1945년 해방 직후 고(故) 박동혁씨가 이곳에 자리 잡은 지 65년 만이다. 가게 이름은 청진동에서 제일 먼저 생겼다고 해서 '청일집'으로 지어졌다. 지금은 아들인 박정명(69)씨와 며느리 임영심(61)씨가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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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일 오후 서울 종로 피맛골 재개발 사업으로 65년 만에 문을 닫고 이전하는‘청일집’ 의 안주인 임영심씨가 벽에 걸려 있던‘빈대떡’메뉴판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청일집은 간판부터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가게 문에는 '50년 전통', 간판에는 '55년 전통', 거리에 세워둔 작은 간판에는 '60년 전통'이라고 적혀 있었다. 가게 안에는 낡은 나무탁자 10여개가 널려 있고, 벽에는 손님들이 막걸리를 마시다 쓴 낙서가 가득했다.
낡고 투박한 분위기를 고이 간직하고 있는 청일집은 주머니가 가벼운 직장인들이 '한잔' 하러 몰려들던 추억의 장소다. 어떤 때는 아침부터 빈대떡을 지져놓고 수북이 쌓아놔도 몰려드는 손님을 대접하기에 부족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곳의 자랑인 막걸리와 빈대떡을 맛보기 위해 서울 장안의 내로라하는 문인·학자·언론인·정치인들이 찾아왔다. 가게의 가장 안쪽 탁자는 2001년 고(故) 손기정 옹이 황영조 선수와 막걸리잔을 기울였던 곳이고, 문 바로 앞 자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와 함께 빈대떡을 먹은 장소다. 교보문고에서 영화 촬영을 마친 고(故) 최진실씨도 이곳에서 밤늦게 허기를 채웠다. 안주인 임영심씨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경호처 사람들이 빈대떡을 먹고 대통령께 드린다며 녹두 간 것을 싸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 피맛골에 재개발 바람이 불자 상황이 급변했다. 가게들은 하나 둘 떠나갔고, 최근엔 청일집을 포함해 대림집·소문난집 등 3곳만 자리를 지켰다.
이제는 청일집도 떠나갈 차례. 주인 박씨와 임씨는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곳을 벗어나 신식 건물로 새로 입주하지만 마음이 못내 허전하다"며 "손님들이 우리 가게에 대한 추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가게에 있던 물건들을 모두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탁자, 찌그러진 막걸리잔, 주전자, 재떨이, 메뉴판 등 1000여점이다. 가게 벽에 가득했던 낙서들도 통째로 보존된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오는 7월 '우리들의 종로전'이란 특별전을 열어 '청일집'에서 쓰던 물건들을 전시한 뒤 영구 보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펌: 2010/2/5. 조선일보>
첫댓글 에세이스트 26호에 '6.29'라는 제목의 수필에 청일집이 나옵니다. 갑자기 그 집이 없어진다는 기사를 접하자 왠지 모르게 서운한, 마음 금할 수 없네요. 그럴 줄 알았으면 며칠 전 교보에 갔을 때 친구의 사진이라도 한 번 쓰담고 오는 거였는데...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깃든 곳들이 이렇게 사라질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아쉽습니다.
유명한 집이긴 한가 봐요. 아침 뉴스에 나오더군요. 아, 그 집...
그런 유명한 청일 집이군요. 2005년도 한국에 갔을 때 김영삼 대통령이 즐겨 가던 국숫집이라고 하면서 동생이 데려가던 곳이 생각납니다.
아쉽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