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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1위 반도체장비사, 5조원 美투자… 反中 반도체 블록 강화
[미중 반도체 갈등]
반도체법 이후 美에 262조원 몰려
日-EU도 첨단제품 시설 유치
“안보 핵심” 中겨냥한 디리스킹… ‘中수출 많은 한국엔 부담’ 분석도
“실리콘밸리에 실리콘이 돌아왔다.”
22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에서 열린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 투자 발표 행사는 축제 분위기 속에 열렸다. 반도체 탄생지인 실리콘밸리에 30년 만의 대규모 반도체 투자가 이뤄진 것이다. 이날 세계 1위 미 반도체 장비 기업 AMAT는 이 지역에 40억 달러(약 5조3000억 원)를 투자해 세계 최대 규모의 연구시설을 짓는다고 밝혔다. 행사에 참석한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은 “미국에서 반도체를 만드는 것은 핵심 안보 문제”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8월 미 반도체지원법 시행 이후 미국에는 세계에서 약 2000억 달러(약 262조 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가 몰렸다. 일본은 최근 20조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고, 독일 등 유럽연합(EU) 국가들도 대만 TSMC, 미 인텔 등에서 수십조 원 투자를 기대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디리스킹(derisking·탈위험)에 나선 서방이 ‘반도체 블록’을 강화하는 모양새다.
● 美日獨 보조금 위에 ‘반도체 블록’
해리스, AMAT 연구개발센터 방문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22일(현지 시간) 미 반도체 장비기업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의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 연구개발(R&D) 센터를 찾아 직원들의 설명을 듣고 있다. 이날 AMAT는 캘리포니아에 40억 달러를 투자해 신규 R&D 센터를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서니베일=AP 뉴시스
그동안 반도체 제조 일선에서 밀려나 있던 미국 일본 EU는 내년부터 첨단 반도체를 본격적으로 생산한다. 삼성전자가 170억 달러(약 23조 원)를 투자한 미 텍사스 테일러 공장이나 TSMC가 400억 달러(약 53조 원)를 들인 미 애리조나 1공장 모두 내년 가동을 앞뒀다.
인텔은 향후 10년간 유럽에 880억 달러(약 115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고, TSMC는 독일 인피니온 등과 손잡고 유럽에 1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고민 중이라고 외신이 보도했다. TSMC는 일본에도 첨단 반도체 생산 2공장 건설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일본 유럽에 첨단 반도체 생산 시설이 부족했던 가장 큰 이유는 비용이었다. 숙련된 인재 부족이나 협력사 부재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미국 70조 원, EU 63조 원 등 전례 없는 반도체 보조금이 투자의 강력한 유인책이 됐다. 실리콘밸리의 반도체 투자 복귀도 이 보조금 덕이 컸다.
서방의 반도체 보조금 지급 명분은 역시 ‘중국 리스크’다. 대만 반도체 산업이 중국에 볼모로 잡힐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며 서방 블록에 첨단 반도체 공장이 있어야 한다는 경각심이 커진 것이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대만의 지정학적 위험’을 근거로 TSMC 지분을 매각하는 등 우려가 커지자 TSMC가 미국 일본 독일 등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형국이다. 위험을 분산시키는 이른바 디리스킹을 추구하는 것이다.
● ‘中리스크 줄이자’ 디리스킹 공동 대응
서방 중심 ‘반도체 블록’은 중국 디리스킹을 위해 공동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마이크론은 일본에 5조 원 규모의 투자를 밝힌 데 이어 일본 주요 대학들과 인재 양성 협약을 맺었다. 또 인텔은 모바일 두뇌(AP)를 이끄는 영국 ARM과 지난달 전략적 동맹을 맺었다.
서방은 미국의 중국 반도체 제재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 중국이 마이크론 판매 금지 조치로 사실상 미국에 경제 보복을 가한 가운데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일본의 수출 규제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첨단 반도체 중심 규제에 나선 미국보다 반도체 핵심 소재를 중심으로 하는 일본식 수출 규제가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이 최대 반도체 수출 시장인 한국으로서는 이 같은 대(對)중국 서방 반도체 블록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반도체 강국) 한국과 대만에서는 언제든 긴장감이 고조될 수 있다”고 언급하는 등 한국을 지정학적 위험 지역으로 보는 시선이 많아 해외 투자 유치도 녹록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美 “中의 마이크론 판매금지 심각하게 우려”… 中 “마이크론, 우리 기술 탄압하는 불쏘시개”
[미중 반도체 갈등]
美 “中엔 규제의 투명성 존재 안해”
中 “美, 화웨이-틱톡 무자비한 제재”
마이크론 주가, 뉴욕증시서 2.85%↓
미국 최대 메모리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에 대한 중국 당국의 전격적인 판매 금지 조치를 놓고 미중이 연일 충돌하고 있다.
미 국무부 매슈 밀러 대변인은 22일(현지 시간) “미국은 중국이 마이크론 반도체 판매를 금지한 데 대해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밝혔다. 이어 “상무부는 미국 입장을 분명히 하기 위해 중국 정부와 접촉 중(engaging)”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수출 규제 등을 담당하는 미 상무부가 이번 조치에 대해 중국 당국에 항의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밀러 대변인은 ‘미국의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 제재와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가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에는 “중국에는 규제의 투명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중국은 원하는 모든 결정을 내릴 수 있지만 이는 투명한 규제 체계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크 머피 마이크론 최고재무책임자(CFO)도 이날 브리핑에서 “중국이 어떤 우려로 판매 제한 조치를 내렸는지 불분명하다”며 “중국 조사 결과를 분석하고 향후 대응을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머피 CFO는 “이번 조치가 매출에 최대 한 자릿수 퍼센티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 매출이 전체 매출의 약 11%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마이크론이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될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이날 마이크론 주가는 뉴욕증시에서 2.85% 하락했다.
중국은 관영매체를 동원해 마이크론 제재는 법에 따른 정당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23일 “마이크론 제재에 대해 미국이 중국을 비난하는 것은 미국의 위선과 이중 잣대를 스스로 드러내는 꼴”이라면서 “미국은 중국 기업 화웨이와 틱톡에 대해 무자비하고 탐욕스러운 제재를 가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는 “중국의 안보 이익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글로벌타임스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규제를 가하면서) 주장하는 국가안보는 중국에 대한 일방적이고 반시장적인 탄압”이라면서 “마이크론이 중국에 공급해 온 반도체 물량을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한국 기업들이 메우지 못하도록 (요구)하는 것도 그 연장선”이라고 강조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런민일보 계열 환구시보는 이날 사설에서 “마이크론은 미국이 발동한 중국 과학기술 탄압 과정에서 ‘불쏘시개’ 역할을 했으며, 동시에 중국 반도체 기업에 가장 많은 화를 초래한 미국 기업 중 하나”라고 썼다. 이어 “그들이 미국 정부에 협력해 중국으로 안전하지 못한 제품을 수출했는지는 자신들만 분명히 알 것”이라고 덧붙였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韓, 中서 마이크론 공백 메울수도” “못할 것” 분분
[미중 반도체 갈등]
대통령실 “경제안보 등 면밀히 고려”
박진 “기업활동에 간섭-방해 못해”
중국이 미국 최대 메모리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에 판매 제한 조치를 내리면서 한국이 어떻게 대응할지 미중 양국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향해 미국은 중국 경제보복 공동 대응을, 중국은 미국에 협력하지 말 것을 압박하고 있다.
마크 리 미 투자은행 번스타인 애널리스트는 22일(현지 시간) 보고서에서 “중국 국내 메모리반도체 공급자 경쟁력을 고려할 때 중국은 마이크론을 대체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키옥시아 등 외국 공급자에 의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이들은 모두 미국 동맹국(기업)이며 모두 미국 장비 공급에 의존하고 있다”면서 “이들이 미국의 압력을 무시하고 마이크론 판매 금지 혜택을 차지하려 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고 밝혔다.
반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정부가 (기업에)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고 기업이 판단할 문제”라는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의 22일 발언을 소개하며 “한국이 중국의 마이크론 판매 금지로 인한 공백을 메울 것임을 시사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3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미국과의 경제안보 차원까지 고려해 면밀히 검토한 뒤 우리 입장을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날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조찬포럼에서 “한국 입장에서는 삼성이나 SK하이닉스가 중국에서 투자와 기업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 사항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기업 활동에 대해 간섭하거나 방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대중 판매 확대 금지 요청을 실제 하더라도 섣불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 같은 의견을 내기는 어렵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장관석 기자, 신나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