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람으로 오시는 하느님
우리 가톨릭교회는 오늘 12월 17일부터 24일까지, 매년 그래왔던 것처럼, 예수님 성탄일에 맞추어 읽고 묵상할 수 있도록 복음 말씀을 배열해 놓았으며, 첫날 우리는 마태오 복음저자가 기술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앞에 섭니다.
족보의 사전적 의미는 한 가문의 계통과 혈통 관계를 기록한 책입니다.
그러나 족보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한 집안의 세력을 과시하고 상징하기 위한 기록물로 취급되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위조와 허구의 유혹은 피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족보의 사실성과 신뢰성 여부에 늘 의혹이 뒤따르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물론, 성경(=구약성경)에 정통했던 유다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기록한 마태오는,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이리라는 유다교 전승에 따라, 예수님이 바로 다윗의 후손임을 입증하기 위하여, 기존에 있던 족보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기보다는, 성경과 성경 밖의 자료들을 정성껏 참조하여 이를 정리해 나갔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족보에는, 성경에 처음 언급되는 이름도 다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태오가 복음을 저술한 시기를 대략 기원후 80년경으로 본다면, 이 족보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족보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 또한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마태오가 이 족보를 정리했다는 사실로 만족한다면, 이는 마태오의 족보 제시 의도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결과입니다.
마태오는 단순한 혈통 관계를 넘어, 예수님은 참 인간으로서 인간 질서 속에 뛰어드신 분임을 드러내고, 다윗을 훨씬 뛰어넘는 완전한 다윗, 전혀 새로운 또 다른 다윗임을 선언하기 위하여 족보를 전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조차 주님으로 불렀던 바로 그분 말입니다(마태 22,45; 마르 12,37; 루카 20,44 참조)
마태오는 예수님의 족보를 기술하면서, 특이하게도 조상들을 열네 세대씩 셋으로 나누는, 곧 14×3이라는 도식을 빌립니다(17절).
히브리어로 잠깐 들어가 보면, 재미난 현상이 발견됩니다.
우리는 순번을 표기할 때, 1,2,3 등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글자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알파벳 a,b,c 또는 위대한 한글 ㄱ,ㄴ,ㄷ 등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a와 ㄱ은 ‘1’을, b와 ㄴ은 ‘2’를 대신하는 수적 표기가 됩니다.
히브리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글자는 각각 수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 우선 다윗(dwd)은 세 개의 자음으로 되어 있어 이미 3이라는 숫자가 나오고, 그 세 개의 자음의 수치를 합하면 (d/4번째 글자 + w/6번째 글자 + d/4번째 글자 =)14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마태오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다윗의 이름을 수치로 완전히 풀어헤쳐, 예수님을 완전한 또 다른 다윗으로 말하기 위해 14×3이라는 도식을 빌린 것으로 봅니다.
이처럼 마태오는 족보 제시를 통해 예수님은 참사람으로 우리 한가운데로 오시는 분임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그분의 말씀과 행적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으로서의 예수님 이상으로, 참 인간으로서의 예수님, 참 인격을 지니신 예수님을 눈여겨보아야 하고 본받아야 합니다.
특별히 사회의 약자들, 정신적이며 육체적인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 심지어 죄인들과 함께하시는 모습 속에서 그분의 인격은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대림시기는 참 인간으로 우리 가운데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우리 본연의 모습을 되찾으려 애쓰는 가운데, 우리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이웃들,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이웃들, 그러나 지금은 어려운 처지에서 허덕이거나 몸부림치는 이웃들을 향해 조금만 더 내려가는 너그럽고 여유로운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