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 다큐멘터리 '히틀러와 나치, 심판대에 선 악마'(Hitler and the Nazis: Evil on Trial, 6편)가 5일 올라왔다. 이 스트리밍 플랫폼이 1944년 6월 6일과 7일 노르망디 상륙 80주년을 앞두고 이날 공개한 것인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으나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이 시리즈가 뜬 것을 보자마자 1편 '악의 기원'을 봤고, 노르망디 상륙을 어떻게 표현
했나 궁금해 5편 '인류에 대한 범죄' 종반과 6편 '심판'을 본 뒤 2편 '제3제국의 부상'을 봤다. 전체를 모두 보고 나서 업데이트하겠지만 일단 절반 정도를 본 소감을 말하면 상당히 깊이 있는 다큐멘터리로 잘 만들었다. 미국 CBS 방송의 베를린 특파원으로 히틀러가 총리에 취임한 1933년부터 베를린에서 근무 중이어서 이 과정을 생생히 지켜봤고, 저유명한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을 지켜본 윌리엄 L 샤이러의 실제 리포트 내용 등을 내레이션으로 쓴 것도 돋보였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 등장했던 히틀러의 졸개들, 괴링과 괴벨스 등의 생생한 모습을 압도적으로 선명한 화질의 자료로 볼 수 있었다. 더욱이 지상파 다큐로는 볼 수 없었던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여러 대량학살 희생자들, 생존자들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의 결혼식 장면과 둘의 최후 순간, 애지중지 아끼던 저먼 셰퍼드에게 청산가리를 억지로 먹여 충복들에게 줄 극약의 효능을 시험한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장면 극화 등도 인상적이었다.
이 독특한 다큐 시리즈를 어떻게 소개할까 고민하다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의 기사 ‘Hitler and the Nazis’ Review: Building a Case for Alarm'를 옮기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이 기사의 부제는 '조 벌린저의 다큐 시리즈는 독일의 과거에서 우리의 미래를 봐야 하는지 묻는다'이다. 마지막 6편의 결말 부분에서도 이 물음은 비슷하게 나온다.
히틀러의 프로젝트는 “독일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였다. 미디어로부터 공격당하면 나치는 "가짜 뉴스"라고 맞받았다. 히틀러의 산악 은신처는 베르히테스가덴이었다. "히틀러판 마러라고라 할 수 있겠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이름이 이 다큐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표면 아래에서 춤추며, 때때로 위에 언급한 예처럼 이 다큐에 나오는 학자들, 유명한 역사가들, 전기작가들은 이 말을 하고 싶은데 애써 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시리즈는 베테랑 다큐멘터리 제작자 조 벌린저가 만들었다. 그는 'Paradise Lost'와 'Metallica: Some Kind of Monster'를 제작했으며, 넷플릭스와 프로덕션 계약을 체결해 'Jeffrey Epstein: Filthy Rich'와 'Conversations With a Killer' 같은 유명 실화 범죄를 다룬 다큐들을 내놓았다.
벌린저는 프로모션 단계에서 실화 범죄에서 총력전과 대량학살로 옮겨간 이유를 설명했다. “더 어린 세대에게 이런 얘기를 교훈적인 얘기로 다시 말하기에 적절한 때다. 미국에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갖고 스스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와중에 권위주의가 문을 두드리며 반유대주의가 발호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2010년대와 20년대의 미국을 마음 속에 품지 않은 채 1930년대와 40년대 독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벌린저는 몇년 동안 미국 케이블TV에서 다루지 못했던 히틀러, 제3 제국과 홀로코스트 역사에 대한 딜럭스 버전을 만들어냈다. 정보는 새롭다 할 것이 없지만, 벌린저가 6시간 30분 가까이에 담아낼 만한 자료들은 충분히 구할 수 있었고 반영됐다. 문서보관소의 필름, 그 중 많은 수는 이 시리즈를 위해 색채가 입혀졌다. 그리고 녹취록과 상당히 많은 배우들의 극화 장면들, 인터뷰이들도 중복 등장할 정도로 많았다.
오래 된 애기를 새롭게 하려니 당연히 비틀어야 하는데 벌린저도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를 그렇게 했다. 미국인 기자 윌리엄 L 쉬어러는 1993년 세상을 떠났지만 시리즈의 비공식 내레이터로 중용된다. 인공지능(AI)이 이 시기에 대해 쓴 그의 많은 책들에 나오는 문장들을 그의 목소리로 재현하고, 때때로 당시 라디오 방송에 흘러나왔던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를 연기한 배우는 1945년 뉘른베르크 재판 과정을 지켜보는 그의 모습을 재현하기도 한다.
재판 도중 나왔던 진술들은 정치적 기제, 전쟁 과정, 대량학살 같은 혐의점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됐다. 재판 장면들은 벌린저가 시리즈 내내 채용한 시각적 스타일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사례들이다. 또 극화한 장면들이 나오다 컬러로 재현된 자료영상이 나오는 등 넘나든다. 해서 관객은 실제 헤르만 괴링을 보는 것인지, 아니면 그를 연기한 배우 가보르 소토니이를 보는 것인지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인터뷰조차 극적이다. 어두운 무대에서 피처럼 붉은 커튼을 치고 진행했으며 사다리 모양이나 벽돌 담 같은 것을 설치하기도 했다. 이런 세트 디자인이 뭘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어쩌면 벌린저는 이런 스토리텔링을 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일종의 '입막음 선정주의' (hushed sensationalism)를 지향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이런 충동은 몇몇 장면의 극화에서 두드러지는데 유대인 포로들이 바비 야르에서 총살당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또 히틀러를 연기한 카롤리 코즈마는 말없이 연기했는데 감독이 끼어들어 발작을 일으킨 것처럼 연기하라는 지시를 받곤 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다큐멘터리라면 으레 등장하는 많은 자료들, 예를 들어 서부전선에서 있었던 일들은 주의가 필요하다는 자막과 함께 나오곤 했는데 이 시리즈에서는 사라졌거나 지나치듯 넘어갔다. 벌린저는 히틀러의 심리와 세계관이 어떻게 발전했는지에 관심을 집중했기 때문에 젊은 시절 오스트리아에서의 낙담이 1930년대 독일에서 권력을 쥐게 했는지, 또 그곳에서 소련과 싸우는 동부전선까지, 독일과 폴란드의 집단수용소로 옮겨가는 과정을 추적한다.
초점은 개인적인 동기가 어떻게 정치적인 힘을 얻는지에 맞춰진다. 따라서 벌린저와 동료들이 히틀러와 나치 독일의 초상을 강조하기 위해 선택한 것들이 트럼프와 이 시대 미국의 강경 우파가 영항을 미쳤을지 모른다고 느끼는 것을 감안하지 않고 이 시리즈를 시청할 수 없다.
그러나 제작진이 구축하고 얘기하지 않은 사례는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히틀러가 독일이란 나라가 권력을 잃었다고 격분하는 장면을 봤는데, 경제적으로 착취당하며 자유주의적인 도시 문화에 소외됐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먹혀든다. 그리고 극좌를 두려워해 중도파와 과격한 보수파가 손잡게 하는 것을 본다. 우리는 또 그가 자신에게 절대 충성할 것과 투쟁에서 자신을 편들어 약자를 굴복시킬 것을 요구하는 것을 본다. 우리는 공감 부족과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협함을 본다. 샤이러가 이 대목에 “난 그가 말한 것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그가 어떻게 말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런 여건에서, 떠별여진 모든 거짓은 높은 수준의 진실 자체로 받아들여졌다”고 말한다.
그 사례가 설득력 있는지 아닌지는 어쩌면 논점을 벗어난 것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의 현재 정치 지형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물이 누구인지, '심판대에 선 악마'가 누구인지는, 굳이 이름을 대지 않아도 대다수 미국인이 마음 속으로 이미 결정한 상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