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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을 싣고 달리는 식구 =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린 그해에 황영권(32)씨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그때 가족은 생애 첫 차를 장만했다. 진회색의 스텔라였다. 아버지는 차를 애지중지했다. 손재주가 있어 손수 차를 정비하곤 했다. 그 옆에서 함께 차를 만지고 뜯고 하면서 차와 정이 들었다. “집에 쭉 있었고 계속 봐온 차입니다. 무엇보다 가족의 역사가 담긴 또 하나의 식구죠.” 20년 지기인 차이지만 다루긴 조심스럽다. 황씨는 스텔라를 몰 땐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운전하고 다른 차가 끼어들면 늘 양보한다. 자칫 무리하다가 차도 운전자도 고생하기 때문이다. 출퇴근용 세컨드카를 따로 마련한 것도 2005년 사고 때문이다. “출근하다가 뒤에서 요즘 나오는 신차가 와서 살짝 박았어요. 그 차는 흠집 하나 없이 멀쩡한데 제 차는 범퍼가 내려 앉았죠.” 수소문 끝에 대구에서 부품을 구하긴 했지만, 작업방식이 요즘 차보다 복잡했다. 정비소는 수리비를 신차의 두배인 50만원을 불렀다. 가해자도 놀랐고, 황씨도 황당했다. 그 이후부터 사고는 사절, 무조건 안전운전이 철칙이다. 요즘 10대, 20대들은 스텔라를 모른다. 엠블럼도 요즘 현대차와 달리 HD라고 쓰여 있어 외제차냐는 질문도 가끔 받는다. 어르신들은 정말 반가워한다. 지난해엔 동호회원들과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수입차 한 대가 계속 따라왔다. 서해안고속도로의 휴게소에서 만난 그 수입차 오너 “경부선을 타고 가다 너무 반가워서 쫓아왔더니 서해안까지 왔다”며 웃었다. 주말마다 스텔라를 점검하는 게 황씨의 낙이다. 딱 한 번 사고 나서 견인한 거 외엔 차가 갑자기 선 적은 없다. 더 이상 수리를 못하거나 달리지 못할 때까지 황씨는 스텔라를 퍼스트카로 삼을 생각이다.
◇ 국산차 역사 담은 타임머신 = “포니1을 거의 다 복원했습니다. 곧 달릴 수 있어요.” 이일혁(48)씨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찌그러지고 문짝이 떨어져 나간 79년식 포니1을 2년 가까이 걸려 되살려냈기 때문이다. 그에게 포니1은 단순한 올드카가 아니다. 돌아가신 아버지 이명상(세라믹 전문업체 운영)씨가 개발한 점화플러그가 장착된 최초의 국산 고유의 차다. 그 아버지의 흔적을 찾기 위해 10여 년 전부터 옛날 차를 뒤적거리다가 올드카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철강회사를 운영하는 그는 차가 여러 대 있다. 그중 좋아하는 차는 81년식 코티나 마크Ⅴ. 포드의 부품을 수입해 현대차가 조립한 차다. 조립도 엉성하고 엠블럼도 현대차 대신 포드 마크가 붙어 있지만 그게 오히려 매력이다. “번호판을 붙인 코티나 마크Ⅴ는 전국에 두 대밖에 안 남았어요. 나머지는 번호판이 없는 영화촬영용이죠.” 번호가 있고 없고는 그에게 중요하다. 있으면 살아있는 차이지만 없으면 죽은 차이기 때문이다. 차는 박물관이 아닌 도로를 달려야만 진짜 차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우리나라에 한 대밖에 없는 56년식 노란색 뷰익 센추리도 여전히 도로를 달린다. 엔진이 고장 났지만 수리 끝에 그가 살려냈다. 그에게 올드카는 일종의 타임머신이다. “그 차를 타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우리 나이 남자들이 놀 데가 없잖아요. 그런데 올드카를 취미로 삼으면 가족과 함께 야외로 드라이브를 다닐 수 있으니, 이런 건전한 놀이문화가 없죠.”
현대 포니1 1976년 생산을 시작한 최초의 국산 고유모델. 이탈리아 디자이너 주지아로가 디자인했다. 경제적인 데다 내구성이 좋아 국내에 마이카 시대를 열었다. 왜건과 픽업트럭 등 가지치기 모델도 나왔다. 후계자인 포니2는 1982~1990년 생산됐다.
대우 로얄살롱 대우차의 로얄시리즈 중 하나. 호주 홀덴의 코모도어를 들여온 모델이다. 1980~1991년 생산된 2000㏄ 엔진의 중형차로 1980년대 초반 부의 상징으로 통했다.
현대 스텔라 1983년부터 1997년까지 현대차가 생산한 후륜 구동방식 중형차. 포니와 마찬가지로 디자인은 주지아로가 맡았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과 유지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쌍용 칼리스타 1992년 쌍용에서 OEM 방식으로 제작한 클래식 로드스터. 2년 동안 국내에서 판매된 차는 18대에 불과하다.
닛산 휘가로 1991년 일본 닛산자동차가 생산한 복고풍의 쿠페형 차. 한 해 동안 2만 대 한정 생산돼 인기를 끌었다. 트렁크 부분까지 접히는 캔버스톱을 단 게 특징이다.
올드카 올 가이드 올드카의 매력에 빠지기는 쉽다. 하지만 정작 올드카를 사려고 마음 먹으면 고려해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올드카를 사기 전에 알아둘 것들을 몇 가지 정리해봤다.
보관 요즘 차에 비해 올드카는 눈·비에 매우 취약하다. 또 누군가가 살짝 건드려서 사이드미러라도 부러지면 낭패다. 때문에 최고급차는 비를 맞혀도 올드카는 차고에 보관하는 게 올드카 매니어들이다. 하지만 외국처럼 몇 대씩 보관할 차고가 있는 집은 많지 않은 게 현실. 이 때문에 여러 대의 올드카를 갖고 있는 경우엔 전문 보관소에 맡기기도 한다. 한 달에 20만원 정도씩 주고 차를 보관하는 것이다. 비용 때문에 어렵다면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보관하는 것도 방법이다.
수리 올드카 매니어 중엔 좀처럼 여성운전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기계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올드카를 몰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 대부분 올드카 매니어들은 기본 정비 정도는 직접 한다. 전자장치로 중무장한 요즘 차와 달리 올드카는 구조가 비교적 간단해서 직접 정비도 가능하다고 한다. 외국엔 차량복원을 전문으로 하는 리스토어숍도 있지만 우리나라엔 올드카만 전문으로 하는 업체는 없다. 대신 오랫동안 정비를 해온 업체를 이용한다. 첨단장비로 진단·수리하는 요즘 차들과는 달리 올드카는 경험으로 수리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품 20년 이상된 올드카의 부품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 법적으로 완성차업체는 자동차를 생산한 뒤 8년 동안만 부품을 공급하면 되기 때문에 생산업체에도 부품이 없는 경우가 많다. 사고라도 나면 부품을 찾기 위해 전국을 수소문 해야 한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발전기·시동모터·연료펌프 등 중요 부품은 차에 갖고 다니는 게 좋다. 국산차보다 수입차가 부품을 구하기 더 힘들다. 해외사이트에서 주문해야 하는데 부품값보다 운송비용이 더 드는 경우도 많다.
운전법 일반차를 몰 듯이 올드카를 운전하면 차가 오래 못 간다. 소중한 차가 폐차장으로 가게 하지 않으려면 급발진·급가속·급정거 금지는 기본.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도 금물이다. 운전에만 집중해 조심스레 차를 몰아야 한다. 따라서 출퇴근용으로는 적당하지 않다. 시간에 쫓겨 급하게 운전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유를 갖는 게 올드카 운전의 첫째 조건이다.
보험 보험은 올드카 오너들의 골칫거리다. 보험사에서 대부분 자기차량손해(자차)보험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보험문제를 생각하면 역시 조심운전이 최선의 길이다.
동호회 최근엔 올드카 관련 동호회가 활성화돼 있다. 정기모임을 통해 친목을 도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동호회원인 기술자들로부터 도움과 조언도 받을 수 있다. 클래식카뱅크와 올드카코리아가 대표적이다.
글 한애란 기자 사진 박종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