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3: 12. 자기를 높이는 자
마 23: 12. 자기를 높이는 자 -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
우리는 주님을 본받는 자들로서 직분이 중해지면 중해질수록 더욱 자신을 낮추어 주님처럼 남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겸손과 섬김은 영적 성숙의 표가 된다.
1]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본문의 역설적 교훈은 자연법(natural law)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천국의 법을 반영한다.
본문이 전하는 것은 겸손과 봉사이지 겸손과 혼성된 노예적 봉사 행위나 바보스러움은 아니다. 종말의 심판에서는 스스로 높아지는 자를 낮추고, 낮아진 자를 높일 것이다.
* 겔 21: 26 -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관을 제거하며 왕관을 벗길지라. 그대로 두지 못하리니,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출 것이니라.
이러한 형태의 구절은 복음서에서 여러 군데 발견된다.
* 마 18: 4 -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 눅 14: 11 -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 눅 18: 14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빌립보서 2: 8-9에서는 '그리스도가 자기를 낮추시고'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자기 비하를 묘사하고 있다.
그가 보여준 겸손이나 타인에의 봉사는 굴욕적이고 노예적인 봉사 행위에 더럽혀지지 않았으며, 그가 행사하는 최고의 권위와 완벽히 조화되었다.
예수는 죄인의 형틀인 십자가에서의 최고의 겸손과 최상의 희생을 완수하신 후, 누구보다도 높임을 받으셨다.
* 빌 2: 8-11 –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 역설적인 의미의 본문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생각할 수 있다.
(1)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할 삶의 자세는 섬김의 자세이다.
다시 말해 훌륭하고 성숙한 사람, 존경받는 사람일수록 그 섬김과 겸손이 더 절실히 필요하다는 말이다.
(2) 참된 지도자는 자기를 낮추고 남을 존경하는 사람이다.
(3) 이러한 진리는 명령으로 강요되는 것이 아니다.
이 문장은 명령문이 아니다. 따라서 누구를 의식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인 사랑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며 자발적 양심의 명령으로 하는 것이다.
천국 윤리는 세상 윤리와 다르다. 세상에서는 큰 자가 섬김을 받는다.
섬기는 자보다 섬김을 받는 자가 높은 자이다. 그러나 천국과 교회 안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께서 자신을 낮추어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자기 몸을 희생하셨다.
* 마 20: 28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천국에서 가장 큰 자이신 주께서 가장 낮은 자리에 처하셨다. 우리는 주님을 본받는 자로서 우리의 직분이 중하면 중할수록 주님처럼 성도를 섬기는 자리에 처하여야 한다.
이렇게 자기를 낮추고 다른 형제와 자매를 위하여 봉사하고 섬기는 자는 주를 본받는 자로서 주의 인정을 받고 높임을 받을 것이다.
자기를 스스로 높이는 자는 자신의 죄악 되고 무가치한 정체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를 알지 못하는 자이다. 그는 주님의 물리침을 받거나 영적으로 심히 어린 자일 것이다. 겸손은 영적 성숙의 덕이다.
* 벧전 5: 5-6 –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주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를 받으신다.
교만한 자는 무가치하지만, 겸손한 자는 주께서 높이 들어 사용하신다.
우리는 교만한 직분자인가, 아니면 겸손한 봉사자인가? 우리는 참으로 주의 교훈을 따르며 주의 모본을 본받고 있는가?
2] 위대한 자
세상이 보는 '큰 자'에 대한 시각은 남을 지배하는 자를 위대하게 여기고 높이 평가한다.
본문에서도 보면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큰 자'였고 그들은 더욱 '큰 자'로 인정받기 위해 외식적인 행위로 일관하였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러한 세상 기준을 용납하지 않으시고 새로운 기준을 우리에게 주셨다. 이러한 주님의 기준으로 우리는 비로소 '큰 자'에 대한 바른 의미를 파악함과 아울러 우리도 주님께서 요구하는 진정한 '큰 자'가 될 수 있다.
(1) 남을 섬기는 자
섬기는 일은 매우 비천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적 기준일 뿐 하나님의 기준에서 보면 결코 천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을 섬기는 참된 봉사자를 도리어 높여 주셨다. 주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종의 형체를 가지시기까지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끓게 하셨다.
* 빌 2: 5-11 –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진정 큰 자는 남을 섬길 줄 아는 자이며, 그러기 위해 자신을 쳐 복종시키는 자다.
* 엡 5: 21 -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따라서 자기를 낯추는 자가 높아진다.
* 막 10: 43-44 –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 눅 14: 11 -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 눅 18: 14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기독교의 신앙 원리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적용되는 만고의 진리요 하나님의 거룩한 약속이다. 자기를 낮춤은 교만한 마음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겸손의 행위다.
겸손한 자는 결코 자신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광을 가로채는 법이 없다. 남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하는 법이 없다. 오직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긴다.
혹 자신을 낯추는 것을 자학이라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결코 자학이 아님은 자기 자신을 낮출 만큼 겸손한 자는 자신의 본분을 알 뿐만 아니라 자신이 어디에 처해야 할지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할지에 애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 희생하는 자
기독교인으로서 인간 상호간의 인격적 만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과 함께 희생하는 정신이다.
이 희생정신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을 헐고 하나님과 인간들 사이의 인격적 만남을 위해 속제물로 희생되기를 자처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다.
희생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점에서 고귀하다. 천국은 바로 이러한 희생의 정신을 소유한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누가 자기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없이 묵묵히 희생하는 자, 그러한 자만이 하나님의 가치관에서 볼 때 큰 자요 높임을 받게 되는 위대한 자이다.
(3) 사랑하는 자
① 사랑은 용기가 필요하다.
말은 쉬우나 행동으로 표현하기에 가장 어려운 것도 사랑하는 일이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고 허물을 감싸주고 위로해 준다. 심지어는 원수까지도 사랑한다.
그래서인지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요,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실제로 사랑을 표현하고 행동하기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결국 그 용기 역시도 사랑의 힘으로 가능하며, 진정 사랑을 소유한 자는 자신이 먼저 남을 섬기고 겸손해지며, 또한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것이다.
② 사랑은 실천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사랑을 구체화하는 자, 이러한 자야말로 가장 위대한 자요, 하나님께 합당한 자라 할 수 있다.
기독교의 윤리는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구체화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현하는 데 있다. 이처럼 우리에겐 사랑의 실천이 필요하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가치관은 인간의 가치관과는 시야가 전혀 다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가치관으로만 보게 되면 진정 위대한 자를 아주 작은 자로 여길 수도 있다. 또한 작은 자를 위대한 자로 오판할 수 있다.
우리의 시야를 주님께 의지해야 한다. 또한 나 자신 스스로가 먼저 섬기고, 낮아지고, 희생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것은 주님께 칭찬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연하게 해야 할 본분이다.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겸손과 섬김은 영적 성숙의 표가 된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기에 세상에서 얻는 것은 모두"덤"이다
욕심내지 말고 마음 비우는 오늘 이시길 바라며 늘~건강하세요.💖
겸손과 섬김은 영적 성숙의 표가 된다.
설교 감사합니다.
겸손과 섬김은 영적 성숙의 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