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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0. 29. 주일 큐티
하박국 1:1 ~ 11
하박국의 호소와 하나님의 응답
※ 하박국
하박국서는 하박국 선지자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은 선지서입니다. “하박국”(חֲבַקּוּק, 하바쿡)은 ‘포옹하다’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선지서에서 자신을 선지자로 소개하는 선지자들은 하박국을 포함하여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뿐입니다. 이러한 것을 미루어 짐작해 볼 때 하박국은 직업적인 선지자였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박국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음악적인 표현들(3:1 “시기오놋”, 3:19 “영장”)을 사용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찬양을 담당하던 레위 자손으로 보기도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활동 연대는 여호야김 왕이 유다를 통치하고 있을 때로 봅니다. 그 이유는 하박국 1장 6절에서 전하는 갈대아 사람은 바벨론을 말하며 그들이 유다를 침략했던 B.C. 606년의 일들이 수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시야 왕이 애굽과의 전투에서 바로 느고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3개월간 왕위에 있다가 애굽으로 납치되어 갔습니다. 그 자리를 이어 동생인 여호야김이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애굽 왕의 환심을 사고 사치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백성들로부터 많은 세금과 노동력을 착취하였습니다.
당시(B.C. 612 ~ 605년경)에는 팔레스틴의 패권이 바뀌는 역사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패권을 쥐고 있던 앗수르가 신흥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수도 니느웨가 함락되고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 것입니다. 또한 B.C. 605년경 바벨론이 애굽과 싸워 승리하면서 고대 중동 세계의 패권이 앗수르에서 바벨론으로 완전히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진작에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우방이라 생각한 애굽과 바벨론의 싸움에서 이 눈치, 저 눈치 보아야 하는 고래 싸움에 끼어버린 새우와 같은 신세가 된 남유다는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되고만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B.C. 605년 제2차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을 대파한 바벨론은 유다인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대하36:5 ~ 8).
요시야 왕은 종교개혁, 사회개혁을 하고자 했지만, 그가 너무나 허무하게 죽은 후에 우여곡절 끝에 세워진 여호야김 왕의 폭정으로 인하여 국가적 혼란과 도덕적 부패, 종교적 타락이 이어지게 되어 백성들은 점점 악해져만 갔습니다. 하박국서는 이런 혼란스러운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학정과 외세의 침략을 앞둔 상황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탄원하게 된 것입니다.
관찰 :
1) 도입
- 1절. “선지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라” => 하박국은 자기 자신을 선지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학개와 스가랴와 같이 그는 직업적인 선지자였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박국은 다른 선지자에 비해서 엄중한 예언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경고”(מַּשָּׂא, 마샤)는 ‘짐’, ‘예언’, ‘신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엄중성을 나타내고, 원문에서는 “הַמַּשָּׂא” 정관사를 붙여서 맨 앞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매우 강한 경고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2) 하박국의 호소
- 2절.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 하박국은 하나님과 싸우듯이 쟁론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얼마나 부르짖었기에 이렇게 감히 주장할 수 있었을까요?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을 찾았었는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박국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향하여 따지고 있는 이유는 “강포”(חָמָס, 하마스) 때문이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강포’는 자기 동료마저 해칠 정도로 도덕적으로 극심하게 파괴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유다의 왕 여호야김의 폭정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백성의 고통으로 인하여 하박국은 하나님을 향하여 수없이 외쳤지만 하나님이 응답을 하시지 않으셨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3절.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어찌하여”(לָמָּה, 라마)는 애가의 전형적인 표현으로 문장 전체를 담아서 슬픔을 말하는 표현입니다. 본문은 민수기의 축복과 정반대의 일들이 일어났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야김이 하나님을 떠나고,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하고 있음에도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시지 않고 내버려 두심에 대한 속상함을 하나님께 토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 4절.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 “율법이 해이”해졌다는 것은 율법을 수행하고자 하는 열심이 식어졌다는 말입니다.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는 당시의 상황이 공의로운 사회가 되기 위한 소망이 끊어졌다는 말입니다. 악인이 너무 많아져서 의인이 꼼짝 못하게 된 상황을 하박국은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재판이 굽어지게 시행되고 있고, 하나님을 참되게 믿는 자들이 아주 적어졌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3) 여호와의 응답
- 5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 하나님은 하박국 선지자에게 대답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박국에게 하나님이 심판을 멈추거나 다스림을 포기하신 것이 아님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없던 일을 준비하고 계시고 그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일을 믿지 못할 일을 이루시겠다는 말씀이십니다.
- 6절.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 하나님은 갈대아 사람 즉 신흥 바벨론을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사납고, 성급한 백성들인지를 누구보다 잘 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일으키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박국서의 저작 시기를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 7절. “그들은 두렵고 무서우며 당당함과 위엄이 자기들에게서 나오며”=> “갈대아 사람”(כַּשְׂדִּים, 카세딤)은 앗수르에서 출토된 서판에 의하면 ‘칼두’로 불리우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유브라데 강과 티그리스 강 옆의 페르시아만과 바벨론 남단 중간에 위치한 나라였고, 도시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곳 거민들은 오랜 역사 속에서 앗수르 제국의 사람들에 대하여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소규모의 목축과 수렵으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보폴라살이 B.C. 625년에 니느웨를 점령하여 앗수르를 멸망시키고 갈대아 왕조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느부갓네살 때에 바벨론인들이라고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이 갈대아 인들은 아브라함의 형제인 나홀의 아들 게셋의 후손(창 22::22)이었습니다. 이들이 순식간에 나라를 세우고, 앗수르를 멸망시킨 것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박국에게 침략자들의 모습을 상세하게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심판하거나 다스리는 통치권이 자신들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여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가운데 주변 국가들을 잔혹하고 악독하게 이스라엘을 비롯한 주변의 나라들을 지배하고 다스렸습니다.
- 8절. “그들의 군마는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 이리보다 사나우며 그들의 마병은 먼 곳에서부터 빨리 달려오는 마병이라 마치 먹이를 움키려 하는 독수리의 날음과 같으니라” => 바벨론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빠른 속도로 공격할 것임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남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가까운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9절. “그들은 다 강포를 행하러 오는데 앞을 향하여 나아가며 사람을 사로잡아 모으기를 모래 같이 많이 할 것이요” => 유다의 강포를 행하던 자들이 더 강력한 자들에 의해서 강포를 당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하박국이 따지고 드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비교할 수 없는 큰 스케일 속에서의 대답입니다. 모래같이 부서진 유다는 무기력하게 끌려가게 될 것임이 예언되고 있는 것입니다. 남 유다는 이 말씀과 같이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20여년에 걸쳐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 10절. “왕들을 멸시하며 방백을 조소하며 모든 견고한 성들을 비웃고 흉벽을 쌓아 그것을 점령할 것이라” => 갈대아인들은 강력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그들은 매우 교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교만함을 하나님께서 지적하시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바였고, 결국 신흥 바벨론은 그 교만을 하나님이 치심으로 빠르게 망하게 됩니다.
- 11절. “그들은 자기들의 힘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는 자들이라 이에 바람 같이 급히 몰아 지나치게 행하여 범죄하리라” => 앞에서도 말씀하셨듯이 갈대아인들이 세워지게 된 것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럼으로 인해서 이들은 제멋대로의 힘을 과시하고 파괴를 일삼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범위를 자기 맘대로 넘어가게 됨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모면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공의로 심판하신다면 이방은 오죽하겠습니까!
가르침 :
1) 하박국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는 세대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선포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맡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입을 다물고 세상과 타협했다면 그는 고생스러운 삶이 아니라 백성들의 숭상을 받고 호의호식하면서 떵떵거리고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박국은 그러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을 부여받고 그것에 충성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박국은 그러한 삶에서 부딪히는 커다란 문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2) 여호야김의 폭정에 대해서 하나님께 아뢰고 따지고 했지만 변하지 않는 유다의 상황에 대해서 안타까워하고 또 안타까워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박국은 자신이 짐승이 울부짖듯이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찾았지만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응답하시지 않으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3) 하나님의 응답은 유다의 패악은 더 패악한 자들에 의해서 박살이 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은 갈대아 인들을 통해서 이뤄질 것인데, 이들 역시 하나님이 일으키신 자들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 다스리시는 분이 아니시라 역사 전체를 주관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4) 하나님은 갈대아인들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주 적은 자들, 나라를 이루고 앗수르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이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일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도 기회를 주셨지만 갈대아인들은 스스로 교만해서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깨닫지 못함으로 인해서 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을 결코 계속해서 쓰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약 20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앗수르 제국을 갓 세워진 나라가 무너뜨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막강한 나라가 70여년 만에 무너진다는 것은 그 또한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도 하나님의 선지자들에게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바국 선지자가 고통스레 부르짖은 내용에 응답하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응답하시고 계셨다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적용 :
1) 선지자 하박국의 안타까움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답지 못하게 사는 것이었고, 그것은 다윗의 후손으로 세워진 여호야김 왕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모든 문제의 핵심은 아니지만 그로 인하여 발생한 학정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속상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 세상의 문제에 대해서 귀 닫고 입 닫고 사는 것이 좋은 방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입을 벌려 부르짖고, 귀를 열어 하나님의 다스리시는 방식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은 분명히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지금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믿음은 바로 그런 전제 속에서 대한민국을, 북한을 바라보아야 하고, 미얀마를, 중국을, 일본을, 미국을, 우크라이나를, 러시아를, 이스라엘을, 하마스를, 세계 열방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3) 미얀마에서 겪는 일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 예상하고 싶지 않았던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모르신 것이 아니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들을 다 동원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