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용’은 지금 사막에서 ‘보물찾기’ 중
[기획 인터뷰] 플래시 애니메이터 팀 ‘오인용’
이재영 인턴기자 redin4u@naver.com
월드컵 열기가 한창 달아오르던 지난 2002년 5월, 다섯 남자로 구성된 괴 집단이 출현했다. 잘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고 나와 ‘창작 애니메이션’에 대한 의욕만을 불태우던 이들은 스스로를 ‘오인용’이라고 불렀다. 인터넷 디지털콘텐츠 문화에 한 획을 그은 창작 플래시 애니메이터 집단의 탄생이었다.
온 국민이 가수 유승준의 병역 기피에 분노할 때, 이들 ‘오인용’은 플래쉬 애니메이션 <연예인 지옥>을 통해 ‘스티붕 유’를 가차 없이 군대에 ‘쳐’ 넣었다. 여중생 두 명이 미군의 전차에 깔려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들은 <미안하다, 얘들아>를 통해 ‘무자비하게’ 미군을 응징했다.
▲ ‘오인용’의 작품 중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플래시 애니메이션 <신 연예인 지옥>. 군대 문화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엽기발랄한 개그로 네티즌들의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학원 폭력을 다룬 <폭력교실>부터 회사에서의 성추행을 그린 <바나나걸>에 이르기까지, 오인용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에서 결코 눈을 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끈적끈적한’ 이슈를 엽기발랄한 개그와 신랄한 풍자로 막힘없이 그려냈다. 네티즌들은 솔직한 이들의 작품에 열광했다.
물론 고난도 있었다. 가수 문희준을 패러디한 ‘무뇌중’을 <연예인 지옥>에 등장시키면서 명예훼손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팬 분들의 응원 덕에’(인터뷰 내내 이들은 ‘팬들’을 ‘팬 분들’이라고 높여부르며 팬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오인용은 다시 일어섰고, 최근 홈페이지를 리뉴얼하며 재도약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독특한 개성으로 무장하고 인터넷 디지털콘텐츠계에 데뷔한지 올해로 5년째. 장석조(데빌), 장동혁(씨드락), 정지혁(혁군), 민상식(씩맨), 천상민(천팀장)으로 구성된 오인용의 다섯 남자는 지금도 꿈을 위해 열심히 칼을 갈고 있었다. 이제 서른의 나이로 접어든 그들을 직접 만나봤다.
오해 하나 : 오인용은 실제 모습도 엽기적이다?
“팬 분들이 저희를 실제로 만나보시고는 제일 처음 하시는 말씀이 ‘작품이랑 많이 틀리네요’, ‘생각보다 평범하시네요’입니다. 마치 캐리커쳐의 그것처럼 어떤 성격이나 특징을 극대화해서 표현했을 뿐입니다.”
▲ ‘오인용’ 다섯 남자들의 실제 모습. 왼쪽부터 장동혁(씨드락), 장석조(데빌), 민상식(씩맨), 정지혁(혁군), 천상민(천팀장). ©뉴스미션
오인용의 작품 <근성 오인용>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웃음의 말미에 ‘그런데 이게 정말 진짜로 있었던 일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웃음참기 내기를 하면서 웃은 사람에게 거침없이 펀치를 날려 코피를 터뜨리는 모습이나, ‘똥 오래싸기 내기’를 하면서 화장실에 음식을 싸들고 들어가 12시간씩 버티는 모습은 일상생활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기 때문이다.
이런 물음에 대해 오인용의 대표 장석조 씨(데빌)는 허허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저희 일상은 대부분 작업을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일상을 그대로 작품화한다면 정말 재미가 없겠죠. (웃음) 한마디로, 실제로는 못하는 과감한 짓들을 작품에서 마음껏 오바해서 표현해보는 겁니다.”
네티즌들이 이들의 작품에서 배설의 쾌감을 느끼듯, 이들 자신도 자신들의 작품에서 배설의 쾌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이들의 경쟁적인 일상을 그린 작품 <근성 오인용>이 대부분 허구 또는 과장이라는 말인데, 실제로 오인용은 팀 내의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1997년부터 같이 지낸 10년지기 친구들이예요. 그냥 옆에 있으니 당연히 있는, 마치 형제같은 친구들이죠. 작업할 때 서로를 이해해주고 배려해주는 ‘좋은 친구들’입니다.”
실제 이들은 ‘계원예술대’를 함께 졸업한 동기들이다. 같은 회사를 다니다 뜻을 모아 같은 창작 집단을 시작한 이들은 하나같이 “언제나 함께 있다 보니 오히려 특별한 에피소드가 생각이 안나는 관계”라고 말했다.
오해 둘 : 오인용은 하드코어한 작품만 만든다?
“저희는 그냥 ‘만들고 싶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 중에 사람들의 공감을 많이 얻었던 것이 하드코어성을 띤 작품들이었죠. 하지만 그것은 재미를 주기 위한 한 가지 소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폭력적인 두 친구를 그린 <씩맨 아맨>이나 <연예인 지옥>, 본격 풍자추리극 <중년탐정 김정일>을 접한 사람들이라면 오인용을 ‘엽기 코드’로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여과 없이 피가 터지는 폭행 장면에 ‘야이 X새꺄’라는 욕설이 난무하는 이들의 작품은 말 그대로 ‘하드코어’ 자체다. 예의와 가식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저희는 그저 사람들이 ‘오인용의 작품들’을 보고 재미를 느끼고,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드코어성’은 오인용 작품의 재미 중 하나이구요. 앞으로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여러 작품들을 내놓을 생각입니다.”
실제로 이번에 책으로 발간된 카툰북 ‘면제받지 못한 자’는 오인용 멤버 중 한 명인 장석조 씨(데빌)가 직접 경험한 군대이야기를 솔직히 그려내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감동을 끌어내고 있다.
오해 셋 : ‘오인용’팀은 플래시 애니메이션만 만든다?
“오인용 멤버 모두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애니메이션 학도입니다. 플래시는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한 한 가지 도구에 불과하고요. 원래 ‘오인용’은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세계무대에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결성된 팀입니다. 하지만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뜻하지 않게 큰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웃음) 지금까지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됐네요.”
이들은 아직까지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세계무대에서 인정받는 것’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10년 전의 꿈을 아직도 붙잡고 있다는 말인데, 정말 오인용다운 근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들의 무대는 플래시 애니메이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기획중인 것은 물론 라디오방송, 웹툰, 성우까지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올해를 ‘상업적으로도 성공해서 오인용의 기반을 다지는 해’로 삼고 여러 가지 사업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플래시 이전에 카툰을 했기 때문에 ‘웹툰’은 상당히 익숙합니다. 성우도 기존의 프로 성우님들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저희 나름대로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필요에 의해 시도해봤던 것인데 팬 분들의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플래시 애니메이션 시장은 교육용 플래시 개발 쪽으로 많이 기울어졌다고 한다. 오인용같은 창작 애니메이션 업체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도 이들은 ‘그 누구도 가본 적 없는 자신들만의 길’을 가려 한다.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최초의 창작 애니메이션 집단’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오인용이 펼치고 있는 수많은 활동들도 결국 이 한 점에 귀결된다.
“저희는 창작 애니메이션으로 먹고 살기 위해 많은 사업적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선례가 없어서 많이 힘들지만(웃음) 방법은 반드시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상업성’ㆍ‘재미’ 두 마리 토끼 잡고 싶어
‘오인용’은 UCC를 비롯한 국내 디지털콘텐츠 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을 ‘수익성 부재’로 봤다. 광고 수익 외에는 아무런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앞으로 디지털콘텐츠 시장이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디지털콘텐츠에 대한 수익구조가 마련되고 그에 따른 재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희들이 농담으로 ‘만약 우리가 미국에서 이 정도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면 지금쯤 떼 돈 벌지 않았을까?’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현재 내수시장은 어느 분야건 한계가 분명합니다. 애니메이션 시장도 투자를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고요. 빠른 시일 내로 시장이 좋아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열정을 가지고 창작에 매진하시는 분들이 있는 한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오인용은 자신들의 심정을 ‘보물찾기하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오랜 자본의 가뭄에 메마른 디지털콘텐츠 시장과 애니메이션의 사막에서 ‘상업성’과 ‘재미’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오아시스를 찾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자신들의 ‘내부에 있는 산’인 동시에, 오인용이 넘어야 할 가장 큰 과제라고도 말했다.
‘열심히 한다’라는 말 듣고파
앞으로의 포부를 묻는 질문에 이들은 “꾸준히 이 일을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또한 “‘오인용 엄청 떴네’가 아니라 ‘오인용 열심히 하네’라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꾸준한 작품활동과 계속 변하기 위한 노력으로 팬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것이다.
“예전처럼 폭발적인 인기는 솔직히 부담스럽습니다. 앞으로는 꾸준히 좀 더 재밌고, 좀 더 공감 가는, 여러 연령대의 분들이 보실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합니다. 사업적인 계획도 많이 있습니다. 모바일, 출판 쪽은 이미 진행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오인용 최초의 웹보드 게임도 출시됩니다. 앞으로도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기사로 나간다는 것에 개의치 말고 한 마디씩 해 달라’는 말에 다섯 남자는 ‘정말 오인용스럽게’ 한 마디씩 대답했다.
- 혁군 : 뭘 개의치 말고 한마디씩 허니? 장난하는 거여?
- 씩맨 : 그랴~ 말 안해도 원래 기사 이런 건 신경 안쓰는 주의여~
- 데빌 : 웅컁컁!
- 씨드락 : 나 얼굴 안 길다 이놈들아!
- 천팀장 : 너 길어 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