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그림]바람이 분다, 르네상스의 바람이 - 보티첼리 ‘프리마베라(Primavera)’
▲ 산드로 보티첼리, <프리마베라>, 1482년경, 패널에 템페라, 202<E6AF>x314<E6AF> ,
우피치 갤러리, 피렌체 (Uffizi Gallery, Florence)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해
부부의 행복 기원하는 작품
섬세하고 우아한 필력 돋보여
긴 겨울 방학이 끝나고 신학기를 맞았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도 사고 없이 무사히 끝나 안도의 숨을 쉬면서 새로운 학기를 위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딘다. 이런 순간을 여러 번 거치면서 한 해가 참으로 쉽게 지나간다는 것을 느낀다. 꽃샘추위도 남아있고 5월이 돼서야 봄을 느낄 수 있는 요즘, 마음속으로 봄이 오는 소리를 듣고 싶은 것은 왜일까.
개나리와 동백, 벚꽃을 서울에서 보려면 아직도 한 달 넘게 기다려야 하기에, 오늘은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Primavera)’를 감상해본다. 봄을 의미하는 프리마베라는 ‘봄의 알레고리’로, 이탈리아 화가인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가 제작한 대표작이다. 현재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있는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 중이다(이탈리아어 '우피치'는 영어 '오피스'에 해당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학과 예술을 꽃피우게 했던 유명가문인 메디치가에서 의뢰한 작품. 피렌체는 이탈리아 특유의 문학과 예술이 싹텄던 곳이다.
‘프리마베라’는 1482년에 결혼한 것으로 보이는 로렌조 디 피에르프란체스코 데 메디치(Lorenzo di Pierfrancesco de' Medici)를 위한 선물로 제작됐다. 일종의 결혼 선물이지만, 서민들은 꿈꿀 수 없는 호화품이다. 템페라로 제작된 이 작품은 피렌체 교외의 ‘빌라 카스텔로(Villa Castello)’에 전시됐다가 이후, 우피치 미술관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보티첼리는 같은 빌라의 벽장식을 위해서 ‘비너스의 탄생’을 제작했으며, 신랑 신부가 봄의 기운을 마시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기원하는 축복이 담긴 작품이다. 고대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보티첼리는 고대 그리스 로마 미술에서 볼 수 있었던 부조인 프레스코(fresco)처럼 그림을 길게 수평으로 그렸다. 비너스가 화면 중앙에 서 있으며, 왼쪽으로는 삼미신(진, 선, 미)이 함께 손을 잡고 춤추고 있다. 하늘거리는 옷 사이로 여신들의 살이 살짝 비친다. 이탈리아 여성들이 보통 흑발인 것을 생각하면 그림 속의 여신들이 금발의 미인인 점은 아이러니할 정도이다. 화면 맨 왼쪽에는 신과 인간들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하는 ‘에르메스’가 하늘 위를 쳐다보고 있다. 비너스 오른쪽에는 꽃 장식을 한 드레스를 입은 봄의 여신이 꽃을 뿌리고 있고, 그 옆으로는 바람의 신이 꽃의 여신을 유혹하며 힘차게 서풍을 불어댄다. 정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왼쪽 화면과 달리, 오른쪽은 동적이다. 수많은 꽃과 식물들이 화면의 하단에 뿌려져있다. 꽃을 연구하는 이들이 이 그림을 보고 당시의 식물군을 연구할 수 있을 정도로 보티첼리의 필력은 섬세하고 우아하며 아주 세밀한 편이다.
인물들은 대부분 장신이며 아주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몸매를 자랑한다. 여성들의 배가 불룩하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그림 속 여신들이 임신을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신들은 임신한 모습이 아니라 당시 가장 아름답게 여겨졌던 이상적인 몸매를 자랑한다. 에르메스를 제외하면 여성들이 살이 많이 찐 것 같지만 아름다움은 늘 시대마다 달라지기 마련이다. 보티첼리의 그림은 감각적이다. 봄이 오는 소리, 봄이 내품는 꽃향기를 맡을 수 있고, 살랑거리는 봄바람을 그림 속에서 느낄 수 있게 한다. 하늘거리는 옷감 사이로 비친 여성들의 뽀얀 살결은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느낌마저 들게 한다.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가 중세회화에서는 엿볼 수 없었던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르네상스를 향하는 새로운 바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비너스의 얼굴을 마치 성모 마리아의 얼굴처럼 온화하게 표현했고, 그림 속에는 세속적인 것과 이상적인 것이 한 화면에서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신플라톤주의에 관심이 많았던 예술가와 후원자. 긴 겨울이 지나고 우리에게도 봄, 그리고 새로운 바람이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감쌌으면 한다.
정연심 홍익대 교수
출전 / 한국교직원신문 2015-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