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올 출판사에서 이사랑 시집 ‘적막 한 채’가 나왔다.
이사랑 시인은 전주 출생으로 계간 ‘다시올 문학’으로 등단하여 수주문학대상을 수상했다.
나호열 시인이 해설을 쓴 이 시집은 4부로 나누어 71편의 시를 싣고 있다.
그 중 몇 편을 옮겨 요즘 한창 피고 있는 백합을 곁들인다.
[시인의 말] 무값
무의 값이 아닌 무값 내 시가 그렇다! 밑천 안 들이고 받아쓰기 한 내 시집은 값이 없다 그래서, 0원 영원이다
♧ 적막 한 채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고요가 움트는 신생의 시간 가위로 어둠을 오려냈더니 거기 적막 한 채 보인다
시가 뭔지도 모르고 규격이나 틀도 모르고 거침없이 형식을 파계하고 석 달 열흘, 무엇에 홀린 듯
적막강산에 지은, 시의 집 적막 한 채!
♧ 자신
몸을 신으로 모시고 사는 나는 나 자신을 믿는다
자신을 믿고 사는 나는 내 몸이 신이다
하늘 무서운 줄 알라며 하느님이 ‘까불지 마라’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 자신은 잡신 축에도 못 끼는…
♧ 간을 보다
새 학년 새 학기로 올라간 아이들 먼저 선생님 간을 본다고 한다
간 잘 맞는 부부가 맛있게 잘 살 듯이 친구도 간이 맞아야 맛있는 친구다
신선한 재료에 양념을 듬뿍 넣어도 간 안 맞으면 맛없는 음식처럼 시도 그렇다
누군가 지금 내 시의 간을 보고 있다 짠가? 싱거운가?
♧ 너에게 가는 길
사막에서 낙타는 한 그루 나무다
나그네가 나무 그늘에 기대어 생각한다
추상적 사랑이라는 신기루 그것이 행복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때만큼 외로울 때가 또 있을까?
나무와 걸어가는 사막에 모래바람이 분다
너를 찾아가는 길 참, 멀다!
♧ 내 가슴에 샘 하나 있다
눈물을 길어 밥을 짓고 시를 짓는다
그 샘은
고요를 숙성시키는 침묵의 샘물 수천 미터 지하 암반수 퍼내면 퍼낼수록 샘 솟는
가슴의 샘
어둠을 길어 올리면 달이 올라오고 적막을 길어 올리면 별이 올라오고 그리움을 길어 올리면 한 두레박
눈물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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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김창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