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光化門)
서정주
북악(北岳)과 삼각(三角)이 형과 그 누이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가다가
형의 어깨 두에 얼굴을 들고 있는 누이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가다가
어느 새인지 광화문 앞에 다다랐다.
광화문은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宗敎)
조선 사람은 흔히 그 머리로부터 왼 몸에 사무쳐 오는 빛을
마침내 버선코에서까지도 떠받들어야 할 마련이지만,
왼 하늘에 넘쳐르르는 푸른 광명(光明)을
광화문 – 저 같이 의젓이 그 날갯죽지 위에 싣고 있는 가도 드물다
상하 양층(上下兩層)의 지붕 위에
그득히 그득히 고이는 하늘
위층엣 것은 드디어 치일치일 넘쳐라도 흐리지만
지붕과 지붕 사이에는 신방(新房) 같은 다락이 있어
아래층엣 것은 그리로 왼통 넘나들 마련이다.
옥(玉)같이 고우신 이
그 다락에 하늘 모아
사시라 함이렷다.
고개 숙여 성(城) 옆을 더듬어 가면
시정(市井)의 노랫소리도 오히려 태고(太古) 같고
문득 티며든 머리 위에선
낮달도 파르르 떨며 흐른다.
(『현대문학』 8호, 1955. 8)
[어휘풀이]
-북악 : 북악산, 서울 경복궁 뒤쪽에 있는 산
-삼각 : 삼각산, ‘북한산’의 다른 이름.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의 세 봉우리가 있어
이렇게 부른다.
-소슬한 : 쓸쓸한, 고요한
[작품해설]
이 시는 광화문의 광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의 고유 정신을 시화(詩化)한 작품이다. 시이은 광화문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여 한국적 광명(光明) 사상을 표현한다.
1연에서 화자는 북악산과 삼각산을 오누이에 비유함으로써 국토에 대한 혈연적 친근감과 다정함을 표현한다. 이렇게 화자는 국토에 대한 사랑을 간접적으로 그러내면서 한편으로는 ‘광화문’의 위치를 보여 주고 있다.
2연에서는 광화문의 숭고한 모습을 우리 민족의 광명 사상이 깃 든 종교와 같은 것으로 파악한다. 즉 ‘광화문’이라는 하나의 건축물에서 ‘광명’의 사상을 찾아낸 후, 그것을 전통적 곡선미와 결합시킨다. 화자는, 버선 끝을 뾰족하게 만들어 하늘로부터 오는 밝은 빛을 떠받들고 사는 우리 민족과 ‘날갯죽지’[양쪽 기와지붕]에 푸른 광명을 의젓하게 싣고 있는 광화문의 자태(姿態)를 예찬한다.
3연은 2연의 부연 단락으로서 한국의 전통적인 미(美)를 하늘에 연결시켜 광화문 지붕 위에 그득히 고인 하늘을 노해함으로써 우리 민족이 평화를 사랑하는 순결한 민족임을 강조한다.
4연은 광명과 평화의 사상을 지닌 광화문의 상징적 의미를 말하는 부분으로, 우리 민족이 항상 어질고 고운 마음씨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5연에서 화자에게 시정의 노랫소리는 아직도 옛 노래처럼 정겹게 들린다. 또한 문득 고개를 돌려 화자가 바라본 낮달 역시 옛 하늘에서 보던 대로 여전히 우리 민족에게 광명의 대상으로 떠 있는 것이다.
[작가소개]
서정주(徐廷柱)
미당(未堂), 궁발(窮髮)
1915년 전라북도 고창 출생
1929년 중앙고보 입학
1931년 고창고보에 편입학, 자퇴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어 등단
시 전문 동인지 『시인부락』 창간
1946년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결성, 시분과 위원장직을 맡음
1950년 종군 위문단 결성
1954년 예술원 종신 위원으로 추천되어 문학분과 위원장 역임
1955년 자유문학상 수상
1977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2000년 사망
시집 : 『화사집』(1941), 『귀촉도』(1948), 『흑호반』(1953), 『서정주시선』(1956), 『신라초』 (1961), 『동천』(1969), 『서정주문학전집』(1972), 『국화옆에서』(1975), 『질마재 신화』 (1975), 『떠돌이의 시』(1976), 『학이 울고간 날들의 시』(1982), 『미당서정주시선집』 (1983), 『안 잊히는 일들』(1983), 『노래』(1984), 『시와 시인의 말』(1986), 『이런 나
라를 아시나요』(1987), 『팔할이 바람』(1988), 『연꽃 만나고 가는 사람아』(1989), 『피
는 꽃』(1991), 『산시(山詩)』(1991), 『늙은 떠돌이의 시』(1993), 『민들레꽃』(1994), 『미당시전집』(1994), 『견우의 노래』(1997), 『80소년 떠돌이의 시』(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