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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홈페이지 글 인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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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뽀 康?村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황수녀와 나는 leibo 강복촌을 방문하여 수녀들이 머물고 있는 곳에서 걸어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나환우촌을 방문하였다.
나환우들에게 줄 사탕을 준비하여 수녀들과 나는 먼저 길을 나섰고,
함께 일하는 Bob수사님은 마을의 노새를 빌려 타고 떠났다.
우리는 마을에 도착하여 먼저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그들의 신발을 벗게 하고
한분 한분의 발의 상태를 점검하고 가져간 사탕을 나누어 주면서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이동해 갔다.
한 곳에서 나와 수사님이 나환우 한 분의 발을 점검하고 있는데,
그 마을 사람들이 와서 우리 보고 나환우의 젊은 아들을 한번 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발길을 돌려 젊은 친구가 누워 있다는 집을 방문하였는데,
대낮인데도 집안이 컴컴하여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 그 친구를 밖으로 데리고 나오라고 하여 땅바닥에 누운 그를 살펴보니 상태가 심각한 것 같았다.
친척이 가져다 준 병원 기록을 보니 그는 올해 21세의 이족 청년으로 결핵성 뇌막염으로 진단받았고,
벌써 몇 일째 물 한 모금 못 마셨다는 것이었다.
이제 갓 스무 해를 넘긴 나이의 그 청년의 얼굴은 나이든 노인의 얼굴이었고 눈동자는 풀려 있었고
의식도 거의 없는 채 사지는 풀려 있었다.
우리(황수녀와 수사님과 나)는 서로 의논하여 그 청년 주위에 모여 먼저 그를 위해 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전에 내가 대만의 나환자 협회에서 나온 간행물에서 읽은 적이 있는 이곳 사천성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만 출신의 張 의사에게 연락을 해 보라고 황 수녀에게 제안을 하여 연락을 해보니 그가 빨리 입원을 시키라는 것이었다.
그들을 재촉하여 우선 수녀들이 상주하는 강복촌으로 환자를 실어 나르도록 하고 우리는 그들을 앞서서 그 마을을 떠났다.
중간에 그들이 우리들과 마주쳤는데, 5-6명의 젊은이가 들 것을 만들어 어깨에 둘러매고 1시간가량 걸어 강복촌에 도착을 하였다.
그날따라 태양 볕은 따가웠고 강복촌 밖에서 레이뽀 현의 자동차 회사로 전화를 걸었는데
1시간이 지나도 2시간이 지나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3-4시간 기다리다가 안 되겠는지
그들이 다시 현 중심지로 아픈 친구를 실어 날랐다.
황수녀가 그들을 따라가겠다고 하여 수녀를 혼자 보낼 수 없었고 또한 그 일이 내가 해야 할 것 같아 그 수녀 뒤를 따라갔다.
산의 중간에 두세 사람 정도가 다닐 수 있도록 나있는 길을 따라 들 것을 메고 앞장을 서서 가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찡하고 눈물까지 나오려고 했다.
‘주님, 이대로 버려두시렵니까?
돈이 없어 아까운 젊은이가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하고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그들을 따라 갔다.
1시간가량 젊은이들이 교대로 들것을 짊어 매고 갔으며 진에 가까이 오자 황수녀가 현의 병원으로 옮길 시간이 없으니
진 병원에 그들 입원시키자고 제안은 했으나 또한 그 병원에서 그 환자를 받아줄지가 의문이었다.
다행히 진 병원에서는 그 환자를 받아주었으나 병원시설은 형편없었다.
그러나 어쩌랴. 일단 진 병원에 그 청년을 입원시키고 다음날 다시 오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다음날 아침 이곳 사천성과 운남성에서 나환우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수녀들의 영성생활을 도와주기 위해
란죠우(蘭州)에서 파견 나온 張신부와 Bob 수사님 그리고 황수녀 그리고 내가 지나가는 차를 불러 병원에 가서
그 환자와 보호자 2명(환자의 아버지와 친국)이 우리네 다마스와 같은 작은 봉고차에 올라타니 그 차는 만원이었다.
鎭 병원에서 照覺縣 병원까지 산길을 곡예를 하면서 거의 5-6시간 달려 드디어 도착을 하였다.
황수녀가 대만 출신의 張의사에게 연락을 하여 그 의사가 속한 MSI 기구에서 사용할 수 있는 병실에 그 친구를 옮겨 놓았다.
그 병원의 중국 의사와 張의사, 陣 간호사(MSI 기구에 속함) 등이 관심을 가지고 그 환자를 돌보아 주었으나
황수녀는 입원비를 걱정하는 것이었다. 내가 수사님과 상의하여 입원비를 낼 것이니 걱정 말라고 말하고는
우리들은 일단 그 병원에서 철수를 하였다. 병원에서 가까운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시켜 환자 보호자와 站?
그리고 황수녀와 내가 식사를 하면서 환자의 보호자를 위로하고 안심을 시켰다.
첫 번째 사천성 방문에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수사님과 나는 일단 홍콩으로 돌아갔으나 그 청년이 내 머리에서 계속해서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 개인적인 기도와 미사를 봉헌할 때 계속해서 그를 기억하였다.
사천성으로 두 번째 방문에 비행장에 내리자마자 황수녀와 함께 그 환자가 입원하고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으며,
그를 보니 전에 보다도 훨씬 좋아진 것 같았고 레이뽀의 원장 수녀와 간호 담당 수녀가 와서 張의사와 합의하여
그를 일단 강복촌으로 데려가기로 결정하였다.
수사님과 내가 힘을 합쳐 입원비를 계산하고 張의사와 진 간호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그곳을 떠났다.
이제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하고는 며칠이 지났을 때 뜻하지 않게 그 친구가 1주일 만에 고열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째 이런 일이! 그러나 이 세상에서 고통 속에 사는 것보다는 당신 품에 편안히 안기는 것이 나리라’
내 자신에게 스스로 위안해 본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 레이뽀를 다시 방문하였고 때마침 죽은 환자의 아버지가
우리가 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지난 번 일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양을 한 마리 끌고 왔다.
그것을 우리에게 건네주면서 받으라는 것인데, 만약 그것을 받지 않으면 예의가 아니란다.
하는 수 없이 그것을 받아 수녀님들과 강복촌에 살고 있는 다른 나환우들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는 황수녀에게 그 양 값어치만큼 다른 물품을 준비해 가지고 제안을 하였다.
당시 그 마을을 방문해 환자들을 치료해 주고 마지막으로 그 집에 들르니
죽은 청년의 부모가 우리를 보고는 막 우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준비해 간 물품을 건네주고 껴안아 주면서 이제는 아들을 잊고 아들 몫까지 열심히 살아가자고 말하며 격려하였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방금 찐 옥수수를 건네주었고 우리는 그 집 앞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하나씩 나누어 먹었다.
사람 사는 곳은 지구촌 어디서나 똑같은 모양이다.
희로애락의 감정은 모든 사람이 같기에 공유할 수가 있다.
주님! ?日布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사 당신 품안에 편히 쉬게 하소서.
첫 번째 사천성 나환자촌 방문에 뜻하지 않은 죽어가는 이족 청년과의 만남.
현장에서 그들을 위해 신발 만드는 일을 하면서 그와 같이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일은
당신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신 목적이리라 생각하면서 그 일 만큼은 내가 할 수 있으리라 자위해 본다.
신발을 만들어 주며 손톱과 발톱을 깎아주고 목욕 한번 시켜주며 그들 곁에서 함께 울고 웃는 것이 바로 내가 할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