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다윗은 기뻐하며 오벳 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하느님의 궤를 모시고 올라갔다. (12) 주님의 궤를 멘 이들이 여섯 걸음을 옮기자, 다윗은 황소와 살진 송아지를 제물로 바쳤다. (13) 다윗은 아마포 에폿을 입고, 온 힘을 다하여 주님 앞에서 춤을 추었다. (14) 사무엘서 하권 6장 1~11절은 다윗이 성의를 기울여 시도한 계약 궤 운반 시도가 우짜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중단되었음을 보도하였다. 이제 이어지는 사무엘 하권 6장 12~23절은 드디어 계약 궤 운반이 성공하여 다윗성에 안치한 사건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다룬다. 다윗이 계약 궤를 다윗성으로 운반하려는 생각을 다시 가진 것은 하느님의 궤로 인하여 오벳 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재산에 주님께서 복을 주셨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거 우짜의 죽음이 계약 궤를 잘못 다룸으로 인한 재앙이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었기에 다윗은 이번이야말로 계약 궤 운반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던 것이다. 여기서는 이런 준비 상황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이와 병행되는 역대기에서는 무려 24절을 할애하여 계약 궤를 모실 처소를 준비하고(1역대15,1) 계약 궤를 운반할 레위인들을 임명할 것과(1역대15,2-15) 계약 궤의 이동에 있어서 성가대와 악대부들의 찬양이 있었으며(1역대15,16-21) 계약 궤를 운반하는 레위인의 직책까지(1역대15,22-24) 기술하고 있다.
즉 다윗은 계약 궤의 먼저번 운반 시도의 실패를 통해 두번째 운반은 더욱 철저하게 준비했던 것이다. 또한 여기서는 자세히 나타나지 않았지만, 다윗은 하느님의 궤로 인하여 오벳 에돔의 집이 복을 받은 것을 하느님의 궤로 말미암아 장차 자신과 자신의 나라에 복을 주시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이며 계약 궤를 옮겨도 좋다는 하느님의 승인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사무엘 하권 6장 12절에 '모시고 올라갔다'로 번역된 '야알'(yaal)은 '올라가다'라는 뜻의 '알라'(alla) 동사의 사역형으로서 '올라가게 하다', '올리우다'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사역형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 다윗이 직접 메고 올라간 것이 아니라 단지 계약 궤를 다윗성으로 올리우도록 명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계약 궤는 반드시 레위 지파 가운데서도 크핫 자손만이 어깨에 메고 운반해야 했기 때문에(민수4,2-6) 유다 지파인 다윗이 이 일을 직접 할 수가 없었다. 또한 여기서 '올리우다'라는 뜻의 단어를 사용한 것은 예루살렘의 지형이 높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느님의 궤를 다윗성으로 들여오는 일이 갖는 긍정적인 의미의 회복의 뉘앙스를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다윗은 오벳 에돔의 집에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보면서 과거에 자신을 축복해 주셨던 그 하느님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윗은 두번째 계약 궤 운반시 하느님의 거룩함을 가볍게 홀대한 자신의 경솔한 모습을 깊이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1역대15,13). 사무엘서 하권 6장 12절에서 '기뻐하며'로 번역된 '뻬시므하'(besimhah; with rejoicing)가 나오는데, 이 '기쁨'은 하느님과 멀어진 상황에서 다시 가깝게 된 기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전에는 악대부가 악기를 연주하는 것에 머물렀지만(2사무6,5) 지금의 상황에서는 기쁨에 겨워 다윗이 주님 앞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2사무6,14).
'주님의 궤를 맨 이들이 여섯 걸음을 옮기자, 다윗은 황소와 살진 송아지를 제물로 바쳤다.' (13) 사무엘서 하권 6장 13절은 두번째 계약 궤의 운반이 얼마나 주의 깊고 경건하게 이루어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여기서 '멘 이들이'로 번역된 '노세에'(nosee)는 '나르다'라는 뜻의 '나사' (nasa) 동사의 복수 분사형으로 '나르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역대기 상권 15장 26절에는 이들이 '레위 사람들'로 분명히 밝혀져 있고, 역대기 상권 15장 15절에서는 하느님의 궤를 채에 꿰어 그들이 어깨에 매었다는 말이 나온다. 이것을 보면, 우짜의 사건 때에 다윗이 미리 생각하지 못해 마비되었던 모든 것이 이제는 하느님의 뜻대로 지켜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역대기 상권 15장 13절에 나오는데로 하느님의 궤를 레위의 자손들 중에 크핫의 자손들이 어깨에 메지 않고 수레를 통해 운반하였기 때문에 우짜가 벌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옮기자'로 번역된 '와예히 키 차아두'(wayehi ki tsaadu)에서 '와예히 키'(wayehi ki)는 관용적인 표현으로서 '그리고 ~할 때에'로 번역할 수 있고, '차아두'(tsaadu)는 '걸음을 걷다'라는 뜻의 차아드'(tsaad)의 완료형 3인칭 복수형으로서 '그들이 걸음을 걸었다' 이다. 여기서 '와예히 키 차아두'(wayehi ki tsaadu)는 '그들이 걸음을 걸었을 때에'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이처럼 완료적인 의미가 사용된 것은 매 여섯 걸음마다가 아니라 처음 여섯 걸음을 걸은 후에 제사를 드렸음을 암시한다.
즉 다윗은 계약 궤를 멘 레위인들이 여섯 걸음을 걸어 아무런 이상이 없자, 처음 계약 궤를 운반했을 때와는 달리 하느님께서 계약 궤 운반을 허락하신 것으로 알고 하느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린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왜 하필 여섯 걸음을 걸은 후에 제사를 드렸는가 하는 것은 알 수 없다. 아마도 다윗은 걸음의 수와 관계없이 계약 궤를 멘 사제들이 몇 걸음을 걸어도 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병행 구절인 역대기 상권 15장 26절에는 걸음의 수가 언급되지 않고 있다. 한편 본문은 제사를 드린 주체를 다윗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중대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왜냐하면 과거 사울은 필리스티아와의 미크마스 전투 전(前)에 사무엘 예언자의 지시를 어기고 스스로 제사를 집전했다가 사무엘로부터 책망을 듣고 왕위 폐위 예고까지 받았으며(1사무13,8-14) 그 예고는 실제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본문은 다윗의 제사 행위에 대해 아무런 책망도 언급되지 않으며, 다윗이 계약 궤를 다윗성에 모신 이후에도 제사를 드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당시는 이미 제사 제도가 확연히 구축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윗이 사제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훗날 우찌야 임금이 분향 제단 위에서 향을 피우려고 주님의 성전에 들어갔다가 하느님으로부터 벌을 받아 나병에 걸렸던 사실(2역대26,16-21)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왕정 시대의 사제 직분은 어느 누구도 결코 침해할 수 없는 성역이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는 다윗이 제물을 바쳤다는 본문의 표현을 그가 직접 제사를 집전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기보다는 다윗이 제사를 드릴 때이 중심 인물이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즉 당시 이 제사는 사제에 의해 집전되었지만, 사무엘서 하권 저자는 하느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계약의 상징인 계약 궤를 다윗성으로 모신 다윗이야말로 명실상부한 신정(神政) 왕국인 이스라엘의 중심 인물임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제사가 다윗 중심으로 진행된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열왕기 상권 3장 3~4절에서 솔로몬이 직접 제물을 바친 것처럼 묘사하고 있지만 이것 역시 제사 집전은 사제가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역대기 상권 15장 26절에 보면, 이때 드린 제물이 황소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로 언급하고 있는데, 제사를 드린 주체가 '다윗'이 아닌 '그들'로 언급되고 있다.
'다윗은 아마포 에폿을 입고, 온 힘을 다하여 주님 앞에서 춤을 추었다.' (14) 다윗이 입었던 옷은 '아마포 에폿'이었다. '에폿'(epod)은 사제들이 입는 겉옷을 나타낼 때 흔히 쓰이는 단어이다(탈출28,4.6-14). 다윗은 사제가 아니었으므로, 이때 다윗이 입은 옷은 사제 에폿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표현하기 위해 왕복을 벗고 입은 예복이었을 것이다. 하느님 앞에서 다윗의 겸손함은 그가 임금의 체면까지 버리고(2사무6,20) 몸소 춤을 추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더욱이 '춤을 추었다'로 번역된 '메카르케르'(mekarker; danced)는 '빙빙 돌다', '춤추다'라는 뜻의 '카라트'(karad) 동사의 분사형이기 때문에 한 번 추고 그만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었음을 나타낸다. 아마도 그가 이처럼 빙빙 돌면서 춤을 추었기 때문에 '아마포 에폿'(베 에폿) 속의 맨 살이 드러나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하여'로 번역된 '뻬콜 오즈'(bekol oz)인데, 이것은 힘차게 빙글빙글 도는 다윗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한편 '주님 앞에서'는 '하느님의 궤 앞에서'를 상징적으로 묘사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원문은 '리프네 예흐와'(lione yehwa; before the LORD)인데, '주님이 보는 앞에'로 번역할 수 있다. 이것은 주님의 실제적인 임재와 현존을 나타내 준다. 아마도 다윗은 자신이 주님의 임재 가운데 있으며, 하느님의 목전에 서 있다고 느끼고 온 힘을 다하여 기쁨의 춤을 추었을 것이다. 특히 이러한 춤이 당시 임금의 즉위를 축하하는 백성의 춤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볼 때 춤을 추는 다윗은 이스라엘의 참된 통치자는 하느님이시고, 자신은 다만 하느님의 대리자일 뿐임을 겸손히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출처: 피앗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