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야기 12부- 행복하게 죽는 법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는 병원이 있다. 이른바 호스피스 병원인데 호스피스 간호사가 전하는 말에 의하면 사람은 살아온 대로 죽는다고 한다. 행복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행복하게 죽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죽음 또한 그렇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잘못 살아왔다며 회한 속에 죽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인생의 비애는 여기에 있다. 인생의 정말 중요한 것을 너무 늦게 깨닫는다는 거다.
임종환자에게 삶을 뒤돌아보며 가장 후회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의 대부분은 3가지 유형 중에 하나이다.
첫째. 남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이고,
둘째, 너무 일만 하고 살았다는 것이며,
셋째, 내 감정을 표현못하고 감추며 살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내가 하나 더 덧붙인다면 너무 바쁘게 살아와서 주위를 돌볼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먼저 태어나면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애를 쓰며 살아간다. 그러다 보면 부모의 인생을 사는것이 아니라 내 인생을 사는데도 부모의 뜻대로 살아가는 내 모습을 보곤 한다. 이른바 자크 라캉의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인간이다.
집안 분위기가 엄격하여 그러한 분위기에 부합하고자 한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실로 내가 주인이지만 주인이 아닌 상태로 살아가는 인생이다. 내 자신의 욕망을 모른체 타인이 규정하는 존재와 욕망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면 이 세상에 나란 존재는 결코 찾아볼 수 없게 된다.
그러한 인생이 행복할 리 없다. 다행이 나의 부모님은 자신의 인생을 자식들에게 강요하지 않았지만, 나의 경우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때론 미안하다. 내가 걸어온 인생이 정답은 아니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그래도 그 정도는 했으면 하고 바래왔는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우리 막내 아들과 많이 불협했다. 이 녀석이 드러운 내 성질을 그대로 물려받았는지 한번 아니면 자신의 주장을 결코 굽히지 않으려 한다. 게임을 밤새도록 하고 잠이 부족하니 아침에 학교에 갈 시간이 되었는데도 일어나질 못한다. 그래서 좀 나무랬더니 그 다음부터는 아빠와 대화를 하지 않으려 한다.
나의 아버지도 그러한 나를 대하던 시절이 있었을 거다. 아버지는 감정표현을 잘 안하시고 칭찬이 인색하신 분이셨다. 처음에는 그냥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 안 사실은 표현할 방법을 잘 모르셨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서툴지만 감정표현도 잘 하시려고 노력하시고, 칭찬도 어색한 방식으로나마 하려고 애쓰신다.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보다는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살아오신 분이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에 회한과 후회로 돌아가실 것 같진 않다. 인생을 후회하는 3가지 방식의 사람들의 필요 충분 조건을 모두 갖추시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평생 일밖에 모르시지만 아프리카 케냐에 고등학교도 세우시고, 자식들도 남부럽지 않게 키우셨다. 인생의 행복 중에서 자식으로 인한 기쁨은 매우 크다고 하는데. 나도 과연 그럴수 있을까? 나는 요즘 우리 막내 아들 때문에 많이 속상하다. 밤새 게임하느라 학교에 안가기 일쑤고 최근에는 학교가기 힘들어 자퇴하겠다고 까지 말한다. 이른바 코로나 세대의 후유증이다. 온라인 수업에 익숙해져 있다가 오프라인 수업에 참여하려니 몸이 따라가지 않는 모양이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십리가 넘는 학교를 한 시간 넘게 걸어다니며 12년을 개근했다. 하지만 아들은 버스타고 5분거리밖에 안되는 학교를 멀어서 못 가겠다고 불평한다. 그런 아들에게 '~나때는 말이야' 하고 40년전 나의 시대를 강요할 수는 없다.
아버지 이야기를 좀 더해 보자. 아버지는 요즘에는 건강이 좋지 않으신 어머니를 대신하여 식사준비부터 집안 살림까지 온갖 집안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고 계신다. 얼마전에는 어머니 머리를 직접 염색까지 해주시는 것을 보며, 세상에서 가장 보기 좋은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일이란 것은 인간에게는 숙명같은 존재이다. 일은 즐거움이자 고통이다. 사람은 일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고 자신을 잃어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삶에는 균형이 필요한데, 아버지는 일생을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온전히 일에 미친 일 중독자이셨다. 어릴 적 그러한 부모님을 보면서, 우리 삼남매 때문에 저렇 고생을 하시니 나는 나중에 결혼하면 자식을 갖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결심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위에서 보고 배우대로 살아가나 보다.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부모님처럼 아이 셋을 낳아 일에 부데끼며 살아가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어찌 미치지 않고서야 시인이 될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인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미치지 않고서 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동안 나도 너무 일에만 몰두해 살아왔다. 기술사 자격을 취득하고, 책을 쓰고, 박사 학위를 받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소진해 버렸고 가족을 돌보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인생은 트레이드 오프이다. 뭔가를 선택하면 뭔가는 버려야만 한다. 모두다 얻을 수는 없다. 모든게 때가 있는 법인데 나는 막내와 놀아줄 시간을 놓쳐 버렸다.
지금 고등학생이 된 우리 막내는 아빠가 자전거를 가르쳐 주지 않아 누나들도 다 탈 줄 아는 자전거도 못탄다. 그리고 컴퓨터 게임에 빠져 버렸다. 나는 내 욕망을 위해 때론 아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등한시 했다는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이 후회를 어찌 만회하고 행복하게 죽을 수 있을까?
말년에 행복하게 죽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인생을 후회하는 네가지 방법, 즉 남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 너무 일만 하고 살았다는 것, 내 감정를 표현 못하고 감추며 살았다는 것, 너무 바쁘게 살아와서 주위를 돌볼 시간이 없었다는 이 네 가지를 마음에 새기고 기억하시라!
리스크랩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