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天路)를 걷는 삶(6/10)
-오늘의 우리 만남이-
사람은 하루 동안 많은 이들을 만나며 살아간다.
나도 오늘 아침 눈을 떠서 아내를 만났으며 그리고 점심에는 교회 관계자 두 분을 만나고서 저녁에는 또 누굴 만날는지 모른다.
요즘 주변에서 말이나 행동에 ’진심‘이란 단어를 붙여서 사용하는 것을 듣는다.
’말에 진심이 있음이 느껴지네‘, ’행동이 진심인 것 같아‘ 하면서 말이다.
이 말들은 결국 요즘의 사람들은 거의 진실이나 정직이 없음을 나타낸다. 그렇다. 지금의 시대는 진실이나 정직은 싸구려가 되었고 사치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세상은 어차피 하나님의 심판의 길로 점점 빠져 가므로 그럴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예수믿는 성도는 이래선 안된다.
사람은 나의 내면을 보지 못해도 하나님은 보신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16:7)
그러므로 성도의 모든 삶은 예수 안과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다. 즉 삶 자체의 일상이 늘 하나님을 경외하며 신뢰하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오늘 누구를 만나든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주를 경외함이 묻어나야 하며 삶이, 언제 어디서나 예배자로서 십자가 지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막7:16).
입이 더럽다는 것은 곧 내면이 더럽다는 것이며 이는 아직도 여전히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크게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내가 천국 백성되었음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주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며 끝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셔서 하나님 품으로 인도하심이 분명하다. 할렐루야.
내일을 알 수 없는 오늘 하루를 쉽게 보내지 말고 먹든지 마시든지 주를 섬기며 사는 삶이 성도의 삶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주의 몸된 지체들을 사랑하는 것이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는 ’한 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도 형제를 내 몸처럼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은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였으나 주의 부르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과거의 나 자신을 모르면 여전히 과거처럼 내 중심으로 살아가게 되나, 과거의 나를 알고 오늘의 주의 능력과 그의 은혜를 안다면, 오늘 누구와의 만남이라 할지라도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주께 바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