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 워머*
김완수
이름 연호해 주는 사람 없어도
언제나 진득하게 벤치를 지키며
세 시간 꼬박 자리 데우는 너
소일처럼 해바라기 씨 까먹다가
상대 투수에게 야유를 툭 뱉을 때 많지만
눈 부릅뜨고 경기 읽어 가는 너
경기가 안 풀리면
감독이 바라봐 주지는 않을까
괜히 방망이 몇 번 힘차게 휘두르며
그림자 시위 하는 너
기나긴 연장 승부 끝에
승리의 끝내기 안타라도 터지면
누구보다 먼저 필드로 달려가
스포츠 신문 일면을
대문짝만 한 등번호로 장식하는 너
내일이면 상대 벤치에 앉아 있을지 모를 삶이어도
오늘만은 화끈하게 소리 지를 배짱 두둑하니
너의 엉덩이는 강타자의 불방망이보다 뜨겁다
어쩌다 운 좋게 타석에 서도
서툰 스윙으로 맥없이 물러나
기회는 또 홈런의 꿈같이 아득해지지만
먹튀란 손가락질 받을 일 없으니
어깨 맘껏 펴도 좋겠다
타석이 벤치보다 어색한 똑딱이여도
공이 수박만 하게 보인다는 말이 통 믿기지 않아도
자유 계약 앞둔 동료처럼 달뜬 가슴 가져라
상대 투수 앞에서 기죽을 줄 모르는 너
너의 이름은
더그아웃에서 더 뜨거운 필드를 꿈꾸는 벤치 워머
*벤치 워머(bench warmer): 언제나 벤치에 앉아서 출전 기회를 기다리는 후보급 야구 선수
--- 김완수 시집 {꿈꾸는 드러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