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래 분위기에 안 맞는 글을 올렸었는데 이번글도 혼자 읽기에는 너무 안타깝구 아쉬워 하나 만
더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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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20050127. 부모님.
전혜진 2005.01.28 02:17
"난 다시 태어나도 울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날꺼야!!"
언젠가 무슨 말끝에 언니가 이렇게 말했다. 갑자기 아찔한 죄책감이 심장을 후벼팠다.
언니의 그 말 뒤에는 "넌?"이라는 질문이 생략되어진 것 같았고 난 선뜻 "나두!"라고
대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난 우리 엄마 아빠를 몹시 사랑한다. 하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그리고 나의 부모를 선택할 권리가 주어진다면 내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할런지 결정을 내려야 하는
마음이 다소 주저주저한다. 이럴때 가장 적당한 대답은 "글쎄..."쯤.
솔직히 아빤 키가 좀 더 크셨음 좋겠고, 술은 가끔 기분 좋은 어느 날 저녁에만 마셔주셨음 좋겠다.
엄만 쑤시고 아픈 곳이 없이 튼튼했음 좋겠구 좀 더 낙천적인 성품이셨음 좋겠다.
그리고 우리 엄마 아빠는...지금은 경기침체와 더불어 엄마의 끊임없는 잔소리때문에 키가 한뼘쯤
더 작아진 우리 아빠. 작지만 단단한 몸매에 툭 불궈진 눈, 하늘로 치켜뜬 호랑이 눈썹때문에 첫인상은 사뭇 파시스트를 연상케 하지만 그 속은 색시보다 더 곱다. TV를 보다가 슬프거나 찡한 장면이 나와서 아빠를 바라보면 울 아빤 어김없이 울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볼때마다 엄마 잃은 호랑이가 울고 있는 모양이 혹시 저렇지는 않을까 싶다. / 젊은 아빤 회사 야유회마다 어린 두 딸을 빠짐없이 데리고 다니셨다. 엄마도 없이. 아빠 혼자. 어린 두 딸을. / 크리스마스와 어린이 날은 어김없이 머릿맡에 선물꾸러미가 곱게 놓여있었다. / 옛날 집엔 마당 한가운데 둥그런 화단이 있었는데 날씨가 따뜻해지면 아빠랑 각종 봄꽃들을 곱게 심었던 기억이 난다. 노랫말 그대로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이었다. / 내가 처음 아팠던 대학 4학년 생일날 아침, 책상위에 작은 메모가 올려져 있었다. "생일 축하한다. 사랑하는 아빠가". 단 두줄이었던 아빠의 첫 편지(?)를 받고 얼마나 울었던지. / 올해 2005년도 을유년 새해를 알리는 보신각 타종이 시작되었을때 아빠에게 병원으로 전화가 왔다. "아빠, 오늘같은날 같이 못있어줘서 미안." "아냐. 혜진아. 올해는 꼭 다 나아서 아빠랑 좋은데 많이 놀러다니자" 그러시곤 눈물때문에 목소리가 잦아드셨다. 사랑해 아빠.
나 때문에 할머니가 되어버린 우리 엄마. 옛날엔 엄마 흰머리를 뽑아주고 돈을 받았다. 한 올당 10원씩. 기분 좋은 날은 백원씩두. 근데 이젠 뽑을 수가 없다. 엄만 백발이 됐다. 울 엄만 호랑이 엄마였다. 언니랑 싸우면 우린 장독대로 끌려가 빗자루가 부러질때까지 맞아야 했다. 엄만 다른 것들엔 대부분
관대했지만 언니랑 싸우기만 하면 매를 드셨다. 그럴때마다 난 싸워서 형제간 우애에 금가는 것 보다 맞아서 뼈에 금이 가지 않을까가 더 우려스러웠다. 사실 그 매는 다소 억울한 면이 있었다. 우리가 잘못한 것도 물론 있었겠지만 괘팍하고 몸 불편한 시아버지를 모시는 고충이 더불어 곁들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선 엄마도 일정부분 시인한 바이며, 암튼 엄만 매끝에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드셨는지 먹기도 턱턱한 밤빵을 사주셨다. 하필 씹기도 삼키기도 힘든 밤빵을. 우린 밤빵을 먹으며 눈물을 그쳐야 했고 바로 그치지 않으면 또 맞아야했으므로 억지로 넘기는 빵덩어리땜에 숨이 막혀 난 숨통을 트이게하려고 콧구멍을 파곤 했다. 그러던 엄마가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때 갑자기 매를 그치셨다.
언니랑 싸워도 안때리고, 안맞으니 매가 그리웠던지 엄마한테 농처럼 빈정빈정 거려보아도 때리질 않는거였다.
하도 이상해서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왜 안 때려?" 그랬더니 엄마가 너무나 간단하게 대답한다. "다 컸는데 왜 때려?". 이런...불쌍한 울 언니. 나보다 2년을 더 맞았다. / 우리가 어렸을때나 가세가 기운 요즘은 형편이 어려우니 절약할 수 밖에 없겠지만, 아빠 사업이 날로 번창하여 가계경제가 훨씬 윤택해졌을때에도 엄만 헛으로 돈을 흘리시는 법이 없었다.어느날 엄마의 폐물함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달랑 동생 돐반지 몇개랑 비취반지 쯤이 있을 뿐이었다. 엄마한테 푸념 한마디를 했다. "이그...아빠 돈 잘벌때 보석 장만이나 하시지 모했수?" 엄마가 "그러게"하며 피식 웃었다. 여튼 그래서인지 수입도 없는 전업주부가 통장운영은 가히 현란했고 번번히 아빠가 사업자금때문에 쪼들려할때마다 가장 큰 경제적 조력자의 역할이 되어주었다. 언니는 항상 말한다. 엄마의 가장 존경할 점은 "검소함"이라고. 시집가면 훨씬 더 많이 느끼게 된다는 데 그게 언제쯤이 될런지.
/ 요즘 엄만 저녁마다 날 "족탕"시켜주신다. 혈액순환활성화를 통한 골수자극요법.
물론 아직 그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엄마만의 고유한 아이디어다.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그게 하고 두 발을 오물조물 맛사지해준다. 처음엔 면목이 없어 거절했으나 엄마의 강압에 겨운 강요에 의해 마지못해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놈의 족탕을 할때마다 엄마의 흰머리가 너무 많이 보여 난 TV만 보는 척 능청을 떤다. 역시 난 우리 엄마 아빠를 몹시 사랑한다. 사랑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더 많이 사랑해야겠다. 다시 태어나도 울 엄마 아빠 딸해야지! 근데 혹시 누군가 엄마 아빠에게 나를 가리키며 다시 태어나도 저런 딸을 원하느냐 묻는다면 뭐라 하실까. 갑자기 좌불안석.
물론 나에게 나같은 딸을 원하느냐 묻는다면 난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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