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경무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 경무대가 위치한 동네에 효자이발관이 있었다. 효자이발관은 성한모(송강호 분), 혹은 두부한모라고 불리우는 소심하지만 순박한 이발사가 주인으로, 그는 면도사겸 보조로 일하던 처녀 김민자(문소리 분)를 유혹(?)해 덜컥 임신을 시키고 격동의 4.19 혁명일에 아들 낙안(이재응 분)을 얻는다. 어느 날 청와대에서 찾아온 높은 분에 의해 한모는 영문도 모른 채 이발도구를 챙기게 되고, 절대권력자의 전용 이발사가 된다. 높으신 각하를 측근에서 모시는 그를 보고 속도 모르는 동네사람들은 부러워하며 밤낮으로 아부한다. 하지만, 대통령 각하의 머리를 깎는 소심한 이 남자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하는데... 각하의 한마디에 산천도 벌벌 떠는 시절에 용안에 감히 면도날을 들이대는 일이 쉬울수는 없을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정보부장과 경호실장은 툭하면 싸워대고, 심지어 이발먼저 하겠다고 권총 빼들고 싸워대니, 소심한 이발사 맘편할 날 없다. 독재의 서슬퍼런 시절을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이 남자. 무장공비 침투 사건으로 정부는 ‘마르구스 병’이라 명명된 설사병 환자들을 간첩혐의로 잡아들이게 되고, 급기야 한모의 아들 낙안이도 중앙정보부로 송치되게 되는데...
비극의 시대, 희극의 시선
우리네 현대사를 돌아보면, "사사오입"개헌으로 야기된 4.19 혁명이며 5.16 군사 쿠데타로 시작한 20년 넘는 군부 독재까지... 암울했던 시절이 주류다. 하지만,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초반부는 이 비극적인 시대를 희극의 시선으로 돌아본다. 이를테면 임신은 했지만 결혼은 않겠다는 민자를 설득하는 한모의 논리는 "사사오입". '사사오입" 개헌이 유명하던 시절, "사사오입이면 헌법도 바꾸는데, 임신 다섯달이면 사람 한 명 몫으로 봐야 하니까 무조건 낳아야 한다"고 우겨서 민자와 결혼을 강행한다.
그렇게 태어난 낙안이가 첫걸음을 뗀 이듬해 1961년 5월 16일 밤. 이발관 앞에서 굉음이 들려 무슨 일인가 아기를 안고 나선 한모의 앞에 탱크가 서있는데. "어이! 여기 청와대가 어디야?" 말없이 손짓으로 방향을 일러주는 한모. 그때 탱크를 몰고 청와대를 차지한 이가 훗날 내린 ‘중고생 삭발령"의 조치 덕에 효자동 이발관은 나날이 번창하게 된다.
"효자동 이발사"의 미덕은 암울한 시대의 아픔을 소재로 한 영화이지만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쓰디쓴 실연의 아픔도, 지나고나면 싱긋이 웃음지으며 추억할 수 있게 되듯이... 마르크스 주의를 빚댄 "마르구스" 병이나, 전기 고문받는 아이의 머리위에 빛나는 전구나 다양한 환타지적 요소까지 버무려 우울한 이야기를 밝게 풀어간다.
시대상에 포획된 개인사를 풀어가는 솜씨는 일견 "포레스트 검프"나 "인생은 아름다워"에 비교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낙안이가 고문으로 걷지못하게 되는 중반 이후, 갑자기 가족 이야기에 촛점을 맞추면서 조금씩 힘을 잃어간다. 한국 영화의 아쉬운 점 하나가 신선한 코미디로 잘 웃기다가 후반에 감동 강박증 때문에 무리한 드라마 라인을 쫓다가 결국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것인데... "효자동 이발사" 역시 힘없이 불쑥 끝나버리는 엔딩 때문에 초반의 인상적인 설정이 묻히는 편이다.
송강호의 "독재의 추억"
작년에 가장 기억에 남는 한국 영화는 역시 송강호가 호연을 보여준 "살인의 추억"이다.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지만 그 영화를 본 후, 나는 제목의 의도적 불온함이 꺼림칙했었다.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은 결코 추억할 대상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미덕은 독재 정권 시절을 웃으면서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픔의 시대를 다룬 영화이지만, 보면서 웃을수 있다는 것. 영화를 보면서 터뜨리는 그 웃음의 거리만큼 우리는 과거로부터 멀어지는 것일까?
PS: "효자동 이발사"가 개봉한 극장 앞에서 몇몇 이들이 이 영화가 군부독재의 부정적인 면만 부각했다고 반대 시위를 벌였단다. 도대체 군부 독재에 어떤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건지? 내가 영화를 보면서 민주화 시대를 살고있는 현재 이 순간에 감사하는 동안, 어떤 이들은 오히려 군부 독재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니... 시대가 진보했다고 순진하게 믿는 순간, 시대 착오에 빠진 이들이 우리의 뒤통수를 친다. 저 독재 잔당들의 대통령 탄핵 시도처럼...
첫댓글 기대합니다.
제 칭구가 보고 왔는데 잼있다고 하더군요... 저도 시간내서 볼까 생각이었는데 마침 피디님께서 이렇게 글을 써주시네요 ㅋㅋ
오늘 봤는데 그야말로 정말 배우다운 배우더군효!!가장 기본인 연기를 정말 잘~~하더군효!!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