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 240m의 원형광장에 서 있는 이 문은 높이 50m, 폭 45m로
세계에서 가장 큰 문이며 우측 기둥에 뤼드의 조각인 '라 마르세예즈'가 유명하다.
로마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본떠 만들었답니다.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개의 도로가 뻗어 있으며
길들이 뻗어나간 모습이 별과 같다고 하여 "에투알(별)광장" 이라고 불렀다.
1970년이후 샤를르 드골 장군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샤를르 드골 에뚜왈 광장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정면으로 저 앞에 희미하지만 신도시 '라 데팡스'가 보이고
12거리중 제일큰 도로가 상제리제 거리며, 이곳이 상제리제 거리의 시작점입니다.
(측면)
이곳 샤를 드골 광장에 우뚝 솟은 개선문은 1806년 프랑스군대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서
나폴레옹의 명령으로 착공되었으나 그는 생전에 완공을 못보고 사망하였으며
1836년에 완성된 후 그의 유해가 이곳을 지나 앵발리드 묘소에 매장됐다.
1차 세계대전 승리후 이곳을 군인들이 행진하여 자나가기도 하였다.
자칫 민믿할 수 있는 외벽을 화려한 부조와 문양이 장식되어 있더군요.
개선문 천장
안쪽 벽면엔 수많은 글이 새겨져 있는데
각종 전투에 참전했던 600여명의 장군들 이름이 새겨져 있는거랍니다.
샹제리제 거리에서 개선문으로 가는 지하도 입구
유럽의 건물들은 실내가 많이 어둡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곳 지하통로 역시 어두운 느낌을 지울 수 없었으며
관광객이 많아 다닐만 했지 그렇지 않으면 피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다녀갔으면 지하도 계단의 대리석이 푹 파였더군요.
개선문 바닦에는 제1차 세계대전 무명용사의 묘
이 불꽃은 절대 꺼지지 않는답니다.
뤼드의 작품 '1792년 의용병들의 출정'
일명 '라 마르세예즈'라고도 불림
안목없는 나는 모두가 훌륭하더만
이 부조가 특히 유명하다는데요.
'1792년 의용병들의 출정'이라는 원래 제목대로
1792년 프랑스가 혁명에 간섭하는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에게 선전포고를 하자
전국에서 의용병들이 몰려듭니다.
스트라스부르의 공병장교 '루제 드 릴'대위가 의용군들의 출정을 격려하기 휘한
군가를 작사, 작곡한 석달 뒤 마르세유를 떠나 파리에 들어온 의용병들이 이 노래를 부릅니다.
"일어나라, 조국의 젊은이 들이여, 영광의 날은 왔다...."
노래에 감동한 파리 시민들이
'라 마르세예즈(마르세유 군대의 노래)'라는 이름을 붙여 부르기 시작했고
1870년 프랑스 국가가 됩니다.
에데스크의 '평화'
에테스크의 "저항"
조각가 '코르토'의 작품으로 '1810년의 승리'
나폴레옹의 승리를 기리는 의미의 부조
개선문은 일반적으로 개인 또는 단체가 이룩한 공적을 기념할 목적으로 세운
대문 형식의 건축물을 뜻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분들은 개선문 하면
에펠탑과 함께 프랑스 파리를 상징하는 이 개선문을 떠올린다.
이번 여행을 다녀오기 전까지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고 개선문도 이것 하나뿐인줄 알았다.
하지만 개선문은 곳곳에 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파리 상제리제 거리의 개선문 이름은 "에투알 개선문" 이란다.
로마 콘스타티누스 개선문을 본떠 만든것이라는데 크기는 2배랍니다.
첫댓글 우리의 독립문도 저 개선문을 본 떠서 만들었다는군. 규모 면에서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구한말 당시 열강으로부터의 독립 의지는 기념할 만한 것이었다고 생각하네.
'라 마르세예즈'의 어린 의용군 부조의 고추와 붕알이 탱글탱글 하구만! ㅎㅎㅎ
지하철 공사때문이었나? 고가도로 때문인가? 공사관계로 100년도 안된 독립문 이설 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고 신문에 크게 난적이 있었지....
난 그때 그럼 그렇지 역사는 지어낸 엣날 이야기라고.....
무엇이든 기록으로 남겨야 되는데 우린 기록이 너무 없어
나무나 종이에 말고 로제스타 스톤 이나 엘긴 대리석 같이 돌에다 새겨 놓아야돼
그건 그렇고 대놓고 고추, 붕알이 탱글탱글 이런거 써놓으면 야하다고 또 지울라나....캬캬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