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출발한 차는 88 고속도로를 따라가지 않았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부터 밥을 전혀 먹지 못한 상태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일단 밥을 먹어야 했다.
'담양'하면 떠오르는 떡갈비는 너무 비싸고, 대통밥을 먹어보려 했으나 그 것도 가난한 20대에겐 사치였다.
그렇다고 국수를 먹자니 간에 기별도 안 갈 것 같아 결국 창평에서 국밥을 먹기로 했다.
창평IC에 내려 창평면내로 들어갔다.
비가 추적추적 끝없이 내리던 창평은 인적 하나 보이지 않는 굉장히 한산한 마을이었다.
창평의 자랑 창평전통시장도 대부분의 가게는 문을 닫고 국밥을 하는 음식점만 문을 열어 놓았다.
비 오는 평일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인구가 자꾸 줄어드는 시골 동네의 슬픈 현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장 안에서 먹는 국밥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개인적으로 내장류는 특유의 식감과 노린내가 너무 역해서 굉장히 싫어하는 편이다.
물렁뼈, 관절이 많이 들어가는 부속고기도 물컹한 식감 때문에 항상 순대국밥만 시키던 필자였는데,
하필 들어간 가게에서 순대국밥을 팔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머리국밥을 시킬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특유의 냄새도 거의 없었고, 적당한 양념과 감칠맛 그리고 김치가 입안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다 먹고 이름 없는 시골길을 따라 담양읍내로 갔다.
광주로 내려갈 때부터 우려하던 일이었는데 여전히 비는 그칠 줄을 모른다.
몇 번이고 펑크내어 겨우 시간을 맞추어 온건데 자꾸 하늘에서 초를 치니까 내 마음도 같이 울고 있었다.
결국 담양읍내에 도착해서도 소리없이 내리는 진눈깨비같은 비를 맞으며 울적한 기분으로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드디어 88 고속도로의 사실상 첫번째 여정인 담양에 도착했다.
죽녹원, 메타세쿼이아길, 소쇄원 등등 관광지로 매우 유명한 고장이지만 단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곳이다.
광주라는 대도시와 가까우면서 전원적인 이미지가 커서 굉장히 와보고 싶었던 동네였는데,
드디어 이렇게 드라이브를 통해 잠깐이지만 담양 공기를 맡고, 담양의 흙을 밟아보고 있다.
원래라면 죽녹원부터 가고자 했겠지만 오늘 목적은 버스이기 때문에 터미널로 왔다.
담양터미널의 위치가 참 절묘한게, 광주로 나가는 출구이자 담양읍내로 들어오는 입구에 자리잡고 있다.
분명 읍내에 있긴 하지만 중심가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외곽의 위치이고,
바로 앞에 로터리를 지나면 광주로 가는 국도로 바로 이어진다.
큰 길가에 건물의 입구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과는 달리 주차장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형형색색의 버스들 틈새로 진짜 건물이 조용히 모습을 숨기고 있는데,
다른 건물들과 어우러져 저 조그만 간판이 없다면 전혀 버스터미널이라고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사뭇 오래되어 보이는 조용한 시골터미널인줄 알았더니 의외로 승차장은 깔끔하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도 있어 다행히 우산을 접고 여유롭게 밖에서 버스를 기다릴 수 있다.
승차장 홈도 꽤나 많고 보이는 지역도 다양한 편인데, 조금 놀라운 사실은 군내버스가 훨씬 더 많이 보인다는 사실이다.
시외버스터미널임에도 시외버스가 한 대도 보이지 않는 곳은 아마 여기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이 중에서도 광주로 가는 군내버스는 나름대로 별미이다.
광주역-전남대-유스퀘어로 이어주는 311번과 광주역, 대인광장 등 도심으로 이어주는 322번이 나란히 담양터미널에 있다.
이 중 메인 노선은 유스퀘어로 들어가는 311번이고(약 15분), 고속도로를 경유해 시간도 적게 걸린다.
322번은 1시간 배차로 의외로 차를 보기가 상당히 힘들지만, 광주에 절대적으로 기대는 담양 사람들에게는 두 노선 모두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제 3의 발이라고 할 수 있다.
옆의 311번도 그렇고 이 놈도 그렇고 상당히 연식이 오래되어 보이는 차들을 굴린다.
내구연한 10년을 꽉 채우고도 더 지난 것 같아 보이는 낡은 차들이지만 관리 상태는 무척 깔끔하다.
동광고속이 가장 주력으로 삼는 노선이기도 한데, '고속' 타이틀을 달고 있는 회사의 메인 노선이 이 시내버스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또한 여기선 유독 동광고속 차량이 많이 보인다. 왜냐하면 담양을 연고로 하는 동광고속의 본거지가 바로 여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광주-담양을 잇는 버스들이 시외버스로 출발하기는 했지만, 이쯤되면 시내버스터미널이라 해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다.
햇빛 하나 없는 침침한 날씨이지만 그래도 스산해 보이지는 않는다.
40년이 넘도록 같은 자리에서 운영을 하면서 이용객들의 편의를 위해 고치고 또 고친 결과
옛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지금처럼 작지만 깔끔한 느낌으로 재탄생했기 때문이다.
대합실 또한 몇 번의 리모델링을 거친 듯 따스한 느낌의 디자인이다.
갈색 톤의 색상으로 목재를 덧댄 조그만 맞이방은 추운 겨울을 훈훈하게 뎁혀줄 것만 같다.
여러 사람들이 버스와 다른 사람을 맞이하는 공간, 그래서 맞이방인 이 곳은 유난히 사람 사는 냄새가 더 진하게 느껴졌다.
여느 군 단위 터미널처럼 담양 역시도 아담한 규모의 맞이방을 갖추고 있다.
매표소 바로 옆에 상점이 있다는 것이 참 독특한데, 매점이 아닌 카페가 자리잡고 있다.
단순한 카페는 아니고 차와 토스트까지 겸비하는 다용도 카페이다.
예상대로 역내에는 노인 분들이 많다. 거의 터미널 이용객의 절반 가까이 되는 것 같다.
담양터미널의 시외버스 시간표. 다른 곳에 비하면 단순하다.
당연히 주요 노선은 광주행 버스로서 일단은 첫차와 막차만 보일 뿐, 자세한 시간은 프린트로 따로 안내하고 있다.
광주행 시외버스 뿐만 아니라 311번, 322번 버스까지 안내하고 있는데 322번만 시간표가 붙어있다.
311번은 대략 15분 간격으로 꽤나 자주 다니기 때문에 이쪽은 아예 시간표를 붙여놓지 않았다.
88고속도로의 첫 출발점답게 광주 다음으로 비중이 높은 노선은 남원, 순창행이다.
남원과 순창행 역시 마찬가지로 실제 운행되는 시간표가 약간 달라서 밑에 표를 따로 붙여놓았다.
광주, 순창, 남원 이외의 시외버스 노선은 정말 많이 없다.
기껏해야 옥과, 강천사, 서울, 인천, 대구가 전부인데 그나마도 강천사는 근처 등산수요가 목적이지 외지와의 이동을 위해 만들어진 노선이 아니고, 옥과는 이웃 곡성에 위치한 조그만 마을이다.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 무조건 존재하는 서울행 시외버스도 담양에선 겨우 하루 4회 운행한다. 따라서 상당수의 담양 사람들은 서울 및 수도권으로 갈 때 유스퀘어를 이용한다.
처음 도착했을 때 시내버스밖에 안 보였던 것이 우연은 아니었나 보다.
확실히 시외보다는 담양 곳곳을 들어가는 노선들이 더 다양하고 횟수도 많다.
그러나 담양군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르므로 그냥 눈으로 보고 이해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대전이라는 동네의 이름이 눈에 들어오기는 하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대전이 아닌 담양군 대전면이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도 어김없이 광주행 행선판이 끼어 있다.
311, 322번 버스와는 또다른 군내버스로, 창평쪽을 경유하는 노선을 안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용면행 노선을 타면 수원지인 담양호로 갈 수 있다. 이 쪽으로 맛집이 꽤 많다고 하니 관심있는 분들은 찾으면 좋을 것이다.
프린트에 따로 안내된 광주행 시외버스 시간표이다.
첫차가 오전 6시 25분, 막차는 오후 9시 35분으로 그렇게 빠르거나 늦지는 않은 편이다.
하지만 횟수가 무척 많아서 대략 20~30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는데, 두 회사가 번갈아 운행하기 때문에 10분 이내로 배차가 좁혀질 때도 있다. 다만 담양 자체출발 노선이 아니라 남원, 순창, 옥과 등지에서 출발한 노선들이 중간 경유하는 거라서 도로 사정에 따라 조금 늦게 도착하는 경우도 가끔씩 있다고 한다.
담양에서 순창, 남원 방면으로 가는 실제 시간표는 이 쪽이다.
위의 시간표와는 시간대가 미묘하게 다른데, 배차가 상당히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시간표 확인은 필수로 해야한다.
담양과 순창이 도는 다르지만 광주보다도 가까워서 남원, 강천사까지 운행하는 모든 노선이 순창을 경유한다.
이를 합치면 대략 10~40분 정도로 배차가 그럭저럭 좋은 편이나, 순창까지만 운행하는 노선만이 순창이라고 제대로 적혀 있기에 실제 배차 횟수에 비해 운행시간이 적어 보이는 착시현상이 있다. 담양-순창을 오가는 노선은 동광고속에서 운행하는데, 군내버스를 운영할 수 있을 정도의 짧은 거리여서인지 궂이 고급차를 넣지 않고 일반 시내버스 수준으로 사실상 311, 322번과 별 차이가 없는 노선이다. 다만 남원, 강천사행의 경우는 조금 다를 것으로 추측된다.
반면 남원행은 남원이라고 쓰여있는 노선만이 운행한다. 광주-남원을 운행하는 완행버스가 담양을 경유하기 때문에 도로가 막힐 경우 시간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으며, 그럭저럭 운행 횟수는 많은 편이지만 짧을 땐 10분에서 길 땐 2시간까지 배차가 벌어져 시간표를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좋다.
강천사는 순창 산골의 한 사찰로서 이 절이 유명하다기 보다는 근처의 산이 유명해서 여기까지 들어가는 시외버스가 많다. 마찬가지로 전 차량이 순창을 경유하니 이쪽으로 가는 손님들이 강천사행을 타도 전혀 지장이 없다.
요금표 역시 A4용지에 따로 프린트 되어있다.
신기하게도 88고속도로를 따라 행선지와 요금이 상세하게 안내가 되어있는데,
담양뿐만 아니라 이 지역들 사이의 모든 요금을 알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광주(유스퀘어) 2,300원, 순창 2,100원, 남원 5,400원으로 크게 비싼 편은 아니지만 역시 거리에 비하면 적은 요금이라고는 결코 할 수 없다. 남원까지만 가도 88고속도로 전구간 요금보다 비쌀 정도이니까.
나머지 지역의 요금표는 매표소 오른쪽에 큼지막하게 붙어있다.
독특하게도 사람이 쉽게 손을 닿을 수 없는 위치에 붙여놓지 않고, 사람의 키에 딱 맞추어 걸어놓은게 인상적이다.
서울까지는 하루 4회밖에 안 되지만 금호와 중앙이 공동배차를 하고 있다.
게다가 우등/일반이 번갈아 다니는데, 사실 이렇게 운영하는게 당연하지만 수익성을 쫒는 업체들이 대다수이다 보니 요즘은 보기 흔지 않은 풍경이다. 횟수는 적지만 배차만 봤을 땐 그럭저럭 괜찮아 보인다.
시간표를 다 찍고 반대편으로 나와서 본 버스터미널이다.
충격적이다. 읍내에서 온 사람들이 이리로 다닌다는 것 아닌가?
밖에서는 건물이 보이지도 않게 골목길 안쪽으로 꼭꼭 숨어있다.
터미널 건물 입구에서 바라본 읍내의 모습.
보통 큰 길 옆에 철썩 붙어서 대문짝만한 문으로 널찍하게 손님을 맞는 것이 보통인데,
건물들 사이에 꼭꼭 숨어 자신의 존재가 부끄러운듯 살며시 감추고 있다.
이 좁은 골목길로 손님들을 다 맞이한다는게 신기할 정도다.
처음 누군가를 맞이하는 느낌은 언제나 설레고 두렵다.
이 날 처음으로 담양을 가서 처음으로 담양터미널을 보고, 또다시 처음으로 88 고속도로를 탔다.
유독 처음 바라보는 것들이 많았는데, 마치 여러 번 온 듯 익숙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볼 수 없었던 민낯을 드러낸듯 신비로운 느낌마저 들게 했다.
버스터미널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으면서, 또다른 면에서는 전혀 버스터미널 같지 않았던 담양터미널은,
어제처럼 오늘처럼 그렇게 내일도 지금과 같은 일을 계속해서 하고 있을 것이다.
이를 찾는 외지인들에겐 많이 불편할지도 모르겠으나 담양 주민들에겐 평소와 같은 일상일 것이다.
오랜만에 많은 생각을 들게 한 담양터미널을 뒤로 한 채, 다음 목적지를 향해 운전대를 돌려볼 까 한다.
색다른 모습을 또다시 찾으러 묘한 기분을 극대화시킨 채 새로운 목적지로 출발한다.
첫댓글 난잡하게 써진 남원 / 순창 / 강천사 시간표를 설명드리면..
남원 -> 광주 - 담양 - 순창 - 남원
순창 -> 광주 - 담양 - 순창
강천사 -> 광주 - 담양 - 순창 - 강천사
노선의 각 시간표입니다.. 어느 시간을 타도 순창은 가기에 순창 손님은 남원, 강천사 시간을 타도 된다고 써있는겁니다.
광주발 남원 직통의 경유 담양을 경유하지 않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순창과 남원을 바꿔 썼네요. 급하게 올리느라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네요... 광주-남원 직통이 담양을 거칠 이유는 전혀 없겠지요. 지적 감사합니다.
글내용에서 초겨울의 정취가 느껴지네요. 항상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맥시멈님 글과 사진은 참 가치가 있습니다.
2~3년전 가족과 담양여행의 추억이 돋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에게도 다시 한번 가고싶어지는 사진이네요. ㅎㅎ
그나마 담양~서울(호남)행도 2회에서 4회로 증회된 사례입니다. 담양 기준으로 오전 10:00(우등) 금호고속이었고, 16:00? 17:00?(일반)은 중앙고속이 1:1로 운행했었죠. 대구행은 광주에서 환승하는 것이 정신 건강 상, 이득이고요.
제가 봤던 기억으로는 하루 3회였으니 늘기는 했네요. 그래도 여러가지를 감안하면 적은 편이라고 느껴집니다.
@Maximum 그나마 전라남도 지역의 郡 인구 누출(감소)로 인해, 심지어는 서울(호남)행 고속버스 노선도 '시외버스'로 전환(사실, 예전에는 시외버스 노선이었는데, 금호고속이 억지(?)로 고속노선으로 전환하였다고 하더군요)하여, 군(읍)~군(읍) 형태로 노선을 재(?)개통하니깐, 경로가 우회해서 가는 경우도 있고요. 일부 지역은 요금 인하 효과(+중, 고생 할인 가능???)가 있었으니, 일부지역은 오히려 거리 증가 및 우등고속-일반고속 간의 요금 차이 감소로 인한, 괴리 증가(물론, 운행 횟수 자체가 적으니, 시간 맞추어서 타야죠)도 있지요.
글을 보니 죽녹원 가고 싶네요 다시한번
정말 가보고 싶습니다. ㅎㅎ
잘 봤습니다.
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옥과에서 순창행 노선은 없는데 담양행 노선이 있군요...
옥과-순창 구간은 거리가 가까운데 없다는게 신기하네요..
@Maximum 순창 방면이 거리가 가까운데 없다는 말씀이죠? 27번 국도가 잘 닦여 있음에도...
@안동 네 그렇습니다. 저 정도 거리면 웬만해선 다닐 만도 한데 말이죠.
과거에 광주-옥과-순창으로 광진고속에서 다니다가 부도 이후 노선이 금호로 넘어왔고 글로벌 금융위기땐가 폐선됐습니다.
@Granbird Bluesky 지금 순창읍에서 옥과면까지는 자가용 아니면 대중교통은 답이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