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or’s Campaign(트레버 운동)
성탄절을 몇 주 앞두고 설레는 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TV뉴스를 보던 11살 트레버는 마음이 울적했습니다. 길거리에서 사는 사람들에 관한 소식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필라델피아에 몰아친 한파로 수많은 노숙자들이 동사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도와줄 수 있나요?”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아빠는 어린 아들이 밤에 노숙자를 찾아가는 것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안 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트레버는 묻기를 그치지 않았고, 결국 자기의 담요와 베개를 들고 아빠와 거리로 나섰습니다.
트레버는 신발을 신지 않은 한 남자가 쇠창살 위에 자고 있는 것을 보고, 차에서 내려 자신이 항상 덮고 잤던 노란 담요와 좋은 베개를 그에게 정중하게 드렸습니다.
그 남자의 행복해 하는 미소에 대한 기억 때문에 며칠 밤이 지난 후 다시 한 번 그곳에 데리고 가도록 부모님께 부탁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엄마의 오래된 코트 중 하나를 가지고 가서 추위에 떨고 있는 한 여인에게 주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트레버는 부모님과 밤마다 차를 타고 시내 중심가로 향했습니다.
그때마다 트레버는 노숙자들에게 담요와 스웨터, 코트 및 음식과 같은 선물을 가지고 갔습니다.
선물을 줄 때 그는 조금이라도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트레버는 노숙자들에게 희망과 돌봄의 상징이 되었고, 그들은 트레버를 “작은 친구(Little Buddy)라고 불렀다.
그렇게 계속해서 길거리로 나갔던 소년의 집에는 며칠 지나지 않아 담요 한 장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트레버는 여기서 그만두지 않고 친구와 이웃들에게 전화와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식이 시내 전체에 퍼지면서 여기저기서 동참의 손길이 전해졌습니다.
대학생들은 노숙자들을 위해 지원봉사에 나섰고, 음식점에선 푸짐한 식사를 제공했습니다.
게다가 한 군납업체는 재고로 남은 군대용 모포를 가져다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도움을 받은 사람이 무려 24만 명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좋은 일엔 꼭 훼방꾼들이 생깁니다.
노숙자 문제를 담당하는 시 공무원들이 열한 살 소년 트레버가 유명해지는 것이 못마땅했나 봅니다.
불우이웃 돕기 정채토론회에 초청된 트레버에게 시비를 걸었습니다.
“트레버군이 지금하고 있는 지원은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불우이웃 문제는 매우 복잡한 구조적 원인이 있기 때문에 해결책 역시 심사숙고하여 종합적으로 마련되는 것이 타당합니다.”
트레버가 대답했습니다.
“전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지만 오늘 저녁 그 분들에게 물어보겠습니다.
담요를 지금 드릴까요 아니면 심사숙고만하고 종합대책이 마련된 뒤에 드릴까요?”
트레버 가족의 이야기가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에 보도되고 많은 토크쇼에 방영된 후, 그들의 야간 방문은 “트레버 운동(Travor’s Campaign)”으로 성장 했다.
기증받은 승합자에 매일 밤 70가족이나 되는 사람들이 교대로 100명도 넘는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했다.
나중에는 한 오래된 호텔도 기증되었다.
수리와 개조를 끝낸 뒤 그곳은 트레버 본부와 노숙자들을 위한 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