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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 김성원 |
여학생의 애인이라는 그 남자는 절도혐의로 체포되어 콘돔이 나왔고, 경찰이 다른 단서라도 잡으려고 출처를 조사한 결과 여학생에게서 건네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김 선생을 불렀던 것이다.
다음날 신문에 <교사가 학생의 부정을 도운 한심한 교육>이란 제목의 머리기사가 났다. 이 사건은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김 선생은 교육청 징계위원회에서 경고처분을 받았다.
김 선생이 다시 발령을 받은 학교는 중학교였다.
교사가 물의를 일으켰을 때 다른 학교로 전보발령을 받는 것은 일반적이다.
김 선생은 이 기회에 사표를 던질까 많은 고민을 해보았다. 아내와 자식들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불명예제대는 하고 싶지 않았다. 교육자로서 소명을 다한 것밖에 없었다.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잘못이라면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학생부장을 맡은 것이 잘못이고, 그냥 적당히 모른 체 수업시간만 때웠으면 이런 일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중학교 수업 첫 시간이었다. 어이없게도 학생 셋이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김 선생 성격에 이것을 용서할 리 없다.
“학생! 학생! 일어나요. 수업시간에 자면 되나?”
그래도 학생들은 들은 체 만 체 그대로 자고 있었다.
김 선생의 음성이 커졌다. 그제서야 학생 둘이 기분 나쁘다는 듯이 부스스 일어났다. 그래도 한 한생은 자고 있었다.
“일어나!”
김 선생은 자고 있는 학생의 등을 가볍게 때렸다. 놀란 학생이 벌떡 일어났다. 뒤에서 다른 학생이 “찍어! 찍어!”라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휴대전화 동영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다음날 이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매를 맞은 학생의 부모가 학교에 찾아왔다. 내 자식을 왜 때리느냐고 교무실이 떠나갈 듯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거칠게 항의했다.
“우리 아이는 자야 해요. 학원에서 꼬박 밤샘을 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자지 않으면 안돼요.”
김 선생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공교육이 학교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다. 대한민국을 일등학교가 좌지우지하고, 일등대학에 가야지만 평생을 큰소리치며 살 수 있는 입시위주 교육이 이렇게 만들었다.
교육청 징계위원회에서 ‘사랑의 매냐? 아니냐?’라는 논란 끝에 사랑의 매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고, 김 선생은 견책을 받았다. 김 선생은 세 번의 징계를 받았기 때문에 공무원이 퇴직할 때 누구나 받는 훈장이나 대통령 표창도 받지 못하게 되었다.
김 선생은 이제야 아내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남의 일에 절대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학생이 공부를 하든 말든, 어떤 짓을 해도 내 할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김 선생의 집은 학원가에 있기 때문에 불량청소년들과 자주 만나게 된다. 퇴근시간이었다. 버스 정류소에는 버스를 타려는 학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재수생 같은 두 놈이 술을 먹고 여학생들에게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모른 체 해야지…….”
김 선생은 자신과 싸우면서 집에 돌아왔지만, 화장실에서 뒤처리를 하지 않은 것처럼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음날 버스에서 내리니 또 그 놈들이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참아야지…….”
횡단보도를 건너 한참을 보고 있어도 그 놈들의 행패는 끝나지 않았다. 여학생들은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고 야단이었다. 상당수 어른들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한결 같이 모른 체 하고 있었다. 김 선생은 평소의 버릇대로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학생~.”
두 녀석을 조용히 불렀다. 한 녀석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술 냄새가 확 풍겼다. 서부활극에 나오는 장면같이 입술로 담배를 이리저리 굴리다 담배를 땅에 떨어뜨렸다. 김 선생은 담배를 주워 휴지통에 비벼 끈 뒤 다시 돌아와 부모의 심정으로 그들을 타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