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뉴스민>은 지난 5월부터 3달 동안 악조건 속에서 일하고 있는 돌봄노동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공모받았습니다. 글을 쓸 시간이라고는 고된 노동을 마친 늦은 밤, 쏟아지는 잠을 쫓아내며 만드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공모작이 많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을 무색게 할 정도로 많은 분들이 공모에 응해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공모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오늘부터 공모작 중 심사를 거쳐 선정한 당선작 4편을 연속 기재합니다.
마음을 열고 세상을 보다
부문 : 웃음이 묻어나는 상
수상자 : 전유경
한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시골아줌마였던 나, 엄마의 고생스러움을 덜어주고파 했던 딸의 권유로 인해 대구로 올라와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처음 대구로 왔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농사짓는 일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 도시에서 뭘 먹고 살 수 있을지 눈앞이 캄캄하기만 했다. 막막한 마음에 딸아이가 일하러 가고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있을 때면 우울증까지 오는 듯했고, 한 푼이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주말이면 버스를 타고 품앗이를 하러 가는 등 나의 도시 적응기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딸은 나의 재촉에 못 이겨 이곳저곳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을 알려주며 “교육도 힘든데 할 수 있겠나?”라고 물었고, 뭔지도 모른 채 그저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무조건 한다.”라고 했다. 젊은 사람들 틈에 끼어 글자도 잘 모르던 나는 오랜 시간 의자에 앉아 있자니 필기는 고사하고 꾸벅꾸벅 졸기부터 하고 좀이 쑤시는 등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도 일주일이 지나자 앉아 있는 일도 조금씩 익숙해져 갔고, 이렇게 50대 중반에 시작한 돌보미 일이 벌써 5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에 일을 시작하며 ‘이보다 더 힘든 일도 했는데 못할 게 뭐 있노?’라고 생각하며 의지를 불태웠지만 하면 할수록 고추밭에 잡초 뽑는 일보다 더 힘든 일이 많았던 것 같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보다 나이가 많은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다. 어느 날 몸이 편찮으셔서 딸에게 연락하여 병원에 다녀왔고 아주머니가 매우 고마워하였는데 그날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저녁이면 전화가 와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를 하셨다. 처음에는 ‘말벗이 없어 그런가보다’생각하며 전화를 받아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밤에 자던 잠을 깨며 들어줘야 할 정도였고 정말이지 짜증도 나고, 젊은 아이들 말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몇 해를 보낸적이 있었다.
아주머니를 생각해서 한두 번 받아주던 전화가 오히려 나를 괴롭히기 시작하면서 미운정, 고운정이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아주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슬픈 소식을 전해 들었다. 편치 않은 몸으로 홀로 살아가는 외로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소식을 전해 듣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일손이 잡히질 않는다. 가던 길을 멈추고 의자에 앉아 지난 일을 생각하며 마음을 잠시 가다듬어 본다. 책도 읽으며 이야기도 나누고, 취미는 무엇인지, 음식은 무얼 좋아하는지, 아주머니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마음으로 다가갔더라면 밤마다 걸려오던 전화도 좀 더 너그럽게 이해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더 해줬을 텐데... 미련하지만 이제야 이런 생각이 든다. 시골아줌마다 보니 그저 방만 닦아주고, 집안정리만 해주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던 것 같다. 열심히 일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달래가며 남을 배려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몸소 느꼈다.
꽃도 알록달록 예쁘게 피었고, 하늘은 맑고 화창하기만 하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이렇게 주위도 둘러보고 하늘도 바라본다. 버스 노선 하나하나 물어가며 낯선 골목에 들어서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지나간 시간에 만감이 교차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 요양보호사 교육 때 선생님께서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해라”는 말을 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 정말 중요한 말인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스스로 거친 양손을 잡고 “나는 소중하다” 말하며 내 팔, 다리를 만져주었고 매일 매일을 위로하며 내 마음이 편안해 지도록 노력하는 등 무엇을 해도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 스스로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고 나니 마음을 열면 열수록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는 것을 느꼈다. 이 일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본다.
따듯한 손길을 기다리는 할머니, 할아버지, 아주머니, 아저씨, 그리고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더 큰 배려를 하고 마음까지 보듬어 안을 수 있도록 조금은 느리지만 책도 보고, 글씨도 쓰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등 시골아줌마는 오늘도 노력하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열 번, 백 번 물어도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친절하게 가르쳐 준 담당 선생님께 말로 할 수 없는 무한한 고마움을 전하며, 늘 힘이 되어주는 딸에게도 고마움을 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심사평
전체적으로 거짓없는 진솔함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노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 현재 자신의 생각까지 담담하게 과장없이 표현했습니다. 특히 글 마지막에 노동을 통해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고, 이를 자신의 노동에 대한 관심을 표현한 부분이 좋았습니다.
첫댓글 고생하셨네요. 글이 이뻐요.
계속 연재되어 올라오고 있습니다.
더 보고 싶으시면 "뉴스민" 으로 들어가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