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러하듯 삶을 떠받치는 물적 토대로서의 지형지세도 유동과 변전을 머금고 있다. 세월과 함께 땅은 바뀌고 살림의 모습과 형편, 그리고 사람의 의식도 변화한다. 사람과 땅은 상호 조응하는 가운데 생리와 지리는 서로 닮는다. 산과 들의 형세, 흙의 빛깔, 초목의 우거짐, 물의 들고 나감, 취락의 모양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진 풍경을 음미하고 거기서 생기는 생기와 감응을 제 것으로 삼을 때 풍경은 주체의 내면을 규정하는 하나의 외연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지형지세가 순하고 풍광이 수려한 곳에서 인재가 난다는 옛사람들의 믿음은 자연이 사람의 심성을 순화시키고 사람을 만든다는 산수인물양육론(山水人物養育論)에 그 배경을 두고 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지리적 공간, 즉 장소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은 의미화된 장소들이 드넓게 퍼진 세상에서 사는 것을 뜻한다. 땅을 딛고 사는 사람은 몸과 정신, 그리고 감정과 기운이 땅에서 오는 磁力과 진동, 변화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장소는 인간 실존이 외부와 맺는 유대를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의 자유와 실재성의 깊이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인간을 위치시킨다.”고 말한다. 사람답다는 것은 거처를 삼고 삶을 일구는 자신만의 장소[땅]를 확보하고 그 장소를 속속들이 잘 알며 친밀감을 쌓아간다는 것이다. 진정한 장소감은 심오한 인격이나 정체성이 길러지는 근본 바탕이다.
그러나 우리는 점점 더 뜻있는 장소들을 잃어버리는 시대로 밀려가고 있다. 고향 상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장소 상실은 필연적으로 장소 정체성의 상실로 이어진다. 장소 상실의 시대에는 실존의 밀도가 희박해지며 삶은 들뜨고 그 뜻은 빈곤해진다. 『현대시학』의 귀한 지면을 빌어 연재를 시작하는 「우리 시의 지리학」은 시인들이 시 속에 새긴 의미 깊은 그 ‘장소들’에 대한 뜻을 짚어보며, 장소 상실로 인해 맞는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해보려는 작은 시도이다. 아울러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국토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려는 뜻도 더불어 갖고 간다. 자연 경관이란 장소의 물리적 외관이며, 그것은 자아와 교감하며 자아를 저 깊은 곳으로 데려가는 그 무엇이다. 사람은 필연적으로 저를 둘러싸고 있는 지형적 세계 공간을 이해하고 그것을 넘어가고자 한다. 초월의 계기를 구하며 의미를 지향하는 것은 모든 진지한 예술의 발생론적 욕망의 중요한 부분이다. 사람은 풍경[땅과 자연]을 낳고, 풍경은 사람을 낳아 기른다는 믿음이 이 글의 일의적 동기가 되었다.
1. 序 ― 땅과 시와 산수화
2. 백석․이용악 ― 북방 산골
3. 서정주 ― 고창 질마재
4. 정지용 ― 옥천
5. 박목월 ― 경주
6. 이상․오장환․김수영․김광섭 ― 서울
7. 이성선․최승호 ― 강원 내륙
8. 한하운․이성부․김지하 ― 전라도
9. 박용래 ― 강경
10. 박재삼 ― 삼천포
11. 고은․문충성 ― 제주도
12. 신경림 ― 충북 내륙
13. 유치환 ― 울릉도
14. 신동엽 ― 금강
*이것은 이 연재물의 대강의 얼개이다. 연재하는 도중 사정에 따라 그 순서와 내용이 조금 바뀔 수도 있다.
땅과 시와 산수화
― 직소포, 전주, 도산서원, 혹은 김종억의 목판화
왜 많은 화가들이 풍경을 그리고, 시인들은 그것을 묘사할까 ? 풍경이란 우리의 감각적인 경험의 일부이다. 이것은 삶의 외부적 조건인 현실 세계에 대한 타자의 경험에 비추어본 나의 감각적인 경험과 이해의 확인이다. 내가 본 것을 타자도 같은 방식으로 보고 느꼈다는 사실의 확인에서 오는 안도감이 있는 것이다. 3차원적으로 존재하는 외부 세계를 2차원의 화면에 표현해내는 풍경화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재현해 하나의 전체로 바라보고 보고 느낀 바 지각의 확실성을 새기고 그 의미를 읽어내려는 인식에의 의지와 관계된다. 어떤 의미에서 사람은 공간적 존재다. 따라서 공간에 대한 성찰은 사람의 근원적 가능성에 대한 탐구의 열정에 뒷받침된다. 서양의 풍경화가 원근법과 음영의 기법들을 발전시키고 표면의 텍스쳐를 중시했다면, 동양의 화법은 선을 중시하고 실재가 아니라 실재로 인해 일어난 내적 감흥과 대상에 작용하는 기운생동을 표현해내려고 한다. 르네상스 이후의 서양화가 객관적 풍경의 세부를 실감나게 재현하는 길을 따라 갔다면, 우리 수묵 산수화는 땅에 대한 심미적이면서도 형이상학적인 체험을 중시하는 길을 간 것이다. 서양화가 풍경의 세부, 구체의 과학을 중시하면서 사실적 재현에 공을 들인다면, 우리 수묵 산수화는 풍경의 전체, 직관과 기운으로 파악한 이상향에 대한 추상적인 이념으로서의 풍경을 전달하려고 할 뿐 삶의 자리인 현실 공간의 세부 묘사는 틈입되지 않는다. 동서양의 화법의 차이는 이렇듯 분명하다. 이것은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관과 인간에 대한 해석의 차이, 철학과 문화사적 맥락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다.
화가 김종억의 목판화들은 땅과 사람의 관련성에 대한 의미심장한 성찰을 담고 있다. 화가와 나는 안성에 거처를 갖고 있는 인연으로 만났다. 화가는 작업실을 기꺼이 열고, 나는 화가의 작업실과 내 거처가 가깝다는 핑계로 뻔질나게 그곳을 드나들며 화가의 목판 작업을 곁에서 지켜보는 행운을 누렸다. 목판 작업은 많은 시간이 소요되며, 노동 강도가 세다는 것도 새롭게 알았다. 목판화는 화가의 내면적 기질, 그리고 삶의 고단함과 기쁨, 상처와 슬픔은 그림의 조형적 요소나 구도의 심미성보다는 목판의 투박한 질료적 특성에 고스란히 배어 나온다. 자연 경관이 뿜어내는 기운의 생동성과 화가의 내면에서 솟아나는 흥취와 신명이 만나 각(刻)의 깊이와 음영을 만들어낸다. 화가의 각은 매우 삼엄한데, 그것은 곧 화가의 정신적 내역과 칼질의 흔적들이 상호조응하며 소통한 결과인 것이다.
화가의 살림집 겸 작업실과 내 거처가 있는 안성은 수직으로 솟은 크고작은 산봉우리들이 이어지며 두 팔을 벌려 넓은 품에 평지와 들을 끌어안은 지형과 지세를 갖고 있다. 백두대간의 허리춤에서 서쪽으로 한남금북정맥이 뻗어나가는데, 다시 칠장산이 솟은 곳에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이 남과 북으로 엇갈린다. 참나무와 팥배나무, 서어나무 들의 군락을 안고 있는 서운산은 금북정맥의 초입에 우뚝 척추를 세운다. 칠장산과 서운산은 한 능선으로 이어지는 山係에 속한 산들인데, 산세는 험하지 않다. 이 산계에서 뻗어 나온 야트막한 산줄기가 평지를 감싸고 있고, 그 아래 농로와 수로는 미세혈관처럼 뻗어간다. 또 하나 안성의 지형적 특이성은 넓은 들의 이곳저곳에 잔물결을 일구는 여러 저수지들이 흩어져 있다는 것이다.
안성에 거처를 마련한 뒤 발길은 자연스럽게 일대의 들과 산으로 이어졌다. 가끔 석남사에서 서운산성으로 넘어오는 코스를 따라 걷는데, 완만한 경사의 산길을 따라 오르면, 막힌 데 없이 환하게 트인 맞은편 산은 제 수하의 산음(山陰)과 솟은 등성이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봄에는 진달래, 개나리, 산벚꽃, 살구꽃, 복숭아꽃, 영산홍 같은 봄꽃들이 만발한다. 봄꽃 진 뒤 녹색의 산빛은 꽃보다 더 싱그럽고 아름답다. 서운산 산빛은 오월에 절정에 이르는데, 그 즈음 산빛의 주종인 녹색은 넓은 스펙트럼을 이루며 분광한다. 도시에 살 때는 녹색이 그렇게 다양한지를 몰랐다. 다양한 수종(樹種)의 나무들이 피워내는 잎들은 저마다 색깔이 차이가 난다. 신생하는 봄의 수목들이 뿜어내는 비린내는 관능적이다. 바람은 그 오월의 산빛을 너울너울 흔들며 녹색의 군무(群舞)를 추는데, 나는 그 앞에서 자주 마음을 풀어놓는다.
사람은 땅을 딛고 살며 땅에서 나는 것들로 제 육신을 양육한다. 필경 사람은 그 땅과 닮을 수밖에 없다. 내 시들은 내 거처를 둘러싼, 활엽 수목들과 일년생 초본식물들로 가득 찬 산을 등지고 앞에 논밭과 커다란 저수지를 굽어보는 주변 지형지물과 깊이 관련된다. 나는 여기에 와서 물을 보고, 물이 저를 고요함과 낮춤으로 나아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나는 물을 바라보며 평안했고 행복했다. 왜 노자가 왜 물을 최고의 덕에 가깝다고 말했는지를 알 듯도 싶었다. 나는 물의 본성과 무위함을 관조하며 싹트는 나의 상상력의 외연을 키워갔다. 들과 물과 산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내륙의 지형학은 이미 내 삶의 일부가 되고, 이것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생활체험을 꿰뚫고 지나가는 힘과 기운이 내 상상력을 지배한다. 최근 내 시는 이런 내륙의 지형학에서 배태된 상상력을 근간으로 한다.
화가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높은 봉우리들로 이루어진 산과 끝간데없이 펼쳐진 평원과 구릉들, 굽이굽이 돌아나가는 하천 들은 사람을 압도하는 거대한 규모와 생김새의 신묘함 때문에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으로 물들인다. 사람은 땅을 딛고 살며 몸과 정신, 그리고 감정과 기운은 그것에서 오는 영향을 받는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장소는 인간 실존이 외부와 맺는 유대를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의 자유와 실재성의 깊이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인간을 위치시킨다.”고 말한다. 김종억의 목판화들은 장소의 경험, 즉 화가가 살고 있는 곳의 들과 산과 계곡, 수목, 그리고 휘돌고 감돌아 나가는 강의 체험과 불가분의 연관에서 나온다. 사람은 필연적으로 저를 둘러싸고 있는 지형적 세계 공간을 사유를 통해 이해하고 그것을 넘어가고자 한다. 초월의 계기를 구하는 것은 모든 진지한 예술의 발생론적 욕망의 중요한 부분이다. 어느 시대에나 예술가들은 ‘여기’에서 저 ‘너머’를 내다보는 몽상적인 존재들이 아니었던가.
사람이 산다는 것은 지리적 공간, 혹은 장소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은 의미를 머금고 있는 장소들이 드넓게 퍼져 있는 세상에서 사는 것을 뜻한다. 지리학자 에드워드 렐프가 지적하듯 사람답다는 것은 거처를 삼고 삶을 일구는 자신만의 장소를 확보하고 있고 그 장소를 속속들이 잘 알며 친밀감을 쌓아간다는 뜻이다. 김종억의 목판화들이 일으키는 감흥과 내면의 울림은 일차적으로 지리적 공간감에 대한 高揚에서 비롯된다. 자기가 사는 곳의 지리적 환경을 멀리 떨어져서 한눈에 꿰어 보는 경험은 흔치 않다. 화가의 목판화는 사물을 근접한 거리에서 바라보는 시각경험에 갇힌 생활 반경에서는 겪지 못하는 우리에게 지리적 공간에 대한 전체적 조망과 열린 지각을 선물한다. 고양된 공간감 속에서 우리는 시각의 해방감을 맛본다. 그것은 우리가 어린시절 처음 지도를 들여다보았을 때, 혹은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金剛全圖)」와 접했을 때 느꼈던 경이와 법열감과 매우 유사한 것이다. 조선 초기 이회의 「팔도지도」, 그 뒤를 잇는 정척․양성지의 「동국지도」, 18세기 정상기의 「동국지도」, 19세기 김정호의 「청구도」와 「대동여지도」 들은 국토에 대한 보다 상세한 지리적 이해를 제공한다. 지도가 갖는 의미는 지리적 이해를 드높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도들은 지리적 환경에 대한 상세 정보를 주는 것을 넘어서서 더 높은 삶의 질을 향유하려는 무의식의 욕망을 자극한다. 지도들은 근접한 생활체험의 평명성과 지리멸렬함을 넘어선 이상향을 향한 사람의 꿈과 동경을 일정 부분 반영하는 것이다.
김종억의 목판화들은 자연 경관들에 대한 묘사에서 빛을 발한다. 화가의 목판화는 내륙의 지형학과 깊이 연계될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림의 대상인 지형지물들은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편애의 흔적들이며 인격이 낳고 길러지는 원천이다. 화가의 목판 위에서 산계(山系)와 수계(水系)들은 하나의 실감으로 명증한 형태를 드러낸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가의 목판 작업은 물의 발원지와 경유지, 산맥의 뻗어나가고 이어짐, 옛길과 도로들, 사찰, 서원, 촌락 들에 구체적 존재감을 불어넣는 일이다. 목판 위에서 풍부한 사실감과 존재감을 뿜어내는 자연 경관들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다. 그것은 실존의 의미 있는 사건들이 이어지는 장소이며, 우리의 도덕적․지적․정신적 토대가 만들어지는 근원적 자리이다. 화가가 그려내는 장소들은 도산구곡, 화양구곡, 옥화구곡, 선유구곡, 그리고 명옥헌, 소쇄원, 식영정, 세연정과 같은 남도의 정자나 원림(園林)들, 운주사, 선운사, 내소사, 내원사와 같은 사찰들, 월출산과 월악산 들이다. 이 장소들은 지리적 공간으로 경험된 장소들이며, 사람이 세계와 맺는 관계의 기초로서 해석된 자연이다. 화가의 목판화는 대개 규모와 스케일이 크다. 그 크기는 놀라운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근거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위압하거나 주눅들게 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것을 자연을 대하는 화가의 염결성과 소탈함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화가가 목판에 각을 해서 드러낸 자연 경관들은 대체적으로 참된 장소감의 느낌을 강렬하게 불러일으킨다. 장소감의 느낌은 사람에게 현존재의 고양감을 부여한다. 우리는 점점 더 장소 상실의 시대로 밀려가고 있다. 위락 시설들이 들어찬 관광지, 거대 쇼핑몰, 대단위 아파트 밀집지역과 같은 공동주거지구 등과 같은 “가짜 장소들로 이루어진 가짜 세계”에 둘러 싸여 산다. 사이버공간과 같은 무장소의 출현도 현대인들이 직면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장소 상실은 장소와의 지속적 유대의 단절이며, 장소와의 일체감 상실을 뜻한다. 집과 고향은 특히 진정한 장소감을 되새기는 공간이다. 집과 고향이 모태와 같이 심성을 순하게 하고 애틋하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그 진정한 장소감 속에서 발현되는 정서인 까닭이다. 집과 고향은 무엇보다도 “나의 장소”인 것이다. 진정한 장소감이란 지리학자가 말하고 있듯 “무엇보다도 내부에 있다는 느낌이며, 개인으로서 그리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나의 장소에 속해 있다는 느낌”과 잇대어 있다. “장소에 대한 참된 태도란 장소 정체성의 전체적 복합성을 직접적이며 순수하게 경험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그 경험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인위적인 사회적․지적 유행에 매개되거나 왜곡되지 않고, 또 판에 박은 관습을 따르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이러한 태도는 장소가 인간 의도의 산물이고, 인간활동을 위한 의미로 가득한 환경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장소에 대한 심오하고 무의식적인 정체성을 지니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진정한 장소감은 심오한 인격이나 정체성이 길러지는 근본 바탕이다. 장소 상실은 장소 정체성의 상실을 피할 도리가 없다. 장소 상실로 인해 실존의 밀도가 희박해지고 삶은 얕아지고 빈곤해진다.
장소의 발견은 그대로 시의 중요한 모티프가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서정주의 「질마재 신화」연작이나 신경림의 「목계장터」, 그리고 천양희의 「직소포에 들다」나, 김사인의 「全州」, 이문재의 「저녁 燈明」, 「燈明」, 이성복의 「남해금산」, 이홍섭의 「강릉, 프라하, 함흥」, 「춘천, 프라하, 함흥」 등이 얼른 떠오른다. 장소는 먼저 실존의 외부성으로 발견된다. 장소가 본디 가진 고유성․강렬성․순수성은 그것이 지닌 외관의 속성이기 보다는 그것을 바라보는 자의 장소 경험이나 인식과 더 깊은 연관을 갖는다. 장소를 바라볼 때 그것은 바라보는 자의 겸험․눈․마음․의도가 동시적으로 작용하여 새롭게 빚어지는 그 무엇이다. 장소는 외부가 아니라 외부화된 내부이며 마음은 내부가 아니라 내부화된 외부이다. 장소와 마음은 상호삼투하며 마침내 그것을 바라보는 ‘나’와 무관한 그 무엇이 아니라 바로 ‘나’ 그 자체가 된다. 그것이 장소의 혼이며 장소의 정체성의 본질이다.
폭포 소리가 산을 깨운다. 산꿩이 놀라 뛰어 오르고
솔방울이 툭, 떨어진다. 다람쥐가 꼬리를 쳐드는데
오솔길이 몰래 환해진다.
와 ! 귀에 익은 명창의 판소리 완창이로구나.
관음산 정상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정상이란 생각이 든다.
피안이 이렇게 가깝다.
백색 淨土 ! 나는 늘 꿈꾸어왔다.
무소유로 날아간 무소새들
직소포의 하얀 물방울들, 환한 水宮을.
폭포 소리가 계곡을 일으킨다. 천둥 소리 같은 우레 같은
기립박수 같은 ― 바위들이 몰래 흔들한다.
하늘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무한천공이란 생각이 든다.
여기 와서 보니
피안이 이렇게 좋다.
나는 다시 배운다.
絶唱의 한 대목, 그의 완창을.
천양희, 「직소포에 들다」
「직소포에 들다」에서 우선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동사들의 다양성이다. 깨운다, 뛰어오른다, 떨어진다, 쳐든다, 환해진다, 흔들한다.......와 같은 동사들은 이 장소를 가득 채우고 있는 움직임들의 활력을 증거한다. 위에서 아래로 쉼없이 떨어지는 폭포의 곧은 물줄기와 그 주변 경관의 신령한 수려함에 시인의 마음이 응답하면서 바로 이곳이 “정상”이며, “백색 정토”이고, “무한천공”이며, “피안”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장소란 의미 속에서 경험되는 어떤 것이다. 따라서 참된 장소감의 발견은 인간 존재의 심원한 중심을 꿰뚫고 지나가는 강렬한 경험이다. 시인의 마음은 떨며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그것의 핵심은 “직소포”란 장소가 내면화하고 있는 세속의 오욕에서 먼 성스러운 느낌이다. 하지만 “직소포”의 발견은 실상은 늘 백색 정토와 피안을 꿈꾸고 있는 시인 자신의 마음의 발견이기도 하다. “무소유로 날아간 무소새”는 홀연 직소포를 찾은 시인의 무언가를 찾아 기대고 싶어 하는 자아의 표상이며, 천둥 소리 같고 우레 같고 기립박수 같은 폭포 소리에 “바위들이 몰래 흔들한다”고 했는데, 흔들린 것은 바위가 아니라 바위 같이 무거운 시인의 마음이다. 이윽고 바위의 질량은 한없이 가벼워져서 폭포 주변에 날리는 하얀 물방울, 즉 “환한 수궁”으로 전이한다. 마음은 무거움에서 투명한 기쁨의 가벼움으로 나아가는데, 그것은 비로소 죽음 자체, 고통 자체, 뜻을 잃은 무장소에의 오랜 포박에서 풀려난 해방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직소포는 시인이 잃어버린 마음의 자리이다. 본향과 같은 그 무엇, 그래서 끊임없이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장소이다. 잃어버린 장소를 이상화하려는 경향은 누구에게나 있다.
자전거를 끌고
여름 저녁 천변길을 슬슬 걷는 것은
다소 상쾌한 일
둑방 끝 화순집 앞에 닿으면
찌부둥한 생각들 다 내려놓고
오모가리탕에 소주 한 홉쯤은 해야 맞으리
그러나 슬쩍 피해가고 싶다 오늘은
물가에 내려가 버들치나 찾아보다가
취한 척 부러 비틀거리며 돌아간다
썩 좋다
저녁빛에 자글거리는 버드나무 잎새들
풀어헤친 앞자락으로 다가드는 매끄러운 바람
(이런 호사를 !)
발바닥은 땅에 차악 붙는다
어깨도 허리도 기분이 좋은지 건들거린다
배도 든든하고 편하다
뒷골목 그늘 너머로 오종종한 나날들이 어찌 없겠는가 그러나
그러나 여기는 전주 천변
늦여름, 바람도 물도 말갛고
길은 자전거를 끌고 가는 버드나무 길이다
이런 저녁
북극성에 사는 친구 하나
배가 딴딴한 당나귀를 눌러 타고 놀러오지 않을라
그러면 나는 국일집 지나 황금슈퍼 앞쯤에서 그이를 마중하는 거지
그는 나귀를 타고 나는 바퀴가 자글자글 소리 내며 구르는 자전거를 끌고
껄껄껄껄껄껄 웃으며 교동 언덕 대청 넓은 내 집으로 함께 오르는 거지
바람 좋은 저녁
김사인, 「全州」
「全州」 역시 장소의 발견이 그대로 시가 된 경우를 보여준다. 알 수 없는 흥겨움과 해찰의 즐거움이 어우러져 능청과 해학이 절로 솟는 너그러워진 마음 본새를 보여주는 이 시도 역시 장소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장소는 사람의 행위와 의미를 낳고 기르는 기초적 환경이다. 사람․장소․시간․행위가 하나의 통일체로 질서를 구현할 때 사람은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풍부한 실감과 함께 행복감을 느낀다. 「全州」는 그런 행복감에 젖어든 마음의 한 순간을 소묘로써 드러낸다. 시의 화자는 전주 천변 길을 자전거를 끌고 한가롭게 걷고 있다. 버드나무 잎새에는 저녁 햇빛이 자글거리고, 바람은 기분 좋게 옷깃을 파고드는 천변길을 걷는 화자는 “오모가리탕에 소주 한 홉” 생각과 함께 대작할 이로 “배가 딴딴한 당나귀를 눌러 타고 놀러”오는 먼 곳에 사는 친구를 떠올린다. 여름 저녁, 천변길, 둑방 화순집, 맑은 물, 쾌적한 바람, 국일집, 황금슈퍼, 교동 언덕 대청 넓은 집.....이 모든 경관의 요소들은 시적 화자의 정신 구조 속으로 수렴되어 동화하고, 나아가 주체의 활동에 심미적으로 결합한다. 실로 참된 삶의 느낌이란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을 얼마나 ‘나’와 조화되게 잘 동화시키는가의 능력에 따른 것이다. 시적 화자가 “발바닥[이] 땅에 차악 붙는” 느낌을 갖고 건들 걸음이 되어 걷는 것은 장소와 ‘나’가 하나된 듯한 일치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의 정체성이 장소의 정체성과 포개져 하나가 될 때 뿌리에 정착한 안정과 편안함의 드문 실감 속에서 고양된 삶의 순간을 맞게 된다.
김종억의 판화 작업은 우리가 잃어버린 장소들에 대한 실감과 존재감을 풍부하게 되살리는 작업이다. 이를테면 도산서원이 위치한 일대를 묘사한 판화 「도산구곡」은 자연 경관의 모습만이 아니라 거기에 새겨진 역사지리적 기억, 즉 퇴계의 삶을 둘러싼 지리적 반경과 퇴계의 삶에 숨은 원리로 작동하는 조선 성리학의 자연 이해를 함께 드러낸다. 김종억의 「도산구곡」(437 × 52 센티미터, 목판)은 도산서원 일대의 산과 강, 마을들을 세세하게 묘사한다. 지금도 남아 있는 도산서원 안의 書庫, 기숙사, 전교당, 庫直의 집, 장판각, 그리고 완락재, 암서헌, 정우당, 절우사, 농운정사 등과 농암, 분천 같은 주변 마을, 굽이굽이 돌아나가는 낙동강의 水系, 연이어 달리는 山系가 손에 잡힐 듯하다. 조선의 대유학자 퇴계 이황은 퇴계에서 살다가 집이 퇴락하자 도산 남쪽에 서당 지을 터를 마련해 3년에 걸친 긴 공사 끝에 연구와 講學을 목적으로 한 도산서당을 짓고 이사를 하는데,『陶山雜詠』은 이곳에 퇴계가 머물며 지은 시들을 모은 책이다. 도산서당 일대의 풍경과 기상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그려져 있는데, 김종억의 목판과 나란히 놓고 보면 놀랄만큼 비슷하다. “퇴계라는 시내 곁에 터를 잡고 살아왔는데 세월이 흘러 벌써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가난하게 사는 데다 집마저 자주 옮기니 집이 간들간들하다가도 또 기울고 허물어지기를 몇 차례나 되풀이하였다. 그사이 퇴계의 곁에서 살던 집들이 자연적인 조건은 그윽한 것이 그런대로 사랑스럽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형세는 결국 막히고 좁았다 하겠다. 이에 그 형세를 탄식하며 곧 고쳐 지을 곳을 구하고자 하여 높은 곳이며 깊은 경계까지 빠짐없이 두루 다 가 보았다. 퇴계의 남쪽에는 도산이 있는데 이런 신비한 곳이 가까이 있다는 것이 좋기도 하고 여태껏 몰랐다는 것이 또 괴이쩍기도 하다. 이제는 어쩌다 우연히 혼자 찾게 되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계상서당에서 함께 공부하던 이들이 모두 함께 이곳에 오기로 하였다. 연달아 이어진 봉우리의 등으로는 구름이 기어오르고 있으며, 벼랑처럼 잘리운 산기슭은 낙동강의 제방을 굽어보고 있다. 푸른색을 띤 물은 겹쳐진 모래섬을 두르고 흐르며, 아득히 멀리 보이는 봉우리들은 수없이 많은 상투처럼 줄지어 있다. 내가 살던 곳인 퇴계의 오른쪽에 있는 동네를 한번 살피어 찾아보았더니 훌륭한 터 찾고 말겠다며 오래 품어 온 바람을 바로 이곳에서 보상받게 된 셈이다. 동취병산과 서취병산 같은 그윽하고 깊숙하며 아름다운 두 산 사이에 있자니, 비를 품은 이내마저 활짝 개여 마치 그림 속에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모든 녹색을 띤 푸른 초목에서는 안개가 펄펄 피어오르고 분홍빛 꽃은 마치 그물을 덮어씌운 듯이 곱기만 하다.”(퇴계, 『陶山雜詠』, 이장우․장세후 옮김, 을유문화사, 2005) 이 목판에서 옛길과 새 도로들은 공존하는데, 같은 길이라도 그 성질은 판이하게 차이가 난다. 사람의 오랜 발길로 생겨난 옛길은 하나의 장소이며, 길다란 땅이다. 도산서원에서 발원하는 옛길들은 장소와 장소를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의 유대를 강화하며, 그 길과 연결된 지리의 성질을 공유하며 장소들 속으로 동화한다. 그러나 새로 닦인 도로들은 기본적으로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며, 주변의 장소들을 배타적으로 밀어내며 사람을 장소에서 이격(離隔)시키는 길이다. 도로들은 사람들을 장소에서 분리하며, 경관을 토막내고, 그것이 지나가는 장소들이 지닌 원초적 장소감을 해체하고 파괴한다.
자연 경관이란 단순한 자연의 물리적 형상을 넘어서서 자아와 교감하며 자아를 저 깊은 곳으로 데려가는 그 무엇이다. 풍경은 경관학과 지리학의 발생론적 근거다. 사람은 풍경을 낳고, 풍경은 사람을 낳아 기른다. 사람이 눈꺼풀을 들어 들의 형세, 산의 모양, 흙의 빛깔, 초목의 우거짐, 물의 들고 나감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진 자연 풍경을 음미하고 거기서 생기는 생기와 감응을 제 것으로 삼을 때 풍경은 주체의 내면을 규정하는 하나의 외연으로 작용한다. 자연과 사람은 상호 조응하는 가운데 지리와 생리는 닮는다. 옛사람들은 지형지세가 순하고 풍광이 수려한 곳에서 인재가 난다고 믿었다. 자연이 사람의 심성을 순화시키고 사람을 만든다는 생각이 산수인물양육론(山水人物養育論)이 태동하는 배경이다. 수려한 산과 들, 계곡과 폭포, 단애들, 혹은 소쇄원이나 명옥헌과 같은 인공정원은 우리를 심미적 존재로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 『택리지』를 쓴 이중환은 이렇게 쓴다 ; “대저 산수는 정신을 즐겁게 하고 감정을 화창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름진 땅과 넓은 들에 지세가 아름다운 곳을 가려 집을 짓고 사는 것이 좋다. 그리고 십리 밖, 혹은 반나절 길쯤 되는 거리에 경치가 아름다운 산수가 있어 매양 생각날 때마다 찾아가 시름을 풀고 혹은 유숙한 다음 돌아올 수 있는 곳을 장만해 둔다면 이것은 자손 대대로 이어나갈 만한 것이다.” 예부터 군자들은 자연 경관이 빼어난 곳을 발품 팔아가며 찾아가서 제 마음을 다독이고 수양하는 것을 도리로 받아들였다. 산수는 사람됨됨이의 태생적 근거로 작용하는데, 바로 거기에서 풍수지리학의 당위성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는 우리의 진경산수(眞景山水)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금강전도」를 들여다보면,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솟은 크고 작은 봉우리들은 마치 땅에서 솟아오른 불꽃같다. 이것은 우리 마음 속의 근원적인 형상과 상호조응한다. 이 산수화는 관념적 요소가 두드러진다. 정선의 금강산은 지리학적으로 파악된 산의 지형 지물, 그 지리학을 내면에서 떠받치고 있는 심리적이면서도 정신적인 이해, 땅에 대한 철학과 신화를 뒤섞어 체계화한 풍수지리의 관념이 빚은 산이다. 정선의 금강산은 그 물리적 구체를 벗어나 민족의 신령스러운 영산(靈山)으로 거듭난다. 그것은 안으로부터 창조된 풍경, 즉 “미화되고 신화화된 지도”(김우창)로 존재한다. 이 그림은 그림의 대상이 된 풍경이나 세계를 하나의 시점에서 파악하고 이해하려는 서양화가들의 공간 이해와는 사뭇 다르다. 「금강전도」는 하나의 고정된 관점이 아니라 다원적 시점(視點), 혹은 “움직이는 시점”을 통해 보고 이해한 풍경이다. 아마 이것은 서양화와 동양화가 공간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내는 대목일 것이다. 정선은 일만이천봉이나 되는 금강산의 웅장하고 복잡하게 펼쳐지는 봉우리들과 기암괴석의 도형학적 세목(細目)들을 사실적으로 모사(模寫)하기보다는 그것과 마주친 뒤 느꼈을 감각적 충격과 법열감, 지적인 현기증을 표현하려고 했을 것이다. 이것은 동양의 산수화가들이 지켜온 오랜 관습이며 전통이다. 그랬기 때문에 「금강전도」는 풍경의 사실성보다는 정신적인 이해의 측면을 더 표현하는데 공을 들인 것이다. 우리의 수묵 산수화는 풍경을 사실을 중시해서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는다. 산의 생김새와 지리학에 대한 사실적 이해도 중요하지만, 그것들은 이상화된 공간 이해에 겹쳐져서 이해되어야만 하는 그 무엇이었다. 따라서 수묵 산수화에 관념적 이해의 요소가 끼어드는 것은 필연인 것이다. 김종억의 목판화는 겸재나 단원의 붓질에 의해 완성되는 실경산수와 같은 정신적 맥락 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화가는 우리의 수묵 전통에서 크게 일탈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붓질과 칼질, 종이와 목판이라는 도구와 기법의 차이를 제쳐놓고 보면, 자연 경관을 하나의 근원적 심상으로 파악하려는 화가의 태도 같은 것은 우리의 수묵 화가들과 다르지 않다. 나는 화가의 목판화들이 겸재의 호방하고 직정적인 힘과 단원의 섬세함을 함께 갖고 있다고 보았다.
주체의 욕망 앞에서 풍경은 끊임없이 몸을 바꾼다. 사람의 삶이 그러하듯 유동(流動)과 변전(變轉)은 삶의 물적 토대로서의 지형지세(地形地勢)가 내면화하고 있는 유전적 형질이다. 세월과 함께 자연은 모습을 바꾸고 그 위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의 형편과 처지도 끊임없이 변화를 계속한다. 수묵 산수화는 땅과 풍경에 대한 감각적 체험이 그 바탕을 이루지만 거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서양 미술의 기법에 비추어보자면 원근법의 부재나, 실내와 건축물 따위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우리의 수묵 산수화는 지나치게 단조롭고 관념에 기울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산수화는 물질적 실재로서 자연을 단순하게 모사(模寫)하는 길을 따르지 않는다. 그보다는 좁은 공간에 대한 감각적인 체험을 넘어서서 번잡하고 속되며 잘게 쪼개진 일상세계를 포괄하는 세계의 전체상, 넓고 탁 트인 공간의 체험, 전체적인 의식 안에 융합된 부분적인 지각을 통합함으로써 생겨나는 초월적 암시를 담아낸다. 화가의 시선은 드러난 바 땅과 물의 외관을 더듬을 뿐만 아니라 그것 속에 숨은 유동과 변전의 기운을 아우른다. 그런 점에서 화가는 풍경의 발명자, 풍경의 철학자다. 시선과 풍경은 주체와 대상이라는 벽을 허물고 상호 침투한다. 저 풍경은 순수한 객체로서의 풍경이 아니라 이미 바라보는 자의 마음이 투사된 풍경, 주관적 풍경이다. 보는 자가 정치적인 인간이었다면 저 풍경은 정치사회적 상징으로 해석되었을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자연 풍경에서 읽는 것은 태어날 때 받은 천부적 은혜로서의 풍경, 문명화된 세계 속에서 타자화되고 추방되기 이전의 이상향으로서의 풍경이다. 우리가 김종억이 목판으로 재현해낸 산과 강, 바다와 같은 원초의 자연 앞에서 마음이 서늘해지고 평온해지며 충일의 느낌을 갖는 것은 그것이 잃어버린 근원적 장소감을 자극하고 이상향에 대한 꿈과 동경을 아스라하게 펼쳐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설명
1. 김종억, 도산구곡, 437 × 52센티미터, 목판
퇴계는 『陶山雜詠』에서 일대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 바 있다. “연달아 이어진 봉우리의 등으로는 구름이 기어오르고 있으며, 벼랑처럼 잘리운 산기슭은 낙동강의 제방을 굽어보고 있다. 푸른색을 띤 물은 겹쳐진 모래섬을 두르고 흐르며, 아득히 멀리 보이는 봉우리들은 수없이 많은 상투처럼 줄지어 있다. 내가 살던 곳인 퇴계의 오른쪽에 있는 동네를 한번 살피어 찾아보았더니 훌륭한 터 찾고 말겠다며 오래 품어 온 바람을 바로 이곳에서 보상받게 된 셈이다. 동취병산과 서취병산 같은 그윽하고 깊숙하며 아름다운 두 산 사이에 있자니, 비를 품은 이내마저 활짝 개여 마치 그림 속에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2. 김종억, 안동 하회마을, 179 × 90센티미터, 목판
고향은 무의식적으로 참된 장소감을 자아내는 표상적인 공간이다. 고향의 편안함은 그곳이 공동체 구성원들의 물리적․사회적․미학적․정신적 필요와 가치를 반영하는 데서 비롯된다. 고향-땅은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마음의 본향이다. 안동 하회마을은 평탄면에는 집들이 들어서 있고, 하천은 땅을 감돌아 나간다. 전통 취락과 함께 하천에 가까운 평지에는 논밭이 위치하고, 안쪽으로는 산봉우리들이 이어져 있다. 물은 맑고 물가에는 모래톱이 잘 발달되어 있다. 우리가 마음에 그리는 고향의 느낌을 잘 간직한 마을의 원형적 형태를 보여준다.
3. 겸재, 금강전도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솟은 크고 작은 봉우리들은 마치 땅에서 솟아오른 불꽃같다. 실제의 금강산과 마음 속 근원적인 형상은 상호조응한다. 정선의 금강산은 지리학적으로 파악된 산의 지형지물, 그 지리학을 내면에서 떠받치고 있는 심리적이면서도 정신적인 이해, 땅에 대한 철학과 신화를 뒤섞어 체계화한 풍수지리의 관념이 빚은 산이다. 겸재 정선의 금강산은 그 물리적 구체를 벗어나 민족의 신령스러운 영산(靈山)으로 거듭난다.
첫댓글 삶을 떠받치는 물적 토대로서의 지형지세도 유동과 변전을 머금고 있다.사람과 땅은 상호 조응하는 가운데 생리와 지리는 서로 닮는다.
산수인물양육론(山水人物養育論)
사람이 산다는 것은 지리적 공간, 즉 장소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은 의미화된 장소들이 드넓게 퍼진 세상에서 사는 것을 뜻한다.
“장소는 인간 실존이 외부와 맺는 유대를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의 자유와 실재성의 깊이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인간을 위치시킨다.”
사람답다는 것은 거처를 삼고 삶을 일구는 자신만의 장소[땅]를 확보하고 그 장소를 속속들이 잘 알며 친밀감을 쌓아간다는 것이다 <------ 땅사랑님 생각이 납니당~ 그쵸, 아랑처녀님? ^^
사람은 풍경을 낳고, 풍경은 사람을 낳아 기른다는 이 말이 옳은 말인가요?
3차원적으로 존재하는 외부 세계를 2차원의 화면에 표현해내는 풍경화는 동서양 간에 큰 차이가 있다.
이 글에 나오는 <틈입>이라는 말이 한자어인가요? 줄리님 글에서 처음 본 단어였습니다.
너무 긴 것 나빠요~
휴~ ^^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