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의 선진화
한 8개월 동안 탈 없이 지내던 외손녀가 독감에 걸렸다.
유치원 통학 버스에서 내리면서부터 울음 섞인 목소리다. 급하게 제 어미에게 연락해 병원에 갔더니 목이 붓기 시작한다며, 목에서 면봉으로 채취한 것을 살펴보니 독감이란다.
지난 2월에는 제 외할머니(마누라) 칠순 기념 사이판 가족여행 때만 해도, 편도 4시간이 넘는 비행에도 잘 버텨주었었다. 병원 안은 어린이 환자들로 넘쳐났다.
우리들 아이 키울 때만 해도 의료 보험이 없어 병원비용이 만만치 않았었다. 특히 큰 아들 놈은 편도가 자주 부어 열이 40도 가까이 오를 때면, 전전긍긍이었다. 가양동에 있는 모 약국에서 독하게 짓는 약을 먹어야만 겨우 진정되었고, 심지어 군에 있을 때도 약을 지어 부쳐 주었었다. 지금은 제 자식 걱정하는 40대가 되었지만..........
나는 약골로 태어났다. 조금만 대간하면 입술 주위에 수포가 자주 생겼다. 지금처럼 연고가 없던 시절이라 밥을 지을 때, 뜨거운 밥물을 수저에 묻혀 바르면 소독이 되어 가라앉았지만, 그 딱쟁이는 몇 주 동안 붙어 있었다. 왜 그리 학질은 자주 걸렸던지........ 하루는 멀쩡하다 그 다음 날은 오한이 나서 덜덜 떨렸다. 그러면 어머니가 전날 저녁 갈아 놓은 육모초즙을 아침 공복에 마셔야 했다. 워낙 그 맛이 써서 빈 속에 먹지 않으면 다 토하기 때문에 빈속에 먹어야 했다. 그 후에는 키니네를 먹었었다.
변 검사 결과에 따라 회충약을 학교에서 단체로 먹기도 했다. 그날은 수업이 없어 일찍 학교를 파했지만, 빈속에 먹은 약 때문에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투베르쿨린 검사에 따라 결핵 감염 여부를 판단하여 BCG접종도 학교에서 했다. 배가 아프면 집집마다 비상용으로 준비해 두었던 양귀비대나 삶아먹고 흰 죽을 먹던 시절이었다니.........
전쟁의 참화와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미래의 동량이었던 어린이들의 건강 증진을 위해 당시의 정부는 최선의 노력을 다 했었던 것이다.
70년대 국민 의료 보험과 국민 연금 시행을 동시에 추진하려 했던 정부가 국가경제의 빈약으로 우선 국민의료 보험부터 시행하기로 하여 지금은 전 국민의 개 보험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오늘 날 복지국가 실현을 위해 각 당에서 경쟁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으로 보육대란을 겪고 있는 것이 새삼스러우며, 어느 지자체에서는 중앙정부의 반대에도 청년실업수당을 지급하겠다고 난리이니 격세지감이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주 아팠던 나 때문에 우리 어머니는 속을 얼마나 끓였을까? 그래도 지석영 선생의 덕택으로 어린 나이에 우두는 다 접종했다. 지금은 많은 종류의 예방접종이 의무적이며 무료이란다.
이공계의 우수한 인재들이 모두 의대에 진학하는 요즘 우리의 의료기술은 첨단을 달리고 있다. 성형외과나 기타 분야에서도 외국인 방한하여 새로운 치료를 받기도 하고, 의료 후진국에 진출하여 그 기술을 전수해 주며 치료도 해 준다. 너무 무리하게 환자를 유치하여 비양심적으로 시술하여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우리의 의료 기술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단다. 제약 분야에서도 새로운 기술로 신약을 만들어 대박을 터뜨리는 기업이 생겼단다.
50여 년 전 의료 낙후 지역이었던 우리가 이제 세계적인 의료 선진국이 되었다니, 그 긍지와 자부심을 살려 인류 공영과 세계인의 건강을 책임지고 선도하는 선진국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6. 4.
儒廣 陳 萬 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