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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여러번의 후기를 카페에 올린 것 같은데 "실패담"은 처음 인거 같네요... ^^
사실, 2011년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 대회 중간에 포기한 적이 이번이 두번째. 2013년 처음으로 동마에 참가했는데, 그 당시 과도한 체중과 운동 부족으로 인한 무릎 부상으로 20km 지점에서 포기. 전철을 타고 동대문에서 잠실까지 간 기억이 있다. 아직 추운 초봄에 땀에 절은 싱글렛과 반바지에 전철을 오르니, 모든 사람들이 다 나만 쳐다보는 거 같아 어찌나 민망하던지... ^^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또한 좋은 추억이라, 이번 KOREA 50K 대회 또한 기억이 더 흐려지기 전에 힘들었던 대회 참가기를 남겨 본다. 제목부터 "실패담"이니 결과가 뻔한 후기이지만 과정도 나름 흥미진진하고, 반성하는 의미에서...ㅎㅎ
KOREA 50K 국제 트레일러닝 대회
"사막의 아들" 유지성씨가 첫 디렉팅을 했고, 동두천시와 의류업체 콜럼비아사가 후원하는 국제 대회. 작년에는 58km 부문에 참가, 11시간 14분에 완주했던 경험이 있다. 올해는 ITRA(국제 트레일러닝 협회) 포인트 기준이 강화가 되었는지, 80km 부문을 신설. 안그래도 험한 코스를 좀더 길게, 힘들게 만들어 놓았다. 참가 종목은 10K, 25K, 50K, 80K로 총 1600여명이 참가했다고 하니 해마다 규모가 커지는 듯. 특히 20~30대 젊은 러너들에게는 남여 불문, 유행처럼 번지는 듯 하다.
참가 신청은 일반 마라톤 대회보다 조금 더 서둘러서 해야 한다. 2019년 4월 대회인데, 얼리버드 참가신청(약간의 할인이 있다)는 2018년 12월 한달 동안 가능하고, 2018년 12월 31일부터 선착순 접수. 80km의 경우 참가비가 179,000원으로 다소 비싼 편이지만, 주로 보급이 좋고 기념품도 다양하다. 물론 완주하는 주자에 한해 멋진 완주티도 선물로... 이걸 못받으면 본전 생각이...ㅋㅋ
작년엔 현장에서 받았는데, 올해는 사전에 택배로 온 기념품과 배번. 곤텍스 테입은 아껴놓고 있고(아끼다 ㄸ될듯ㅎㅎ) Dextro 포도당 캔디는 대회 중 요긴하게 사용. Buff 사 버프에는 이번 대회 지도가 프린트 되어 있다.
배번이 8014번이니 신청을 14번째로 했나? ㅎㅎ 대회 신청을 일찌감치 해놓은 것이 맘준비는 잘 된거 같은데, 몸준비는 대회 직전까지 전혀~. 그나마 위안인게 한 달전 제주도 80km 트레일러닝과 바로 이어 동마 완주를 했다는 거. 그 이후 정말 푸~욱 쉈다. 정말 그 한달 동안 회복을 핑계로 꼴랑 90km 정도 달렸나? "쉰 만큼 더 잘 뛰어질거야"라는 뇌피셜은 도대체 어디서??!!!
이번 대회 준비물. Hoka 트레일러닝화 첫 출전! ^^
대회 당일 동두천 기온이 6~22도라고 하니 땀 배출이 좋은 기능성 티와 팔토시 준비. 작년엔 26도까지 올라가며 그늘없는 임도에서 정말 고생했다. 다만, 한가지 미처 준비 못한 것이 식염 포도당. 막상 대회를 뛰어보니 날씨는 생각보다 선선했지만 코스가 힘든 탓에 땀을 엄청 흘렸더니 탈수 증상까지..^^;;
대회 하루 전 금요일 저녁 6시 기차를 타고 용산역으로. 다시 용산역에서 1호선을 타고 동두천중앙역까지는 대략 1시간 반. 거의 저녁 11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대회가 토요일 새벽 4시 출발이니, 찜질방엘 가볼까 하다가 2~3시간이라도 푹 자두자 싶어 작년 대회때 머물렀던 숙소로. 알람을 새벽 2시에 맞추고... 일단 자자. ^^
잔건지 만건지 새벽 2시에 일어나 샤워. 대회 장비를 챙기고 가져간 떡으로 새벽 요기를 한다. 동두천 중앙역에서 주최측이 보내준 셔틀버스를 타고 경기장으로. 새벽 공기가 아직 차가운데, 신나는 음악과 하나 둘 모여드는 주자들의 열기로 경기장이 후끈하다. 개인 소지품을 맞기고, 화장실 한번 다녀오니 벌써 출발 시간. 정확히 4시에 사회자가 출발을 알린다.
동두천 종합 경기장 출발선 앞에서
Olivia Luk. 재작년 Trans-Jeju 100km때 만났다. 이번 대회 초청 선수로 왔단다. 배번 8002.
대회 코스도. 거리는 76.3km, 획득고도는 4800m(라는데, 실제 대회후 대부분 선수들이 5500m 정도 찍혔다고 ^^;;)
출발 ~ CP1 11.5km 난이도: 보통
아직 깜깜한 새벽이라 헤드랜턴을 켜고 달린다. 1키로 정도로 도로를 달리다 산으로. 작년에 달려봤던 길이라 익숙하다. 1구간은 칠봉산(512m)과 천보산(423m)를 넘는데, 대회 초반이라 그런지 그리 어렵지 않게 넘는다. 다만 작년과 다른 점이라면 1구간 내내 헤드랜턴에 의존해야 해서 내리막에 좀더 조심해서 달린다. 비슷한 속도를 가진 선수들끼리 앞서거니 뒷서거니. 첫번째 CP가 있는 회암사 내려가는 암벽구간에서 Olivia를 만났으니, 초반에 조금 빠른가 싶었는데, 아니다 다를까 첫 CP에 도착 시계를 보니, 작년 58K 대회때와 거의 비슷한 1시간 47분이 찍힌다.
1구간 기록. 작년과 같은 코스에 같은 기록. 전체 순위는 52등. 속도는 6.02km/h
CP1 ~ CP2 11.5km 난이도: 보통
첫번째 구간은 거리도 짧고 기온도 낮은 새벽 구간이라 물을 절반만 채워서 달렸는데, 이번 구간 역시 작년과 동일하다면 달리기 좋은 임도 구간이 많아, 추가적인 물보급 없이 출발한다. 작년에는 코스를 잘 몰라 체력 안배를 했었는데, 올해는 코스가 눈에 훤한 만큼 좀더 속도를 내보기로 한다. 역시 초반에 작은 산 하나를 오르는데, 이제 서서히 동이 트기 시작해 헤드랜턴 없이도 주로가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작년과 비슷하게 낙엽이 많이 쌓인 흙길. 몇 번의 오르내리막을 달려 16km 지점이였나, 오매불망 기다리던 임도길이 나타난다. 꾸준한 오르막이지만 경사가 급하지 않아 달릴만 하다. 서너명의 주자를 추월했나 보다. 유일하게 한국 여성 주자 한 명에게 추월 당했는데, 마지막 내리막에서 다시 따라잡았다. 오지재 고개 도착. 구간 기록은 1시간 47분. 신기하게 바로 전 1구간, 그리고 작년 같은 구간 기록과 정확히 똑같다. ^^ 시계에 찍힌 기록을 보고 "그래, 계획대로 잘 돼 가고 있어..!"라고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60km 대회와 80km를 뛰어야 하는 대회의 첫 두 구간의 기록이 똑같았으니.. 마치 풀코스 초반 10km를 거의 하프 페이스로 뛴 꼴. 엄청난 오버페이스라는 걸 이땐 미처 몰랐다. ^^;;
2구간 기록. 1시간 47분. 전체 순위가 38등으로 올랐다. 무려 14명을 추월. 속도는 6.2km/h.
CP2 ~ CP3 11.3km 난이도: 어려움
제 3구간 코스도(파란색 박스). 왕방산과 국사봉을 넘어간다.
이제 본 게임 시작이다. 구간 거리는 11.3 km로 전 구간들과 비슷하지만, 이번 대회 구간 중 두번째로 높은 왕방산(737m)를 넘어야 하고, 그 후로도 왕방산보다 더 높거나 비슷한 봉우리를 두개 넘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작년처럼 완전히 산 아래로 내려갔다 다시 꼭대기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능선을 따라 이동을 한다는 점. 오지재 CP에서 물을 빵빵하게 채운 다음, 눈에 보이는 대로 간식거리들을 입에 가득 집어 넣고 출발을 한다. 구간 첫 오르막이 580m 고지로 처음부터 만만치 않다. 이 산을 내려오는 길 또한 무척 급경사라 조심조심 내려오는데, 내리막에 강한 주자들이 계속 추월해 간다. 왕방산 정상까지는 작년에 와 본 경험이 있어, 어느 정도의 힘듬을 각오하고 오르지만 작년과는 다르게 "잠시 쉴까?" 하는 생각이 여러번 든다. 새로 산 Hoka 신발이 제 역할을 잘 해주고 있어 발가락과 무릎이 편하고, 종아리와 허벅지도 잘 버티고 있는데, 호흡이 문제다. 왕방산을 오르는 내내 거친 숨을 몰아쉬느라 입이 닫히질 않는다. 그 상태의 호흡이 그 후 10시간 동안 주~욱 ㅠㅜ. 마치 400m 인터벌을 10시간 동안 했다고 할까? 장거리 및 오르막 연습 부족이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왕방산 정상 바로 앞에서 대회 안내 요원이 길안내를 해준다. 작년 대회 때 결정적인 지점에서 알바를 한 주자들이 많아서인지 올해는 저걸 어찌 다 했을까 싶을 정도로 코스 표시가 잘 되어 있다. 안내 요원이 알려주는 대로 진행하는데, 여기서부터는 처음 가보는 길이다.
"그쪽으로 4키로만 더 가면 국사봉입니다~!!!"
국사봉??!!! 작년에... 남은 체력과 멘탈을 탈탈 털어버린 그 국사봉??? 안내 요원이 친절하게 해준 그 한 마디에 안그대로 거친 호흡이 더 거칠어진다. 굽이굽이 능선을 타고 3키로쯤 내려가다보니, 국사봉 정상으로 가는 7부 능선이 나온다. 산아래에서 여기까지 올라오는 것도 힘들지만, 기억으로는 여기서부터가 끝판왕이다. 기억이 좀 틀려주길 바랬는데...ㅠㅜ 미군 부대가 있는 정상까지는 두손 두발을 다 써야 올라갈 수 있는 난코스이다. 날씨가 시원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중간중간 두세번 호흡을 고르고, 등산로 옆으로 설치된 로프에 의지해 간신히 정상에 올랐다. 이제 겨우 30km 왔는데, 몸은 벌써 100km 완주한 만큼이나 힘들다. 정상에서 급경사 시멘트 도로를 따라 내려가는데 젊은 여자 선수 한명이 하나도 힘든 기색 없이 사뿐사뿐 추월해 간다. 역시 젊음은 좋은 것이여~ㅎㅎ 도로끝에서 CP3 가 맞아준다.
3구간 기록. 2시간 40분. 순위가 44등으로 밀렸다 ㅋㅋ. 시속 3.43km/h
3구간 원래 목표시간은 2시간이였는데, 거의 40분이나 늦었다. 트레일러닝 대회는 기록이나 순위보다는 늘 완주에 목표를 두기에 cut-off (각 CP 통과 제한 시간)에만 걸리지 않도록 구간 목표 시간을 잡는다. CP3 cut-off 시간이 12시 30분인데, 10시 약간 넘어서 도착했으니 2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좀 다른게... 오늘(토) 대회를 마치고, 용산역에서 밤 10시 20분, 목포로 떠나는 마지막 KTX를 타야 한다. 동두천에서 용산까지 이동 시간을 생각하면, 최대 16시간, 중간에 샤워하고 간단히 저녁먹을 시간까지 고려하면 15시간 안에 골인해야 한다. 3구간에서 벌써 40분을 까먹었고 오늘 컨디션을 보아하니 15시간은 물건너 간것 같고, 16시간(오후 8시 골인)이라도 맞춰보자. CP3 이후의 코스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코스도를 보면 왕방산이나 국사봉 같은 곳을 없으리라 예상된다....제발;;;;
CP3 ~ CP4 14.7km 난이도: 보통
새벽 2시에 일어나 지금껏 먹은 거라곤 떡 몇 조각밖에 없어 허기가 졌고, 마침 CP에서 컵라면을 제공하는지라 작은 컵라면 하나에 물을 받아놓고, 다음 구간에서 쓸 파워젤이며 에너지바 같은 것을 배낭 앞주머니로 옯겨 놓는다. 라면을 먹다 보니, 이 CP에는 특이하게 빨간고무로 코팅된 목장갑을 제공한다. 뭐냐 물어보니, 다음 구간에 암벽 구간이 있어 필요한 사람은 가져가도 된단다. 늘 트레일런 할때 쓰는 손가락 장갑이 있었고, 설마 목장갑이 필요할 정도로 험난할까 싶어 간식만 몇 개 챙겨 출발한다. 에이 설마 암벽이....
CP에서 바로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이 산은 작년 대회때 오른 적이 있다. 이 산만 넘어가면 그 다음부터는 자동차들이 다닐 수 있는 비포장/포장 도로로 체력만 남아있으면 달리기에 나쁘지 않다. 배도 든든하고 이 산만 넘어가면 좀 편해지겠지... 하는 생각에 호흡은 여전히 힘들지만, 즐거운(?) 맘으로 산을 넘었다. 역시나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오고, 진행 요원 한 분이 길 안내를 한다.
"80K 주자시죠? 오른쪽 산길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중간에 암벽 구간이 있어 좀 힘들기 한데, 그 구간만 넘어가면 괜찮아요~! 참, 중간에 철조망 조심하시구요~!!!"
시멘트 포장도로가 이어지는 길에는 50K 표지판이 붙어있고, 진행 요원이 가리키는 길은 다시 산 위로 이어지는 산길 오르막이다. 차라리 기대나 안했으면 덜 힘들었을 것을...ㅠㅜ 그래도 다음 CP까지는 계속 내리막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다시 산을 오른다. 아직 다리는 잘 버텨주고 있어 내리막은 달릴만 한데, 호흡 때문에 오래 달리진 못한다. 그러는 사이, 또 몇 명의 주자들이 추월해 가고... 두 손으로 기어 올라가야 하는 암벽 구간이 나온다. 그리고는 좁은 등산로 양쪽으로 날카로운 군용 철조망이 끝없이 이어지는 산길. 이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악어 등가죽같은 뽀쪽한 바위들이 꽉꽉 채우고 있는 산능선길. 무엇보다 이제부터 내리막이겠지.. 하면 어김없이 나오는 100m짜리 오르막을 7~8개 넘다보니, 안그래도 15km로 거리가 가장 긴 4구간을 과연 끝낼 수 있을까 싶은 생각까지 든다. 지금껏 트레일러닝 경험중, 가장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구간이 아니였나 싶다. 정말 끝날 것 같지 않던 산길이 드디어 시내로 접어들더니 CP4 요원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내 가민으로 확인하니 구간 거리 16.5km, 소요시간은 무려 4시간이 걸렸다. 주최측에서도 이 구간 제한 시간을 4시간으로 잡아 놓아, 여전히 CP4 cut-off 시간보다는 2시간 빨리 들어왔지만, 기차를 타기 위해 마지노선으로 정한 16시간까지는 이제 5시간 30분 남았다. 앞으로 남은 거리는 25~27km. 더욱이 400~500m 산들을 4개 더 넘어야 하니.... 오늘 제시간에 기차타는 건 물 건너간듯 하다. CP에서 제공하는 주먹밥과 시원한 오이냉국을 먹으며, 일단 완주를 목표로 내일 아침 첫차를 타는 걸로 계획을 수정했다.
4구간 기록. 3시간 54분. 순위 49등(생각보다 선방. 다른 주자들도 힘들었나 보다 ㅋㅋ) 4.31km/h
CP4 ~ CP5 11.7km 난이도: 보통
제 5구간. 두번째 피크가 마차산. 정상까지 내려오는 길 경사가 무척 급하다.
5구간은 올해 신설된 코스. 코스맵상으로는 400m 조금 넘는 산 하나와 588m 마차산을 넘어 소요산 역으로 가는 코스. 이제 완주를 목표로 하니 마음은 가벼운 반면, 몸이 그동안 쌓인 피로감으로 무겁다. CP를 나와 시내를 조금 걷다, 다시 산으로 접어든다. 산이름이 뭐였더라... 400m로 높지는 않지만, 경사가 급하다. 이 산뿐만 아니라 오늘 경험했던 모든 산들이...^^;; 오르막에선 그리 문제될 건 없지만, 로프를 의지해 내려와야 하는 내리막에서는 속도를 현저히 떨어뜨린다. 헉헉대며 첫 산을 오르니 이때부터는 부드러운 능선이 이어진다. 체력이 남아있는 주자들에겐 정말 달리기 좋은 길.
마차산 가는 능선에서 한 컷. 대회 도중 찍은 첫 사진이자 마지막 사진. 웃는게 웃는게 아냐~^^
마음을 내려놓으니 사진 한 장 찍을 여유도 생긴다. 5구간 딱 중간 지점이였나.... 주말 등산객 한 분을 만났다. 일행분을 기다리고 있었나 본데, 내 앞서 달리는 주자들 몇을 보았나 보다. 이번 대회에 궁금한 게 많다.
"어디 어디 거쳐 오시는 거예요?"
"네, 종합 경기장에서, 왕방산, 국사봉... 여기까지 대략 52키로 정도 왔네요..."
이 곳 현지분이신 듯 대략적인 설명으로도 달려온 경로가 그려지시나 보다. 설명을 다 듣더니 고개를 가우뚱하신다. 그리곤 결정적인 한 마디.
"근데, 이거 왜 달리는 거예요????"
울고 싶은데, 싸다구 한 대를 세게 날리신다.ㅠㅜ 멀리서 쫗아오는 주자가 보여 미처 대답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자리를 떴는데, 그 후로 한참, 그 질문이 귓가에 맴돈다. 도대체 난 왜 달리고 있는 거지??? 시간, 돈 쓰는거야 취미생활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가장 근본적인 목적인 "건강한 삶"과는 정반대의 운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아마 이 무렵, 두 허벅지에선 쥐가 올라오고, 무엇보다 가만히 서있어도 정상적인 호흡이 어려울 정도로 힘든 상황이였나 보다. 그럴만도 한것이 14시간째 헐떡이고 있으니, 이제 호흡을 고르려고 숨을 깊이 들여 마시면 가슴에 미약한 통증마져 느껴진다. 마차산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거의 100m 간격으로 걸음이 멈춰진다. 간신히 정상에 올랐건만,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로 더 어렵다.
마라톤 사회자가 출발전 늘상 하는 멘트중 하나... 달리는 도중 배나 다리가 아프면 조금 쉬었다 달려도 문제가 없지만, 어지럽거나 가슴에 통증이 느껴지면 바로 경기를 중단하라고. 무엇보다 다음 구간에 넘어야 하는 500m 산 두개의 난이도가 지금보다 더 높다고 하니... 그것도 깜깜한 밤에 헤드렌턴에 의존에 이 경사를 내려와야 한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수도 있다. 마차산을 절반 정도 내려왔나... 경기를 포기하기로 한다.
경기를 시작한지 14시간 만인 오후 6시, 소요산 역 인근 CP5 도착. 진행 요원에게 DNF를 알리고 배낭에 단 기록칩을 반납한다. 기록을 보니 주최측 거리로는 60.7km 지점, 내 가민 시계로는 63km를 진행하였고, CP5에서의 순위는 그 전보다 6위 밀린 55위로 들어왔다. 평속은 3.18km/h로 떨어졌고 무려 3시간 40분이나 걸렸다. cut-off 시간과의 차이가 1시간으로 줄어 있었다.
만약 계속 진행했더라면... 남은 제한 시간 6시간. 남은 거리 16km. 그 당시 컨디션으로 봤을땐 5시간 이상이 걸려, 제한 시간인 밤 12시 무렵에서야 간신히 들어오지 않았을까 싶다. 경기를 포기한 시점에선 그런 예상이 큰 의미가 없긴 하지만...^^;;
누적시간 14시간 08분, 누적거리 60.7km, 누적고도 3721m 트레일 러닝 첫 DNF.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한 게, DNF를 결정하고 산에서 내려오면서 참 아쉽고 속상하기도 하더니 기록칩을 반납하고 택시 타고 경기장으로 돌아오는데, 이제 따뜻한 물에 목욕하고 맛있는 저녁 먹을 생각을 하니 기쁘기까지 하다. ^^ 경기장에서 가방을 찾는데, 먼저 들어온 20km 주자들과 50km 주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저녁 식사와 생맥주를 한잔씩 하고 있는데 부럽기 그지없다.^^ 동두천역 가까운 목욕탕에서 샤워를 하고, 용산역까지는 1시간 30분 소요. 역내 식당에서 국밥에 꿀맛같은 소/맥 한 병을 먹고 목포로 복귀. 토요일 새벽부터 자정까지 꽉 채운 24시간의 트레일런 여행을 마쳤다.
경기 포기 직전 CP5 가는 길에 찍은 소요산 모습. 당시엔 한라산보다 높아 보였다. ^^;;
나중에 기록을 보니 80km 부분은 일본 선수가 10시간 46분의 기록으로 1위, 2위는 한국 심재덕 선수 11시간 06분. 여자부는 물장구 마라톤의 박정순 선수가 14시간 21분의 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 여성 초청 선수였던 Olivia는 18시간 42분 기록으로, 무척 힘든 레이스였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자기 GPS에 찍힌 고도가 거의 6000m였다나...^^;; 하긴 내 가민에도 63km까지의 누적 고도가 4567m 였으니, 약간의 오차를 고려하더라도 지금껏 가장 높은 고도를 오른 대회였다.
하지만, 몽블랑 CCC는 6100m를 올라야 하는 건 안 비밀. 거리도 100키로이니 두배는 힘들겠지? ^^;;
이번 대회의 실패 경험이 8월 몽블랑 대회에 약이 될까 독이 될까... 한번 포기한 경험에 또 다시 포기한다면 독이 되겠지만, 연습 부족의 결과를 뼈저리게 느꼈으니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준비한다면 좋은 약이 될거라 믿는다. ^^
미완성으로 남은 오리 한 마리 ㅎㅎ
첫댓글 "근데, 왜 이거 뛰는거예요?"
대답 : "근데, 왜 안 뛰세요?"
우문현답이시네요~ 늘 존경합니다 ^^
형님의 도전정신에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인생 뭐 있습니까.!!^^
가우가 밥먹여주는것도 아니고 말입니다.ㅋ
한번쯤 포기 해 보는것도 다음을위한 연습 아니겠습니까.
몽블랑을 위해 수현성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