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르 기탄잘리 읽기(3)] 나를 자유롭게 하는 그대
31.
"죄인이여, 말하라. 그대를 속박한 자 누구인가를."
"나의 주인이십니다.
나는 부귀와 권력에 있어
이 세상 누구보다도 뛰어날 것이라 여겨
임금께 바칠 헌금도
내 보고에 고이 간직해 두었습니다.
졸음을 나래가 나를 감싸올 때
나는 님을 위해 마련한 잠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러나 잠깨어 눈떴을 때
나는 내 보고 속의 죄수였습니다."
"죄인이여 내게 말하라.이 끊기지 않는 쇠사슬을 누가 만들었는가를."
"이는 바로 나입니다.
이 쇠사슬을 공들여 만들었습니다.
누구에게도 꺾이지 않는 내 힘으로
세상을 노예로 만들고
나만은 내 맘대로 하리라 믿었습니다.
밤이고 낮이고 온통 불을 피워
거리낌없이 쇠를 달궈 사슬을 만들었습니다.
마침내 모든 쇠사슬이 단단히 이어졌을 때
그 쇠사슬에 묶여 있음은 바로 나였습니다."
32,
이 세상에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온갖 이유로 나를 묶어두려 하지만
그들 사랑보다 더욱 큰 님의 사랑은
결코 그것과는 다릅니다.
님은 진정 자유롭게 나를 놓아 두십니다,
그들은 내가 그들을 잊을까 두려워
나를 홀로 놓아두지 않사오나
님은 오랜 세월이 흘러가도
그 모습을 내 앞에 보이시지 않습니다.
내 기도 속의 님의 이름 부르지 않아도
내 마음 속에 님을 기억하지 않아도
내게 대한 님의 사랑은
언제나 나의 사랑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33.
그것은 낮이었습니다.
사내들이 내 집에 찾아와 말한 것은.
"우리는 이곳에서
가장 작은 방을 빌림으로 족합니다."라고.
"우린 당신이 신께 올리는 예배를 돕고
그 은혜 조금만 나눠주시면 고마울 뿐입니다."
그들은 한켠 구석에 자리하고,
조용하고 온순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밤의 어둠 속에서
그들은 난폭하게 내 신성한 신전에 침입하여
제단의 제물들을 강탈해갔습니다.
34.
나의 것을 조금만 남겨주시오.
님은 나의 모든 것이라 말할 수 있도록.
내 뜻을 조금만 남겨주시오
어느 곳을 보아도 님을 느끼고
어떤 것에서도 님께 가까이 이르고
어느 때이고 나의 사랑을
모두 님께 바칠 수 있게 하여주시오.
내 스스로를 조금만 남겨주시오
그것으로 님을 가리게는 하지 않겠습니다.
나의 사슬도 조금만 남겨주시오.
이로 인하여 나는 님의 의지에 묶이어
님의 뜻이 내 생명 가운데 실현되도록
그것이 바로 님의 사랑의 형틀입니다.
35.
마음에 두려움 없어
머리를 높이 치켜들 수 있는 곳
지식이 자유로울 수 있는 곳
작은 칸으로 세계가 나눠지지 않은 곳
말씀이 진리의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곳
피곤을 모르는 노력이 완성을 향하여 팔 뻗는 곳
이성의 맑은 흐름이
무의미한 관습의 메마른 사막에 꺼져들지 않는 곳,
님의 인도로 마음과 생각과 행위가 더욱 발전하는 곳,
그런 자유의 천국으로
나의 조국이 눈뜨게 하소서, 나의 님이시여.
36.
오오 남의 님이시여
이는 님께 드리는 나의 기구입니다.
내 마음 속 궁핍한 뿌리를 살펴주시옵소서.
나의 기쁨도 슬픔도
견딜 수 있는 힘을 내게 주소서.
내 사랑의 봉사로,
풍요로이 열매 맺을 힘을 주소서.
결코 가난한 자를 거부하거나
오만한 권력 앞에 무릎 꿇지 않는
그런 힘을 주소서.
일상의 덧없는 영위에 내 마음 상하지 않게 하소서.
또 사랑하는 님의 의지에
복종할 수 있는 힘을 내게 주소서.
37.
내 능력의 한계 있어
나그네길은 이제 끝이라 여겼습니다.
가는 곳마다 길 막히고 음식은 떨어져
남이 알 수 없는 조용한 곳에
이 몸 숨길 때가 왔나 봅니다.
그러나 님의 뜻은
내 종말 수락하지 않으셨으며
옛 말씀 혀끝에서 사라져갈 때
새로운 음률, 마음 속에 우러났습니다.
또 옛 길 아득히 멀어져 갔을 때
새로운 나라 놀라운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내 구하옴은 님이실 뿐
오직 님이실 뿐
이처럼 마음은 되풀이 소망이고 싶을 뿐
주야로 내 마음 뒤흔드는 모든 욕망은
진정 어느 것이나 거짓일 뿐입니다.
밤이 빛을 희구하는 바람을 어둠 속에 감추고 있듯
내 의식의 깊은 곳에 외치는 소리 들립니다.
"내 구하옴은 님이실 뿐
오직 님이실 뿐이라고."
폭풍이
있는 힘 다하여 적막에 도전해도
그 종말엔 적막함을 희구하듯
나의 반란도 님의 사랑에 도전하나
그 외치는 소리는 다만...
"내 구하옴은 님이실 뿐
오직 님이실 뿐"
39.
이 마음 메말랐을 때
자비의 비 내리게 하소서
이 생명 우아함을 잃었을 때
노랫소리 높이 울리며 오소서.
어지러운 일 사방에 분주하여
나를 묶어 놓았을 때
평화와 휴식을 동반하고 오소서.
내 침묵의 주인이시여.
나의 구걸하는 마음
한 구석에 웅크릴 때
문 열고 제왕의 위엄으로 오소서.
나의 왕이시여.
이 마음 욕망에 뒤쫓기어
환상과 먼지로 장님이 될 때
빛과 천둥을 동반하고 오소서.
나의 성스러운 분이시여.
언제나 눈뜨고 계신 이시여.
40.
나의 님이시여.
메마른 내 어린 가슴에
긴 날 비는 내리지 않고
수평선은 거의 맨살을 드러내 보입니다.
물기 어린 구름의 그림자도 없고
어딘가 먼 곳에
소나기 쏟아지는 기척도 없습니다.
또 만일 님의 뜻이오면
죽음의 캄캄하고 성난 폭풍우 보내시고
번갯불 비추어 하늘 구석구석까지
온통 놀라게 하옵소서.
그러하오나
이 충만한 열기 되돌려주소서.
무서운 절망으로 이 가슴 태우는
침묵의 날카롭고 냉혹한 열기를
자비의 구름을 내려주옵소서.
아버지께서 노하던 날
어머니는 눈물 어린 눈으로 바라다 보셨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