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교동(喬桐)은 인천광역시 강화군(江華郡)에 속해있는 지명으로 고구려 때 고목근현(高木根縣) 또는 대운도(戴雲島)·고림(高林)·달을신(達乙新) 등으로 불렸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 교동(喬桐)으로 고쳐 해구군(海口郡: 江華)에 편입되었고, 1174년(명종 2)에 독립하여 감무가 파견되었다. 1395년(태조 4)에 만호(萬戶) 겸 지현사(知縣事)가 파견되었고, 1413년(태종 13)에 교동현으로 현감을 두었다. 1629년(인조 7) 교동도호부(喬桐都護府)로 승격되었으나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강화군에 통합되었다가 1896년 경기도 교동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강화에 병합되었다가 1934년 화개면과 수정면을 통합해 교동면으로 개편되었다.
성씨의 역사
중국에서 건너온 성씨인 교동인씨(喬桐印氏)는 《좌씨전(左氏傳)》과 《계고집성(稽古集成)》에 그 유래가 기록되어 있는데, 중국 정(鄭)나라 목(穆)의 증손 가운데 인단(印段)이 조부의 이름인 ‘자인(子印)’의 ‘인(印)’ 자를 따서 성씨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진(晉)나라 풍익대부(馮翊大夫) 인서(印瑞)가 신라에 사신으로 왔다가 자리를 잡은 것이 우리나라 인씨의 시조라 한다. 실제 관조(貫祖)는 33세손인 인빈(印份)으로서 그가 고려 인종 때 한림학사(翰林學士)로 교수부원군(喬樹府院君)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은 교동(喬桐)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주요 세거지
경상북도 상주군 이안면 여물리
경상북도 상주군 함창읍 구향리
전라북도 전주시 다가동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용동리
충청남도 당진군 면천면 송학리
충청남도 당진군 면천면 죽동리
충청남도 당진군 석문면 삼화리
충청남도 당진군 석문면 통정리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낙상리
황해도 평산군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교동인씨는 5,403가구 총 17,448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