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동백이 뭐길래? 임란 때 빼앗긴 오색빛깔 동백, 고향 자긍심으로 다시 피다
▲ 오색빛깔의 울산동백은 꽃잎이 한꺼번에 떨어지지 않고 한 잎, 한 잎 흩날리는 것이 특징이다.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김유정 소설 '동백꽃' 중에서
울산 학성이 원산지 '울산동백'
1989년 일본 지장원에서 발견
민간단체 노력해 3세 묘목 귀환
울산농업기술센터 95그루 증식 성공
외부 환경 적응하면 일반 분양 계획
차인연합회 헌다례 등 시민들 관심
동백은 이름이 주는 처연함도 있지만 붉고, 노란 꽃잎이 매력적이다. 하물며 오색빛깔 동백이 있다면, 흔히 보이는 동백처럼 꽃잎이 한꺼번에 떨어지지 않고 한 잎, 한 잎 흩날리는 동백이 있다면 과연 어떨까? 바로 우리나라 꽃 '울산동백'의 이야기다.
김유정이 울산동백을 알았다면 소설 속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은 '흩날리는 오색빛깔 동백꽃'으로 바뀌었을지 모른다.
3월에서 4월 사이 꽃 피우는 동백을 왜 여름 햇빛 속에 끄집어내는지 궁금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광복 70주년인 올해 울산동백은 사시사철 서글픈 이야기로 우리네 마음을 울리기 때문이다.
화려한 자태만큼 기구한 운명을 지닌 울산동백. 임진왜란 때 일본에 빼앗겼다가 400여 년 만에 돌아온 우리 꽃. 울산동백의 과거와 현재는 어떤 모습일까?
■400년 망향의 한(恨) '울산동백'
일본 도쿄의 야마타네 미술관에는 일본의 중요 문화재로 지정된 그림 '명수산춘(名樹散椿)'이 소장돼 있다. 명수산춘은 한 나무에 흰색과 붉은색, 연분홍색, 진홍색, 분홍색 다섯 빛깔로 여덟 겹 피어난 꽃잎이 한 잎씩 흩날리듯 떨어지는 동백나무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것이다. 이 나무의 이름은 '오색팔중산춘(五色八重散椿)'. 임진왜란 때 울산 학성을 점령한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바친 울산동백의 일본 이름이다. 도요토미는 이 꽃을 평소 다도회를 열던 절에 심게 했다. 그 뒤 지장원(地藏院)이란 이름의 이 절은 '동백나무 절'이란 뜻의 춘사(椿寺)로 불릴 정도로, 일본인들은 울산동백을 아꼈다.
울산동백이 일본에서 사랑받는 사이 정작 고향인 우리나라에서는 단 한 그루도 없이 자취를 감췄다. 왜군이 원산지인 울산 학성에서 울산동백을 모조리 일본으로 가져가 버린 것이다.
당시 일본으로 건너간 동백나무 1세는 1983년 고사했지만 수령 100년 안팎의 2, 3세 동백 10여 그루가 지장원에서 자라고 있다. 1989년 이곳을 방문한 한국예총 울산지부장 최종두(시인) 씨 일행이 울산동백을 발견했고, 이 소식을 접한 당시 부산 자비사 주지 박삼중 스님, 부산여대 고(故) 정남이 총장과 여러 민간단체의 노력에 힘입어 3세 묘목을 한국에 들여오게 됐다. 약탈당한 지 400여 년 만이었다.
울산동백은 당시 국내로 세 그루를 가져와 울산시청과 독립기념관, 사천 조명군총에 한 그루씩 심었지만, 현재 자생지인 울산에서만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이 동백은 현재 키 2.5m에 지름은 10㎝ 정도다.
■울산 시민들의 활발한 동백사랑
고향으로 돌아온 울산동백은 워낙 귀한 탓에 증식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울산시 농업기술센터는 2012년 7월 울산시청 햇빛광장에 식재된 동백 가지를 채취, 총 100그루를 증식해 이 중 95그루가 뿌리를 내렸다.
현재 이 울산동백은 온실에서 작게는 30㎝에서 크게는 50㎝까지 자랐고, 울산동백 10그루를 외부에 심어 환경적응 실험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울산동백을 일반 가정에서 분양받아 키울 수 있을까?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여러 지자체나 일반인들로부터 울산동백 묘목을 분양받을 수 있는지 문의전화가 자주 온다"며 "하지만 울산동백이 완전히 자라지 않았고 새 가지를 잘라내 삽목을 할 경우 어린동백의 생육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어 일반 분양은 아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농업기술센터는 울산동백이 외부 환경에 완전히 적응했다고 판단되면 본격적인 증식작업을 통해 '동백동산'을 만들고 일반에게 분양할 계획이다.
민간단체의 울산동백 알리기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울산 차인연합회는 2012년 '오색팔중동백사랑회'를 창립해 해마다 울산시청 광장에서 '오색팔중 동백사랑 헌다례'를 열고 있다.
차인연합회는 "울산동백은 우리 고장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채 자긍심을 일깨워 준 징표로, 울산동백을 통해 울산의 정체성을 찾고자 한다"며 "이는 우리 차인들이 해야 할 일이고 임란을 맞아 산화한 239위 영령들을 달래는 일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울산동백의 기구한 운명을 이야기로 풀어낸 '우리 동백꽃'(도서출판 파랑새)이 발간돼 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김향이 작가가 쓴 '우리 동백꽃'은 임란 때 일본에 강탈당한 울산동백을 의인화 해 고국에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울산 시민들은 동백의 400년 상처가 하루빨리 치유되길 바라며 꽃 피는 내년 3월을 기다린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울산 중구 울산동백 실종 사건] 420년 만에 고향 온 '울산 꽃' 한 그루 감쪽같이 사라져 발칵
▲ 울산 중구청은 지난 5월 21일 청사 광장에 중구 학성이 원산지인 울산동백을 심고 많은 중구민이 볼 수 있도록 했다. 울산 중구청 제공
박성민 울산 중구청장은 태풍이 휘몰고 간 지난 11일 토요일 일찌감치 구청장실로 출근했다. 중구 곳곳에서 보고된 태풍 피해는 물론 자식처럼 애지중지하는 울산동백이 걱정스러웠던 것.
박 구청장은 구청장실 창문 너머 중구청 광장에 심어둔 울산동백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바라보는 게 즐거움 중 하나다. 이날도 습관처럼 창문 밖으로 시선을 던지던 박 구청장은 그만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하나, 둘, 셋, 넷…. 넷?' 박 구청장은 몇 번을 다시 세어보았지만 분명 네 그루 뿐이었다. 울산동백 5그루가 있어야 할 자리에 한 그루가 사라진 것이다.
박 구청장은 즉각 울산동백 관리부서에 연락을 취했다. 다른 꽃은 몰라도 '울산동백'은 중구청장, 아니 중구민에게 있어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약 420년 만에 고향 종갓집에 돌아온 '울산 꽃'이기 때문이다.
울산 중구 학성이 원산지인 울산동백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넘어간 뒤 400여 년 만에 울산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울산시청에 심어진 탓에 정작 울산동백의 본가나 다름없는 울산 중구에는 이 꽃이 없었다. 울산동백이 고향 땅에 왔지만 집 밖을 돌아다니는 신세였다.
박 구청장은 '중구에 울산동백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직원들과 울산동백을 구하려고 사방팔방 뛰었다. 울산동백 증식작업을 하고 있는 울산 농업기술센터에 문의했지만 "분양 단계가 아니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만큼 귀한 꽃이다.
중구는 수소문 끝에 울산동백을 일본에서 직접 수입해 식물원에서 키우는 조경업자를 알게 됐고, 끈질긴 설득으로 5년생 동백 묘목 11그루를 얻는 데 성공했다.
박 구청장과 직원들은 소중한 울산동백을 지난 5월 21일 학성공원(6그루)과 구청 광장(5그루)에 나눠 심어 많은 중구민이 볼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올해는 광복 70주년이자, 내년은 울산동백을 일본에 가져간 지 420년이 되는 해(육십갑자가 되는 해)로 그 의미가 남달랐다.
이런 동백이 한 그루 사라졌으니, 중구청이 난리가 난 건 당연했다.
중구 관계자는 "워낙 귀한 나무인 탓에 이를 알아본 누군가가 울산동백을 몰래 가져간 것 같다"며 "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울산동백 광장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했고 관리체계를 더욱 강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권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