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기자와 교사
한돈희
관상가들은 사람은 팔자가 있다고 한다. 자기 생긴 대로 살다가 죽는다는 것이다. 부자는 부자로 태어나고 관운도 있다고 말한다. 어떤 작가는 말하기를 사람은 결혼하는 것하고 죽는 것은 운명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을 운명이라고 하면 발전이 없고 재미도 없을 것이다. 노력해서 운명을 바꾼 사람도 많다. 자기 의지대로 사는 사람도 많다.
나는 평생 직업이 기자와 교사이었다. 노년이 되어 생각해 보니 그것이 내 팔자이다. 대학을 나와서는 신문사나 잡지사 기자가 하고 싶었다. 기자가 되면 취재도 하고 글도 쓰고 편집도 할 수 있다. 그것이 내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취직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리는 적고 원하는 사람은 많기 때문이다. 지금 대학졸업생들이 취직이 어렵다고 하는데 이해가 잘 간다. 중앙지 신문사 두 군데를 시험을 보았다. 20명을 뽑는데 몇 백 명이 몰리었다. 내 실력으로는 안 되겠다고 단념하였다.
집에서 놀면서 독서와 글쓰기 공부를 하였다. 그때는 어려운 시절이라 정규학교를 못 가는 학생이 많았다. 고등공민학교가 많이 생기었다. 동창의 소개로 고등공민학교 선생이 되었다. 교실이 3개뿐인 학교이다. 학생도 한 학년에 10명이거나 20명이었다. 돈은 안 받고 자원봉사로 가르치었다. 국어를 담당하였다.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열심히 배우니 선생은 보람을 느끼고 더 열심히 가르치게 된다. 3학년이 되면 검정고시를 보고 합격을 하여야 중학교 졸업자격을 인정받았다. 나는 2년 다니는 동안 수입은 없었지만 학생들과 생활하는 것이 좋았다. 나는 불어과를 나와서 교사는 생각지도 않았다. 불어를 배우는 학교가 없었기 때문이다. 교사자격증도 없었다. 이때 나는 불어준교사자격증을 땄다. 먼 훗날 교사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글쓰기 습작을 하면서 지방신문에 열심히 투고하였다. 수필, 소설들이 지면에 실리기 시작하였다. 그런 인연으로 지방 신문사 기자가 되었다. 3개월간 수습기간을 거쳐 정식 기자가 되었다. 소원성취를 하였다. 기자생활은 시간이 잘 간다. 1시경 출근해서 저녁 8시경 퇴근이다. 취재는 힘들어서 편집을 배우기로 하였다. 교정도 보고 좌담회 기사도 쓰고 나중에는 칼럼도 맡아 썼다. 당시는 공무원이나 기자나 봉급이 박할 때이다. 세월도 잘 가고 기자들과 어울리면 재미난 일도 많았다. 기자는 적성은 맞았지만 생활하기가 어려웠다. 돈을 무시할 수 없다. 2년 정도 다니다가 그만두고 여자고등학교 영어교사로 가게 되었다.
야간 고등학교이었는데 학생들은 직장생활을 하는 학생이 많았다. 처지가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였다. 선생님을 존경하고 말을 잘 들었다. 선생의 보람은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다. 2년 가르치다보니 나의 영어실력도 늘었다. 영어는 문법과 독해 공부이었다. 듣기, 말하기 공부는 없었다. 교과서가 전부이다. 학생들은 졸업장을 따면 되었다.
학교는 근무조건이 나쁘고 안정되지 않았다.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해군본부 인사참모부 편집 문관으로 갔다. ‘등대’라는 잡지를 만들게 되었다. 분기별로 만들어서 해군예비군들에게 보내주었다. 잡지 편집하는 일은 내가 바라던 일이다. 원고를 모우고 편집해서 출판사에 주면 책이 나왔다. 수병들을 동원해서 해군예비군들에게 보내주면 되었다. 군대여서 엄격한 줄 알았는데 분위가 좋았다. 중령, 대령이 상관이었다.
1년 다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실시하는 교사 채용교시에 응시하고 합격하였다. 불어교사 1회 채용고사이다. 준교사 자격증 따 놓은 것이 효력을 발휘하였다. 지원자도 10여명이고 대부분 합격하였다. 그러나 불어를 배우는 학교가 없어 발령이 나지 않았다. 인사계를 찾아가서 알아보니 자리가 없어서 언제 날지 모른다고 한다. 담당자는 내가 안 되어 보였는지 영어부전공을 하였는지 영어교사자격증을 가지고 있는지를 물었다. 있다면 해 줄 수 있다는 뜻 같았다. 때 마침 충북대학교 임시교원양성소에서 영어교사반, 수학교사반 수강생을 뽑는다는 광고가 신문에 났다. 가서 시험을 보고 소정의 교육을 받고 영어교사자격증을 받았다. 다음 해 3월에 충청북도 어느 중학교에 강사발령을 받았다. 잘 다니면 정식 교사발령을 내 준다는 것이다. 한 달을 다니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발령 통지가 와서 그만 두고 서울로 왔다. 처음 발령 받은 학교가 영등포고등학교이다. 학교 분위기도 좋고 자유스러워서 평생직장으로 생각하고 잘 다니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학교에 9년 있는 동안 2년은 프랑스정부 초청 장학생에 합격하여 프랑스대학에서 공부하였다. 그 후 9개 학교를 거치면서 교사를 하는 동안 30여년이 지났다. 정년퇴직하고 10년이 지났다.
퇴직하고도 한 일이 주로 교육하는 일이다. 어린이들에게 숲 해설 교육을 오래 하였다. 검정고시 보는 성인들에게 영어도 가르치었다. 작년과 금년에는 지역아동센터에 나가 독서지도를 하고 영어도 가르쳤다. 유치원에 다니면서 보건교육, 건강교육도 한다.
3년 전부터는 실버기자를 한다. 젊은 시절 기자에 대한 꿈이 컸기 때문에 열심히 배우는 입장에서 취재를 다닌다. 사진 찍고 기사 쓰고 재미난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실력을 닦으면 큰 신문사로 갈지도 모른다. 기자는 취재기자가 재미난다. 편집이나 글만 쓰는 기자는 재미가 없다.
기자는 내가 원하던 것이다. 원하는 대로 되었다. 교사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되었다. 교사를 오래했기 때문에 인생을 심심하지 않게 살아왔다. 학생들과 생활하며 살아온 일에 대하여 감사한다. 연금을 타게 되어서 노년을 걱정 없이 산다. 기자생활과 교사생활이 내 팔자에 있었던 모양이다.
한돈희 1995년 문학공간으로 시조등단, 1996년 문예사조로 수필 등단. 전 서울고등학교 교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부천지부회원
전화: 010-7769-2719
주소: 부천시 원미구 역곡동 212-2 한국아파트 102동 903호
(2014년 문학서울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