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끝인 2023년 12월 31일 마지막 주일은 병원진료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무기력하게 너무나 아쉬운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2024년 1월 7일 첫 주 예배는 선교사 초청 예배로 준비하였습니다. 놓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결국 다시 붙잡을 수밖에 없었던 선교 열정을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새롭게 시작된 2024년, 하나님께서 적재적소에 가장 적합한 은혜를 넘치도록 풍성하게 부어주시는 복된 한 해를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Abel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기쁘게 흠향해 주시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해 보여드렸습니다. 돌에 맞아 비참하게 죽었지만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지금도 여전히 외치고 있습니다. 그Enoch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로 옮겨졌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궁극적인 상賞이 하나님 나라라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Noah는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였습니다. 평소 친근하게 지냈던 사람들로부터 온갖 따가운 시선은 물론 비웃음과 조롱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구원을 위한 방주를 완성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죄악으로 가득 차 있던 세상을 정죄했습니다.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Abraham는 예상치 않았던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났습니다. 후손에게 주어질 땅을 장래의 유업으로 약속받았습니다. 특히, 그는 하늘의 본향 곧 하나님 나라를 사모ὀρέγονται했습니다. 열망했습니다. 그리워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갈망했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 나라로 떠날 수 있도록 장막에 거주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히11:18)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약속을 액면 그대로 이루어주시리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독자 이삭을 번제의 희생 제물로 드리라는 하나님 명령을 받았을 때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기꺼이 드렸습니다.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믿었던 그대로 독자 이삭을 되돌려 받았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거듭났습니다. 그Isaac는 믿음으로 장차 있게 될 일들에 대하여 두 명의 아들들에게 축복했습니다. 그Jacob는 죽을 때, 믿음으로 열두 아들들 하나하나에 대해서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Joseph는 믿음으로 자신의 유골遺骨을 장차 주어지게 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져다 묻어달라고 유언했습니다.
그Moses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을 사모했습니다. 믿음으로 공주의 아들이라는 자리 곧 부족함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하고도 풍성한 자리를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받는 고난을 잠시 곧 지극히 제한적으로 주어지는 죄악의 낙樂을 누리는 것보다 좋아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사랑하는 당신 백성들 가운데 친히 임하시고 또 함께 동행 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했습니다. 믿음으로 당장이라도 넘칠 기세로 넘실대고 있던 홍해를 마치 육지 같이 건넜습니다.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돌았습니다.
난공불락의 성을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무너뜨렸습니다. 그녀Rahab는 믿음으로 정탐꾼을 평안하게 영접했습니다. 영원한 구원을 받아 누리기 위하여 하나뿐인 소중한 목숨을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버림받아 마땅했던 자신을 믿음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이렇게 수없이 많은 선진들은 하나같이 믿음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겼습니다. 거룩한 의를 행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굶주린 사자들의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극렬히 타는 불의 세력을 무기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칼날을 피하기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연약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이 세상의 그 어떤 제왕들보다도 강했습니다. 원수들의 강력한 진陣을 물리쳤습니다.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았습니다. 더 좋은 부활을 얻기 위하여 끔찍할 정도로 심각한 고문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구차하게 풀려나기를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롱과 채찍질을 당했습니다. 결박과 옥에 갇히는 고난도 기꺼이 받았습니다. 처참하게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톱에 의해서 켜진 모습으로 죽었습니다. 시험과 칼에 죽었습니다. 양과 염소 가죽을 옷 대신 입고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했습니다.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위해서 창세전부터 계획하시고 또 예비해 놓으신 “훨씬 더 좋은 것κρειττον τι”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타락한 세상은 그들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거룩함을 생명처럼 여기는 성직자가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세상을 쥐락펴락할 만한 대단한 지위를 갖지도 못했습니다. 농사꾼이었습니다. 평범한 시민이었습니다. 족장이었습니다. 극히 일부는 총리였습니다. 극히 일부는 독립투사였습니다. 극히 일부는 사사였습니다. 극히 일부는 왕이었습니다. 포로로 끌려간 지도자도 있었습니다. 기생도 있었습니다. 탁월한 장수도 있었습니다.
기생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곧 정실 가문에서 쫓겨난 천민도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그 은혜 안에서 주어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어떤 대가도 없이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2:8)라는 증거대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선물로 허락해 주신 믿음으로 주어진 삶을 죽는 순간까지 살아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고전15:10a)라는 증거대로, 그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힘겨운 사명을 충분히 감당하는 놀라운 삶을 살아낼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하게 부어주신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아낼 수 있는 능력을 부어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옳습니다. 그 일들의 주체主體가 되시는 하나님은 언제나 옳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간절한 부르짖음에 잠잠하셔도 옳습니다. 당신 발아래 엎드려 있는 저와 여러분을 모르는 척 외면하고 그냥 지나쳐가셔도 옳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꿈속에서조차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간절하게 바라는 소원에 오랫동안 침묵하셔도 옳습니다.
응답해 주지 않으셔도 옳습니다. 당신을 따르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 몸부림치는 저와 여러분을 그대로 버려두셔도 옳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당신의 전부를 허락해 주지 않으셔도 옳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누구보다 먼저 생각해 주지 않으셔도 옳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철저하게 낮아지게 하셔도 옳습니다. 비워버리게 하셔도 옳습니다. 비천하게 만들어버리셔도 옳습니다. 마치 좀처럼 헤어 나오기 어려운 심연深淵 같은 바닥에 내팽개쳐 버리셔도 옳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초라한 존재로 만들어버리셔도 옳습니다. 가장 비참한 죽음으로 몰아세우셔도 옳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언제나 옳습니다. 새해를 맞았지만, 오늘 저와 여러분이 맞닥뜨리고 있는 세상은 정말 지랄 같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울고 있습니다. 부모 잃은 아이들이 울고 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생떼 같은 자식을 졸지에 떠나보낸 부모들이 울고 있습니다. 치료비 없는 환자들이 울고 있습니다. 체류 허가를 얻지 못한 이방인 노동자들이 울고 있습니다. 갈 곳을 잃어버린 채 불행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치매 노인들이 울고 있습니다. 약육강식, 강자독식, 적자생존이라는 무한경쟁에서 뒤쳐져 버린 이들이 거리에 나뒹굴며 울고 있습니다.
국가 권력이 휘두른 폭력에 의해서 가장 소중한 목숨을 빼앗긴 이들의 가족들이 울고 있습니다. 새로운 해가 이미 시작되었지만, 이놈의 지랄 같은 세상은 그들의 울음을 달래주려는 기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랑하는 당신 백성 곧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여전히 고군부투하십니다. 때로는 끙끙 앓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언제나 무조건 옳습니다. 어디서나 무조건 옳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 옳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무조건 옳습니다.
현재 저와 여러분이 서로 얼굴을 대하듯 맞닥뜨리고 있는 환경과 상황과 조건이 아무리 어렵고 힘겨울지라도, 지랄 같아 보인다 할지라도 무조건 옳습니다. 무엇보다 현재는 궁극적인 결론으로 가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거쳐야만 하는 과정입니다. 반드시 살아내야만 하는 과정입니다. 저와 여러분 앞에 이제 막 펼쳐지기 시작한, 새로운 기회로 주어져 있는, 신비神秘에 둘러싸여 있는 2024년도도 그렇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무조건 옳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셨습니다. 허락해 주셨습니다. 과정 역시 옳습니다. 당연합니다. 궁극적인 결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옳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예비 되어 있는 궁극적인 결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추론推論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으로만 잡아도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구원입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다시는 가장 깊은 어둠인 죽음도 없고, 헤어 나오지 못할 슬픔도 없고, 목이 터질 듯 외치는 울부짖음도 없고, 견디기 힘든 고통도 없고, 밤도 없고, 등불이나 햇빛도 전혀 필요 없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절대 주권과 탁월한 섭리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려주시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사도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라고 외쳤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외쳤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믿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당신을 찾는 이들에게 반드시 상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곁에 새로운 기회로 다가와 있는, 그렇지만 신비로 둘러싸여있는 2024년 한해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낼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것을 통해서 무조건 옳은 하나님과 더불어 동행하는 복된 2024년, 저와 여러분으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옳은 결과물들을 창조해내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단 하루도 빠짐없이 경험하는 복된 2024년, 하나님께서 창조해 내신 옳은 결과물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은 물론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하게 누리는 복된 2024년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