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아이돌 트와이스, 엑소가 우리 학교, 그것도 책 속에 나타났다?
꿈같은 이야기가 서울 동원중에서 실현됐다. 닌텐도의 모바일 게임 ‘포켓몬 GO’처럼 증강현실 기술을 이용, 책 속에서 아이돌의 사진을 찾게 한 것. 단순히 재미만 추구한 것은 아니다. 엄연한 1박 2일 독서 캠프의 일환. 암호 해독, 릴레이 골든벨, 홍보 포스터 제작까지 교육적 요소를 빈틈없이 배치했다. 흥미를 바탕으로 독서 역량 성장과 인성 배양, 디지털 역량 신장까지 미래 인재 성장에 필요한 세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은 셈. 증강현실은 그저 미끼일 뿐, 책 읽기의 진짜 즐거움을 알려준 동원중의 1박 2일 독서 캠프를 다녀왔다.
취재 정나래 기자 lena@naeil.com 사진 이현준
편집부가 독자에게 ...
진짜를 꿰뚫어 보는 아이들 한밤중의 독서 캠프, 예상 이상의 동적인 모습에 놀랐어요. 무엇보다 아이들의 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재촉하지 마, 즐기면서 하는 거야”란 한 여학생의 말이 뇌리에 박혔습니다. 증강현실, 조별 경쟁은 그저 재미일 뿐, 진짜는 독서의 즐거움과 협업의 가치임을 꿰뚫어 본 듯했습니다. 교사의 노력으로 조금만 각을 틀어주면 아이의 가능성이 무한대로 열린다는 서울 동원중김창규 교감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_ 정나래 기자 |
아이돌 찾으며 읽는 재미 발견
“쯔위 어딨어?” “찬열이 찾았다!”
11월 11일, 자정이 가까워진 시각, 불 꺼진 학교, 유일하게 불이 켜진 교실. 공포영화의 배경이 될 법한 무대는 아이들의 목소리로 시끄럽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책을 뒤지는 소리와 촬영 알림음, 응원과 함성이 공존하는 한밤의 학교. 동원중 학생들의 1박 2일 독서 프로그램 현장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정적인 활동인 책 읽기가 빚어낸 풍경치고는 이색적이다. ‘증강현실( Augmented Reality, 이하 AR)’ 때문이다. 사람들이 보는 현실세계에 삼차원의 가상 물체를 띄워서 보여주는 이 기술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촬영 모드로 작동하는 휴대전화를 갖다 대면 특정 지점에서 캐릭터 사진이 튀어나오게 할 수 있다.
모바일 게임 ‘포켓몬 GO’, <무한도전>의 ‘무도리 GO’에서 쓴 신기술을 학교 독서 활동과 결합한 것. 아이돌 그룹 트와이스와 엑소 멤버의 사진을 찾는 AR 체험에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프로그램 참여 접수는 시작과 동시에 모집 정원을 넘겼고 대기자 명단까지 생겼다. 학교가 시행한 독서 프로그램 중 정원을 초과한 것은 처음이었다고. 높은 호응에 학교는 당초 20명이었던 프로그램 참여 인원을 28명까지 늘렸다.
9월 부임 직후부터 이 프로그램을 기획해온 동원중 김창규 교감은 “중요하니 읽어라’가 아닌 읽어보고 중요함을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모바일로 글을 ‘보는’ 요즘 학생들은 읽기를 어렵고 지루해한다. AR은 미끼일 뿐, 진짜는 책읽기의 방법과 즐거움을 전달하는 데 있다. 디지털 기술과 협업을 접목해 정적인 독서를 동적인 독서로 살짝 틀었더니 학생의 반응이 완전히 달랐다”고 밝혔다.
지성과 인성, 모두 잡은 밤샘 캠프
김 교감의 말처럼 AR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동원중의 독서 캠프는 퀴즈, 단어 찾기, 감상물 제작 등 기존 독서 프로그램이 망라됐다. 하지만 학생들은 ‘처음’이라는 반응이 압도적. 디테일이 달랐기 때문이다.식상한 단어 찾기는 청구기호와 QR코드를 만나 새로운 놀이가 됐다. 학생들은 청구기호가 적힌 책을 찾아 QR코드를 오렸다. 조원들이 모은 QR코드를 해독해 하나의 답을 찾았다. ‘박경리-하동-일제강점기-1969년 6월’로 <토지>를 도출해내는 식이다. 감상물 제작도 남달랐다. 즐겼던 AR 기술을 직접 써보게 했다. 캠프 홍보 포스터에 셀프 인터뷰 등을 촬영한 영상을 담도록 했다.골든벨 퀴즈는 플리커스(Flickers)를 도입해 차별화했다. 플리커스는 그려진 도형 각 면에 A부터 D까지 작은 글씨로 표기된 카드를 스마트폰으로 스캔, 정답과 오답률을 통계 처리해 즉시 시각화하는 프로그램. 답이라고 생각하는 문자를 위쪽 방향으로 드는 방식인데 카드마다 도형의 형태, A~D의 표시 위치가 달라 커닝이 어렵다.촘촘히 배치된 신기술에 조별 경쟁을 유도한 프로그램이 조화를 이루면서 학생들은 즐겁게 책을 읽었다. 오후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밤샘 활동에도 조는 학생은 찾아볼 수 없었다.오락적 재미만이 아니다. 교육적 효과도 컸다. 독서 역량은 물론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디지털 역량과 협업 능력 향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동원중 2학년 정준 학생은 “아이돌을 찾으려 책을 꼼꼼히 읽었는데 SF 소설 외에 일반 책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또 AR이나 QRQR코드를 해독하고 직접 써볼 수도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학부모들도 높은 만족감을 표했다. 이날 학교를 방문한 동원중 학부모회 이대영 회장은 “단순히 재미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적·인적 역량 성장의 계기가 된 것 같다”고 평했다.예상보다 큰 호응과 성과에 동원중은 독서 캠프를 확대할 예정이다. 최근 학교 현장에서 독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실효성 있는 활동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동원중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루하고 뻔한 독서 활동에 활기를 불어넣는 새로운 롤모델이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