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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분가(萬憤歌)
조 위
작품해제
연산군 4년(1498) 작자인 조위가 무오사화로 연루되어 전라도 순천으로 유배가서 지은 가사이다. 유배가사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2음보 1구로 계산하여 127구이며, 3·4조와 4·4조가 주조(主調)이고 2·3조, 2·4조 등도 간혹 볼 수 있다. 작자가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된 뒤 귀양살이하는 원통함을, 천상에서 하계로 추방된 선녀가 옥황상제로 비유된 성종에게 하소연하고 있는 내용이다. 영향관계는 초나라 굴원(屈原)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며, 후대에 정철(鄭澈)의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천상(天上) 백옥경(白玉京) 십이루(十二樓) 어듸매오 오색운(五色雲) 깁픈 곳의 자청전(紫淸殿)이 려시니 천문(天門) 구만리(九萬里)를 이라도 갈동말동 라리 싀여지여 억만(億萬)번 변화(變化)여 남산(南山) 늦즌 봄의 두견(杜鵑)의 넉시 되어 이화(梨花) 가디 우희 밤낫즐 못울거든 삼청동리(三淸洞裏)의 졈은 한널 구름 되어 람의 흘리라 자미궁(紫微宮)의 라올라 옥황(玉皇) 향안전(香案前)의 지척(咫尺)의 나아 안자 흉중(胸中)의 싸힌 말 쓸커시 로리라
구절풀이
* 천상(天上) 백옥경(白玉京) : 도교(道敎)에서 말하는 하늘나라의 궁전 * 십이루(十二樓) : 12개의 누각 * 자청전(紫淸殿) : 하늘나라 신선들이 산다는 궁궐 * 천문(天門) 구만리(九萬里) : 구만리나 되는 높고 넓은 하늘 * 싀여지여 : 죽어서, 사라져서 * 가디 우희 : 가지 위에 * 밤낫즐 못울거든 :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지 못할 것 같으면 * 삼청동리(三淸洞裏) : 신선이 산다는 삼청동(옥청, 상청, 대청)의 안 * 졈은 한널 : 저문 하늘 * 흘리라 : 흐르듯 날아 * 자미궁(紫微宮) : 옥황상제가 거처하는 궁궐, 문맥상 의미는 한양의 대궐 * 향안전(香案前) : 향을 피운 책상 앞 * 지척(咫尺) : 아주 가까운 거리 * 나아 안자 : 나아가서 앉아 * 흉중(胸中) : 가슴 속, 마음 속 * 쓸커시 : 실컷, 마음껏 * 로리라 : 아뢰리라. 사뢰리라
현대어 풀이
천상 백옥경 십이루가 어디인가 오색운 깊은 곳에 자청전이 가려 있으니 구만 리 먼 하늘을 꿈에서조차 갈동말동하구나. 차라리 죽어서 억 만 번 변화하여 남산 늦은 봄에 두견새의 넋이 되어 배꽃 가지 위에 밤낮으로 울지 못하거든 삼청 동리 저문 하늘에 구름이 되어 바람에 흐르듯 날아 자미궁에 날아올라 옥황 향안 전에 가까이 나가 앉아 흉중에 쌓인 말씀 실컷 아뢰리라
어와 이 내 몸이 천지간(天地間)의 느저 나니 황하수(黃河水) 다만 초객(楚客)의 후신(後身)인가 상심(傷心)도 이 업고 가태부(賈太傅)의 넉시런가 한숨은 무스 일고 형강(荊江)은 고향(故鄕)이라 십년(十年)을 유락(流落)니 백구(白鷗)와 버디 되어 놀자 엿더니 어루듯 괴듯 의 업슨 님을 만나 금화성(金華省) 백옥당의 이조차 향긔롭다
구절 풀이
* 느저 나니 : 늦게 태어나니 * 황하수(黃河水) : 황하강의 물 * 다만 : 맑다마는 * 초객(楚客) : 초나라의 시인 굴원을 가리킴 * 상심(傷心) : 마음이 상함 * 이 업고 : 끝이 없고 * 가태부(賈太傅) : 한나라 때의 시인 가의 * 형강(荊江) : 중국 강서성 형산 옆의 강, 여기서는 ‘유배지’를 의미 * 유락(流落) : 이리저리 떠돌아다님 * : 함께 * 어루듯 : 아양 부리는 듯 * 괴듯 : 사랑하는 듯 * 금화성(金華省) 백옥당 : 중국 절강성 금화현의 백옥당. 이곳에서 적송자(赤松子)가 득도(得道)하였다 함
현대어 풀이
아아 이내 몸이 천지간에 늦게 태어나니 황하 물이 맑다마는 초나라 사람 굴원의 후신인가 상심도 끝이 없어 가태부의 넋이런가. 한숨이 나오는 것은 또 무슨 일인가. 형강은 고향이라 십 년을 유락하니 백구와 벗이 되어 함께 놀자 하였더니 아양 떠는 듯 사랑하는 듯 남 없는 임을 만나 금화성 백옥당의 꿈조차 향기롭다.
오색(五色)실 니음 졀너 님의 옷슬 못 야도 바다 튼 님의 은(恩)을 추호(秋毫)나 갑프리라. 백옥(白玉)튼 이내 음 님 위여 직희더니 장안(長安) 어제 밤의 무서리 섯거치니 일모수죽(日暮修竹)의 취수(翠袖)도 냉박(冷薄)샤 유란(幽蘭)을 것거 쥐고 님 겨신 라보니 약수(弱水) 리진듸 구름 길이 머흐러라 다 서근 긔 얼굴 첫맛도 채 몰나셔 초췌(憔悴) 이 얼굴이 님 그려 이러컨쟈
구절 풀이
* 니음 졀너 : 이음이 짧아 * 추호(秋毫) : 가을하늘 기러기의 가는 털, 여기서는 아주 조금의 뜻 * 직희더니 : 지켰더니 * 무서리 섯거치니 : 무서리가 섞어 치니, 무오사화를 비유 * 일모수죽(日暮修竹) : 저문 녘에 긴 대나무에 의지하고 섬. 두보의 <가인>이란 시구에서 옴 * 취수(翠袖) : 푸른 옷소매 * 냉박(冷薄) : 차디 참 * 유란(幽蘭) : 난초 * 약수(弱水) : 새의 깃털까지도 가라앉기에 아무도 건널 수 없다는 전설상의 강. 나와 임 사이를 가로막는 존재 상징 * 리진듸 : 가로막고 있는 곳에 * 머흐러라 : 험하구나 * 초췌(憔悴) : (얼굴이) 핼쑥하고 여윔
현대어 풀이
오색실 이음이 짧아 임의 옷을 만들지 못하여도 바다 같은 임의 은혜 조금이나마 갚으리라. 백옥 같은 순결한 내 마음 임 위하여 지키고 있었더니 장안 어젯밤에 무서리 섞어 치니 일모수죽에 옷소매도 차디차구나. 난초를 꺾어 쥐고 임 계신 데 바라보니 약수 가로놓인 데 구름길도 험하구나. 다 썩은 닭의 얼굴 첫맛도 채 몰라서 초췌한 이 얼굴이 임 그리워 이리 되었구나.
천층랑(千層浪) 가온대 백척간(百尺竿)의 올나더니 무단(無端) 양각풍(羊角風)이 환해중(宦海中)의 나리나니 억만장(億萬丈) 소희 져 하흘 모놀노다 노(魯)나라 흐린 술희 한단(邯鄲)이 무슴 죄며 진인(秦人)이 취(醉) 잔(盞)의 월인(越人)이 우음 탓고 성문(城門) 모딘 블의 옥석(玉石)이 니 압희 심은 난(蘭)이 반이나 이우레라 오동(梧桐) 졈은 비의 외기럭이 우러 넬 제 관산만리(關山萬里) 길이 눈의 암암 피 듯 청련시(靑蓮詩) 고쳐 읇고 팔도 한을 슷쳐보니 화산(華山)의 우 새야 이별(離別)도 괴로왜라 망부산전(望夫山前)의 석양(夕陽)이 거의로다
구절 풀이
* 천층랑(千層浪) : 천 층이나 되게 높이 솟은 파도 * 백척간(百尺竿) : 아주 높은 장대. 높은 벼슬을 하는 것의 위태로움을 비유함 * 무단(無端) : 아무런 이유가 없는, 괜한 * 양각풍(羊角風) : 양의 뿔과 같은 바람, 즉 회오리바람, 무오사화의 비유 * 환해중(宦海中) : 관리들의 세계 * 소희 : 연못에 * 하흘 모놀노다 : 하늘인지 땅인지 분간을 하지 못함 * 노(魯)나라 : 중국 동쪽에 있던 나라 * 한단(邯鄲) : 중국 중서부에 있던 조나라의 수도 * 무슴 죄며 : 무슨 죄이며, 즉 죄가 없다 * 진인(秦人) : 중국 서북지역의 진나라 사람 * 월인(越人) : 중국 동남지방의 월나라 사람 * 우음 탓고 : 웃음 탓인가? 즉 관계가 없다. 무고하다의 의미 * 모딘 블 : 모진 불, 무오사화의 모진 불길 * 옥석(玉石)이 니 : 죄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함께 피해를 입음 * 이우레라 : 시들다 * 오동(梧桐) 졈은 비 : 오동나무 잎에 내리는 저녁 비 * 우러 넬 제 : 울며 지날 적에 * 청련시(靑蓮詩) : 당나라 시인 이태백의 시. 이태백의 호가 ‘청련거사’임 * 화산(華山) : 중국 오악중의 하나. 섬서성 화음의 남쪽에 있는 산
현대어 풀이
높은 파도 한가운데 백척간두 같은 벼슬에 올랐더니 무단한 회오리바람이 환해 중에 불어와 억 만장 깊은 연못에 빠져 하늘인지 땅인지 모르겠노라. 노나라의 술이 흐린 것과 한단이 무슨 관계가 있으며 진나라 사람이 술에 취한 것은 월나라 사람이 웃은 탓이란 말인가? 성문 모진 불에 옥석이 함께 타니 뜰 앞에 심은 난이 반이나 시들었구나. 오동나무 저문 비에 외기러기 울며 갈 때 관산으로 가는 만 리 길이 눈에 선하니 밟히는 듯 이백의 시를 다시 읊고 팔도의 한을 스쳐보니 화산에 우는 새야 이별도 괴로워라. 망부산 앞에 석양이 거의 지는구나.
기도로고 라다가 안력(眼力)의 진(盡)톳던가. 낙화(落花) 말이 업고 벽창(碧窓)이 어두으니 입 노른 삿기 새들 어이도 그리 건쟈 팔월추풍(八月秋風)이 집을 거두으니 븬 긴의 인 알히 수화(水火) 못 면토다. 생리사별(生離死別)을 몸의 혼자 맛다 삼천장(三千丈) 백발(白髮)이 일야(一夜)의 기도 길샤. 풍파(風波)의 헌 고 노던 져뉴덜아. 강천(江天) 지 의 주즙(舟楫)이나 무양(無恙)가 밀거니 혀거니 염예퇴(艶澦堆) 겨요 디나 만리붕정(萬里鵬程)을 멀리곰 견주더니 람의 다브치여 흑룡강(黑龍江)의 러진 천지(天地) 이 업고 어안(魚雁)이 무정(無情)니 옥(玉) 면목(面目)을 그리다가 말년지고
구절 풀이
* 안력(眼力) : 시력(視力) * 진(盡)톳던가 : 다하였던가? * 벽창(碧窓) : 푸른 비단으로 치장한 창문 * 삿기 : 새끼 * 어이 : 어버이 * 집 : 띠집, 초가집 * 거두으니 : 거두니, 뒤집어엎으니 * 븬 긴 : ‘깃(새집)’의 오기(誤記)인 듯함. 빈 새집 * 수화(水火) : 물과 불의 횡액 * 생리사별(生離死別) : 생이별과 죽어서의 이별 * 혼자 마다 : 혼자 맡아, 혼자 당하여 * 져뉴(類)덜아 : 저 무리들아 * 주즙(舟楫) : 배와 노 * 무양(無恙)가 : 무고한가, 아무 이상 없는가 * 혀거니 : 당기거니 * 염예퇴(艶澦堆) : 중국 사천성 봉절현 서남쪽의 계곡 이름. 뱃사람들이 매우 조심한다는 물길 * 겨요 : 겨우 * 만리붕정(萬里鵬程) : 붕새가 날아가는 만 리나 되는 길 * 멀리곰 : 멀리, ‘곰’은 강세 보조사 * 이 업고 : 끝이 없고 * 어안(魚雁) : 물고기와 기러기 * 면목(面目) : (님의) 얼굴 * 말년지고 : 말려하는가, 그만두려 하는가?
현대어 풀이
기다리고 바라다가 시력이 다했던가? 떨어지는 꽃은 말이 없고 푸른 비단 창문은 어두우니 입 노란 새끼 새들이 어미를 그리는구나. 팔월 추풍이 초가지붕을 뒤집어엎으니 빈 새집에 싸인 알이 횡액을 면하지 못하도다. 생리사별의 아픔을 한 몸에 혼자 맡아 삼천 장 백발이 하루밤 사이에 길기도 길어졌구나. 풍파에 헌 배 타고 함께 놀던 저 무리들아 강천 지는 해에 주즙이나 무고한가. 밀거니 당기거니 염예퇴를 겨우 지나 만 리 붕정을 멀리 견주더니 바람에 다 부치어 흑룡강에 떨어진 듯 천지는 끝이 없고 어안이 무정하니 옥 같은 면목을 그리다가 말려하는가.
매화(梅花)나 보내고져 역로(驛路) 라보니 옥량명월(玉樑明月)을 녜보던 비친 양춘(陽春)을 언제 볼고 눈비 혼자 마자 벽해(碧海) 너븐 의 넉시조차 흣터지니 내의 긴 소매 눌 위여 적시고 태상(太上) 칠위분이 옥진군자(玉眞君子) 명(命)이시니 천상(天上) 남루(南樓)의 생적(生笛)을 울니시며 지하(地下) 북풍(北風)의 사명(死命)을 벗기실가 죽기도 명(命)이요 살기도 하리니 진채지액(陳蔡之厄)을 성인(聖人)도 못 면며 누설비죄(縷絏非罪) 군자(君子)인들 어이 리
구절 풀이
* 역로(驛路) : 역(驛)이 설치된 길 * 옥량명월(玉樑明月) : 옥으로 된 들보에 비치는 밝은 달, 임의 얼굴 비유 * 녜보던 비친 : 예부터 익히 보던 얼굴인 듯 * 양춘(陽春) : 봄날의 태양, 임의 얼굴 비유 * 벽해(碧海) : 푸른 바다 * 넉시조차 : 넋조차, 혼백(魂魄)까지 * 눌 위여 : 누구를 위하여 * 옥진군자(玉眞君子) : 신선 * 생적(生笛) : 생황과 피리 * 진채지액(陳蔡之厄) : 공자가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당한 횡액 * 성인(聖人) : 여기서는 공자를 가리킴 * 누설비죄(縷絏非罪) : 잡혀간 몸은 죄가 없음. 즉 죄 없이 잡혔다는 뜻
현대어 풀이
매화나 보내고자 역로를 바라보니 들보에 비치는 달빛은 옛 보던 낯빛인 듯 양춘을 언제 볼까. 눈비를 혼자 맞아 넓고 푸른 바닷가에 넋조차 흩어지니 나의 긴 소매를 누굴 위하여 적시는고. 태상 칠위분이 옥진군자의 명령이시니 천상 남루에 생적을 울리시며 지하 북풍의 사명을 벗기실까. 죽기도 운명이요 살기도 하늘의 운명이니 진채지액을 성인도 못 면한다는데 누설비죄를 군자인들 어이하리.
오월비상(五月飛霜)이 눈물로 어릐 듯 삼년대한(三年大旱)도 원기(冤氣)로 니뢰도다 초수남관(楚囚南冠)이 고금(古今)의 둘이며 백발황상(白髮黃裳)의 셔룬 일도 하고 만타 건곤(乾坤)이 병(病)이 드러 혼돈(混沌)이 죽은 후(後)의 하이 침음(沈吟) 듯 관색성(貫索星)이 비취 듯 고졍의국(孤情依國)의 원분(寃憤)만 싸혓시니 라리 할마(瞎馬) 치 눈 고 지내고져 창창막막(蒼蒼漠漠)야 못 미들 조화(造化)일다 이러나 저러나 하을 원망가 도척(盜跖)도 셩히 놀고 백이(伯夷) 아사니 동릉(東陵)이 놉픈 작가 수양(首陽)이 즌 작가 남화(南華) 삼십편의 의론(議論)도 하도 할샤 남가(南柯)의 디난 을 각거든 슬므어라
구절 풀이
* 오월비상(五月飛霜) : 오월 달에 서리가 날림 * 삼년대한(三年大旱) : 삼년에 걸친 큰 가뭄 * 원기(冤氣) : 원통한 기운 * 니뢰도다 : 이루어지다. 만들어지다 * 초수남관(楚囚南冠) : 초나라 사람 종의가 남관을 쓰고 옥에 갇힘. 즉 죄수 * 백발황상(白髮黃裳) : 백발의 고위직 관리 * 셔룬 일 : 서러운 일 * 하고 만타 : 많고도 많다 * 건곤(乾坤) : 하늘과 땅 * 침음(沈吟) : 근심에 잠겨 신음함. 또는 그런 소리 * 관색성(貫索星) : 천한 사람이 갇히는 감옥 * 고졍의국(孤情依國) : 유배지에서 오직 나라만을 생각하는 충정 * 원분(寃憤) : 원통함과 분함 * 할마(瞎馬) : 한쪽 눈이 먼 말 * 창창막막(蒼蒼漠漠) : 멀고 아득하며 막막함 * 조화(造化) : 조물주, 하늘, 운명 * 도척(盜跖) : 옛날의 큰 도적. 잔인무도한 도적의 대명사 * 셩히 놀고 : 성(盛)하고, 흔하고 * 백이(伯夷) : 주문왕의 은나라 정벌을 반대하고 수양산에서 굶어죽은 고죽군의 아들 * 아사(餓死)니 : 굶어 죽으니 * 동릉(東陵) : 땅 이름 * 수양(首陽) : 백이와 숙제가 굶어죽은 산 * 남화(南華) : 남화진경, 즉 ‘장자(莊子’)의 별칭 * 남가(南柯) : 남가일몽에 나오는 고을 이름. 한 때의 부귀영화는 뜬 구름처럼 덧없다는 뜻 * 슬므어라 : 싫고도 밉다
현대어 풀이
오월에 날리는 서리가 눈물로 어리는 듯 삼 년 큰 가뭄도 원기로 되었도다. 죄 없이 옥에 갇힌 죄수가 고금에 한둘이며 백발황상에 서러운 일도 많고 많다. 건곤이 병이 들어 혼돈이 죽은 후에 하늘이 침음할 듯 관색성이 비취는 듯 고정의국에 원분만 쌓였으니 차라리 눈 먼 말같이 눈 감고 지내고저 멀고도 막막하여 못 믿을 것은 조화로다 이러나저러나 하늘을 원망할까 도척도 성하고 백이도 굶어죽으니 동릉이 높은 걸까 수양산이 낮은 걸까 남화 삼십 편에 의론도 많기도 많구나. 남가의 지난 꿈을 생각거든 싫고 미워라.
고국송추(故國松楸)를 의 가 져 보고 선인(先人) 구묘(丘墓)를 후(後)의 각니 구회간장(九回肝腸)이 굽의굽의 그쳐세라. 장해음운(瘴海陰雲)의 백주(白晝)의 흣터디니 호남(湖南) 어늬 고디 귀역의 연수런디 이매망량(魑魅魍魎)이 쓸커디 저즌 의 백옥(白玉)은 므스 일로 청승(靑蠅)의 깃시 되고 북풍(北風)의 혼자 셔셔 업시 우 을 하 튼 우리 님이 젼혀 아니 피시니 목란추국(木蘭秋菊)에 향기(香氣)로온 타시런가. 첩여(婕妤) 소군(昭君)이 박명(薄命) 몸이런가.
구절 풀이
* 고국송추(故國松楸) : 고향 선산의 무덤 주변에 심은 나무 * 선인(先人) 구묘(丘墓) : 조상들의 무덤 * 구회간장(九回肝腸) : 구곡간장(九曲肝腸), 굽이굽이 서린 창자라는 뜻, 깊은 마음속 또는 시름이 쌓인 마음속의 비유 * 그쳐세라 : 끊어졌구나 * 장해음운(瘴海陰雲) : 병을 일으키는 나쁜 구름 * 백주(白晝) : 대낮 * 귀역(鬼蜮) : 귀신과 불여우라는 뜻으로, 음흉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연수(淵藪) : 못에 물고기가 모여 들고, 숲에 새들이 모여드는 것과 같이, 갖가지 물건(物件)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 * 이매망량(魑魅魍魎) : 귀신과 도깨비들 * 청승(靑蠅) : 쉬파리 * 깃시 되고 : 보금자리가 되고 * 목란추국(木蘭秋菊) : 백목련과 가을국화, 아름다운 미희(美姬)들의 비유 * 첩여(婕妤) : 한나라 시대의 여자 벼슬이름, 여기서는 한나라 성제 때의 반첩여를 가리킴 * 소군(昭君) : 한나라 원제 때 흉노에게 시집간 궁녀 왕소군 * 박명(薄命) : 박복한 운명
현대어 풀이
고국 송추를 꿈에 가서 만져 보고 선인 구묘를 깬 후에 생각하니 구회간장이 굽이굽이 끊어졌구나. 장해음운에 백주에 흩어지니 호남 어느 곳이 귀역의 연수런지 이매망량이 실컷 젖은 가에 백옥은 무슨 일로 쉬파리의 보금자리가 되고 북풍에 혼자 서서 한없이 우는 뜻을 하늘같은 우리 님이 전혀 아니 살피시니 목란추국에 향기로운 탓이런가. 반첩여와 왕소군이 박명한 몸이런가.
군은(君恩)이 믈이 되어 흘러가도 자최 업고 옥안(玉顔)이 이로되 눈믈 려 못 볼로다 이 몸이 녹아져도 옥황상제(玉皇上帝) 처분(處分)이요 이몸이 싀여져도 옥황상제(玉皇上帝) 처분(處分)이라 노가디고 싀어지여 혼백(魂魄)조차 흣터지고 공산(空山) 촉루(髑髏) 치 님자 업시 구니다가 곤륜산(崑崙山) 제일봉(第一峯)의 만장송(萬丈松)이 되어 이셔 람비 린 소 님의 귀예 들니기나 윤회(輪回) 만겁(萬㥘)여 금강산(金剛山) 학(鶴)이 되어 일만(一萬) 이천봉(二千峯)의 음 소사 올나 을 근 밤의 두어 소 슬피 우러 님의 귀의 들리기도 옥황상제(玉皇上帝) 처분(處分)일다.
구절 풀이
* 옥안(玉顔) : 임금의 얼굴 * 노가디고 : 녹아지고 * 싀어지여 : 죽어 없어져 * 촉루(髑髏) : 해골 * 님자 없이 : 임자가 없이, 거두어 묻어주는 사람이 없이 * 구니다가 : 굴러다니다가 * 곤륜산(崑崙山) : 중국 전설상의 높은 산. 중국의 서쪽에 있으며, 옥(玉)이 난다고 한다 * 만장송(萬丈松) : 높디높은 소나무 * 들니기나 : 들어가게 하거나 * 윤회(輪回) 만겁(萬㥘) : 만겁의 세월동안 윤회함. ‘겁(㥘)’은 불교의 시간단위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시간 * 음 소사 올나 : 마음껏 솟아올라
현대어 풀이
임금의 은혜가 물이 되어 흘러가도 자취 없고 옥안이 꽃이로되 눈물 가려 못 보겠구나. 이 몸이 녹아져도 옥황상제 처분이요, 이 몸이 죽어져도 옥황상제 처분이라. 녹아지고 죽어지어 혼백조차 흩어지고 공산 촉루같이 임자 없이 굴러다니다가 곤륜산 제일봉에 만장송이 되어 있어 바람 비 뿌린 소리가 임의 귀에 들리거나, 만겁이나 윤회를 하여 금강산 학이 되어 일만 이천 봉에 마음껏 솟아올라 가을 달 밝은 밤에 두어 소리 슬피 울어 임의 귀에 들리기도 옥황상제 처분이겠구나.
이 희 되고 눈물로 가디 삼아 님의 집 창 밧긔 외나모 매화(梅花) 되어 설중(雪中)의 혼자 픠여 침변(枕邊)의 이위 듯 월중소영(月中疎影)이 님의 옷의 빗취어든 어엿븐 이 얼굴을 네로다 반기실가 동풍(東風)이 유정(有情)여 암향(暗香)을 블어 올려 고결(高潔) 이 내 계 죽림(竹林)의나 부치고져 빈 낙대 빗기 들고 뷘 를 혼자 워 백구(白溝) 건네 저어 건덕궁(乾德宮)의 가고지고 그려도 음은 위궐(魏闕)의 달녀 이셔 무든 누역 속의 님 향 을 여 일편(一片) 장안(長安)을 일하(日下)의 라보고 외오 굿겨 올히 굿겨 이 몸의 타실넌가
구절 풀이
* 희 : 뿌리 * 가디 : 나뭇가지 * 외나모 : 홀로 서 있는 나무 * 침변(枕邊) : 침상 주변 * 이위 듯 : 시들어가는 듯 * 월중소영(月中疎影) : 달빛 속의 희미한 그림자 * 어엿븐 : 불쌍한 * 암향(暗香) : 그윽한 매화 향기 * 고결(高潔) : 높고 깨끗한 * 낙대 : 낚싯대 * 백구(白溝) : 송나라와 요나라의 경계에 있는 강, 여기서는 한강을 의미함 * 건덕궁(乾德宮) : 임금이 있는 궁궐 * 위궐(魏闕) : 높고 큰 궁궐, 대궐 또는 조정 * 무든 누역 속의 : 연기를 쐬어 검어진 도롱이 속에, 구차한 살림살이를 의미함 * 을 여 : 꿈에서 깨어 * 타실넌가 : 탓이겠는가?
현대어 풀이
한이 뿌리 되고 눈물로 가지삼아 임의 집 창 밖에 외나무 매화 되어 설중에 혼자 피어 침변에 시드는 듯, 달빛 속의 희미한 그림자가 임의 옷에 비취거든 불쌍한 이 얼굴을 너로구나 반기실까. 동풍이 유정하여 암향을 불어 올려 고결한 이내 생계 죽림에나 부치고 싶구나. 빈 낚싯대 비껴들고 빈 배를 혼자 띄워 백구 건너 저어 건덕궁에 가고 지고. 그래도 한 마음은 위궐에 달려 있어 내 묻은 누역 속에 임 향한 꿈을 깨어 일편장안을 한눈에 바라보고 그르게 머뭇거리거나 옳게 머뭇거리는 것이 모두 이 몸의 탓이런가.
이 몸이 젼혀 몰라 천도(天道) 막막(漠漠)니 물을 길이 젼혀 업다 복희씨(伏羲氏) 육십사괘(六十四卦) 천지만물(天地萬物) 상긴 을 주공(周公)을 의 뵈와 시이 뭇고져 하이 놉고 놉하 말 업시 놉흔 을 구룸 우희 새야 네 아니 아돗더냐 어와 이 내 가 산(山)이 되고 돌이 되어 어듸 어듸 사혀시며 비 되고 믈이 되어 어듸 어듸 우러 녤고 아모나 이 내 알 니 곳 이시면 백세교유(百歲交遊) 만세상감(萬世相感) 리라
구절 풀이
* 천도(天道) 막막(漠漠) : 하늘의 이치가 막막하고 아득하여 알 수 없음 * 주공(周公) : 문왕(文王)의 아들이며 중국 주(周)나라를 공고하게 굳힌 정치가 * 시이 : 자세히 * 뭇고져 : 묻고 싶구나 * 아돗더냐 : 알겠느냐 * 사혀시며 : 쌓였으며 * 우러 녤고 : 울며 흘러갈까 * 내 알 니 곳 이시면 : 내 뜻을 알 사람이 있다면 * 백세교유(百歲交遊) 만세상감(萬世相感) : 영원토록 서로 사귀고 공감함 * 리라 : 원문에는 없으나 있어야 마땅함.
이 몸이 전혀 몰라 천도가 막막하니 물을 길이 전혀 없다. 복희씨 육십사괘 천지 만물 생긴 뜻을 주공을 꿈에 뵈어 자세히 여쭙고 싶구나. 하늘이 높고 높아 말없이 높은 뜻을 구름 위에 나는 새야 네 아니 알겠더냐. 아! 이내 가슴 산이 되고 돌이 되어 어디어디 쌓였으며 비가 되고 물이 되어 어디어디 울며 갈까. 아무나 이내 뜻을 알 사람이 있으면 백세교유 만세상감하리라.
핵심정리
* 작자 : 매계(梅溪) 조위(曺偉)
* 주제 : 무고한 유배에 대한 원통함과 임금에 대한 그리움
* 의의 : 최초의 유배가사(1498년 연산군4)
조위(1454-1503)
본관 창녕(昌寧). 호(號)는 매계(梅溪). 성종 5년 문과 급제, 성종의 총애를 받음. 호조참판, 충청도관찰사, 동지중추부사 겸 부제관(연산군때). 연산군때 <성종실록> 편찬 도움. 연산군 4년(1498)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오다가 때마침 일어난 무오사화로 김종직의 시고(詩稿)를 수찬한 장본인이라 하여 의주에서 체포, 투옥되었다. 이극균(李克均)의 극간으로 죽음을 면하고 오랫동안 유배되었다가, 순천으로 옮겨진 뒤 죽었다. 성리학의 대가로서 당시 사림(士林)간에 대학자로 추앙되었고, 김종직과 함께 신진사류의 기수였으며, 글씨도 잘 썼다.
해설
조선 연산군4년(1498) 조위(曺偉)가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되어 귀양 간 유배지 순천에서 지은 127구의 가사 작품이다. 당쟁의 결과로 유배된 신하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임금을 그리워하는 유배가사의 효시라는 점에서 문학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또한 이 작품은 후대에 지어진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과 '속미인곡' 등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며 후대의 유배가사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구성은 서사, 본사, 결사로 나눌 수 있는데, 서사에서는 유배지에서 왕에게 흉중의 말을 실컷 호소하고자하는 동기가, 본사에서는 사화로 인해 전일의 영화가 현재의 억울하고 처참한 귀양살이로 바뀌었으나 이 역시 천명이니 임금의 처분만 바란다는 내용, 결사에서는 원한에 쌓인 자기의 심정을 안타까워하면서 만일 누구든 자기의 뜻을 알아주는 이가 있다면 평생 동안 교유하며 공감하고 싶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표현상의 특징은 천상의 세계에서 버림받은 여성을 서정적 자아로 설정하여 옥황상제를 그리워하는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辭)의 구도를 취하고 있다. 또 <만분가>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이 죄 없이 유배를 당하게 된 현실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의 정서를 아울러 표출하고 있다. 거의 모든 유배가사에 드러나듯이 억울하게 유배를 당하는 입장이라면 두 가지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전일에 임금으로부터 받았던 은총과 그에 대한 그리움, 즉 연군의 감정일 것이고, 또 하나는 자신을 그러한 처지로 전락시킨 정치적 현실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일 것이다. 이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이 두 가지의 감정을 효과적인 문학적 장치를 활용하여 독자들에게 설득력과 감동을 주는 장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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