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畊山人 박희용의 南禪軒 독서일기 2024년 11월 1일 금요일]
『대동야승』 제11권
[기묘록 속집 (己卯錄 續集)] 주간죄목(誅奸罪目)
주간죄목(誅奸罪目) : 기묘간흉 심정 홍경주 남곤의 죄목
경인년(1530) 겨울에 대사헌 김근사(金謹思)와 대사간 권예(權輗) 등이 아뢰기를, “심정이 간사하고 탐욕스럽고 탁(濁)하여 권세를 오로지하고 방자하게 행하여, 김극핍(金克愊)ㆍ이항(李沆)과 사생을 함께 할 친구를 맺어 서로 원조하고 구호하였습니다. 그러나 극핍과 항엑 배척을 당한 뒤로부터 좌우의 손을 잃은 것같이 되어 분함을 품고 스스로 위태하게 여기어 간사한 꾀와 비밀한 계교를 부리지 않는 바가 없었습니다.
이때 마침 성세창(成世昌)이 홍문관에 들어옴을 보고 스스로 기회를 얻었다 생각하여 몰래 세창을 사주하여 그 계교를 달성하려 하였으나, 남의 눈을 끝까지 속이지 못하여 정상이 실패하여 드러났습니다.
세창은 이미 조옥(詔獄)에 갇히었으니 마땅히 법률에 의하여 바르게 다스리겠지만, 그러나 심정은 죄의 괴수인데 괴수는 놓아 두고 협박을 받아 추종하는 자만 다스린다면 어찌 임금으로서 공정하게 사람을 부린다고 하겠습니까.
대개 임금이 대신을 중하게 여기는 것은 대신의 도리를 하기 때문인데 심정이 후진을 끌어들여 인심을 모으고 시종과 사귀고 간사한 꾀를 부리며 사곡하게 이항을 맞이하여 머물러 자게 하면서 사사로이 의논하고, 박씨(朴氏)의 뇌물을 받고도 박씨의 계집종을 요구하였으니, 과연 대신의 도리입니까. 국가의 위태하고 망하는 것이 항상 대신의 독재에서 나오는 것인데 임금이 혹 강하게 제재하지 못하여 일이 구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뉘우쳐도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성종조 때에 임사홍(任士洪)이 슬며시 지평 김언신(金彦臣)에게 부탁하여 현석규(玄碩圭)를 논박하였는데, 성종께서는 그 간사한 정상을 알고 곧 먼 변방으로 추방하였으나, 다만 법으로 다스리지 않았기 때문에 연산군의 위태롭고 망치는 화(禍)를 열어 주게 된 것입니다.
지금 심정은 대신의 자리를 도둑질하여 차지하였으니 사홍과 비교할 바가 아니요, 대간을 일망타진하였으니 석규 한 사람과 비교될 바가 아닙니다. 죄가 사홍보다 큰데 지금 죄를 적용하는 것은 다 오히려 사홍보다 가벼우니, 청컨대 법률에 비추어 죄를 정하게 하소서.” 하였다. 12월에, 심정을 강서(江西)로 귀양보내고 세창을 평해(平海)로 정배시켰다.
이때 김안로가 세창이 자기를 배척함을 원망하였는데, 조정에 돌아오자 세창이 심정과 함께 사림을 해쳤다고 얽어 무함하여 쫓아내었다. 심정은 신묘년 12월에, 이항(李沆)과 더불어 동시에 죽음을 당하였고, 세창은 정유년에 김안로가 처형된 뒤에 석방되어 관직을 회복하였다.
심정의 직첩(職牒)을 도로 돌려 달라는 일로 중종ㆍ명종 때에 자손이 여러 번 상소를 하였으나 모두 규탄을 당하고 또 외람하게 소장(訴狀)을 바친 것으로 벌을 받았다. 인종이 즉위한 처음에 이항의 직첩을 도로 주었는데 대간의 논계(論啓)로 인하여 회수하였다.
만력 무진년(明 목종 융경 隆慶 2년 1568년) 가을 9월 금상(今上)의 비망기(備忘記)에 전교하기를, “지금 경연관 이황(李滉)의 말을 듣건대, 남곤의 관작을 삭탈하는 것이 의당하다 하니, 대신들은 의논을 취소하고 또 홍문관 양사(兩司)에서는 마땅히 그 죄를 조목조목 들추어내는 것이 옳겠다.” 하였다.
대사헌 김귀영(金貴榮)ㆍ대사간 강사상(姜士尙)ㆍ부제학 노수신(盧守愼) 등이 차자(箚子)를 올려, 남곤이 간사하고 음흉하여 나라의 명맥을 깎아 손상시킨 죄를 극력 말하였고, 좌의정 권철(權轍)은 아뢰기를, “엎드려 보옵건대, 이황이 아뢰어 남곤의 관작을 삭탈하자는 일은 그 뜻이 지극히 바릅니다. 기묘년 이래로 사림의 화가 모두 남곤이 악의 괴수가 됨으로 말미암은 것인데 그 몸이 이미 죽고 뼈가 이미 썪었으니, 지금 비록 관직을 빼앗더라도 진실로 족히 그가 사림을 참벌(斬伐)한 분노를 풀 수 없습니다.
이미 광조에게 관작을 추증하고 남곤이 오히려 관작을 보전한다면 선악이 분별이 없고 시비가 밝지 못한 것입니다. 곤이 심정과 서로 좋아하여 함께 탐하고 간사학 행실이 없는 사람으로서 맑은 사류(士類)들에게 용납되지 못하게 되자, 그 고기를 씹고자 하여 낮과 밤으로 주둥이를 놀려서 홍경주와 체결하여 벌레 먹은 잎사귀의 참서(讖書)를 만들어 비밀히 임금께 주달(奏達)하여 임금의 마음을 놀라게 하고, 밤을 타서 신무문(神武門)을 열고 편전(便殿)에 입대(入對)하여 처음에는 광조의 무리를 잡아들여 대궐 뜰에서 때려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영상 정광필을 불러 영상이 임금의 앞에 이르자 영상은 만번 죽을 것을 무릅쓰고 구제하고 해명하니, 남곤이 부끄러워서 말을 못하였습니다.
전날 저녁에 남곤이 흰옷을 입고 초립(草笠)을 쓰고 거짓 남 생원이라고 일컫고 광필에게 가서 명함을 드리니, 광필이 남곤의 거짓인 것을 알고 놀라 일어나 나가 보니 밀지가 있다고 말하므로 광필이 엄한 말로 거절하였습니다. 남곤이 그때에 이조 판서로 있었는데, 천한 사람의 옷으로 밤을 타서 정승의 집에 이르렀으니 그 귀역(鬼蜮)의 형상이 심합니다. 남곤이 임금과 윗사람을 속이고 간사한 꾀를 부리어 사림을 쳐서 해치고 국가 명맥을 깎아 손상시킨 것이 옛날 소인이라도 그보다는 더할 자가 없으니 관작을 추탈한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그
리고 우의정 홍섬(洪暹)도 아뢰기를, “남곤이 선량한 사람을 시기 질투하고 사림을 일망타진하였는데 그 몸은 비록 죽었으나 아직도 관작을 보전하고 있으니, 세월이 50년이 지났어도 민심은 오히려 격노하고 있습니다. 좋아하고 싫어함을 분명히 나타내어 대중의 노여움을 위로하고 보답하소서.” 하였다.
전교하기를, “남곤의 일은 다만 옥당의 차자(箚子)뿐 아니라 근일의 경연에서도 또한 여러 번 말하므로 물어보았다. 그래서 지금 조정의 의논을 보니 위로 대신으로부터 아래로 양사ㆍ옥당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남곤의 죄를 늘어놓으며 주장이 또한 모두 같았다. 이는 곧 꾀함이 없이 한결같은 것이라 하겠다. 조정 의논이 이와 같으니 좇지 않을 수 없다. 남곤의 관작을 모두 삭탈하여 사림의 분을 풀게 하고, 이 일을 양사와 옥당에 일러라. 남곤의 관작을 빼앗고자 하는 것은 광조의 도학을 추앙(追仰)하고 한때의 추향(趨向)을 허여하기 위함이라.” 하였다.
[한국고전종합DB]
[팔경논주] 심정을 처리하는데 11년, 남곤을 처리하는데 49년 걸렸다. 그런데 최고간흉 홍경주는 아직 정리 안 됐다. 간흉한 자들이 한때는 득세하지만 훗날 언젠가는 정리된다. 심정과 남곤 등 간신의 후손들은 조상의 죄를 참회하며 조용히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어느 신문의 칼럼을 보니, 나뭇잎에 꿀물로 주초위왕을 쓰고 벌레들이 먹도록 해서 중종에게 보였다는 것은 꾸며낸 이야기라고 하는 자가 있었다. 여러 사람이 쓴 사료들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변명하는 걸 보니 간흉들의 자손이 현재도 활개치며 살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그럼 기묘숙청극을 명령한 중종 이역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임금은 무죄요 무치요 무욕인가? 주초위왕 사기극에 놀아난 어리석고 못난 임금 중종 이역. 반듯한 선비들을 얼마나 많이 학살했느냐. 이 글을 읽는 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